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삐뚤어진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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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날개
그림/삽화
밀랍날개
작품등록일 :
2024.09.16 19:17
최근연재일 :
2024.09.19 18:25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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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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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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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꿈인가

DUMMY

순간 목에 칼을 들이댄 듯한 섬뜩한 느낌이 등골을 스쳐 갔다.


‘위험해!’


지금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


이룡은 곁에 있는 설 선배를 끌고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응?”


하지만 아무리 힘을 주어 당겨 봐도 그녀는 땅에 박힌 듯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무슨 힘이···?’


···내가 약해진 건가?


최근에 운동을 쉬긴 했지만, 그래도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여자에게 힘으로 밀린다고?


남자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는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 당장 급한 건 사소한 자존심 따위가 아니었다.


“선배, 믿기지는 않으시겠지만, 지금 당장 여기서 피해야···?”


그는 갑자기 자신의 몸이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물컹


‘물컹?’


향긋한 향기가 콧속으로 들이치며, 부드러운 촉감이 얼굴을 감쌌다.


숨쉬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폭신함과 얼굴을 강하게 밀어내는 듯한 탄력감


이룡은 멍한 시선으로 하얀 와이셔츠 너머로 비치는 뽀얀 살결을 바라봤다.


‘점 하나가 있네.’


작고 연한 게 유독 시선을 사로잡···.


아니, 그게 아니고.


‘···나 지금 선배한테 안긴 거야?’


그는 뒤늦게 자신이 선배의 가슴팍에 안겨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도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그녀에게.


‘윽!’


그리고 무릎으로 큰 충격이 전해지고 나서야, 그녀가 자신을 안고 뒤로 크게 물러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괜찮아?”


익숙하지만 낯설게만 느껴지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읍읍!”


“아, 미안해.”


크게 융기한 것에 파묻혀 있던 얼굴이 해방되고 나서야, 막혀 있던 입안에 간신히 공기를 집어넣을 수 있었다.


“서, 선배, 이게 대체···?”


“자세한 건 이따가.”


그렇게 대답한 그녀는 그를 자신의 뒤를 보내고는 그의 앞을 막아섰다.


“왜 그러는···?”


그는 황망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게 뭐야?’


시선의 끝에는 괴이한 생물체가 있었다.


붉은 피막으로 뒤덮인 늑대의 얼굴

검게 물든 눈동자와 이마 위로 난 뿔

비대한 상반신과 날카로운 손톱


‘···이물?’


영상과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것이 그들을 보며 낮은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손으로 덜덜 떨리는 팔을 감쌌다.


녀석을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피부가 저릿저릿하고 숨쉬기가 어려워지는 느낌이었다.


‘도, 도망쳐야···.’


“어떻게 기척도 없이 이렇게 가까이 접근한 거지?”


그때 그녀가 조용히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침착해?’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좀 별난 사람이었지만, 지금 보이는 모습은 도저히 일반적인 회사원이라고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마치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냐.’


연달아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일은 명확했다.


“선배,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도망가야···.”


그는 그녀의 옷소매를 잡아끌며 저 괴물로부터 멀어지려 했지만,


“떨어져.”


방해되니까.


그녀는 자신을 붙잡은 손을 단호하게 쳐내며 그를 돌아보았다.


“뭐, 상관없겠지.”


그리곤 그대로 자신의 손목을 그어냈다.


“무슨!?”


그는 튀어 오르는 검붉은 핏물을 보면서 경악성을 토했다.


‘자살?’


이미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을 버린 거야?


침착해 보였던 게 멘붕해서 그랬던 건가?


그냥 이렇게 쉽게 목숨을 포기한다고?


“···어?”


그러나 그런 그의 생각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현상과 함께 끊어지고 말았다.


백색으로 물드는 머리

분홍으로 옅어지는 눈동자

눈앞까지 치솟는 키


그녀의 옷 또한 마치 살아있는 듯이 움직이며, 그에게도 익숙한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백색 바탕에 붉은 장식, 끝을 마감하는 황금빛 실과 눈꽃이 새겨진 견장까지.


방금 전까지 동영상으로 봤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설화?”


그녀의 눈초리가 치솟았다.


“···님?”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보는 그녀.


그 표정 없는 얼굴마저 넋을 잃게 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미의 여신을 사람으로 빚어놓는다면 이런 형상일까.


그녀는 현실의 그것과는 다른 그림체를 그리며, 흐릿한 세계에서 선명한 존재감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이 현실인지 꿈속인지 진심으로 헷갈리기 시작했다.


‘설화 님이 선배? 선배가 설화 님?’


···이건 말이 안 되잖아.


갑자기 도심에서 이물의 습격을 받고, 갑자기 설화가 등장해서 나를 지켜준다고?


사실 설화가 설 선배였고, 난 10년 동안 그녀와 함께 일상을 영위했고?


‘이, 이건 말이···.’




“정신 차려.”


머리가 돌아가는 충격과 함께 정신이 현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의 눈에 그녀의 머리를 향해 입을 쩌억 벌린 이물의 모습이 보였다.


“위험해···!”


퍽!


“···요.”


미처 말을 다 뱉기도 전에 튕겨 나가는 고깃덩어리 하나.


튀어 오르는 핏물마저 깔끔하게 털어 낸 그녀가 그의 빛바랜 금안金眼을 빤히 응시했다.


꿀꺽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깔았다.


그녀의 박력에 쫄아 버린 것도 있었지만, 아직 직감이 상황이 끝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물도 처리했는데, 왜 아직도 이런 느낌이···?’


잠깐.


‘내 감이 경고를 한 건 저 괴물이 아니었나?’


괴물이 아니라면···.


‘설마 선배를?’


아니, 애초에 눈앞에 있는 사람이 선배는 맞는 거야?


혹시 내가 봐서는 안 되는 모습을 봐버린 건가?

일반인에게 들키면 안 되는 비밀 작전 중이었던 거야?

어쩌면 나, 이대로 살인멸구 당해버릴지도?


그동안 봐왔던 수많은 픽션 속의 이야기들이 스쳐 가며 땀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너무 긴장하지 마. 내가 너에게 해코지할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런 그의 긴장을 알아챈 듯이 그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아?”


크게 부푸는 그림자.


“어차피 넌 경호 대상···.”


그는 그녀의 뒤에서 무언가의 형체를 갖추는 그림자를 보았다.


‘내 감이 가리킨 건 바로 저거였어.’


처음 나타난 괴물도, 정체를 밝힌 그녀도 아닌, 그림자 속에 숨어있던 무언가.


그 괴물의 날카로운 이빨이 그녀의 머리 위로 드리웠지만, 그녀는 아직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직였다.


“뭐 하는 짓이야?”


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자신을 감싸려는 그를 단호하게 밀어냈고, 어설픈 정의감과 반사적인 거부가 뒤얽혀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큭!”


아찔한 고통과 함께 뜨거운 피가 요란스럽게 솟구쳤다.


마치 불로 지지는 듯한 생경한 고통이 신경을 타고 뇌 속에 그대로 때려 박혔다.


‘사, 상황은?’


그는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참아내며 앞을 바라보았다.


갈가리 찢겨 나가는 괴물.


그들을 습격했던 것은 형체조차 남기지 못한 채로 ‘분쇄’ 당했다.


“···어떻게 날 속인 거지?”


하얀 피부를 붉게 물들인 피.


그것을 닦아낼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중얼거리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사하군.’


어쩌면 내가 헛짓거리를 한 걸 수도···.


그는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괜찮아?”


“···이게 괜찮아 보입니까.”


옆구리에서 막을 수 없는 수준으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건 정말 죽겠는데.’


시야가 급격히 흐려지며, 의식 위로 짙은 어둠이 드리우는 것이 느껴진다.


‘이게 죽음인가?’


“설마 이게 내 마지막일 줄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배달이나 마음껏 시켜 먹고 살 걸.


죽음 앞에서 든 소박한 소망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음이 나와?”


그는 흐릿한 시야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왠지 그 무표정한 얼굴에서 감정이 엿보인 것 같다는 건 자신의 착각일까.


‘착각이겠지.’


애초에 선배나, 설화나, 평범한 자신과는 거리가 있던 사람들이었으니까.


“그래도 죽기 전에 보는 풍경이 미녀의 얼굴이라서 다행···.”


“주접떨지 마. 넌 안 죽으니까.”


품속에서 주사기를 꺼낸 그녀가 그것을 곧바로 그의 목에 꽂아 넣었다.


“벌써 이게 몇 번째인지.”


“···몇 번?”


그녀가 중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의 의식이 급격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한숨 자둬. 그럼 모든 게 끝나있을 테니까.”


네가 이걸 기억할 일은 없겠지만.



* * *



정신이 어둠 속을 부유했다.


마치 공기로 이루어진 바다를 떠다니는 것 같은 자유로움.


그 속을 마음껏 헤엄치던 그의 눈에 어떤 한 장소가 보였다.


‘저긴 어디지?


커다란 책장과 둥근 책상, 푹신한 의자와 티 세트 하나가 놓여있는 곳.


작은 등으로 밝혀진 그 장소는 마치 작은 서재처럼 보였다.


‘뜬금없네.’


사방이 검은색 일색인 이 공간과는 동떨어진 듯한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이질적인 것은 한 남자였다.


검은 머리카락과 황금빛 눈동자

신이 조각한 듯한 완벽한 외모

떡 벌어진 어깨와 우월한 신장

넘실거리는 강렬한 아우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주인공이란 이런 존재임을 주장하는 듯한 남자였다.


“드디어 왔나.”


탁!


책을 덮은 남자가 황금빛 눈동자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이룡은 긴장감이 가득한 시선으로 상대를 쳐다보았다.


남자를 볼수록 어딘가 기시감이 들었지만, 맹세코 자신은 이처럼 잘생긴 사람을 본 기억이 없었다.


“넌 나랑 안 닮았구나?”


“?”


‘안 닮아?’


“제가 왜 당신과 닮아야 합니까?”


“엄밀히 따지면 우린 혈육이기 때문이지.”


“혈육?”


생각지도 못한 단어에 고개를 꺄웃거렸다.


‘저 남자랑 내가 같은 핏줄이라고?’


저 종이 다른 듯한 사람과?




“아마도 그녀가 손을 쓴 모양이야.”


그러나 남자는 그의 궁금증을 풀어줄 생각이 없다는 듯이 주제를 돌렸다.


“그래도 이제 여기까지 도달했으니, 계획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군.”


“계획이요?”


“그래, 바로 인류구원계획이지.”


“인류···구원계획?”


한순간에 짜게 식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신병자인가?’


그는 저런 말을 입에 담는 인간은 딱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고 생각했다.


하나는 타인을 등쳐 먹으려는 사기꾼, 다른 하나는 주제를 모르는 과대망상증 환자.


눈앞의 남자가 헛소리나 하고 다닐 위인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원래 정상인의 관점에서 도른 자들을 예상할 수 없는 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입니까?”


자신이 그것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너는 네 이름의 의미를 모르는 건가?”


내 이름이 왜?


“···그냥 보육원에서 지어준 이름인데요?”


그는 자신의 이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의 이름은 다른 수많은 고아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보육원에서 나누어준 이름 중 하나였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그의 반응에 눈앞의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그리 똑똑하진 못한 모양이야.”


내 여동생은 똑똑했는데 말이지.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는 눈빛에 부아가 치밀었으나, 이 압도적인 남자 앞에서 그것을 표현할 용기는 없었다.


그리고 남자가 했던 말 중에 놓칠 수 없는 단어가 존재했다.


‘분명 여동생이라고 했어.’


남자는 분명 그와 자신이 혈육이라고 했지만, 남자는 결코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혈육은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간의 관계에서만 적용되지는 않는 법.


‘그렇다면 저자는···.’


“아쉽게도 시간이 다 된 모양이군.”


“시간?”


남자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들자, 위에서부터 어둠이 천천히 걷혀가는 모습이 보였다.


“각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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