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커: 20. 놈 아닌 놈 6 (놈놈놈 끝)
2008년 11월,
겨울이 다가오는 찬바람 부는 날이다.
트럭드라이버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눈 폭풍이 휘몰아쳐도 우리는 고속도로를 달린다.
이른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차가워진 빵조각을 씹으며 식어버린 커피로 졸음을 쫓아가며 운전대를 잡고 있다.
넓고 광활한 북미대륙이 우리의 일터이고 변화무쌍한 대륙성 악천후가 바로 우리가 일하는 현장이다.
트럭드라이버들의 이직률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 회사도 1년 동안의 이직률이 100%가 넘는다.
운전사가 100명이면 1년에 100명이 그만두거나 다른 곳으로 간다는 말이다.
물론 100명 모두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고정멤버 4~50명은 그대로 있어도 나머지가 새로 들어오고 또 그만두고 하는 상황이 되풀이된다.
조그만 말다툼 하나에도 쉽게 그만두고 다른 회사로 옮겼다가 후에 다시 돌아오는 운전사도 허다하다.
새로 시작하는 트럭드라이버들은 불규칙한 생활과 험한 대우 기대에 못 미치는 수입 때문에 쉽게 그만둔다.
신규드라이버의 90%가 1년 이내에 그만둔다는 통계가 그 사실을 입증해준다.
얼마 전부터 티나도 보이지 않았다.
오래 근무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약간은 의외였다.
어쩐지 섭섭한 기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녀가 트럭운전을 그만두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우가 좀 좋은 회사로 옮겼거나 아니면 딸과 좀 더 많은 시간을 갖기 위하여 집에 자주 갈 수 있는 회사로 갔을 거로 생각한다.
지금 운전석에 앉아있는 신규 운전자는 유고슬라비아에서 온 젊은 총각이다.
역시 돈이 충분하지 않은 지 며칠째 식빵에다가 버터만 발라 먹고 있다.
운전 실력마저 형편없어서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정지하는 등 나를 바짝 긴장하게 하곤 했다. 심한 소리를 좀 했더니 기가 죽었는지 내 눈치만 보면서 옆에 말없이 앉아 있다.
어디에서 왔든지 이 대륙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이 험한 트럭운전을 하는데 모두 잘 되었으면 좋겠다.
트럭휴게소 위의 하늘은 검은 구름이 낮게 깔려 곧 눈이라도 한바탕 쏟아질 듯했다.
“자, 샤워나 하러 가자.”
초보 운전사를 데리고 트럭 휴게소를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어떤 굵직한 사내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헤헤헤 안녕? 울프!”
“어어, 허버트, 허버트! 이렇게 우연히 만나다니 반갑다. 정말로 반가워.”
바로 그놈 바보 같은 놈, 냄새 지독한 놈, 포기했던 놈, 아니 나를 위기에서 구출해 준 정의의 사나이 허버트였다.
“잘 있었니? 울프 여전히 트레이니하고 다니는구나!”
“응 나야 항상 그렇지 뭐, 어때 재미 좋아?”
“좋아, 좋아!”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 아주 좋아 보였다.
제법 잘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여기는 웬일이냐?”
“응 기름 넣으러 들렸지!”
“아들은 잘 있니? 많이 컸지?”
“그럼, 그럼! 한 달에 두 번씩 만나고 있어.”
“좋겠다.”
허버트는 뒤를 볼아 보며 누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또 한 사람이 우리 쪽으로 걸어 왔다.
“엉??”
나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티나? 티나?”
바로 그녀였다. 북미의 터프한 여자 트럭운전사 마더 트럭커 티나.
“안녕, 티나! 북아메리카의 마더 트럭커! 정말 인연이다. 여기에서 이렇게 모두 만나다니?”
내가 반가워서 소리쳤다.
“울프, 만나서 반갑다.”
티나는 나와 인사를 나누고 허버트 옆에 섰다.
허버트가 그의 굵직한 팔을 들어 티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의아하다는 듯이 그 둘을 번갈아 바라봤다.
허버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몰랐지? 우리 둘이 팀으로 일하고 있는 거.”
“어? 그래 그러면 혹시 둘이···”
동시에 티나와 허버트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내가 고개를 끄떡였다.
“아하! 그렇게 된 거구나. 그럼 그때 파일럿 트럭휴게소 사건 후로···”
“그냥 서로 연락하다가 함께 한지는 여러 달 됐지.”
“와우 그렇게 되었다. 이거지? 잘됐다! 잘됐어! 축하한다.”
“고마워, 울프! 점심이라도 함께 하고픈 데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그냥 가야겠다. 다음으로 미루자.”
“그래, 또 만날 때가 있겠지.”
“그럼, 안녕!”
“그래, 안녕! 언제나 안전 운전하고.”
둘이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헤어짐을 아쉬워하면서도 흐뭇했다.
‘둘이 정말 잘 어울린다. 최고의 트럭커 커플이다.’
둘이 걸어가면서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허니 샤워해야지?
“또?”
“허버트 너 죽을래?”
“알았어. 알았어. 할게.”
“너, 금방 나오면 혼난다. 깨끗이 싹싹 씻고 나와.”
“오케이. 오케이.”
내 입가에 의미 있는 미소가 번졌다.
‘후후후 허버트 너, 티나한테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샤워 자주 해야 할 거다. 나는 그 이유를 잘 알거든.’
굵직한 놈,
아니 바보 같은 놈,
아니 정의로운 놈,
아니 부러운 놈 허버트!
하얀 눈이 소복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올겨울에는 포근한 겨울이 될 거야!
트럭드라이버들에게 따뜻한 겨울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새 운전사 교육이 끝나면 다음 운행에는 아내와 함께하고 싶다.
아내를 옆에 태우고 북아메리카 대륙횡단을 하자.
보스턴에서 시애틀까지, 엘에이에서 시카고까지, 마이애미에서 밴쿠버까지 한번 신나게 달리고 싶다.
위층침대는 접어 두고 아래 침대 하나만 달고서.
정말 좋은 겨울이 될 거야!
트럭커: 놈놈놈 끝
트럭드라이버 울프의 모험은 계속 됩니다.
- 작가의말
‘바보같은 놈’을 즐감하셨나요?
북아메리카의 트럭운전사 울프의 모험
‘트럭 트라이버 투’가 연재로 곧 이어집니다.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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