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하이웨이 12
차선이 오는 길, 가는 길, 각각 하나뿐인 좁은 하이웨이에서 나는 오른쪽 차선으로 그놈은 왼쪽 반대차선으로 나란히 질주하고 있다.
대형 트럭 두 대가 이렇게 나란히 경주하듯 질주하면 한 치의 움직임이나 찰나의 섣부른 판단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그놈도 알고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서로 추월을 하고자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어두워서 그놈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나를 비웃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놈의 얼굴이 궁금하였다.
사물함 속에 넣어 둔 카메라가 생각났다.
오른손을 뻗어 사물함을 열고 카메라를 꺼내 무릎에 올려놓았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지만,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면 놈의 얼굴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란히 옆에 나란히 달리고 있으므로 셔터만 누르면 가능한 일이다.
기회는 왔다.
약간 곧은길에서 한 손만으로 얼른 카메라를 들고 그 트럭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번쩍! 플래시가 터졌다.
동시에 '우당탕!' 끼기기기익, 트레일러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그놈이 내 쪽으로 꺾은 것이다. 요란한 소리가 나고 트럭은 좌우로 몹시 흔들렸다.
한 손에 카메라를 내려놓을 사이도 없이 핸들을 붙잡아야 했다. 들고 있던 카메라는 바닥에 떨어뜨렸다.
카메라는 데굴데굴 굴러 한쪽 구석에 처박혔다.
‘내 카메라!’
화가 치솟았다.
‘제기랄, 개새끼! 그래, 좋다. 오늘 반드시 네놈을 죽이겠다.’
눈에 핏발이 섰다. 온몸에 피가 거꾸로 치솟고 부르르 떨었다.
잠깐 주저한 사이에 놈의 트럭은 중간만큼 앞서서 달리고 있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은 발이 바닥에 닿고서도 계속 눌러 댔다.
속도계기의 바늘은 이미 150을 넘어서 바닥에 닿은 채 한일자로 누워버렸다.
놈도 지지 않고 전력으로 질주하였다.
두 대의 트럭에서 뿜어내는 요란한 엔진 소리가 세상을 흔들어 깨우듯 고막을 갈라놓았다.
북미대륙의 하이웨이에서 비가 쏟아지는 밤에 두 대의 트럭은 분노의 질주를 하고 있다.
광란의 질주이며 죽음의 질주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더 세게 악물었다.
온몸을 타고 섬뜩한 전율이 짜릿하게 흘렀다.
갑자기 어디선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름다운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리며 귓전에 파고들어 왔다.
‘오 미오 바비노 카로’
갑자기 음악이 들리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라디오는 항상 켜 있었다.
그동안 음악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온 정신을 쏟아 그놈과 싸우느라고 전혀 듣지 못하고 있었다.
‘오 미오 바비노 카로’ (O Mio Babbino Caro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는 푸치니의 오페라 ‘지안니 스키키(Gianni Schicchi)’에서 나오는 여주인공 라우레타(Lauretta)가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리누치오(Rinuccio)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애절하고 아름답고 감미로운 아리아 곡이다.
특히 신의 목소리라고 극찬하는 조수미 씨도 부른 친숙한 곡이다.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클래식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는 아내이지만 이 곡만은 잘 알고 있다.
나와 아내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였고 그러한 우리 둘의 입장을 잘 아는 친구가 결혼식 날 축가로 불러 주었기에 아내도 이 곡만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
출발하기 전날 절규하던 아내의 외침 소리가 유리창에 내리치는 빗줄기 소리와 함께 들려 왔다.
‘당신 트럭 운전하더니 변했어!’
퍼뜩 주위가 환하게 밝아지며 모든 것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 왔다.
‘아!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알지도 못하는 어떤 놈의 트럭과 죽음을 무릅쓰고 질주를 하고 있잖은가? 미쳐도 아주 단단히 미쳤구나!
잔뜩 긴장해서 웅크리고 있던 어깨가 풀리고 움켜쥐고 있던 손이 스르르 풀리면서 꽉 밟고 있던 오른발도 힘이 빠졌다.
트럭은 서서히 속력이 줄기 시작하고 그놈은 그대로 쏜살같이 앞질러 달려나갔다. 뿌연 물보라를 일으키며 어둠 속으로 멀어져 갔다.
‘가라!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
그를 쫓아가야겠다는 의욕이 희미해졌다.
아래턱에서 예리한 통증을 느꼈다. 어금니를 너무 세게 꽉 물고 있었나 보다 혀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느껴졌다.
그동안 광분해서 날뛰던 자신의 모습이 이상했다.
나에게는 건드리기만 해도 폭발할 것 같은 격한 감정이 가슴속에 억눌려 있었다. 분노라는 이름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보복운전만이 아니다. 험난한 이민생활에서 겪는 차별과 부당감부터 멀게는 학창시절부터 느꼈던 폭력에 대한 피해의식, 사회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약자에 대한 갑의 횡포, 상대적 박탈감에서 오는 빈곤과 권력에 대한 반발심, 그냥 누군가 무심하게 던진 욕 한마디까지 켜켜이 쌓였다.
얼굴에 나타나 있다.
의욕 상실로 처진 눈꼬리, 불화 자로 깊게 팬 이마의 주름살, 이기심에 새겨진 팔자주름, 내가 부린 신경질만큼이나 하얀 머리카락, 나이가 들수록 인자하고 위엄이 있는 어른이 될 줄 알았던 나는 세속에 찌들고 물욕과 허영을 쫓는 초로의 찌질한 인간으로 변했다.
분노는 어리석음으로 시작하여 후회로 끝난다.
내가 추구하는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조차 없는 부질없는 허상이었다.
지금 어둠 속의 하이웨이에서 빗속을 뚫고 추격하고 있는 저 트럭은 사실이 아닌 한편의 악몽처럼 느껴졌다.
물보라 속으로 아스라이 멀어져 가는 그놈의 트럭의 빨간 불이 춤을 추며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트럭이 춤을 추고 있다. 춤을 추는 것이 아니라 심하게 흔들리며 요동쳤다.
그놈의 트럭이 이리저리 심하게 흔들리더니 커브길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느낌이 이상했다.
천천히 다가가서 보니 커브 길은 예상외로 급하게 굽어 있었고 놈의 트럭은 길에 없었다.
어둠 속에서 숲 속으로 약 100m 정도 들어가 비스듬히 처박힌 트럭을 발견했다.
커브 길을 따라 돌지 못하고 그대로 돌진하여 언덕 아래쪽의 숲 속으로 굴러떨어진 것이다.
나는 커브를 지나서 트럭을 세우고 길로 뛰어나와 언덕 아래를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맛이 어떠냐? 이 새끼야!"
나는 신이 나서 어린이처럼 펄쩍 펄쩍 뛰었다.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하였다.
“감히 이 울프를 죽이려고 하다니! 마더퍽꺼 애소~홀!"
통쾌했다.
고함을 질렀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빗속에서 미끄러져 처박힌 트럭을 보고 신이 나서 떠들어대는 나는 누가 보아도 미친 사람이다.
‘그 운전사 놈은 죽었을까? 저 정도면 다쳐도 크게 다쳤을 텐데······.
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 정말 죽었을까? 아니면 멀쩡하게 살아서 걸어 나올지도 몰라.'
겁이 덜컥 났다.
저 트럭운전사가 만약 살아 나오면 나를 죽이려고 덤벼들 것이다.
나는 얼른 트럭으로 돌아왔다.
그냥 그대로 운전해서 달렸다.
그 현장에서 가능한 한 빠르게 그리고 멀리 도망가고 싶은 일념에 정신없이 달렸다.
어느덧 동녘이 밝아 오기 시작하였고 빗줄기도 그쳤다.
멀어질수록 사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그냥 꿈이었다고 믿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나쁜 자식 같으니라고 진짜 연료를 훔치려고 했던 놈이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여기까지 쫓아와서 보복을 할 이유는 없었다.
그저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시비에 서로 물어뜯는 비극을 자초하다니 정말 어리석었다.
그놈이 사고가 났지만 내가 사고 났을 수도 있었고 또는 두 사람 모두 낭떠러지에 떨어져 뒤집혔을 수도 있었다.
그 트럭은 어떻게 되었을까? 돌아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운전하고 있으면서도 결정을 하지 못한 채 망설였다.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돌아가서 현장을 확인하거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갈까 말까?
고민하면서 운전하고 있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경찰차 한 대가 불빛을 번쩍이며 빠르게 반대방향으로 지나쳐 갔다.
그 트럭의 사고 현장에 달려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잠시 후에는 앰뷸런스가 달려가고 바로 뒤에는 소방 트럭이 번쩍이며 따라가고 있다.
모두 틀림없이 사고현장에 가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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