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삐뚤어진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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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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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랍날개
작품등록일 :
2024.09.16 19:17
최근연재일 :
2024.09.1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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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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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DUMMY

“민 대리님!”


이룡은 익숙한 얼굴의 여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제복을 입으니까, 못 알아보겠는데요?”


“민 대리가 아니라, 민수연 낭도님이라고 불러.”


그러나 그의 반가운 인사에도 그녀에게서는 퉁명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거참, 같이 사선을 넘은 사이에 빡빡하게 구시네.”


“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녀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언제 말을 놓으신···.”


“왜 불만이야?”


‘까칠하기가 고슴도치보다 더 하는데?’


나름 생사를 같이 한 사이 아니었나?


예상 밖의 태도에 당황하던 그는 이내 그녀의 어깨에 새겨진 표식을 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민수연 낭.도.님.께서는 설한화 부대 소속이셨죠.”


“설화 님이 내 직속상관이시지.”


어깨에 새겨진 눈꽃 표식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그녀.


‘또 그 부대야?’


그의 이마 위로 짙은 주름이 생겨났다.


자신을 향해 쏟아졌던 맹목적인 원망과 무자비한 구타.


삶을 갈구하게 했던 그 가혹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간다.


“···그쪽 부대원들이 유독 저한테 까칠하시더라고요.”


“그럴 수밖에 없지.”


그러자 그녀는 당연한 사실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감히 설화 님을 독차지하고 있으니까.”


“독차지요?”


내가 언제?


‘아니, 그 사람이 내가 차지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설화 님께서 네 훈련 때문에 하루 종일 훈련장에만 계시니, 우리가 그분의 얼굴을 볼 틈이 없단 말이다!”


“···.”


‘역시 비정상적인 집단이야.’


저 눈꽃 표식을 단 여자들치고, 제대로 된 사람을 보지 못한 그였다.


‘상관을 향한 뒤틀린 애정이라니.’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그는 한숨을 내쉬며 목검을 들었다.


“민수연 낭도님께서 제 검술을 봐주시는 겁니까?”


“그래, 저번엔 추태를 보이긴 했어도 1급 낭도니깐 말이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목검을 집어 들었다.


“내 수업은 대련 위주가 될 거야.”


“···저를 패려고요?”


“그런 목적도···.”


자연스럽게 대답을 이어가던 그녀가 움찔했다.


“아, 아니, 마침 재활도 해야 해서···.”


“설 선배에게 포상을 받으려는 수작이겠죠.”


이마 키스라던가, 쓰담쓰담이라던가.


“그, 그건···.”


비밀을 들킨 듯이 허둥지둥 대던 그녀가 이내 빼액 소리를 질렀다.


“설 선배라고 친근하게 부르지 말라고! 네가 그렇게 함부로 불러도 될 분이 아니야!”


속마음을 숨기는 것을 포기한 그녀는 그것을 무차별적으로 내지르기 시작했다.


“0급 능력자이자, 화랑들 중 최강을 다투시는 분!”


“존경받는 영웅 1~2위를 다투고, 가장 아름다운 영웅으로 꼽히시는 분!”


“우리 설한화 부대의 자존심이자 자부심!”


“우리들의 자랑인데, 우리들의 대장인데···.”


그는 씩씩대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


‘그게 문제였구나.’


이 뒤틀린 부대원들은 단순히 그녀가 자신과 함께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설화를 설 선배라는 특별한 명칭으로 부르는 것에 질투를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 중에는 그녀를 그런 ‘특별한 명칭’으로 부른 이들이 없었을 테니까.


‘도대체 왜 선배가 특별한 명칭인지도 모르겠지만···.’


이제야 모든 것이 명확히 이해가 됐다.


민수연이 첫 만남부터 자신을 못마땅하게 대했던 것도, 같이 생사를 넘었던 사이임에도 여전히 까칠한 것도.


‘···발.’


속에서부터 무언가 울컥거리며 쏟아진다.


‘좀 짜증이 나네.’


이 음흉한 인간들이 자신들의 뒤틀린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나한테까지 이 X랄을 해?


뜨거운 기운이 전신을 휘감고, 머리가 뜨끈하게 달아오른다.


‘···정말 오랜만이네.’


이렇게까지 열이 오르는 건.


“후우.”


뜨겁게 달아오른 숨이 흩어지며, 빛바랜 금안이 미약한 빛을 머금었다.


“잔말 말고, 검을 들어!”


“말은 당신이 많았지.”


“다, 당신?”


당황하는 그녀를 무시하고 검을 들었다.


‘그동안 수없이 검을 휘둘렀다.’


처음엔 낯설기만 했던 이 묵직한 감각은 어느덧 익숙하고 안정된 느낌을 주고 있었다.


‘난 내가 천재인지, 아니면 범재인지 몰라.’


어쩌면 둔재일 수도 있지.


그는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좀처럼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의 상대는 0급 실력자인 설화이거나, 자신보다 더 나은 가상의 자신이었으니.


‘다른 영웅들의 실력을 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있나.’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는 검을 다루는 게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밤새도록 휘두를 정도로.


‘과연 내 실력은 어디쯤일까.’


뭉근하게 올라오는 분노와는 별개로 숨길 수 없는 기대감이 끓어오른다.


혈관을 질주하는 마력이 피를 뜨겁게 하고, 뜨거운 피가 몸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한 난혈.


달아오른 육신과 함께 만전의 상태가 된 그가 날카로운 눈동자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전력으로 간다.’


이 기회에 복수도 좀 하고.



* * *



민수연은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아니, 진짜 검을 다룬 지 1년도 안 된 사람이 맞아?’


그녀는 급하게 검을 들어 상대의 검격을 막아냈다.


동일한 자리에 연거푸 떨어지는 연격.


누적되는 충격과 진동이 손을 타고 전해지며, 더 이상 막기만 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


그녀는 유연하게 허리를 숙여 상대의 검격을 피해내고, 그대로 상대의 하반신을 베어갔다.


그러자 상대는 마치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검을 세워 그녀의 검을 막아 내고는 그대로 발차기를 날렸다.


그녀는 두 팔을 들어 올려 상대의 발차기를 막아 냈다.


다리에 힘을 주어 밀어내는 힘에 저항하자, 상대에게서 곧바로 참격이 날아든다.


‘예상했어!’


그녀는 곧바로 검을 고쳐 쥐며 날아오는 상대의 검을 정면으로 받아치려 했다.


“윽!”


하지만 상대의 칼날이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영활하게 휘어지며 그녀의 허리를 가격했다.


‘유검을 이렇게 공격적으로 사용한다고?’


그녀는 한껏 커진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설마 내 백사검白蛇劍을 따라 한 건가?”


“아, 그게 백사검이었나요?”


그냥 쓸 만해 보이는 기술이 있어서 잠깐 빌렸습니다.


태연하게 웃으며 말도 안 되는 말을 지껄이는 녀석.


“영웅에게 이 정도는 큰 부상도 아니겠죠?”


다시 자세를 잡은 녀석이 또다시 그녀를 향해 검을 휘둘러왔다.


그런 상대를 보며 이를 악문 그녀는 자신을 날아드는 검을 강하게 쳐냈다.


‘설마 설화 님께서 조심하라던 게 상대를 다치게 하지 말란 게 아니라···.’


내가 다칠 것을 염려한 것이었나?


‘아무리 팔을 재생한 지 얼마 안 됐다고는 해도, 이런 초짜에게 밀린다고?’


이건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아야!”


매섭게 날아든 돌멩이가 그녀의 머리에 적중했다.


“집중하시죠.”


녀석은 칼날 위로 돌멩이를 퉁퉁 튕기는 묘기를 보여주며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얕보시는 것 아닙니까?”


“···얕본 적 없어.”


처음엔 얕보는 마음이 있었지만, 잠깐의 교전만으로 그런 마음은 싹 사라졌다.




“그렇다기엔 정신이 다른 데에 가 있으신데?”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바라본다.


“···넌 왜 여러 일자검술을 다루고 있는 거지?”


어째서?


검술의 숙련도는? 신체의 최적화는? 마력의 제어와 배분은?


‘분명 모든 부분에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을 텐데···.’


“왜 하나의 검류를 정하지 않은 거야?”


그녀는 진지한 눈빛으로 상대의 빛바랜 금안을 마주했다.


“아직 저에게 맞는 검술을 못 찾았거든요.”


하지만 돌아온 답은 황당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아니, 검을 휘두르다 보니 쉽게 놓을 수 없는 걸 어떻게···.”


“너, 네가 하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는 거야?”


“예?”


“검술을 정하지 않고 어떻게 성육 과정을 마치겠다는···.”


잠깐.


‘도대체 왜 설화 님께서는 왜 저걸 가만히 두고 보고 있는 거지?’


분명 설화 님께서 그걸 모르실 리가 없을 텐데.


“굳이 하나의 검술을 정할 필요가 있나요. 상황에 따라 적절한 검술을 쓰고, 육체야 그때그때 조정하면 되는데.”


그녀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태연한 기색으로 떠들어 대고 있는 상대를 쳐다보았다.


‘···저건 또 뭔 개소리야.’


상황에 따라 적절한 검술을 써?


육체를 그때그때 바꾼다고?


‘그렇게 쉽게 육체의 형태를 바꿔댈 수 있을 리가 없···.’


“그건 그렇고, 대련은 더 진행하지 않으실 겁니까?”


아직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는데.


뺀질거리는 자세로 그녀를 응시하는 상대.


까드득


‘건방진 녀석.’


감히 신입 초짜 주제에.


그녀는 이빨을 부수어 버릴 듯이 갈아대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왜 1급이 1급이라고 불리는지 알려줄게.”


그녀의 검 위로 뜨거운 불꽃이 타올랐다.



* * *



매서운 불꽃이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몸을 젖혀 상대의 공격을 피해낸 그는 곧바로 그를 쪼갤 듯이 날아드는 상대의 검을 칼끝으로 흘려냈다.


나무가 타는 듯한 매캐한 냄새와 함께 상대의 검이 튕겨 나간다.


“짜증나게···!”


자꾸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그의 모습에 상대가 짜증을 토하며 검을 뒤로 당긴다.


‘그 검이다.’


그는 검자루를 강하게 움켜쥐며 상대의 자세를 바라보았다.


발끝으로 서서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자세.


언뜻 보기에도 불안정해 보이는 자세였지만, 그것은 순간적인 가속과 유연한 움직임을 위한 준비 자세였다.


이내 그녀가 쓰러지듯이 앞으로 튀어나오고, 검의 궤도가 불규칙하게 휘어지며 그를 향해 쇄도했다.


‘섣부르게 막으려고 하면 그대로 물린다.’


견고한 방어를 우회하여 상대를 물어뜯는 검술.


그 특유의 불규칙한 검로와 유연한 사용자가 결합되면, 회피와 공격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 공방일체의 무결성을 자랑하는 검술이었다.


‘하지만 약점이 없는 건 아니지.’


아무리 공격적으로 활용한다고 해도, 결국 유검柔劍에서 파생된 검술.


상대의 공격을 부드럽게 흘려내는 방어와 그와 동시에 이루어지는 반격을 중시하는 유검의 특성상, 상대가 먼저 휘둘러 오는 것을 반격하는 형태가 아니라면 그 공격력을 100% 끌어올리기 어려웠다.


‘끝까지 보고, 정확하게 찔러 넣는다.’


핵심은 어설프게 먼저 검을 내밀지 않는 것.


오히려 상대가 참지 못하고 공격에 나선 시점에 정확히 그 맥을 끊어낸다면,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게 상대의 공격을 파훼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첨검세尖劍勢


상대의 검이 폭발적으로 휘어지기 직전, 그 찰나의 순간을 칼끝으로 찔러 넣는다.


응축되어 있던 힘은 바늘처럼 가느다란 찌르기 한 번에 그 본래의 궤도를 잃어버렸다.


그는 곧바로 드러난 상대의 빈틈을 향해 찌르기를 날렸으나, 상대는 유연한 몸놀림으로 그의 찌르기를 피해냈다.


“이익!”


뒤로 물러난 그녀가 분하다는 듯이 다시 자세를 잡았지만, 이후의 공격들도 번번이 빗겨나갈 뿐이었다.


‘혈염에 맞설 수 없다면, 손실을 최소화해야 한다.’


1급의 상징과도 같은 저 불꽃은 같은 불꽃으로 맞설 수 없다면, 최대한 피해야 했다.


그것이 품고 있는 에너지는 목검 따윈 그대로 양단해 버릴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첨검尖劍을 활용하여 최소한의 면적으로 상대의 공격을 막는 기술을 고안했다.


‘사실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순 없었지만···.’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상대의 수준은 아직 부족한 자신의 수준으로도 충분히 대응이 가능하다고.


그리고 끝내 그것을 실현해 낸 자신을 보면서 다시 한번 확신했다.


‘그 남자의 말이 맞았군.’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은 남자는 그에게 자신의 피에 의지하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처음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으나, 검을 휘두를수록 점점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건 재능이라기보단 기억의 회상에 가까워.’


자신이 검에 재미를 붙인 것도 배움의 즐거움보다는 기억의 재현에서 오는 쾌감 혹은 충족감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자신의 핏속에 깃든 기억을, 감정을, 기술을 되새김질하는 기적.


단지 혈육이라는 이유로 그 남자가 가졌던 힘을 자신이 다루고 있었다.


‘이게 피로 이어져 있다는 건가?’


도대체 어떻게 이런 비현실적인 일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은 분명 그것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1급을 상대로도 이 방법이 유효하다는 걸 확인한 이상, 자신의 길에 대해 불안함을 느낄 필요도 없었다.


‘슬슬 끝내볼까.’


그의 눈에 상대의 검에 새겨진 미세한 균열이 보인다.


중검세重劍勢


그는 두 다리로 대지를 단단히 디디며 묵직한 참격을 날렸다.


그러자 상대 역시 불꽃을 더욱 키워내며 그의 참격을 맞받아쳤다.


콰직!


흩날리는 불꽃과 비산하는 파편.


“!!”


상대는 부러진 목검을 든 채로 눈을 크게 떴고, 그는 부러진 목검을 던진 후에 곧바로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오직 직감에 의지한 본능적인 움직임.


지금 이 순간 육체를 움직이고 있는 건 그 자신이 아니었다.


“윽!”


그는 그대로 그녀의 가녀린 목을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아직 복구한 팔이 익숙하지 않나 보네.”


선명한 황금빛 눈동자가 자신의 손 위에 놓인 먹잇감을 가만히 쳐다본다.


“이, 이거 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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