깅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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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A
작품등록일 :
2024.09.16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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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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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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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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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회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 2

DUMMY

4. 회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 2


회색로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돌멩이가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있게 해주는 이동석이라고 했다.


“소문에 따르면 그 세계는 이런 레릭들로 한 두개가 아니래. 그리고 그 중엔 영생을 살게 해주는 레릭까지 있다고 하니 멋지지 않니? 이런 특별한 것들이 넘쳐나는 곳이라니. 꼭 나를 위한 세계잖아! 아아, 얼마나 근사할까.”


회색로브는 땅콩 밭이 아닌 꽃 길을 걷는 것 마냥 자아도취 상태였다. 마법사들 전부 이런 뻔뻔함과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걸까 궁금했다.

그녀의 말을 줄이면 그녀는 이 세계로 넘어가 영생의 레릭을 얻어 다른 세계를 정복하는 휘황찬란한 꿈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걷다 보니 깅코의 집이 있는 풀숲이 보였다. 전에 물감을 사오며 오는 길이 무덤 같았는데 실제가 되었다. 집에 들어가서 레릭을 넘겨주는 순간 깅코는 살해 당할 것이다. 레릭의 제물이 되고 저 망할 나르시시스트 마법사는 신나서 다른 세계로 가겠지.

지금이라도 풀숲으로 도망친다면 살 수 있지 않을까? 전력으로 달리고 몸을 숨긴다면 어쩌면..


이런 생각은 회색 로브가 깅코의 집 주변에 은색 거품 같은 걸 씌우는 것을 보며 사라져버렸다.

그녀는 품에서 자그마한 막대를 꺼내 바닥에 그림 같은 걸 그렸다. 뭔가 패턴이 섞인 문양이었는데 꽤나 공을 들여 그렸다.


문양을 다 그리자 그녀는 뱅코의 집을 향해 막대를 치켜 세우고는 뭐라 웅얼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들의 발 앞에서부터 집 뒤의 풀숲 언저리까지 은색 거품 같은 것이 올라 오기 시작했다. 마을에 쳤다던 결계라는 것이 분명했다.

은색 거품이 땅에서 솟아 올라 반원의 구를 완성하자 색깔이 거의 사라지며 막이 형성되었다.

날이 어두워 그런지 아주 자세히 봐야 미약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에휴! 결계 치는 것도 이제 마지막이면 좋겠네. 자, 들어가자.”


깅코는 결국 달아나지 못한채 회색 로브와 결계 안으로 들어왔다. 통과하며 이상한 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계단을 올라 집 문 앞에 선 깅코는 마지못해 문고리를 돌렸다. 집 안으로 들어와 촛불을 켜자 물감으로 얼룩덜룩한 거실 바닥과 완성된 그림이 보였다. 안방 문을 바라보는 깅코의 뒷모습이 지금과 딱 비슷한 구도였다.

멜리사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뒤에 있는 인물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게 된 그림···.


“이런 곳에 혼자 사는 거니? 어서 레릭을 가지고 오렴.” 회색로브가 기다릴 생각이 없다는 듯 뒤에 서 재촉했다.


깅코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거실 끝 쪽으로 걸어가 서랍 첫번째 칸을 열어 이 모든 악몽의 근원을 꺼냈다. 몸이 떨렸다.

뒤돌아 떨리는 레릭을 잡은 손을 내밀자 회색로브는 휙하고 레릭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오! 오오~! 뭐야, 이거! 이미 조건이 다 충족된 상태잖아! 무슨 일이래? 이렇게 운이 좋아도 되는 건가?” 그녀는 신이 난 듯 큰 소리로 말했다.


“조건을 채운 게 네 녀석은 아닐 테고. 이거 어디서 얻었니?”

“···아버지 외투에서 발견한 거예요.”

“아 역시, 혼자 사는 건 아니었나? 네 아버지 지금 어디에 있는데? 마을에 있었으면 내가 이미 알아 챘을 텐데, 없었거든. 집 안에도 없는 것 같고.”

“그···살인죄로 왕국 감옥에······.”

“아하~! 그러니 나처럼 흔적을 잘 지웠어야지~ 왕국 놈들도 레릭의 행방을 찾고 있는 터라 추적 피하는 게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거든. 그래도 레릭이 여기 있는 걸 보니 왕국에서는 평범한 살인죄로 알고 있나 본데.

레릭 조건을 다 채운 걸 보면, 네 수백은 죽였어야 할텐데, 민간인이 그만한 수의 인간을 죽였을린 없고. 흐음···애초에 어디서 얻은 거지? 알고 있니?”

“모···몰라요···.”


그런 것인가. 아버지는 이 돌에 제물을 바치기 위해 살인을 해온 것인가. 그렇다면 저번 마을에서 살인한 게 맞았던 건가. 돌아오지 않았던 것도 정말 살인자가 맞았기 때문에??


깅코가 열 네살이 되었을 무렵부터, 그는 아버지와 주기적으로 이사를 다녔다. 그렇게 지역을 옮겨 다닌 것만 해도 다섯 번이 넘었다.

떠도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지만 살인 의심을 피하기 위해 그런 거라 생각하니 점차 이해가 됐다. 지금까지 감춰둔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증오심이 스멀스멀 피어 올랐다.


얼마나 죽인 걸까? 설마 아버지가 죽인 사람들 중 어머니가 있진 않을까? 꼬리에 꼬리를 문 의심의 마지막은 ‘어째서 깅코를 살려둔 것일까’였다.

제물이 필요했다면 오히려 저항능력이 거의 없는 어린 그를 먼저 처리하는 것이 편할 터였다.


아버지는 자상한 편였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고 어릴 땐 잘 먹어야 한다며 일주일에 한 번은 고기를 사 먹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여서 인지, 아버지가 살인마라는 걸 좀처럼 믿을 수 없었고, 끌려간 후엔 분명 오해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 짓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고. 다른 사람과 착각한 거라고······.


회색로브가 움직이자 이어지던 깅코의 생각이 끊겼다.

그녀는 깅코에게서 뺏은 레릭 조각을 다른 한쪽에 맞췄다. 그러자 적잖이 큰 진동과 함께 빛이 나더니 두 조각이 하나로 맞춰졌다. 돌 정중앙에는 붉은색이 아주 옅게 맴돌았다.


“덕분에 편하게 됐으니 나도 자비를 베풀어볼까? 최대한 덜 아프게 보내 줄게.”

“아···진짜 죽일 거예요?.....사, 살려주세요···제발.”

“왜 이래~나도 그러고는 싶지만 새로운 세계가 날 부르잖니? 너만 있으면 문을 열 수 있는데, 내가 그걸 참을 이유는 없지.”


그렇게 말하고 주문을 외우자 반지를 낀 손가락 위로 송곳처럼 생긴 바람이 생기기 시작했다.


위잉-위이잉!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송곳을 치켜 세웠다. 촛불로 공간이 밝아진 덕에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보였다.


“자, 심장을 꿰뚫을 거야! 움직이지 마~ 빗맞으면 후회한다.”


깅코는 뒷걸음질 쳤다. 그에 발에 채여 벽에 기대어 있던 그림이 쓰러졌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지자 회색 로브는 송곳의 길이를 늘려 깅코의 가슴팍을 찔렀다.


“악!” 깅코는 순간적인 통증때문에 소리를 질렀다.


쿨럭. 상체가 따듯해 지더니 가슴과 입가에서 피가 울컥하고 쏟아지기 시작했다. 몸에 힘이 풀리자 무릎이 꿇어졌다. 그리고 그대로 땅바닥에 고꾸라졌다. 심장에서 나는 피가 거실 바닥에 마른 물감 위를 덮기 시작했다.


“에이씨, 움직이지 말라니까. 두 번 일하는 거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거든, 내가? 편하게 한 번에 가면 얼마나 좋아? 쓰읍, 얼마 안 걸릴 것 같으니 그냥 그렇게 죽어.”


순식간이지만 깅코가 몸을 움츠린 탓에 심장이 제대로 관통되지 않은 것이었다. 덕분에 즉사를 면할 순 있었지만 숨은 곧 끊어질 터였다.


“아악! 끄...으으”


바로 죽지 못했기 때문에 고통 역시 그대로 느껴야만 했다.


회색 로브는 쓰러진 깅코의 앞에 레릭을 가져다 댔다. 뭔가가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단순히 피가 빠져나가는 감각이 아니었다. 마치 숨을 끊임없이 내쉬는 느낌..그 숨이 레릭으로 빨려 들어 가는 것 같았다.

레릭에 맴돌던 붉은색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러 음역대의 진동소리가 나더니, 회색 로브의 손에서 벗어나 공중에 떴다.


그녀가 돌의 투명한 부분을 건드리자 레릭은 번쩍였다. 그리고 거실에 커다란 원이 나타났다. 원은 깅코의 집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커졌다.

레릭이 만들어 낸 원 안에는 소용돌이가 치고 있었고 손을 집어 넣는다면 빨려 들어 갈 것처럼 보였다.


“아!!!! 드디어 이 세계로 가는 문이 열린 건가!” 회색 로브가 흥분해서 외쳤지만 깅코에게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죽고 싶지 않아..이렇게..죽고 싶지 않아···.’


깅코는 심장의 통증을 참으며 속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어 줄 사람은 없었다. 몸이 천근처럼 무거워 그는 고개만 간신히 돌린 채로 펼쳐진 광경을 봐야만 했다.

눈을 깜박일 때마다 시야가 뿌옇게 변했다. 깅코가 의식을 잃어가자 레릭의 소용돌이가 점점 거세게 일렁였다. 소용돌이의 색깔이 황금빛으로 변했다. 마치 입구가 열렸다는 신호 같았다.

회색 로브는 아랑곳 않고 차원 문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손을 내밀었고···

그 순간, 깅코의 숨이 끊어졌다.


* * *


깅코는 마을 앞 땅콩 밭에 서 있었다. 밭에는 멜리사, 마을 이장, 술락 등 얼굴을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그들이 모두 말 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어서 깅코 역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에 은색 막이 씌워지며 서서히 깅코와 마을 사람들을 가두고 있었다.


이윽고 모두 은색 막에 완전히 갇히자 바람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땅콩 잎이 나풀대며 바람에 흔들렸다.

바람이 모여 들었다. 그리고는 거대한 송곳들로 변했다. 그리고는 귀를 찢는 굉음을 내며 마을 사람들을 향해 빠르게 날아오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지만 은색 장막에 갇혀 나가지 못했다. 바람 송곳이 아주 손 쉽게 저항도 못하는 마을 사람들의 심장을 꿰뚫었다. 어찌나 크게 뚫렸는지 관통한 심장 구멍 사이로 밖이 보일 정도였다.


땅과 밭 색깔이 붉게 변할 만큼 주변이 온통 피바다가 되었다. 더 이상 꿰뚫을 심장이 남아 있지 않자 바람 송곳들은 일제히 깅코를 향해 날아왔다.

깅코는 뒷걸음쳤지만 죽은 멜리사가 땅에서 나타나 그의 발을 붙잡았다.


“너 때문이야, 깅코! 다 너 때문이라고!”

“아···아냐! 나는······.”

“너만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어도 평화롭게 살 수 있었는데! 죽어 버려!!”

“안돼..안돼!!!!”

.

.

.

“으아아아악!!”


깅코가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 식은땀에 얼굴과 몸이 젖어 있었다. 그는 가쁜 숨을 몰아내며 심장 부근에 손을 가져다 댔다.


······.


멀쩡하다. 찔린 심장이 뛰고 있었다.


죽은 줄만 알았는데···분명 죽을 상처였는데 멀쩡히 살아있다.

입고 있는 셔츠 가슴팍이 찢어져 있고 피가 굳어 있는 걸로 봐서 자신이 꿈을 꾼 건 아닌 게 분명했다.

깅코는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회색 로브가 자신의 심장을 찌른 뒤, 레릭으로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을 열고···들어가려 했던 것까지가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이었다.


그가 몸을 완전히 일으키자 툭 하며 땅에 뭔가 떨어졌다. 바로 레릭이었다. 회색 로브가 자신에게서 빼앗아 간··· 마을 하나와 자신의 목숨을 제물로 한 레릭이 그의 앞에 떨어져 있었다.

레릭의 중앙은 검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회색 로브가 가지고 있어야 할 물건이 어째서 그의 앞에 있는 지 알 수 없었으나, 그는 손을 내밀어 레릭을 쥐었다.


그러자 깅코의 머릿속으로 어떤 메세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세르만드의 차원석 [감정 완료/미활성]


(세르만드의 불꽃 0/5)

(융의 결정 0/1)

(바르후의 피가 담긴 성배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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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 날지 못하는 요정 5 NEW 6시간 전 5 0 12쪽
14 14. 날지 못하는 요정 4 NEW 11시간 전 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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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 날지 못하는 요정 24.09.21 4 0 11쪽
10 10. 머큐어의 숲 6 24.09.19 27 1 13쪽
9 9. 머큐어의 숲 5 24.09.19 15 0 11쪽
8 8. 머큐어의 숲 4 24.09.19 18 0 12쪽
7 7. 머큐어의 숲 3 24.09.19 18 0 12쪽
6 6. 머큐어의 숲 2 24.09.19 25 1 11쪽
5 5. 머큐어의 숲 24.09.19 33 1 11쪽
» 4. 회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 2 24.09.19 34 3 11쪽
3 3. 회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 24.09.19 41 3 11쪽
2 2. 살인자의 아들 2 24.09.19 54 4 11쪽
1 1. 살인자의 아들 24.09.19 216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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