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삐뚤어진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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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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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날개
작품등록일 :
2024.09.16 19:17
최근연재일 :
2024.09.1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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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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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꿈인가

DUMMY

“멀쩡한 건가?”


이룡은 자신의 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분명 옆구리랑 같이 반쯤 뜯겨 나갔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매끈한 손 위로는 그 어떤 고통의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고, 미묘하게 활력이 넘치는 몸은 오히려 평소보다 더 건강한 듯했다.


매트리스에서 몸을 일으키자, 창문 너머로 한가득 들이친 햇빛이 그의 눈을 맹렬히 찔러댔다.


“날씨 한번 더럽게 맑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취방의 매트리스 위에 누워 있었다.


어제 입고 나갔던 정장도, 입에서 풍겨오는 술 냄새도 그대로인 채로.


그에게도 지독하게 익숙한, 술을 먹은 다음 날의 모습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단 하나, 유난히 몸의 컨디션이 좋다는 사실뿐.


‘꿈이었나?’


모든 것이 그대로인 일상이었다.


마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모든 게 그대로인 건 아냐.’


그는 자신이 옷소매를 살펴보았다.


본래 소매에 묻어있어야 했던 커피 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거슬렸지만 크게 티가 나지 않아서 내버려두고 있던 자국이었는데···.


우우웅


그는 갑작스러운 진동음에 휴대폰을 켰다.


-성준 : 어제 잘 들어갔음?


‘성준이?’


그러고 보니 어제 그 술자리도 얘 때문에 갔었는데.


그는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여 답장을 작성했다.


-이룡 : ㅇㅇ 잘 들어갔지.


-성준 : 다행이다.


-성준 : 일어나서 보니까, 너가 타고 갔던 전철역 방면에 이물경계령이 내려졌다고 하더라고.


‘이물경계령이 내렸었다고?’


손가락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이룡 : 이물경계령?


-성준 : 응. 그래서 영웅들이 출동하고 난리도 아니었다나 봐. 다행히도 시설물이 좀 파괴된 정도로 사태가 끝난 것 같긴 한데···.


-성준 : 아무튼 별일 없는 거지?


-이룡 : ㅇㅇ


-성준 : 그래, 해장 잘하고 다음에 둘이 같이 술 한잔하자. 할 말이 있거든


-이룡 : 할 말?


-성준 : 아직 확정된 일이 아니라서... 확정되면 그때 말해줄께.


-이룡 : ㅇㅋㅇㅋ


그렇게 대화를 끝낸 그는 서둘러 간이탁자 위에 놓여있던 노트북을 켰다.


“이물경계령.”


검색창에 검색어를 입력하자, 최근 일자를 기준으로 기사들이 정렬되었다.


“···어제 저녁 10시경에 걸렸던 경계령은 약 2시간 후인 금일 자정을 기해 해제되었다.”


‘별다른 정보가 없는데?’


아무리 기사들을 뒤져보아도 어젯밤 내렸던 경계령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기사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니, 전철에 이물이 등장했는데, 목격한 사람도 없고 아무런 피해도 보고되지 않았다고?’


어쩌면 정말 기적적으로 운이 좋았던 것일지도 몰랐지만, 그의 감은 다른 걸 말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정보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듯한···.


‘통제?’


그러고 보니 어제 전철에 탄 게 나밖에 없었던가?


자세히 기억나진 않았지만, 분명 그때 전철에서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아니, 정확히는 나 말고 한 명 더 있었어.’


고등학교 선배이자 현 직장 선배.


예 설.


아니···.


“백화랑 설화.”


그는 검색창에 새로운 검색어를 입력했다.


그러자 한눈에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미녀가 담긴 사진이 떡하니 메인에 걸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진이 원본만 못하네.’


바로 스크롤을 내려 최근에 올라온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설한화 부대의 동부토벌전은 어떻게 성공했는가?>

<역대 화랑 중 가장 많은 활동량을 갱신한 설화>

<화랑대의 8화랑 중 최강은 누구인가?>

<백화랑 설화, 그녀가 쓰는 화장품은?>

···


‘역시 어제의 일은 기사화되지 않은 건가?’


기사들 대부분이 쓸데없는 내용들이었고, 그나마 가장 최근에 영웅으로서 활동했다고 올라온 기록은 동부토벌전에서의 일이 다였다.


‘···내가 봤던 게 정말 그녀가 맞았을까?’


그렇게 열심히 기사들을 뒤지던 그의 눈에 하나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백화랑 설화를 통해 보는 영웅의 길.”


영웅, 그 숭고한 이름에 대하여.


“영웅이라···.”


영웅


이물異物이라는 불리는 괴물들에게서 인간을 지키는 각성자들을 부르는 단어.


누가 처음 그 단어로 그들을 불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그 단어에, 그 존재에 열광했다.


영웅들의 이물 사냥 영상은 수억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영웅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은 수십 퍼센트의 시청률을 찍으며,


영웅들이 입고 먹는 모든 것에는 프리미엄이 붙는다.


그야말로 모두의 관심을 받는 이들.


그들은 최전선에 선 전사임과 동시에 현대에 존재하는 별들의 정점이었다.


‘나도 한때는 영웅이 되고 싶어 했던 적이 있었지.’


그건 어린 시절의 치기이기도 했고, 이물에게 스러져 버린 부모님에 대한 복수심이기도 했다.


이제 와서는 다 타버린 재와 같은 감정들이지만.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내가 경호 대상이라고 했어.’


···내가 경호 대상이라고?


도대체 왜?


자신은 흔하디흔한 고아 중 한 명일뿐이었다.


그저 적당한 중견 기업에 취직해서, 조용한 소시민의 삶을 살아갈 뿐인.


그는 일평생 높으신 분의 지원은커녕, 얼굴조차 접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왔다.


애초에 그가 정말로 무슨 연줄이 있었다면, 보육원에서 자랐을 리가 없지 않았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삶에 영웅이, 그것도 그 정점에 있다고 알려진 화랑이 개입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움직여 새로운 글자를 입력했다.


‘대폭주 사건’


주르륵 떠오르는 기사들의 수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전보다 더 줄었나?’


과거에는 끝도 없이 이어졌던 검색 페이지가 이제는 채 10페이지를 넘기지 못했다.


새롭게 추가되는 자료는 없고, 그나마 있던 과거의 자료들마저 지워지고 있는 듯한 모양새.


그는 인터넷 창을 끄고 바탕화면에 있는 파일 하나를 클릭했다.


<대폭주, 그날의 진실은 무엇인가?>

<세계에 불어닥친 재앙은 누가 일으켰나?>

<새로운 종류의 테러가 등장하다>

<신세계선언 : 스스로를 신인류라고 주장하는 이들>

<영웅들의 이상한 행동들>

<각성자들은 정말 안전한가?>

<급증하는 색변증과 마력의 농도와의 관련성>

<모스크바와 연락이 끊기다>

···


그것들은 그가 그 사건에 대해 하나씩 모아온 자료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모가 죽어야 했던 이유를 알아야만 했으니까.


‘대폭주.’


20여 년 전, 스스로를 신인류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마력 테러를 일으켰고, 그것은 재앙이 되어 세계에 큰 피해를 입혔다.


그나마 선진국들은 발달된 행정력과 고도화된 군사력, 이민을 통해 받아들인 영웅들의 활약으로 그 재앙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피해를 입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재난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고, 국가의 손이 닿기도 전에 재앙을 마주해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운이 좋은 자들은 그 속에서도 기어코 살아남겠지만, 모든 이들이 운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지.’


자신의 부모님은 그 운 없는 이들 중 하나였다는 그런 시시한 이야기.


단지 그뿐인 이야기였다.


‘내 부모님은 영웅과는 관계없는 삶을 살아오셨던 분들이다.’


워낙 어린 시절이라서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집은 부유하지도 특별하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가 성인이 되어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영웅이 아니셨다.


자신의 부모님이 그 원인이 아니라면 원인은 다른 곳에 있을 터.


‘그 남자.’


어둠 속에서 만났던 그 남자는 자신을 혈육이라고 불렀다.


얼굴

체격

분위기


그 어느 것에서도 자신과 닮은 점이라고는 한 점도 찾아볼 수 없는 남자가.


짐작 가는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다.


‘···어머니는 외국 분이셨어.’


동유럽 쪽에서 한반도까지 넘어오신 어머니는 한국인인 아버지와 결혼하셨다.


어머니가 왜 굳이 이 머나먼 동쪽의 끝자락에 위치한 반도까지 찾아오셨는지 알 길은 없었으나, 확실한 건 그의 출생에 무언가 비밀이 있다면 그건 어머니 쪽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것.


‘사진이라도 챙겼다면···.’


이럴 땐 남들은 다 가진 그 흔한 가족사진 하나 없는 게 아쉬웠다.


물론 어릴 때의 그가 그 난리 속에서 그것까지 챙기길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결국 정보가 없네.”


언제나 이랬다.


무언가를 알고 싶어도 알 방법이 없었다.


그에겐 정보를 구입할 돈도, 정보를 알아낼 기술도, 정보를 알아줄 인맥도 없었으니까.


알고 싶다는 욕심도 언제나처럼 반짝 타올랐다가 허무하게 스러질 뿐.


그 옛날 자신이 가졌던 꿈처럼.


이제 와서는 감정도, 열정도 다 사그라진 채로 기계적인 자료 수집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모르겠다.”


어차피 일상이란 먼지 속에 뒤덮여 사라질 고민들이었다.


그는 노트북을 덮고는 그대로 매트리스 위로 몸을 던졌다.


‘회사에서 선배를 어떻게 대해야 하지?’


복잡한 머리가 가라앉자, 당장의 현실적인 고민들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당장 주말이 끝나면 만나게 될 설 선배를 태연한 표정으로 대할 자신이 없었다.


그는 그녀가 설화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사라질 거라던 자신의 기억이 왜 멀쩡한지는 몰랐지만, 아는 척을 해서 좋을 것이 없다는 건 모를 수가 없었다.


얼마 전, 꿈속에서 자신의 목에 검을 겨누었던 그녀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괜히 목을 매만지며 마른침을 삼켰다.


“···역시 모르는 척해야겠지?”



* * *



‘다행이다.’


이룡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말 내내 어떻게 선배의 얼굴을 볼지를 고민했는데, 그 고민이 무색하게 회사에 그 고민의 당사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지만···.’


지금은 그보단 마음의 안정이 더 시급했다.


그는 가방을 내려놓으며, 평소처럼 컴퓨터를 부팅시켰다.


“정 사원.”


그때 막 사무실에 들어온 과장이 그를 불렀다.


“예, 과장님.”


“오늘 오후에 외근 좀 다녀와라.”


“외근이요?”


‘갑자기?’


“···혹시 무슨 업무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아, 다른 업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야. 너가 신경 쓸 건 없고, 그냥 옆 부서의 민수연 대리를 도와주면 돼.”


어차피 일은 민 대리가 할 테니까.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과장의 눈길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래, 잘 도와주고 오라고.”


과장은 그렇게 말하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데 너 정말 빽 없는 거 맞지?”


“저 고아라니까요. 제가 무슨 빽이 있겠습니까.”


“알지, 아는데. 너 입사 때부터 말이 많았던 거 알지?”


“···.”


“없던 전형을 만들어서 사람을 뽑질 않나, 갑자기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있질 않나···.”


그는 입을 꾹 다문 채로 과장의 말을 들었다.


그 역시도 그런 소문이 도는 걸 모르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도 억울했다.


그는 단지 보육원 원장님의 추천을 받아서 여기에 입사했을 뿐이고, 그저 합격 통지가 온 곳 중에 제일 연봉이 후한 곳이기에 이곳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그런 자신에게 빽이라니, 그런 얼토당토않은···.


“오죽하면 특별팀의 예 대리가 자네를 전담 마크한다는 소문이 돌겠나.”


“···예 대리님이요?”


“그래, 자네의 동선과 일정을 어찌나 철저히 관리···.”


‘내 동선과 일정을 관리했다고?’


선배가?


“어찌나 그 눈빛이 매섭···. 크흠.”


열심히 떠들어대던 과장이 갑자기 헛기침을 하며 말을 멈췄다.


“아무튼 빽이 있으면 미리미리 언질 좀 해달라고. 서로서로 돕고 살아가면 좋지 않겠나.”


이룡은 멍한 시선으로 급하게 자신의 자리로 향하는 과장을 바라보았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일상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조금씩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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