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커: 2. 한심한 놈
건장한 체격에 금발 머리가 어깨까지 길게 휘날리는 멋있게 생긴 사나이. 반듯한 코, 푸른 눈동자가 반짝이는 전형적인 서구 스타일을 가진 녀석이다.
생긴 것에 비하여 그의 매너는 맘에 들지 않았다.
어깨를 건들거리며 걷는 폼이나 뭐든지 다 안다는 건방진 말투는 나의 비위를 거슬리게 했다.
30대 젊은 나이에 트럭을 배우겠다고 온 것을 보면 분명 뭔가 문제가 있을 것으로 짐작했다.
앞으로 2주 동안을 트럭 안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트럭운전에 대해 가르쳐 주어야 한다. 제길 왠지 불안하다.
허우대는 멀쑥하게 생긴 놈인데 첫날부터 좀 심상치 않았다
회사 야드에서 출발해서 첫 번째 트럭 주유소에 들러 연료를 넣는데 카드를 넣고 주유를 하는 동안 당연히 옆에서 지켜볼 줄 알았던 녀석이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 용무가 급했거니 생각하고 그냥 연료를 채워 넣었다
그런데 연료를 다 넣고서 유리창까지 닦고 기다리는데 오지 않는 것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다.
기다리다 못해 트럭을 앞으로 조금 뺀 후에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스토어 안을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아 옆에 레스토랑에 가보았다 역시 그 녀석은 보이지 않는다. 화장실도 기웃거리고 운전사 휴게실도 둘러보고······. 없다
혹시? 번뜩 집히는 생각이 있어 구석에 있는 오락실로 향했다.
삐요 삐요 두두두두···.삐용~
“아니 저 자식이···?”
전자오락 게임기 앞에 서서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는 게 눈에 확 들어온다.
징그럽게 생긴 좀비들이 총을 맞고 머리가 산산이 부서진다.
“이봐, 헤이! 시간 없어. 우리 빨리 가야 돼”
“좀, 기다려 이제 금방 시작했으니··· 게임 끝내고 갈게”
“안 돼! 기다릴 수 없어”
그는 돌아보지도 않고. 스크린을 향해 총을 겨누고 방아쇠만 연신 당겼다.
난 너무나도 기가 막혀서 뭐라 할 말을 잃었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트럭으로 되돌아 왔다.
부글부글 속이 뒤집힌다.
아침에 먹은 커피와 도넛이 함께 뱃속에서 끓어오른다.
머리끝까지 화가 솟구친다.
'이놈의 새끼! 당장 쫓아가서 귀때기를 잡아끌고 올까 보다'
도저히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기 어려웠다.
그냥 운전해서 가버릴까, 여기 오락실에서 계속 게임이나 하라고 두고······.
몇 번 갈까 말까 시동을 걸었지만 차마 여기 아무도 모르는 곳에 떨어트리고 갈 수는 없다.
내가 트레이너이고 그는 견습생이다. 내가 데리고 온 이상 그럴 수는 없었다.
한참 만에 돌아온 그는 트럭에 올라탔는데 도무지 미안해하는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뻔뻔스럽게도 태연히 앉아 있다
손에 비닐 백 하나를 들고 왔는데 초코바 칩스 콜라등 정크 푸드만 잔뜩 들어 있었다.
나이 어린 동생 같으니까 한국사람이었다면 벌써 꿀밤 몇 대 쥐어박았을 텐데······. 속 터진다, 속 터져···
한번 미운털이 박히면 2주 내내 고생이다.
싫은 구석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모든 게 싫어진다.
그야말로 뒤통수만 봐도 싫다.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앞으로 2주 동안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는가?
현기증이 난다. 아찔하다.
잠시 후,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고 나니까 그래도 가르쳐 주기는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몇 가지 트럭안전에 관해 설명했다.
그런데 도무지 듣는 것 같지 않다.
창밖을 보고 지나가는 스포츠카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내야기는 전혀 관심 없는 듯했다.
급기야는 라디오 볼륨을 올리더니 록 음악에 맞추어 손바닥으로 드럼 치듯이 무릎을 두드리며 고개를 까딱까딱한다.
나도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다.
모두 다 알고 있어서 그러는 것 같지는 않다. 정말 관심이 없어 보인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눈앞이 캄캄해 온다.
괜히 트레이너 한다고 했다가 오늘 임자 제대로 만나서 고생깨나 하겠다 싶어 후회가 막심하고 걱정이 태산 같다.
그날 저녁, 트럭 휴게소에서 그 녀석과의 첫 번째 날을 보내기로 하고 트럭을 주차하고 나자 그는 저녁을 먹겠다고 레스토랑으로 가고 나는 트럭 안에서 햇반을 데우고 매운 참치 통조림을 까서 핫소스에 비벼 먹었다.
쿨러 안에 있는 김치 생각이 났지만 냄새난다고 싫어 할까봐 참았다.
다 먹고 나서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보니 그놈은 푸짐하게 시켜놓고 열심히 먹고 있다.
나는 커피를 시키고 마주 앉았다.
스테이크에 사이드디쉬에 디저트에 먹는 꼴도 역시 밉다.
나는 슬쩍슬쩍 그의 신상에 관해 물어봤다.
34의 나이에 결혼은 했으나 아이들은 아직 없고 엄마네 집에서 얹혀살면서 몇 년째 직업도 없이 실업수당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거 내 잘못 아냐, 내가 사장하고 한판 붙었기 때문에 불법으로 해고 당한 거야”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꺼내 본인을 정당화시킨다.
아내가 벌어 오는 돈으로 겨우 생활하다가 아내가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겨우 트럭운전 학원에 다녔다.
그러면서도 트럭을 운전하면서 세계와 대륙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 멋있고 신날 거 같아서 시작했단다. 한심하다.
다음 날 아침, 운전을 시켰다.
첫 기어를 넣는 순간부터 나는 머리털이 곤두섰고 바로 후회했다.
끼리릭` 끄르륵 큭 덜컹
기어를 사정없이 갉아먹는 소리를 내더니 쿨렁 쿨렁거리다가 한참 만에 겨우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뒤로 출렁출렁 트럭이 요동을 친다.
“사이드미러를 봐봐! 트레일러 옆 차 조심하고! 2단 올리고! 2단 2단······. 클러치! 클러치! 더블클러치를 밟아야지!”
내가 앞뒤 전후좌우 살피기 바빴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오는 것이 느껴진다.
끼릭끼릭, 출렁출렁, 몇 번 만에야 겨우 하이웨이에 들어섰다.
8단 9단 10단에 가서야 트럭이 좀 안정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속도로 안정되게 달리기 시작하자 갑자기 소리를 냅다 질렀다.
“록앤롤! 렛스 두 트럭킹! (Rock n roll! Let’s do trucking!)”
동시에 주먹을 쥐고 앞으로 쭉 내뻗는다. 제가 무슨 슈퍼맨이나 된 것처럼.
이런 걸 보고 하는 말이 있다.
‘지랄 육갑하네.’
입안에서 우물우물했다 소리만 안 났을 뿐이다. 한국말을 모르겠지만 차마 내뱉을 수가 없었다.
이제 더 큰 걱정이 있다. 이놈 이제 어떻게 트럭을 세우나?
업쉬프팅이 이 정도면 다운쉬프팅은 더욱더 걱정되는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앞에 승용차가 조금만 얼쩡거리면 사정없이 욕을 해대는 것이었다.
욕지거리를 듣고 있노라면 머리에 쥐가 오른다. 한심한 놈 같으니라고, 자기 운전 못 하는 것은 생각 안 하고 남만 욕한다. 그 비열함은 내 속을 다 뒤집어 놓는다.
드디어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가야 할 출구, 나는 미리 신호를 주게 하고 멀찌감치부터 다운쉬프팅을 주문했다.
“브레이크!, 브레이크!, 기어 빼고 9단으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아야지! 안 돼 늦었어. 다시! 다시! 다시 브레이크!, 액셀 밟고 8단 7단으로 해봐 ···”
겨우 무사히 램프를 빠져나왔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다음에서였다.
약간 경사가 있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해야 하는데 대형 회전(wide turn)을 한답시고 왕창 앞으로 갔다가 갑자기 꺾는 바람에 트럭과 트레일러가 거의 90도 각도로 꺾이고 트럭은 앞으로 가지 못하고 엔진이 쿨럭 쿨럭 푸드덕하더니 시동이 꺼졌다.
다시 시동을 걸고 출발하지만 역시 트럭은 출렁출렁할 뿐 움직이지 않는다.
그 사이에 신호등은 빨간불로 바뀌어 버리고···트럭은 삼거리 한가운데에 서 있어서 모든 방향의 차들이 지나가지 못하고 주욱 서 있다.
나는 오가는 차들을 무시하고 다시 천천히 하라고 주문했다.
이번에는 더 심하게 트럭이 요동을 치고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얼마나 크게 요동을 치는지 내 몸이 마치 트램펄린을 하듯이 의자에서 튀어 올랐다.
그동안 신호는 또 한 번 바뀌었다. 성급한 승용차들은 경적을 울리며 옆으로 돌아서 빠져나간다. 이때 뒤에서 픽업이 한 대 오더니 바로 앞에서 멈춰 서고는 두 젊은 사나이들이 나와 트럭 쪽으로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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