화원 키우는 사천당가 데릴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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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빈
작품등록일 :
2024.09.13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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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0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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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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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비전독서(秘傳毒書)에 적힌 낙서

DUMMY

화린은 먼지가 묻은 비단옷을 환복 중이었다.


시비인 시월이 요대(腰帶)를 살포시 풀어내고, 중의(中衣)를 천천히 벗긴다.


시월은 소매를 잡고 정리하며 말문을 열었다.


“아씨, 이번에 새로 들어온 시동은 어떻습니까? 언뜻 보니 꽤나 미남이던데요.”


화린은 갈아 입을 표자(裱子), 겉옷을 손에 들고 잠시 멈칫했다.


“백 소협 말이니?”


시월은 옷의 깃을 정돈하며 장난스럽게 눈을 반짝였다.


“어머, 벌써 소협이라 부르십니까?”


“······.”


화린은 전신 거울 앞에서 분이 칠해지는 자신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어렴풋이 향빈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어차피 그 자리에 있었으면 도화산(桃花散)을 마시고 저들의 노리개가 되었을 겁니다. 그럴 바에 소인 좀 도와주시죠. 제가 자연스럽게 빼돌려 드리겠습니다.


빗으로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시월을 보며 분홍빛 입술을 살포시 뗐다.


“협(俠)을 아는 자니까. 존중받을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


시월은 흐뭇하게 웃으며 화린의 머리에 은비녀를 장식했다.


“그 가치가 금자 10냥이나 하옵니까?”


“아니.”


의외의 즉답에 시월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하지만 금방 화린이 말을 덧붙인다.


“그 이상이야.”


그 말을 듣고 시월은 입가를 가리며 수줍게 웃었다.


까치발을 들며 화린의 어깨 넘어 거울 속에 빼꼼 나타난다.


“그럼 만약 소인이 금자 20냥으로 다시 사겠다고 하면 파시겠습니까?”


화린은 눈썹을 가운데로 모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절대 안 팔아. 그러니까 내 걸 넘볼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


눈을 가늘게 뜨며 경고를 날린 화린.


그녀는 그대로 방에서 나갔다.


내원(內院)의 회랑을 걸으며 아침에 달걀을 뱉던 향빈의 모습을 떠올렸다.


‘사리풀이 들어간 걸 어떻게 알았던 거지?’


화린은 소매에서 해독제가 동봉된 죽지를 꺼냈다.


독공을 연마하는 그녀조차도 증상이 나타나고 나서야 뒤늦게 깨닫는다.


그런데 그는 8첩 밥상에 일절 손대지 않았다.


심지어 함정으로 심어둔 계란마저 간파했다.


‘대단해.’


솔직 담백한 감탄.


역시 현빈이 도화산(桃花散)을 맞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보법을 밟던 그의 무공도 시험해보았다.


그 결과.


‘오라버니도 버거워했던 회타연편십삼식(廻打軟鞭十三式)을 그리 쉽게 파훼하다니···.’


채찍을 휘두를 때, 기력이 증폭된 끝부분은 초음속에 도달한다.


쾌속의 끝을 달리는 연격.


이 무공을 익히기 위해 정말 피나는 노력을 했을 만큼 화린에게 비장의 한 수였다.


그런데 향빈은 마지막 일격을 제외하고 모조리 회피했다.


‘아니.’


화린은 고개를 저었다.


‘최후의 일격은 백 소협이 일부러 맞아준 거야.’


현란한 연격으로 상처를 중첩시킨 후, 회피 불능의 일격을 내리찍는 기술.


하지만 그는 애당초 한 대도 스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동작이 큰 최후의 강타를 피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고의적으로 한 수를 내어준 굴욕적인 처사.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하지만 숨을 길게 내뱉으며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됐어. 어차피 시간은 내 편이야.’


향빈의 스승이 누군지 딱히 중요치는 않았다.


그의 모든 권리를 금자 10냥에 샀으니까.


고로 그의 무공, 지식 또한 그녀의 것이었다.


하늘이 내린 기연.


‘반드시 내 걸로 만들어 보이겠어.’


화린은 본당(本堂)의 가주청(家主廳) 앞에서 눈을 부릅떴다.


두 명의 시비가 죽지로 이루어진 문을 천천히 연다.


“막내 당화린. 사천당문의 가주께 인사 올리옵니다. 간밤에 편히 주무셨는지요?”


포권을 취하며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화린.


하지만 기다란 의탁(議卓) 끄트머리에 앉은 중장년의 사내는 잿빛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헛기침을 할 뿐이었다.


“크흠.”


사천당문의 가주, 당현.


그를 대신해서 아내인 제갈연희가 부채를 접고 방긋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렴, 화린아. 오늘 조찬에 네가 없어서 걱정했단다. 어디 아픈 곳은 없니?”


“괜찮습니다, 어머니.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화린은 어머니께 고개를 숙이고 가주청에 발을 들였다.


의탁의 좌측에는 장남인 당신우와 차남인 당진명이 자리했다.


우측에서 장녀인 당혜원이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친다.


“화린아. 여기, 여기.”


화린은 해맑게 웃는 혜원의 손짓에 따라 착석했다.


무겁게 가라앉는 침묵.


모두가 눈치를 보는 와중, 제갈연희가 눈웃음을 지으며 부채를 펄럭였다.


“상관(相公). 이러다 날 새겠습니다.”


당현은 깊은 한숨을 푹 내쉬고 무거운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모용세가의 일을 보고 받았다.”


가주의 매서운 눈매가 혜원에게 향했다.


“변명이 있다면 해 보거라. 어째서 가주에게 보고도 없이 일을 벌였는지 말이야.”


혜원은 당당하게 팔짱을 꼈다.


“보고 받으셨으니, 아셨을 것 아닙니까? 아버지께서 멋대로 혼약을 맺은 모용세가의 차남이 어떤 인물인지.”


당현은 거칠게 손을 휘둘렀다.


팡-!


공기가 일렁이나 싶더니.


혜원의 긴 생머리가 거칠게 휘날렸다.


콰직!


철제 말뚝이 벽을 뚫고 깊숙이 박혔다.


그러나 혜원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정녕 네 잘못을 모르겠느냐?”


살 떨리는 침묵이 이어졌으나.


쾅!


당현이 주먹으로 의탁을 내리치며 적막이 와장창 깨졌다.


“당장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모용세가의 처자식을 그냥 살려 보냈다?! 하! 그러고도 혜원이, 네가 우리 당문을 입에 올릴 수 있겠느냐!!”


당현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는지, 힘줄이 돋은 손을 파르르 떨었다.


“지금 바로 독룡대(毒龍隊)와 암영단(暗影團)을 소집해라! 감히 사천당문을 능멸하고도 이 땅에서 살아 숨 쉴 수 있을 거라 여겨? 가소롭기 그지없군!! 이 몸이 직접 모용세가의 핏줄을 끊어 가문의 위상을 되찾겠다!!”


그의 일갈에 제갈연희는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랑군. 일단 고정하시지요. 그리고 이번 일은 소첩이 허가한 일이옵니다.”


“······부인이 말이오?”


불처럼 타올랐던 당현의 눈동자가 점차 사그라든다.


“모용세가의 세력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아마 이번 혼약도 사천당문을 중심으로 남서부 지역 일대의 세력 확장이 목적이겠지요.”


연희는 눈을 가늘게 뜨며 당현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가주께서도 혼약을 허락하신 것 아닙니까. 현재 시점에서 모용세가와 척을 지는 것은 가문을 위기에 빠뜨리게 될 테니까요. 그걸 아시는 분이 막내 이야기만 나오면 밤마다 울면서······.”


당현은 어깨를 흠칫 떨며 황급히 연희의 입을 틀어막았다.


“어허! 부인! 그렇게 말하면 아이들이 오해하지 않소!”


혜원은 흩날린 머리칼을 빗으로 정돈하며 입을 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그럴 줄 알고 무림맹의 도관(都官), 비연검풍(飛燕劍風)을 초대하여 증인으로 참석시켰습니다. 이 정도면 파혼할 명분은 충분하리라 보는데요.”


그녀가 빗을 소매에 넣고 화린을 꼭 끌어안는다.


“진짜 이렇게까지 했는데, 우리 귀염둥이 막내를 그런 색마한테 보내실 건 아니죠?”


당현은 팔짱을 끼며 콧바람을 내뿜었다.


“흥. 가주에게 보고도 없이 단독 행동한 것은 괘씸하지만, 이번 건에 한하여 특별히 허가하도록 하마.”


이렇게 의제가 일단락되나 싶었다.


허나, 반대편에 앉은 장남 당신우가 화린에게 시선을 보내며 자연스레 화제가 넘어갔다.


“그런데 화린아. 오늘 아침에 재밌는 소문을 들었는데 말이다.”


그에게 이목이 집중된다.


“사천당문의 막내 아씨가 금자 10냥에 창남을 낙적했다고··· 시비들이 쑥덕거리더구나.”


화린은 의탁 아래로 숨긴 손을 꼼지락거렸다.


고개를 떨구고 침을 꿀꺽 삼킨다.


당현도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에게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혜원이 꺄르르 웃으면서 손을 휘저었다.


“난 또 뭐라고. 신우 가가(哥哥)도 우리 도화원에 이따금 방문하잖아요.”


“무··· 무슨 소릴 하는 게냐. 난 그런 세속적인 곳에 관심 없다.”


“이런··· 소연이가 많이 아쉬워하겠네요. 조만간 오라버니가 낙적해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던데.”


“당혜원. 너 진짜···.”


신우는 허공에 올린 손을 쥐었다 펴며 입을 벙긋거렸다.


혜원의 시선이 당현에게 옮겨가자, 그는 헛기침하며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크흠.”


곁에서 눈을 부릅뜬 제갈연희의 눈빛에 입을 꾹 다문다.


화린은 눈동자를 굴리며 분위기를 살폈다.


살벌했던 처음보다 많이 수그러든 느낌이다.


‘좋아. 지금이라면.’


숨을 들이켜며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저기··· 아버지.”


“그래, 뭔가 할 말이 있느냐?”


당현이 화린에게 눈길을 주었다.


화제를 바꾸려는 그녀의 첫마디가 반가운지 눈썹이 둥글둥글해졌다.


‘할 수 있어. 말하는 거야.’


화린은 조용히 심호흡을 내쉬었다.


언제나 묵직한 가주의 눈빛에는 심장이 벌렁거린다.


“현재 독련방(毒蓮幇)과 철심연(鐵心鍊)은 진명 오라버니께서 지휘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음, 그렇지.”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고 한 박자 뒤에 말을 이었다.


“이번 기회에 독련방을 제게 맡겨주시면 안 될까요? 저도 가문의 일원으로서 가가(哥哥)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습니다.”


당현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볼을 씰룩였다.


차남인 당진명이 고개를 저으며 먼저 말문을 열었다.


“아서라. 독련방은 군자산(君子散), 칠보단혼산(七步斷魂散) 같은 맹독을 제조하는 당문의 핵심 부서다. 네가 다루기에는 아직 일러.”


그 말에 당현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겉멋에 취해 함부로 덤벼들었다간, 저승에서도 고통받을 것이야. 가주로서도 네 제의는 탐탁지 않구나.”


지금까지 화린의 편을 들었던 혜원도 이번만큼은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때가 되면 다 자리를 내어주실 거야. 너무 조급해하지 마, 화린아.”


화린은 시선을 떨구며 가녀린 목소리를 흘렸다.


“응, 언니···.”


***


촛불이 일렁이는 야심한 밤.


화린은 책상 앞에 앉아 서적을 한 장씩 넘겼다.


하지만 단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째서···.’


눈가가 촉촉해지며 글귀가 흐릿해졌다.


‘지금까지 비전독서(秘傳毒書)만 백 번 정독했어.’


이제는 몇 장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눈 감고도 훤히 보일 정도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독련방(毒蓮幇)의 공방 밖에서 독을 조합하는 것은 금기.


사천당문의 기밀이기에 철저히 관리되는 것은 물론, 독무(毒霧)가 유출되면 대량의 희생자가 발생할 위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화린은 여태껏 독을 배합해본 적이 없었다.


‘이게 다 결과가 없기 때문이야.’


그녀는 의자를 드르륵 끌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을 꿇고 침대 밑에서 조심스럽게 화분을 꺼낸다.


초오(草烏), 일명 투구꽃.


독련방 소공(小工)의 이야기에 따르면, 작년에 비해 독초의 수확량이 3할 가까이 줄었다고 들었다.


이때 자신이 직접 키운 초오(草烏)로 능력을 입증하면···.


하지만 화린은 고개를 떨구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삐쩍 마른 꽃잎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진다.


“도대체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


매일 동이 틀 때부터 해질녘까지 충분한 햇살을 맞게 해줬다.


맑고 투명한 계곡물을 주어 정말 정성껏 키웠다.


그런데 화린의 초오(草烏)는 점차 메말라갔다.


그녀는 나무 바닥에 비전독서(秘傳毒書)를 펼치고 눈이 충혈되도록 다시금 정독했다.


“비전서 대로 했잖아. 그런데 왜!”


홧김에 높게 치켜올린 비전서.


당장에라도 던질 것 같았던 화린의 손이 멈칫한다.


‘잠깐만.’


화린은 서적을 다시 펼쳤다.


글을 차근차근 훑던 그녀의 손가락이 우뚝 멈췄다.


“어···?”


죽지의 하단부에 자그마한 글귀가 적혀 있다.


기존 비전서와 흡사한 필체.


자연스럽게 이어붙인 문구.


만약 일반인이 봤다면 그냥 넘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전서만 100번 이상을 정독한 그녀가 이걸 놓칠 리 없었다.


금일, 화린의 방에 출입한 사람은 시월···.


그리고 금자 10냥에 낙적한 화창남, 백향빈.


“설마.”


화린은 당장 격자창을 열고 정원 구석을 바라보았다.


촛불이 일렁이는 자그마한 창고.


지금은 향빈이 지내는 별채가 되었다.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진다.


“내일부터 바빠지겠어.”


그녀는 침대로 발걸음을 돌리며 가볍게 촛불을 불었다.


“호···.”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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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팔려버린 제자 24.09.14 361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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