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삐뚤어진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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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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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날개
작품등록일 :
2024.09.16 19:17
최근연재일 :
2024.09.1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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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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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DUMMY

듣는 이를 편안케 하는 목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방 안에서 달고 상쾌한 공기가 느껴졌다.


“괜히 바쁘신 분을 귀찮게 해드린 건 아닌지···.”


“마침 한가하던 참이었으니, 그리 신경 쓰지 마셔요.”


시야를 가리던 천을 걷자, 진녹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단아한 미인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를 맞이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리로.”


“괘, 괜찮습니다.”


그녀는 그의 앞까지 다가와 덥석 손을 잡았다.


화들짝 놀란 이룡이 서둘러 손을 빼려 했지만, 그녀는 그런 그의 움직임을 부드럽게 제압하며 그를 준비한 자리로 인도했다.


‘···어렵네.’


사근사근함 속에 거부할 수 없는 위압감을 지닌 여인.


어찌 보면 대놓고 적대적인 이들보다 더 곤란한 유형의 사람이었다.


“귀여워라.”


그리고 진녹색의 눈동자가 쩔쩔매는 그를 재미있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


“너무 어려워하실 필요는 없어요.”


이곳이 당신의 적지는 아니니까요.


그와 눈을 마주하며 싱그러운 미소를 지은 작약이 미리 우려 두었던 차 한 잔을 건넸다.


“화랑대는 지낼 만하셨나요?”


“···예, 시설이나 음식 모두 수준이 높아서, 만족하면서 지냈습니다.”


“설화에게 들으니, 이제 영웅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셨다고 하더군요.”


“아직 부족한 실력입니다.”


“너무 겸손하시네요.”


작게 웃음을 터트린 그녀가 탁자 위로 두 개의 상자를 올려놓았다.


“이건?”


“화랑대의 공방에서 직접 제작한 물건들이에요. 앞으로 이룡 님께서 영웅으로서 활동하실 때 도움이 될 물건들이랍니다.”


그녀는 먼저 길쭉한 상자에서 검을 꺼내어 그에게 건넸다.


“검은 1급 낭도들에게 지급되는 홍련검紅鍊劍이에요.”


그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받아보았다.


적당히 묵직한 무게감과 절묘한 무게 중심, 다소 긴 칼날과 손에 착 감기는 손잡이까지.


‘말했던 그대로야.’


얼마 전에 웬 낭도가 찾아와서 이것저것 물어보나 싶더니 이런 걸 준비하기 위해서였던 듯했다.


“홍련검은 칼날의 예리함만으로도 귀급 이하 이물들의 뼈를 끊어낼 수 있어요.”


설명을 들으며 살짝 검을 뽑아 보았다.


붉은빛이 감도는 칼날에서는 무엇이라도 벨 수 있을 듯한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사용된 소재 자체는 민 대리님의 것과 같은 건가.’


잠시 칼날을 살피던 그는 검을 납검한 후에 그것을 다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런 귀한 걸 그냥 받아도 될지···.”


“부디 사양 말고 받아주셔요. 동백이 이룡 님을 위해 직접 제련한 물건이랍니다.”


“···적화랑 동백 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작약은 미소를 띤 얼굴을 끄덕였다.


“과분하군요.”


지나칠 정도로.


‘왜 내게 이렇게까지 해주는 거지?’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그녀는 미소 띤 얼굴로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선물을 거절하지 못한 그가 다시 검을 집어 들자, 그녀는 나머지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이건 부탁하신 가면이에요.”


그녀는 상자에서 꺼낸 가면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전 가면을 부탁한 적이 없습니다만?”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가면을 받아들였다.


“신분을 감추고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아, 그렇다기보단 그냥 별로 주목받길 원하지 않아서···.”


“영웅들은 그 자체로 빛나는 존재. 신분을 감추지 않는 이상 주목 받는 건 피할 수 없답니다.”


작약이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네.’


눈부신 미녀가 자신을 쳐다보며 방긋방긋 웃는 모습은 굉장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차라리 자신을 욕하고 때리던 설한화 부대의 낭도들이 더 편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면을 쓰는 걸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생각보다 가면을 쓴 채로 활동하는 영웅들도 많으니까요.”


그는 손에 쥔 가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면은 전반적으로 비늘을 형상화한 듯한 오돌토돌한 돌기들이 나 있었으며, 검은색과 녹색이 입체적으로 어우러지며 어두우면서도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건 뭘 형상화한 겁니까?


“이무기를 형상화했다고 해요.”


“이무기요?”


“앞으로 용이 되시라는 염원을 담아서 공방에서 제작한 거랍니다.”


“아···.”


그는 검과 함께 가면 역시 품속에 챙겨 넣었다.


아무래도 그에게 거부할 권리는 없는 듯했으니까.


‘가면 역시 영웅으로 활동하는데 유용할 것 같기도 하고.’


괜히 일상에 이상한 사람들이 꼬이는 것보단 낫겠지.


“잠시 가까이 와주시겠어요?”


그렇게 그가 준비한 물건들을 챙기는 걸 바라보던 작약이 그를 향해 팔을 벌렸다.


“가까이요?”


“네, 추가적으로 줄 게 있거든요.”


그는 머뭇거리면서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크, 크네.’


굳이 의식하지는 않으려 했지만, 붉은색의 제복을 밀어 올리는 존재감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의 갈 곳 잃은 눈동자를 바라보던 그녀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더 가까이 다가왔다.


얼굴까지 와닿는 숨결과 함께 그녀의 얼굴이 시야에 가득 찼다.


‘버, 버틸 수가···.’


한계 이상의 자극.


더 이상 견딜 수 없던 그는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너무 긴장하지 말아요.”


그녀가 붉게 변한 그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조금 따끔할 거예요.”


그녀의 기다란 손가락을 타고 올라온 실뱀이 그의 귀밑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꿈틀거리는 불쾌한 느낌에 손으로 귀밑을 지그시 눌렀다.


“···이게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연락은 그걸 통해 이루어질 거예요.”


“연락용?”


휴대폰이나 무전기 같은 걸 놔두고?


“보안과 관련된 이유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영웅들의 전투가 워낙 격렬하고, 이상한 능력을 사용하는 이물들이 많다 보니, 망가지기 쉬운 전자기기들은 믿을 수가 없어서요.”


그의 표정을 본 그녀가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그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아···.”


“도청 같은 것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본인이 그것의 활성화 여부를 결정할 수 있거든요.”


“그럼 이제 끝난 겁니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룡 님께서 화랑대를 나서시는 순간부터 2급 영웅의 신분을 얻게 될 거예요.”


“2급 영웅···.”


총 네 단계로 나누어진 피라미드에서 두 번째 층에 위치하는 등급.


3급이 사실상 견습의 의미를 지닌다는 걸 고려한다면, 2급부터가 영웅으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등급이었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그동안 이룡 님을 향해 내려져 있던 여러 보호조치가 해제될 예정이에요.”


“그렇다는 건?”


“앞으로 이룡 님 주변으로 경호 인력이 배치되는 일은 없을 거랍니다.”


“···혹시 왜 제가 보호조치의 대상이었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물었으나, 역시나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결국 제가 강해져야 한다는 거군요.”


작약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깜박 잊고 마지막 선물을 안 드렸네요.”


“마지막 선물이요?”


“잠시만 가까이.”


가까이 다가가자 갑자기 그녀가 그의 얼굴을 잡았다.


“···작약 님?”


“부디 훌륭한 영웅이 되어주세요.”


그녀의 붉은 입술이 그의 이마에 닿았다.


“이, 이게 무슨···?”


“설화가 이걸 해주던데요?”


포상이라던가?


벙찐 그를 보며 작약은 쿡쿡거리며 웃었다.


“그, 그걸 어떻게 아신 겁니까?”


“여기서 제가 모르는 건 없답니다. 이래 봬도 화랑대의 정보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거든요.”


정보···.


앞으로 영웅으로서 활동할 그에게도 정보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단순한 이물 토벌 임무에도 해당 이물들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대처하기가 훨씬 용이할 것이고, 다른 영웅들의 동향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그들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것 역시 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나 혼자서 그런 정보를 얻는 것에는 한계가 있겠지.’


무엇보다 그를 둘러싼 여러 의문들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의 조력이 필요했다.


‘화랑대의 정보를 총괄하는 사람이자, 유일하게 모란의 의중을 아는 여인이라···.’


어쩌면 이 누님계 미인이야말로 자신이 가장 잘 보여야 할 사람일지도 몰랐다.


“선물해 주신 물건들은 잘 쓰겠습니다.”


그는 최대한 공손한 자세로 그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럼 다음에 뵐 때까지 안녕히.”


그녀 역시 그를 향해 무릎을 굽히며 작별 인사를 건넸다.



* * *



“후, 드디어 돌아왔다.”


이룡은 곧바로 짐을 구석에 던져 놓으며, 매트리스 위로 몸을 던졌다.


갑작스럽게 주인의 무게를 받아내게 된 매트리스가 무수한 먼지를 토해내며 출렁였다.


“이게 얼마만의 해방감인지.”


그에게 화랑대는 상당히 불편한 곳이었다.


금남의 구역인 화랑대에서 남자는 오직 그뿐이었고, 덕분에 그는 그곳에 있는 낭도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에게 함부로 접근하는 이들이 없었던 지라 직접적인 어려움을 겪은 것은 아니었지만, 어딜 가든 쏠리는 시선과 그를 보며 쑥덕대던 모습들은 무언의 압력이 되어 그에게 상당한 부담을 주었다.


‘진짜 연예인들은 어떻게 그런 시선들을 견디고 사는 거지.’


물론 그가 겪었던 상황이 워낙 특이했던 탓에 정확히 누구를 대입하긴 어려웠지만, 단언컨대 평생 여자에게 받을 관심을 요 몇 달간 모두 받았다고 장담할 수 있었다.


멍하니 엎드려있던 그는 상체를 일으켜 세우며 자신의 자취방을 둘러보았다.


‘그래도 따로 관리를 해줬다더니 생각보다 깔끔하네.’


책상이나 바닥에 쌓인 먼지도 없었고, 이불도 정갈하게 개인 채로 한쪽에 정리되어 있었다.


방 안을 훑어보던 그의 시선은 이내 비닐에 감싸인 채로 보관 중이던 옷들에게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저 옷들을 아직도 입을 수 있으려나?”


성육의 과정에서 키만 10cm가량 컸던 지라, 예전에 입었던 옷들이 지금도 맞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역시나···.’


여러 옷들을 번갈아 가며 걸쳐봤으나, 그의 예상대로 예전에 입던 옷들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어떤 옷들은 입는 과정에서 그의 키와 체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찢어져 버리기까지 했다.


“···옷들을 다 버려야 하나?”


프리사이즈 옷들조차 기장이 짧아진 감이 있어 그대로 입기엔 그다지 보기 좋지 않을 것 같았다.


한숨을 내쉰 그는 대부분의 옷들을 옷상자 안에 쑤셔 넣었다.


‘보육원에 가져다주면 어떻게든 쓰겠지.’


굳이 입지 않더라도 재봉 실습이나 겨울철 보온용 덧옷 등 활용할 곳은 많았으니까.


‘정 아니면 걸레로라도 쓰겠지, 뭐.’


간단한 정리를 마친 그는 이내 한쪽 구석에서 충전 중이던 휴대폰을 주워들었다.


“휴대폰도 간만에 켜네.”


오랜만에 만져보는 단단한 감촉이 새삼 낯설게 다가왔다.


화랑대 내부에서는 결계로 인해 휴대폰 사용이 어려웠던 데다가, 훈련에 집중하기 위해 일부러 휴대폰을 멀리했었으니까.


우우웅-!


휴대폰의 전원이 들어오자마자, 진동이 연속으로 울려댔다.


그는 자신의 앞으로 온 연락을 하나씩 살펴봤으나, 대부분은 쓸데없는 연락이었다.


그중에서 볼만한 것은 그의 근무지 변경을 통보하는 회사의 연락 정도?


‘영웅 활동에 대한 수당은 회사에서 임금을 지급하는 형식으로 진행할 예정인가 보네.’


그 역시 자신이 영웅인 걸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이런 방식의 일 처리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부분이었다.


‘성준이에게도 연락이 왔었군.’


수백 통의 통화와 수십 개의 문자들.


짧게 연락을 남겨 두긴 했지만, 역시 짧은 메시지만으로는 갑작스러운 잠적을 설명하긴 어려웠던 듯했다.


‘···지금쯤이면 근무 시간인가?’


바로 전화하기에는 어렵겠네.


그는 친구에게 문자로 생존 신고를 남기고는 남은 연락들을 확인했다.


그렇게 휴대폰을 만지작대길 수십여 분.


‘생각보다 할 게 없네.’


이제는 확인할 연락도 없었고, 평소 즐겨보던 콘텐츠들도 딱히 끌리지 않았다.


본래라면 출근을 해야 하나 이제는 출근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고 몰입해서 즐겨하던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나마 최근에 생긴 취미라면 검술 연습 정도?


‘···공원에서 검을 휘두르는 건 안 되겠지?’


문득 화랑대에 있을 때와는 달리, 밖에서는 마땅히 수련할 만한 곳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 공터에서나 검을 휘두르는 게 가능할 리도 없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뒷산에 올라가서 검을 휘둘러댔다가는 주민들에 의해 경찰이 출동할 게 뻔했다.


‘나중에 따로 수련할 공간이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공허하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그의 눈에 배달 어플이 눈에 들어왔다.


“···간만에 치맥이나 시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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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삐뚤어진 영웅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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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시작 NEW 11시간 전 2 0 13쪽
12 새로운 시작 NEW 11시간 전 1 0 12쪽
11 훈련 24.09.18 6 0 14쪽
10 훈련 24.09.18 7 0 13쪽
9 훈련 24.09.18 4 0 14쪽
8 훈련 24.09.17 7 0 12쪽
7 훈련 24.09.17 7 0 14쪽
6 일상의 끝 24.09.17 8 0 13쪽
5 일상의 끝 24.09.16 7 0 12쪽
4 일상의 끝 24.09.16 8 0 13쪽
3 꿈인가 24.09.16 9 0 12쪽
2 꿈인가 24.09.16 8 0 12쪽
1 꿈인가 24.09.16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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