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 NAME DEER HUNTER 5. 앵거스 비프 스테이크 디너
5. 앵거스 비프스테이크 디너
"다 왔다, 저기 오른쪽에 입구가 있어."
산모퉁이를 지날 즈음 그가 앞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무들만 우거진 숲속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야 나무숲 사이로 길이 나타났다. 길이라고 했지만 사실 차량들이 여러 번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길처럼 닦여진 그런 길이다.
거칠게 쓰러진 잔디위로 진흙 바탕의 타이어 자국이 있어서 차량이 다닌 흔적이 보였다.
그 바퀴 자국들을 따라 숲속 안으로 들어가니 산 아래쪽으로 제법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그곳은 나무숲에 가려져 길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한 500미터쯤 가니까 중장비 몇 대가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로소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았다.
‘아 여기구나 이제 다 왔구나.'
대략 빈 곳에 세우고 주위를 돌아보니 공사현장은 아닌 것 같고 임시로 중장비를 보관하는 야적장으로 여겨졌다. 주위에는 아무 건물도 없고 공사하는 흔적도 없다. 물론 공사인부도 없고 아무도 없었다.
적당한 빈 곳을 찾아 트럭을 세우고 랜딩기어를 내리고 트레일러를 분리했다. 그 친구에게 말했다.
“이제 다 됐지?”
"그래, 조금만 기다려 줘.“
셀 폰을 꺼내 들고 저쪽으로 걸어가면서 전화를 걸었다. 뭐라고 하는 지 들리지 않기도 하지만 내가 들을 이유도 없다. 아마도 배달했다고 보고하는 것이겠지, 한참동안의 통화를 마친 후 내게 다가왔다.
“친구여, 이제 가도 돼, 다시 한 번 고맙다.”
“너는 어떻게 돌아 갈 거냐?”
“보스가 이리 올 거야. 나는 그의 차를 타고 가면 돼. 그리고 누구한테라도 말하지 마.“
“왜?”
“보스에게 실망시키고 싶지 않거든, 내 트럭에 문제가 있는 줄 알면 보스가 또 일을 안줄 거야. 알겠지?”
“걱정 마! 아무한테도 이야기 안 할 거니까.”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알았다고 대답했다.
내가 운전부주의로 트레일러와 다리를 긁어놓았으니 누구한테 말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내가 부탁하고 싶었던 말인데,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렸다.
거기다가 부수입까지 챙겼는데······. 당연히 입 싹 씻는 거지 하고 속으로 생각 했다.
*
돌아오는 길은 아주 간단했다. 뒤에 달고 있는 트레일러가 없으니까 운전이 쉽고, 내 주머니에는 뜻하지 않게 생긴 돈 $300이 있으니 기분 짱이다.
'하하하! 트럭 운전하다 보니 이럴 때도 있네!'
신이 절로 났다.
다리와 남의 트레일러를 긁어놓은 게 조금은 마음에 걸렸지만 그 친구가 누구한테 이야기 안하겠지 안심했다. 오히려 나에게 말하지 말라고까지 했는데······.
자, 공돈이 생겼으니 뭘 하지? 일단 맛있는 스테이크부터 먹자!
그 제일 맛있다는 앵거스 소고기 스테이크부터 먹자. 그리고 후식으로 초콜렛 아이스크림, 뉴욕치즈레몬파이 한 조각 곁들여서 오랜만에 맛있게 먹자.
트럭스탑 휴게소에 돌아와서 다시 트레일러를 연결 해놓고 서둘러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그동안 혼자 트럭운전을 하고 다니면서 풀코스 디너를 사먹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집에 있는 딸들과 와이프 생각에 감히 나 혼자만 맛있게 먹는다는 것이 미안했다. 가족들을 데리고 외식은 자주 가는 편이지만 거의 항상 싼 것만 주문하게 되고 애들도 가격을 봐가면서 주문하던 것이 영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다.
이번 트립을 마치고 집에 가면 아내와 딸들을 고급 레스토랑에 외식이나 가야겠다. 그러니 오늘은 일단, 나부터 좀 먹고 봐야겠다.
메뉴판을 보니 앵거스 비프스테이크가 $28 이나 한다. 커피와 디저트에 팁까지 하면 $30을 훌쩍 넘길 것이다.
이 돈으로 월마트에 가서 먹을 것을 쇼핑하면 일주일은 먹을 수 있는데 하는 생각도 잠시뿐, 공돈이라는 생각에 기분 좋게 먹자고 마음먹었다.
창가에 자리잡고 앉아서 웨이트레스에게 미리 주문 한 하우스와인으로 입안을 가볍게 적셔주었다.
스테이크를 기다리는 동안 운이 좋을때도 있구나 생각했다.
이런 일이 가끔 있으면 괜찮겠다는 쓸데없는 욕심이 들었다.
내 속에 들어 있는 인간의 심리는 이처럼 간사했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좋은 일로 친구도 도와주고 맛있는 스테이크도 먹고, 좋은게 좋은일 아니던가?
오래 기다림 끝에 드디어 스테이크가 나왔다. 1인치가 넘는 두꺼운 스테이크가 그릴에 닿은 검은 줄무늬가 나란히 새겨진 채 번들거리는 육즙이 스며 나오며 내 시각을 자극했다. 가운데로 칼집을 낸 구운 통감자에서 김이 모락모락 난다. 먼저 나이프로 버터를 크게 한 조각 잘라서 뜨거운 감자사이에 넣고 크림을 그 위에 얹었다.
웨이트레스가 첫 칼질을 할 때까지 옆에서 기다렸다가 마음에 들게 익혀졌냐고 물었다. 비싼 음식을 시키니까 대하는 태도도 상냥하였다.
“완벽해!” 나도 미소로 답하였다.
자, 기분 좋게 먹자!
HP소스를 잘 발라서 한입 깨 물으니 부드럽고 촉촉한 게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싸우전드 아일랜드 드레싱을 뿌린 야채샐러드도 먹고, 살짝 구운 빵에 버터를 발라 먹고, 버터와 휘핑크림을 얹은 구운 감자도 수저로 한입 떠서 먹고, 함께 나온 브로콜리 수프에는 소금 한번, 후추 두 번 살살 흔들어 넣고 한 입, 길게 누운 오이피클은 작게 잘라서 새콤하게 아삭 깨물어 주고...
이거 정말 몇 년 만에 먹어보는 맛인가?
이렇게 반쯤 맛있게 먹고 있는데 웨이트레스가 동료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트레일러 하나가 도난당했다는데 너도 들었어?“
"어마! 웬일이야?“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으응!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지? 지금 트레일러가 도난당하다니?
여기까지는 혹시나 하고 믿기지 않았는데 다음 들리는 소리에 나는 그만 숨이 탁 막히고 씹던 고기가 목에 걸려서 넘어가지 않았다.
“글세, 플랫베드와 거기 실려 있던 굴삭기가 사라졌다지 뭐야, 밖에 지금 경찰이 와서 조사하고 있어.”
플랫베드 그리고 굴삭기라면 내가 두시간전에 끌고 나간 것 맞나?
나는 하마터면 혀를 씹을 뻔 했다. 그렇다면 내가 옮겨준 게 그거? 설마?
그놈이 그럼 주인이 아니라는 말인가?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도대체?
나는 포크를 내려놓고 이리저리 급하게 생각을 굴려봤다.
그놈이 나를 이용해서 훔쳐갔다면 정말 대담한 도둑놈이고 그놈이 주인이라면 다른데도 옮겨 놓고 나한테 뒤집어씌우려고 하는 것인가? 또는 보험금을 노린 고단수의 수작일수도 있다.
창밖을 보니 경찰차 한대가 불빛을 번쩍거리며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갑자기 심장이 심하게 뛰고 고기를 씹는 건지 혀를 씹는 건지 모르겠고 그 맛있던 스테이크 고기 맛이 순식간에 신발 깔창 씹는 맛으로 껄끄럽게 변해 버렸다.
나도 모르게 레스토랑 안을 조심스럽게 둘러 보았다. 다행히도 나를 주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단지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많은 트럭운전사들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트레일러를 옮겨준 (또는 훔친) 장본인이 다시 여기 레스토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있으리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했다.
1분 1초라도 빨리 여기를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