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커: 5. 바보 같은 놈 1
솔직히 말해서 크리스토퍼 같은 녀석만 있다면 얼마든지 데리고 다니면서 트럭운전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순전히 내 욕심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구엔 20억의 인구가 있으며 20억의 다른 생각이 떠돈다.
한 개의 사건이 있으면 20억개의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
사람 사는 곳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디나 마찬가지다.
착한 사람도 있고, 나쁜 놈도 있고, 순한 사람, 지독한 놈, 모두 있듯이 캐나다에도 영리한 놈만 아니라 둔한 녀석들도 있다. 사실 생각보다 훨씬 많다.
일반적인 대화를 할 때는 못 느끼지만, 상식이나 산수 문제에 접하면 금방 탄로 난다.
이놈들은 영리한 척할 뿐이지 머릿속은 텅 빈 깡통들도 부지기수다.
월요일 아침, 회사에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초보 운전자 교육 담당 매니저인 폴을 만나는 일이다.
“사고뭉치 울프가 왔군, 오늘은 사고 친 것 없나?”
굵고 카랑카랑한 폴이 그만의 특유한 웃음을 지으며 시비조로 아침 인사를 했다.
그가 웃음을 일부러 지어 보일 때는 입꼬리가 한쪽만 위로 올라가는 묘한 버릇이 있다.
“그래 난 네가 원할 때만 사고를 치지, 지금 원하나?”
“오늘은 아냐, 나 오줌 누고 털 시간도 없이 바쁘거든. 그리고 드라이버 휴게실에서 허버트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
“허버트?”
“새로 온 운전교육생, 오늘부터 2주 동안 네가 데리고 나갈 새내기다.”
누굴까? 어떻게 생긴 녀석일까? 말썽을 피우는 놈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폴은 돌아서서 휴게실 안쪽을 향하여 사나이를 불렀다.
한 사나이가 저벅저벅 이쪽으로 걸어 나오는데 느낌이 굵다.
무조건 굵다. 그냥 ··· 굵다.
굵다는 표현이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덩치가 크다거나 키가 크다는 말보다는 보이는 대로 모두 굵직하다는 표현이 맞다.
바로 이런 몸집이 굵은 사람들이 힘이 장사다. 뼈대가 보통사람의 두 배는 됨직하고 입고 있는 셔츠 위로도 근육이 툭툭 불거져 나와 있는데, 그냥 살이 아니라 아주 단단함이 배여 있었다.
나보다 조금 더 커 보이니까 그다지 키가 큰 편도 아닌데도 훨씬 커 보이는 것은 바로 그의 육체에서 흐르는 굵은 선에 있었다.
머리도 큼직하고 팔다리도 굵고, 까만 수염이 턱 주변을 감싸고 있고 눈썹마저도 시커멓게 굵은 줄을 그리고 있었다.
옛날에 본 만화영화 ‘뽀빠이’에서 뽀빠이와 항상 싸우던 털보 ‘부루터스’가 바로 이 녀석이 틀림없다.
그가 아니라면 부루터스는 틀림없이 이렇게 생겼을 것이다.
“나는 허버트다.”
“난 울프.”
그가 손을 앞으로 내미는데 그의 손이 얼마나 큰지 깜짝 놀랐다.
내가 내민 손은 유치원생이고 그의 손은 바위덩어리만 하다.
후와~ 이런 소도둑놈같이 생긴 녀석하고 앞으로 2주 동안이나 함께 생활해야 한다니 걱정되고 부담스러워진다.
처음에는 서로의 개인적인, 물론 일반적인 개인 신상 이야기로 대화로 시작하기 마련이다.
캐나다 태생이고 나이는 마흔두 살이고 결혼해서 두 아들이 있지만, 아들들은 전처가 키운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혼했다는 뜻이겠다.
지금은 엄마 집에 얹혀살고 있다고 했으니까 더 말 안 해도 뻔~한 상황이다.
성격 차이인지 능력부족 때문인지 둘 중 하나든지 아니면 둘 다 이혼사유가 되겠지,
이혼한 후, 부인은 애들을 데리고 정부보조금 타면서 또 남편이 벌어오는 돈을 양육비라는 명목으로 받아서 잘 먹고 잘사는 그런 가정이 흔하니까.
잘나가는 사람이 그 나이에 트럭운전 배우러 올 리도 없지만, 대부분은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서(나도 여기에 해당하지만), 대량해고로 직업을 잃어서, 현재 직업의 벌이가 신통치 않아서 등이 트럭 트라이버가 되는 이유다.
믿거나 말거나 어려서부터 트럭커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하는 놈들도 있다.
진짜 트럭커가 되고 나서는 꿈이 아니고 악몽이더라고 불평하지만······.
좌우지간, 나는 그 소도둑같이 생긴 허버트의 주먹이 올라오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빌어야겠다.
한 방이면 넉 다운 될 것이니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만약 한국말로 대화한다면 나이가 훨씬 많은 내가 도리어 존댓말을 꼬박꼬박 했을 것 같다.
그가 가져온 짐은 더불백 하나뿐이다.
2주 동안을 집에 가지 못하고 트럭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특수한 조건 때문에 일반적으로 새로 오는 초보 운전자들은 짐들이 많다.
옷가지부터 세면도구 등 여행 용품부터 담요나 슬리핑백,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식품들, 심지어 개인용 쿨러도 들고 오는 친구도 있었다.
첫째 날, 트럭을 출발하기 전에 안전 점검 PTI(Pre Trip Inspection)을 시키고 15분 정도 운전을 시켰다.
운전하는 것은 제법 소질이 있어 보이고 초보치고는 기어변속을 무리 없이 잘했다.
첫날이므로 무리하지 않고 600㎞를 운전해서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 근터의 트럭 휴게소까지 운전하게 했다.
그날 로그 북(Log Book:운행일지)을 마감하는 중에 일이다.
로그 북은 그날 하루 24시간 동안을 운전시간, 운전 외 근무시간, 휴식시간, 수면 시간을 15분 단위로 기록을 하고 한 후에 총 일일근무시간과 내일 운전 가능 시간)을 계산하여 기록해야 하는 일이다.
장거리 트럭 운전사들이 반드시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미국과 캐나다의 법이다.
하루는 24시간이므로 모두 시간을 합하면 당연히 24시간 나와야 한다.
허버트는 로그 북을 작성하다 답답한 듯 머리를 흔들었다.
“왜, 25.5가 나오지?”
“잘 계산해봐.”
잠시 후,
“어? 이제는 1시간이 모자라네!”
“하루는 24시간이므로 꼭 24가 나와야 돼.”
그는 빈 종이를 꺼내 들고 다시 적어서 열심히 덧셈한다.
그러기를 30분,
“도저히 못 맞추겠어. 자꾸 틀린다, 울프, 네가 한번 봐 줄래?”
“어디 봐봐.”
나는 그의 로그 북을 힐끔 쳐다봤다, 정확히 3초 걸렸다.
“여기가 틀렸잖아. 2.25가 아니고 2.75야, 이제 다시 더 해 봐.”
“아하 그렇구나!”
다시 열심히 계산한다.
“이제는 0.5가 남네! 젠장 할... 아 참 계산기가 있지!”
그는 뒤로 가서는 가방을 부스럭 부스럭 뒤지더니 전자계산기를 꺼내왔다.
계산기 두드리는 폼이 영 불안하다. 플러스인지 마이너스인지 버튼을 찾아 버벅거렸다.
이번에는 엉뚱하게도 30시간이 넘게 나온다며 투덜댔다.
“이 계산기가 문제 있나 봐. 안 맞아.”
“야 하루가 어떻게 30시간이냐? 24시간이 나와야지.”
“어 그러게? 이 계산기가 잘못됐나 봐!”
계산 잘못하고서는 계산기 탓하는 놈은 처음 봤다.
다시 30분이 흘렀다.
“울프, 네가 좀 해봐라.”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도와 달라고 안 하더니 도저히 못 하겠는지 결국 내게 부탁했다.
캐나다 사람들 계산에 약한 줄은 알지만, 계산기를 사용하면서도 덧셈으로 24을 못 맞추는 놈은 처음 봤다.
로그 북을 보니 몇 번이나 고쳐 썼는지 도대체 숫자를 알아볼 수가 없이 지저분했다.
“여기는 11시간 30분이니까 11.50, 여기는 8.25, 여기는 2.75 그리고 마지막은 1.50 모두 합하면 24시간 딱 나오잖아!”
“아~하 그렇게 되네, 그런데 내가 계산하면 자꾸 틀리지? 이상한 일이네!”
꼬박 한 시간 넘게 걸렸다. 나는 참지 못하고 기어코 면박을 주고 말았다.
“60진법과 10진법은 초등학교 수준이다. 너 학교 다닐 때 뭐 했냐?”
“으응, 나는 학교 다닐 때 아버지 따라다니면서 일해야 했다, 숙제를 한 번도 해 간 적이 없어.”
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오오, 정말로?”
“그래, 학교 갔다 오면 바로 아버지가 일하는 공사장에 따라가서 일했거든, 학교 다니면서 에세이도 한 번 쓴 적 없어, 아! 있다. 딱 한 번 있다. 지리 선생이 반드시 에세이를 써 오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써서 냈다, 내가 어떻게 한 줄 아니?”
“어떻게 했는데?”
“공사장에서 조그만 돌멩이들을 주워다가 스카치 테이프로 종이 위에다 붙였지. 그리고 어디서 주웠는데 무슨 돌인지 모르겠다고 썼지, 그런데 선생도 무슨 돌인지 모르더라고!”
그는 신 이 난 듯 웃었다.
“헤헤헤··· 그러면서 무슨 선생이라고 하는 거야? 자기도 모르면서 뭘 가르친다고···”
“푸하! 어 그랬니? 잘했다! 넌 좀 특별하구나!”
내가 어이없어하는데도 그는 기분이 좋은지 시커먼 눈썹을 움직이며 자랑스럽게 웃었다.
“트럭운전 하기 전에는 뭐했니?”
“응 택시 운전.”
“정말로? 돈벌이가 어땠는데?”
“으응 조그만 타운의 술집에서 주로 아가씨들을 날라다 주는 일인데, 경쟁이 심해서 재미없었어.”
“어떤 아가씨들?”
“댄서들이야.”
“스트립 댄서들? 후와~ 재미있었겠다. 댄서들을 태우고 다니고 ···. 근데 아무 일 없었어?”
“없었어.”
“정말?”
“그래도 댄서들이 모두 내 택시에 타기를 원했다. 나보고 보디가드도 해달라고 부탁하곤 했지!”
“그래 너는 덩치가 있으니까 보디가드 해도 되겠다. 택시 운전은 얼마나 했는데?”
“5개월.”
“그것뿐이야? 그 전에는 뭐 했는데?”
“바운서(bouncer)”
“그게 뭔데?”
“술집에서 소란 피우는 놈 쫓아내고, 여자들에게 집적거리는 놈들을 혼내 주는 거야.”
“아하, 그러니까 일종의 어깨구나, 우리말로는 기도라고 하지.”
“그래!”
“패트릭 스웨이지가 주연한 영화 로드 하우스 Road House 같은 거구나. 그 직업은 너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왜 그만두었니?”
“시간당 4불, 5불밖에 안 돼, 먹고 살기 어려워. 나도 두 아들이 있어.”
“그렇긴 하네. 아들은 몇 살이야.”
“큰애는 여덟, 작은애가 다섯 살이야.”
“많이 보고 싶겠구나.”
“한 달에 두 번씩 보러 간다. 그래서 나는 꼭 트럭운전사가 돼야 해 돈이 필요하니까.”
“그래 너는 할 수 있을 거야, 자 이제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나는 그가 왜 이혼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는 레스토랑에서 제일 큰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그 체격을 유지하려면 먹어도 엄청 먹어야 하겠지. 당연히.
다음 날 아침, 내가 운전해서 알렉산드리아 배이 뉴욕 주로 넘어가는 길이었다.
항상 하는 것처럼 화물 송장과 내 운전면허증 허버트의 운전면허증을 미국 국경 직원에게 건네주었다. 항상 하는 통관 절차이다.
“요즘 술 마신 적 있나?”
국경 수비대 직원이 대뜸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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