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삐뚤어진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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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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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날개
작품등록일 :
2024.09.16 19:17
최근연재일 :
2024.09.1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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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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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DUMMY

“···빠르네.”


설화는 가라앉는 눈빛으로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빨리 방법을 찾을 줄이야.’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지만, 이젠 적어도 희망이라는 걸 걸어볼 정도는 됐다.


몸에서 극심한 변형이 일어날 때는 혹시나 곧바로 폭주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염려했었으니.


‘···설마 가볍게 뛰게 한 정도로 이렇게 극적인 반응이 올 줄은 몰랐는데.’


일반인 수준에선 고문에 가까운 행위였겠지만, 각성자의 기준에선 가벼운 몸풀기에 불과한 활동이었다.


가볍게 몸을 데우고 마력을 활성화시킬, 딱 그 정도의 수준.


하지만 그 가벼운 자극에도 그의 마력은 들불처럼 일어나 그의 몸을 들쑤셔 놓았다.


마치 억지로 눌러왔던 것이 해방된 것처럼.


‘위험해.’


그녀는 자신의 손이 검자루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


대중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었지만, 사실 각성자와 이물이 사용하는 힘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각성자는 ‘인간’임을 유지하면서 마력을 다루려 한다는 점일까.


이를 달리 말한다면, 각성자가 인간임을 포기할 경우 그는 곧 이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단순히 자연 발생한 이물보다 더 위험하지.’


그들은 더 기괴하고, 더 영악하며, 더 흉포한 이물로 거듭나니까.


‘모든 각성자는 이물의 후보군이다.’


그것은 각국의 정부와 국제각성자연합이 필사적으로 묻으려 했던 진실이었다.


수십 년 전 일어났던 영웅들의 추락

그것과 동시에 생겨난 최악의 이물들

그로 인한 수많은 죽음, 수많은 비극


···그녀의 오빠가 죽었던 것까지.


모두 그 진실과 관련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도록 둘 수 없었다.


그 대상이 지난 10년간 자신이 보호했던 사람일지라도.


‘만약 네가 이물로 전락한다면···.’


그녀는 조심스럽게 검자루를 움켜쥐었다.



* * *



이룡은 하얀빛의 인도와 함께 어떤 장소에 닿았다.


‘이건 또 뭐야?’


이전보다 훨씬 밝고 명확해진 세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마치 황무지에서 통나무집을 발견한 듯한 지독한 이질감.


그가 그 건물을 향해 다가서자, 나무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그는 열린 문을 통해 조심스럽게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마치 커다란 개인 서재 같았다.


이층 구조로 되어 있는 내부는 커다란 원목 기둥이 떠받치고 있었고, 구석에 놓인 벽난로에서는 주황빛의 불꽃이 타오르며 아늑한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푹신한 의자에는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끝이 노란 검은색 머리에 황금의 눈동자를 가진 남자가.


‘역시 더럽게 잘 생겼네.’


자기 혼자 그림체가 다른 것 같은 남자는 무심한 표정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언제 집까지 지어 놓으셨습니까?”


그는 기묘한 부유감 속에서 ‘바닥’에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책을 보고 있던 남자가 책을 덮더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원래부터 있던 것들이다.”


단지 네가 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일 뿐.


“···여긴 제 내면 아닙니까?”


“맞다.”


“허···.”


‘태도만 보면 저 남자가 주인인데?’


본인이 손님임을 인정하는 말과 달리 당당하기만 한 태도가 숫제 주인과 다를 바 없었다.


“왜 제 내면에 허락도 없이 세를···.”


“같은 핏줄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같은 피를 가진 이들끼리는 공유되는 것들이 있거든.”


외면적으로도, 그리고 내면적으로도.


남자는 찻물을 채운 찻잔을 탁자의 반대편으로 옮겨 놓았다.


“앉아라.”


역시나 변함없이 당당한 태도.


또 그 모습이 지독하게 어울려서 딴지를 걸 수도 없었다.


“···조언을 해주신 게 당신입니까?”


그는 남자의 건너편에 앉으며, 우선 궁금했던 것부터 물어보았다.


“그런 쓸데없는 걸 묻지 말고 제대로 된 걸 물어라.”


시간이 그리 많지 않거든.


남자는 덤덤한 표정으로 찻잔을 들었다.


“당신이 누군지 물어봐도 됩니까?”


“그게 궁금한가?”


“아무리 혈육이라고 말씀하셔도 부모님께서 남겨 놓으신 게 하나도 없거든요.”


그래서 도저히 실감할 수가 없었다.


마치 종이 다른 듯한 이 남자가 현실 속에서 존재했었다는 게.


그리고 그런 남자가 자신의 혈육이라는 사실이.


저 황금빛의 눈동자를 볼 때마다 드는 건 그와 자신은 다르다는 확신뿐이었다.


‘사진 한 장이라도 있었다면, 억지로라도 수긍할 수 있었을 텐데···.’


“남겨 놓은 게 없는 게 아니라, 남겨 놓을 수 없었던 거다.”


남자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난 적이 많았고, 적들은 집요하게 내 약점을 찾았으니까.”


그 과정에서 남자의 혈육이 위험에 노출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처음에는 부모님, 그다음엔 형제들, 그 후엔 친척들.


적들은 남자의 빈틈을 집요하게 노려왔고, 아무리 그라고 할지라도 그 모든 시도를 막아낼 수 없었다.


“내 옆에 여동생만 남았을 때, 난 그녀를 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혈육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했다.


적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그녀의 얼굴을 바꾸고 비밀리에 이 작은 반도로 피난을 보냈다.


더 이상의 희생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결국 지켜내지는 못했지만.”


이룡은 담담한 표정으로 가족의 비극을 말하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제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이유가 당신 때문이란 겁니까?”


“정확히는 날 노리는 이들에 의한 공격이었다.”


갑작스러운 재난도, 본인들의 잘못도 아닌 다른 이를 목표로 한 악의적인 공격.


‘그게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이유라고?’


그것이 그가 어린 시절 그토록 궁금해했던 진실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리 큰 감정적 동요는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의 그는 그 모든 것들을 묻어가며 완성한 삶이 있었으니까.


‘세상에 기구한 사연은 나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야.’


그가 자라왔던 보육원에도 불우한 사연을 가진 아이들은 많았고, 그는 그곳에서 세상에 불행한 사람은 자신 외에도 많다는 것을 배웠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아이도 있어.’


부모님께 학대받아 실명한 채로 버려진 아이도 있었고, 이물에게 가족이 몰살당하는 것을 두 눈으로 봐야만 했던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당신의 정체가 뭐길래, 그렇게 많은 적을 두었던 겁니까?”


그는 답을 갈구하는 자신의 입을 막을 수 없었다.


희뿌연 망각 속에 가려진 부모님의 웃는 얼굴이, 다정한 목소리가, 따스한 품속이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구하고 있었다.


“난 잊혀진 자다.”


남자는 조용히 눈을 감으며 답했다.


“잊혀진 자?”


“그러니 신경 쓰지 마라. 내가 누구였는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했었는지를.”


“그럼 왜 제게 나타난 겁니까?”


미간을 일그러트린 그가 남자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네게 부탁할 게 있다.”


‘부탁?’


“무슨···?”


“세계를 구원해다오.”


눈부시도록 찬란한 황금빛 동공이 그의 빛바랜 금안과 마주했다.



* * *



앉아 있던 사내가 긴 한숨을 토해냈다.


“정이룡.”


“···.”


“정이룡.”


“아, 부르셨습니까?”


“너···.”


설화는 이룡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벌써?’


분명 아까보다 체격이 커져 있었다.


‘보통 성육成肉을 시작하고 나서도, 최소 한두 달은 있어야 유의미한 변화를 보일 텐데.’


그녀가 그랬고, 다른 각성자들이 그랬다.


‘다시 보니 분위기도 조금 변했어.’


소심한 잔 행동들이 사라지고, 한결 차분해진 느낌.


물론 각성자가 되면서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녀의 직감은 그게 다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처럼 급격한 변화를 보인 사례는···.’


그녀는 검자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설 선배?”


“···.”


“설 선···, 윽!”


그녀를 향해 걸음을 옮기려던 그가 갑자기 바닥에 주저앉았다.


“으그극!”


갑자기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구는 이룡.


아프다며 난리를 치는 그의 모습에서는 좀 전의 진중했던 분위기의 터럭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사, 살려주···.”


“하아.”


그녀는 불현듯 느껴지는 자괴감에 한숨을 내쉬었다.


‘저 모습이 폭주의 전조?’


“···그럴 리가.”


“보, 보고 있지만 말고, 살려···.”


그녀는 검자루에 올려두었던 손을 내렸다.


‘그래, 겨우 이 정도의 의심으로 사람을 벨 순 없어.’


아무리 폭주가 위험하다 한들, 이건 자신이 지나치게 과민 반응하는 것이었다.


십 년간 얼굴을 보아온 사이에 곧바로 손을 쓰는 것도 그다지 내키지 않았고.


“마력에 의해 육체가 변형되면서 일어난 통증일 거야.”


그녀는 그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그의 몸을 주물러 주기 시작했다.


“아직 충분히 단련되지 못한 육체는 마력이 지닌 힘을 감당할 수 없거든.”


그녀의 손을 따라 그의 몸에 스며든 마력이 몸 안에 있던 마력과 뒤섞이며 손상되었던 신체를 재생했다.


“너는 앞으로 검술을 단련하면서 몸을 만들 거야.”


“···검술이요?”


그가 한결 편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네게 적합한 검술로 네 몸을 최적화시켜야 하거든.”


마력을 이용하여 육체를 특정 검술을 사용하기 최적화된 형태로 진화시키는 과정.


“그 과정을 ‘성육成肉’이라고 불러.”


“···성육.”


“그리고 너 백색을 봤지?”


머릿속에 자리 잡은 그것.


“···하얀색을 지닌 마력을 말하시는 겁니까?”


“앞으로 붉은 마력을 다룰 때는 항상 하얀 마력을 먼저 활성화하도록 해.”


그녀의 말을 들은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굳이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백색은 적색이 지닌 부정적인 면을 억제하는 힘을 지녔거든.”


“적색의 부정적인 면이요?”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줄게.”


아직 그가 각성의 어두운 면을 받아들이긴 일렀으니까.


“설 선배,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요. 옷이 좀 끼는 것 같은···.”


“···원래 각성자들은 신체의 최적화를 겪는 과정에서 체형이 변해.”


“예?”


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성육 과정이 끝나면, 원래 입던 옷들은 못 입게 될 거야.”


물론 그 정도가 심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얘는 그 변화가 심할 것 같은데.’


비록 지금은 그녀와 비슷한 눈높이를 지녔으나, 나중엔 그녀가 올려다봐야 할지도 몰랐다.


‘얘를 올려다봐야 한다니, 뭔가 기분이 나쁜걸.’


항상 지키고 돌봐줘야 하는 녀석이었는데 말이야.


그녀는 괜히 심술이 나서 일부러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아, 아픕니다.”


“참아.”


“···.”


또 참으란다고 입을 다문 채로 끙끙거리는 녀석.


‘말은 잘 듣네.’


피식 웃은 그녀가 다시 부드럽게 그의 몸을 풀어주었다.


“아, 그리고 각성자들은 색변증이 심하게 일어나는 거 알고 있지?”


“예, 그건 상식이니까요.”


“원치 않는 방향으로 머리색이나 눈동자 색이 변하면, 따로 컬러 렌즈를 삽입하거나 염색을 해주는 곳을 소개해 줄게.”


그런 방면으로 유명한 곳을 알거든.


“···혹시 선배도 염색이나 렌즈 삽입을···끄아악!”


그녀는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는 녀석의 입을 비명으로 막아버렸다.


“오늘은 이만 쉬고 내일부터 본격적인 단련을 시작할 거야.”


“···어떤 방식으로 진행됩니까?”


“우선 몸을 만드는 게 먼저지.”


전투를 위해서는 몸이 마력을 충분히 견딜 수 있도록 변화해야 했다.


이왕이면 본인이 사용하는 검술에 맞는 방향으로.


“역시 체력 단련을 먼저 하는 겁니까?”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리는 상대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식으로 몸을 만드는 건 각성자들에게 큰 의미가 없어.”


“예?”


“어차피 마력에 의해 최적화되다 보면, 체력이나 근력 같은 건 알아서 뒤따라오거든.”


그런 건 육체가 최적화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부산물 같은 것이었으니까.


“그거 완전 천연 로이더···.”


“로···, 뭐?”


“아닙니다.”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녀석.


“그럼 어떤 식으로 단련을···?”


“그건···.”


입을 열려던 그녀는 불현듯 그 모든 과정을 설명하는 게 상당히 귀찮은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이걸 일일이 다 설명해야 하나?’


어차피 겪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텐데?


그녀는 설명 따위는 과감히 생략하기로 결정했다.


“그냥 군말 말고 하라는 대로 해.”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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