깅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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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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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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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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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 살인자의 아들 2

DUMMY

2. 살인자의 아들 2


시간.

시간이 남아돌았다.


아이의 시간은 특히 더 길게 느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꽤나 큰 문제였다.

첫 한 달, 사람들이 깅코의 집 앞에 서성일 땐 무료함이 들어올 공간이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버지가 살인죄로 왕국에 끌려가기 전엔, 평소처럼 마을 구경하거나 친구들과 적당히 어울리며 하루를 보냈을텐데···. 이제는 모두를 못 본채 해야 했다.


그는 무료함을 달랠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해 집에 얼마 없는 책들을 되풀이해 읽었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것이 지겨워질 때면 풀숲을 돌아다니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마을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을 찾아다니는 등 여러 방법으로 시간을 때웠다. 허나 아직 컨디션이 완전히 돌아오지도 않았을 뿐더러 몸을 쓰면 배가 더 빨리 고파졌기 때문에, 그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깅코는 그림을 그리는 것에 취미를 붙이게 되었다. 집에 굴러다니던 연필을 발견하며 시작된 취미였다. 도화지로 쓸만한 종이가 없었기에 그는 책 페이지에 낙서를 했고 이윽고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걸 그렸다.

남는 것이 시간이라 하루에 몇 십장을 그려대니 나중에는 그릴 종이와 연필이 부족해 새로 사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혼자 지낸지 넉 달이 지나자 마침내 잡화상점에서 새로 산 연필까지 다 써버렸다.

넉 달이 지났는데도 아버지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감옥에 갇힌 건지, 죽은 건지 아무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소식을 알고 싶었지만, 그는 겁이 났다. 원치 않는 답을 듣게 될까 봐.


요 넉 달 간 깅코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다. 식재료를 아끼느라 제대로 된 음식을 해먹지 못해 광대뼈가 도드라져 보일 정도로 말랐고 피부는 푸석푸석해졌다. 스트레스때문에 그의 검은 머리카락 사이에 흰머리가 생기기 시작했고 앞머리는 생기가 사라진 고동빛 눈 아래까지 덮었다.


소년은 이렇게 지내는 것이 지겨웠다. 그러나 달리 뭔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그는 연필 꽁다리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 오랜만에 밖으로 나갔다.


깅코는 마을로 향했다. 잡화상점에서 다 쓴 그림재료를 사기 위해서 였다. 그는 사람들과 덜 마주치기 위해 아침 일찍 나왔다. 오전인데도 날씨가 쨍했다. 바람도 불지 않아 오후는 더워질 것 같았다.


잡화상점에 도착한 그는 처음 샀던 아마 처음 펜과 종이를 집어 계산대에 올렸다. 처음 왔을 때 잡화점 주인은 깅코를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다. 처음 왔을 땐 개의치 않고 물건을 줬었는데 지금은 물건을 팔고 싶지 않아 하는 걸 보니 말이다.


“이번이 마지막이니 다음부턴 오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어차피 남은 돈도 얼마 없어서 깅코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요.”


원래라면 값싼 연필과 종이만 샀겠지 만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그의 손은 작은 물감세트와 붓으로 향했다.

손바닥 만한 튜브에 담긴 여섯 종류의 물감과 그림용 붓 세 가지가 들어 있는 세트였다. 가격이 여덟 배 이상 차이가 났다.

캔버스까지 산다면 가지고 있는 모든 돈을 써야 했음에도 그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 주머니를 털어 전부 자판대에 올려 놓았다.


가진 돈을 다 쓰고 집에 돌아가는 길. 깅코는 자신이 바보 같은 짓을 했다고 자책했다. 그림 따위를 그리겠다고 먹을 걸 포기하다니. 순간적으로 미쳤던 건가. 정말 바보 같았다. 이걸 살 돈으로 한 달은 버틸 수 있는 음식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집에 남은 음식을 쪼개 먹는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지?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나? 그 이후엔? 저번처럼 쫄쫄 굶어야 하나?

술락이나 다른 가게 주인들은 돈이 없으면 물건을 팔지 않을 게 분명했다. 동냥도 소용없을 것이다.

어차피 마을 사람들은 그가 떠나길 바라니. 만약 마을을 떠난다고 하면 양심상 며칠 치 음식을 챙겨줄지도 모른다. 약속한 일년보다 일찍 떠나는 거니까.

그러면 그 음식을 가지고 왕국으로 가는 거다. 걸어가면 대충 이주 안에는 도착하지 않을까 했다. 그리고 왕국에 도착하면 경비대에 물어 아버지를 찾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며 걷자 돌아가는 길이 자신의 무덤 같았다. 집에 가까워질 수록 점점 땅에 몸이 묻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그 앞에서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순간 눈물이 날 뻔했지만 그는 누군가 마주칠까 발걸음을 서둘러 집에 돌아왔다. 그러고는 캔버스를 벽에 기대고 바닥에 재료를 풀었다.


깅코는 빈 캔버스를 보며 무엇을 그릴까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 뜬금없게도 자신의 뒷모습을 그려보기로 했다. 뒷모습을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깅코는 잠시 쉬고 거실 나무 바닥을 팔레트 삼아 물감을 짜고 붓질을 시작했다.


물감은 처음 써보는 거라 신기했다. 캔버스 위에 밑그림도 없이 어둑한 거실의 실루엣이 과감히 칠해졌다. 엉성했지만 번갈아 보면 같은 장소라는 걸 알아볼 정도는 되었다.


거실 배경이 완성되자 깅코는 다음으로 창문 사이로 드는 보랏빛을 내었다. 그리고 그 빛을 받는 안방 문을 그렸다.

그림 실력이 따라주지 않았기에 겨우 만족할 정도가 되기까지 일주일이 넘게 걸렸다. 사실 물감이 마르는 시간을 고려하지 않고 그 위에 그렸기 때문에 수정하는데 더 오래 걸린 것도 있었다. 계속 덧대어 칠하느라 물감도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나자 예상했듯 먹을 게 바닥났다. 볶은 땅콩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하루에 서너 알로 버틸 순 없었다. 그가 허기진 배를 어루만지고 있을 때였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자신를 찾아올 사람이 있던가. 노크소리가 작은 걸로 보아 마을 어른은 아닐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노크 소리가 한 차례 더 이어지자 그는 조용히 문을 열었다. 문 밖에는 키 작은 소녀가 흰 천으로 덮인 라탄 바구니를 들고 서 있었다.

멜리사였다. 마을 이장의 딸이자 깅코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 멜리사는 외모만큼 꽤나 성격이 활달했다. 그녀는 챙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귀가 큰 탓에 귀가 아래로 접혀 있었다.


아버지가 왕국 감옥에 끌려간 뒤로 처음보는 거였다. 오랜만에 친구를 보자 반가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그녀가 이곳에 찾아온 걸 어른들이 알면 바로 그를 바로 마을에서 쫓아낼 게 분명했다. 깅코는 멜리사를 문 밖에 세워두고 말했다.


“멜리사. 여긴 왜 온 거야? 어른들에게 나랑 어울리지 말라는 소리 듣지 않았어?”

“어···. 듣긴 했는데 그래도 지금은 다들 별 말 안 하니까···. 괜찮을 것 같아서 왔어.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 되기도 하고.”

“별 말이 없는 건 내가 마을에서 시키는 대로 해서 그런 거야. ···와준 건 고맙긴 한데 너가 여기 온 걸 알면, 나 당장 쫓겨날 수도 있단 말이야. 어서 집으로 돌아가.”


그렇게 바로 문을 닫으려 하자 멜리사가 다급히 바구니를 들며 말했다.


“잠깐만, 잠깐만!! 이걸 주러 왔어.”


그녀는 손에 들린 바구니를 깅코에게 보여줬다. 그녀가 덮인 천을 치웠다. 바구니에는 호밀 빵 몇 조각과 사과 잼, 그리고 우유 한 병이 담겨 있었다.


“아무래도 그 동안 잘 먹지 못했을 것 같아서······.”


받지 말았어야 했지만, 거절하기엔 그는 배가 너무나도 고팠다. 깅코는 재빨리 밖을 살폈다. 근처에는 멜리사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잠깐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잠시만이야.”


그는 멜리사를 들인 뒤 재빨리 문을 닫았다. 사람이 주변에 없는 걸 확인 했지만 혹시나 밭에서 누군가 몰래 보고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멜리사는 집에 들어와 라탄 바구니를 넘겨줬다. 깅코는 곧바로 바구니에서 빵 한 조각을 꺼내 허겁지겁 먹었다.


“······고마워. 사실 며칠 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너무 배가 고팠어. 저번 주까진 어찌저찌 있는 돈으로 음식을 사서 버텼는데 이제는 땡전 한 푼 없거든.”


깅코는 빵을 한 조각 더 먹을까 말까 고민했다. 멜리사는 부엌 쪽 나무 의자에 앉아 깅코의 야윈 얼굴을 안쓰럽게 쳐다봤다.


“다행이다. 마을에서 너가 보이지 않아서 걱정 많이 했어. 다른 애들이랑 같이 오고 싶었는데 그건 너무 눈에 띌 것 같아서 나 혼자 몰래 온 거야. 어떻게 지내고 있어?”


“보다시피. 눈에 띄지 않는 조건으로 일년 간 떠나지 않고 지내게 되었는데 이대로는 굶어 죽는 게 더 빠르겠어.”


깅코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허기가 안 찼는지 빵 한 조각을 더 꺼내 사과 잼을 발라 먹었다. 입안에 단맛이 들어가자 조금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너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이렇게 지내야 하는 거야? 벌은 네 아버지가 받고 있잖아.”

“글쎄. 마을 이장에게 물어보지 그래. 가장 마지막까지 나보고 눈에 띄지 말라고 한 사람이거든.”


멜리사는 깅코의 말에 어쩔 줄 몰라 하다 결국 다른 곳으로 화제를 옮겼다. 그녀는 거실로 걸어가 바닥에 있는 그림을 가리키며 물었다.


“깅코, 이거 너가 그리고 있는 거야? 그림 그리는 줄 몰랐어. 이 집 거실인가 보네. 딱 봐도 알겠어. 그런데 아직 미완성인 거지?”


확실히 잘 그리지는 못했는지 칭찬은 없었다. 그림을 보는 그녀의 표정은 ‘완성시키면 괜찮아지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깅코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응. 아직 완성 된 거 아냐. 빈 부분도 채워야 하고 군데 군데 손 봐야 할 곳도 많고.”


그림 실력이 창피했는지 변명이 저절로 나왔다.


“우와! 그럼 완성 되면 보러 와도 돼?”

“아니, 멜리사! 아까 내 말을 듣기는 한 거야? 네가 여기 온 걸 너희 아버지가 알면 난 마을에서 쫓겨난다니까. 너도 내가 마을에서 빨리 떠났으면 하는 거야? 그래서 이러는 거냐고?”

“아니···무슨 말을 그렇게 해. 너 걱정 돼서 온 건데.”

“그래도 너무 위험해. 위험하다고 멜리사.”

“오늘처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몰래 오면 되잖아. 그리고 지금 보니까 이제 먹을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다음에 올 때 지금보다 더 챙겨 올게. 근데 너무 많이는 못 가지고 와. 엄마가 알아차릴 거야.”


그러고 보니 멜리사가 가고 나면 다시 굶어야 한다. 아···. 고민이 됐다. 안전을 택하느냐. 아니면 먹을 걸 택하느냐. 깅코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지금처럼 금방 돌려 보낸다면 괜찮을지도 몰라. 그는 집을 나서는 멜리사를 불렀다.


“사흘 뒤에 와. 그때라면 아마 완성되어 있을 거야.”

“응! 상황 봐서 사람들 피해서 올 게!”

“저기···가능하면 오늘 먹은 사과 잼도 조금 가져다 줘.”


멜리사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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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날지 못하는 요정 5 NEW 6시간 전 5 0 12쪽
14 14. 날지 못하는 요정 4 NEW 11시간 전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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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 머큐어의 숲 4 24.09.19 18 0 12쪽
7 7. 머큐어의 숲 3 24.09.19 18 0 12쪽
6 6. 머큐어의 숲 2 24.09.19 25 1 11쪽
5 5. 머큐어의 숲 24.09.19 33 1 11쪽
4 4. 회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 2 24.09.19 33 3 11쪽
3 3. 회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 24.09.19 41 3 11쪽
» 2. 살인자의 아들 2 24.09.19 54 4 11쪽
1 1. 살인자의 아들 24.09.19 216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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