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DE NAME DEER HUNTER 1.위스콘신 주
1. 위스콘신 주
위스콘신 주는 북부의 숲과 슈피리어호수와 미시간 호수사이에 숨겨진 계곡과 완만하게 펼쳐진 전원 지대에 이르기까지, 사계절 내내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주다. 특히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 숲과 겨울에 이루는 멋진 설경은 자연과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위스콘신 주의 I-94 하이웨이를 운전하다보면 발효시키는 냄새가 향긋하게 후각을 자극한다. 지나는 마을마다 색다른 치즈가 숙성되고 있는 묘한 냄새는 미식가들의 입맛을 돋군다. 오죽하면 밀워키의 프로야구단 이름이 브루어스일까?
밀워키 브루어스, 술 만드는 야구선수들...
결국 치맥에 버틸 수 없이 항복하고 만다. 마침내 치즈 팩토리 가게 앞에 트럭을 세우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치맥’이란 ‘치즈와 맥주’의 조합을 말한다. 무엇보다도 치즈와 맥주, 환상적인 궁합은 맛과 여유의 풍미를 더해 준다.
이런 위스콘신 주에 유명한 것이 또 하나 있다.
사슴, 바로 사슴이다.
이 위스콘신 주에는 유달리 사슴이 많다. 정말 엄청나게 사슴이 많다.
***
위스콘신 주에는 높은 산이나 깊은 계곡이 없다.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언덕 같고, 또 야산이라고 하기에는 숲이 우거져 마치 깊은 산속 같아 보이고 ······.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나무가 많고 수풀이 우거진 야산이라고 하면 적당하다. 이런 야산이라고 우습게 보았다가는 숲속에서 길을 잃을 만큼 빽빽하게 우거진 숲의 정글이다.
그래서 그런지 위스콘신 주에는 정말로 사슴이 많다. 운전 중에 길가에 나와 풀을 뜯는 사슴을 목격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숲이 아니고 초원이었다면 훨씬 더 많은 사슴무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사슴이 서식하기에 딱 알맞은 조건, 즉 숲이 많고 나지막한 산, 그리고 사슴들이 좋아하는 풀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천혜적인 자연조건 탓이기도하였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지난 수 년 동안 자연보호법에 의하여 사슴 사냥을 금지 시켜온 주정부의 결정 때문이었다. 물론 환경보호주의자들이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했었다.
그동안 위스콘신 주의 주민들이 몇 년 동안 내려졌던 사냥금지 조치에 항의를 하며 사슴사냥을 허가 해 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주민들이 주장하는 바는 사슴들이 너무 많아 농산물에 피해가 막대할 뿐만 아니라 도로 교통사고의 원인이 되고, 사냥을 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요청한 것이다.
주민들의 계속적인 요구에 못 이겨 올해 주정부에서 특별히 사냥 허가를 내 주었다.
사실은 사냥꾼들의 사슴사냥이 목적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드디어 사슴 사냥이 시작되었다.
***
북아메리카는 어느 지역을 가도 숲이 있는 곳에는 사슴이 많다.
사냥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사슴을 여러마리 잡은 관록이 있다.
물론 사냥으로 잡은 것이 아니고 트럭으로 잡았지만······.
로드킬, 로드킬은 결코 기분 좋은 사건이 아니었다.
깜깜한 밤중에 시속 100킬로로 하염없이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코앞에 나타난 사슴은 내가 어떻게 생각 할 순간도 없이 순식간에 쾅! 치고 지나가버렸다. 40톤에 이르는 대형트럭에 치이면 즉사한다.
다람쥐나 토끼등 설치류의 작은 동물들은 트럭에 닿지 않고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바람에 휘말려 수십바퀴 굴러 중상을 입는다.
10여년 동안 북아메리카를 횡단하는 트럭운전사로 일하면서 사슴 몇 마리만 잡았겠는가?
다람쥐, 락쿤, 스컹크, 고양이, 거북이, 때로는 하늘을 나는 새도 트럭에 부딪혀 죽는다.
황소보다 더 큰 무스도 두 번이나 치고 넘어갔다. 벌, 나비, 잠자리도 트럭에 부딪혀 죽는다.
이런 일도 있었다. 하이웨이를 달리고 있는데 열어놓은 창문으로 큼지막한 호박벌이 날아들어와 가슴에 툭 치고 가랑이 사이로 떨어졌다. 얼떨결에 엉거주춤 엉덩이를 들었다 이제 그 벌은 의자 위 어딘가에 있다.
죽었을까 살았을까? 그냥 앉았다가 벌침에 쏘이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결국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요상한 자세로 버티고 서서 다음 휴게소까지 운전했다.
야간 운전 중에는 이름 모를 벌레들이 설친다. 한여름철에는 유리창에 툭 소리와 함께 파란 형광물질을 잠시 남기고 사라지는 개똥벌레등 각종 곤충들은 수십만마리를 잡게 된다.
트럭운전으로 오래 경력이 쌓이다보면 사슴 한 마리 부딪치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 사슴을 치는 것보다도 더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바로 옆에서 들려온 괴성이다. 트럭 조수석에 앉아 있던 트레이니가 기겁을 하며 내지른 끔찍한 비명소리에 소름이 돋는다.
***
나도 처음으로 사슴을 치었을 때를 기억한다. 차가 한 대도 없는 깜깜한 밤, 평지에서 갑자기 나타난 물체는 무엇인지 보기도 전에 트럭의 왼쪽 범퍼에 부딪히고 즉시 하이웨이 밖으로 튕겨져 나가 널브러졌다. 바로 사슴이었다.
무게 40톤의 대형 트랙터 트레일러이기에 사슴이 튕겨 나갔지 만약 조그만 승용차였더라면 둘 다 무사하지 못할 수 도 있는 일이다.
범퍼가 크게 찌그러지고 그곳에는 누런 황갈색의 사슴털이 삐죽삐죽 끼어 있었다.
회사에 전화를 걸어 보고할 때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I hit a deer." (내가 사슴을 치었다)라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사고처리 담당자의 말은 조금 달랐다.
"What?! You hit by a deer?" (뭐? 사슴으로부터 받혔다고?) 라고 반문하였다.
내 표현은 내가 일부러 사슴을 친 것 같고 그의 말은 사슴이 와서 부딪혔으니 어쩔 수 없는 우연한 사고가 발생한 것처럼 들렸다.
즉 ‘내 책임이 아니다. 트럭을 받은 사슴의 잘못인 것이다.’ 라는 의미가 담겨 자책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얼마나 어감이 다른가?
그 후로 나는 후자의 표현을 아주 잘 써 먹고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나는 얌전하게 운전하고 있는데 갑자기 나뭇가지가 달려들어 트럭을 긁고 지나갔다.'
‘전봇대가 사이드미러를 깨트렸다. 나는 그냥 운전만 했었다.’
'멀쩡하게 잘 가고 있는데 저 차가 내게로 와서 부딪혔다.'
‘아스팔트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서 트럭으로 전진해왔다.’
‘못이 날아와 타이어를 찔렀다.‘
'나는 분명히 똑바로 운전하고 갔는데 길은 똑바르지 못했다. 길만 반듯했다면 트럭은 구덩이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등등 아주 당당하게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은 우연처럼 다가와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발생한다.
그것은 변명을 할 수 없는 그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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