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 연대기 (윙클리드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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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魔井)
작품등록일 :
2016.06.20 01:12
최근연재일 :
2016.12.0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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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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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의뢰 1

DUMMY

의뢰지는 본부가 있는 별과 아주 가까운 행성이었다.


일반 여객선으로 일주일이면 도착하고 워프 기능이 있는 여객선으로는 반나절이면 오는 거리였다. 첫 의뢰라 크게 위험한 일은 아니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귀먹은 노파를 대상으로 하는 일은 매우 까다로운 작업이 될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거기 편지에 적힌 그대로야. 우리 집에 괴물이 산다구.”



맞은편에 앉은 할머니는 발음도 나쁜데다, 치아마저 듬성듬성 빠져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다.


달그락. 꼴깍.

약간 식은 차를 들어 마신 할머니는 흰머리 때문에 실제보다 더 늙어 보였다.



“요즘엔 되는 일이 없다니깐. 어젠 도둑 까마귀가 창가에 둔 틀니를 물고 갔지. ···컵에 담아 뒀는데, 컵은 발로 차고 틀니만 쏙하고 집어갔어. ···망할 놈의 까마귀, 지난번엔 내 사탕을 훔쳐갔었지. 포장도 안 뜯은 새 거 였는데.”



차를 마시니 힘이 난 모양이었다.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며 신세 한탄을 시작 하는 게 영 불길했다. 한번 말을 하면 기본 2시간은 넘겼던 어머니의 친구 분과 같았다!


내가 살려면 마음속에 자라는 인내심의 성장을 막아야만 했다. 예의는 까마귀에게 주라지.



“괴물이 까마귀는 아니죠? 괴물은 집 안에 산다는 말입니까?”



“엥? 아니지. 까마귀는 괴물이 아니지···. 정원에, 나무들이 파헤쳐져 있어. 가끔씩 집안에서 큰 소리가 나고··· 가구들이 벽에 붙어 있을 때도 있었어.”



폴터가이스트인가?


하지만 벽에 가구가 붙어 있다니 성격이 조금 다른 것도 같았다.


삐그덕 삐그덕.

흔들의자가 적당한 리듬으로 움직였고, 늦은 오후의 햇살도 따듯했다.


할머니는 다시 머리를 끄덕이며 입을 오물거렸다. 실제론 말벗이 그리웠던 모양이었다.


어제 먹은 케이크가 얼마나 맛이 없었는지 이야기하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우리는 정원이 바로 보이는 집 앞 포치의 티 테이블에 있었다. 집 주위 사방으로 200m 됨직한 크기의 정원은 내가 들어올 때나 지금 봐서나 별 이상은 없어 보였다.

거기다 정원너머는 목초지와 작은 숲도 있었다.

시간이 걸릴 수도 있겠구나.


작은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티 테이블 위에 둔 녹차를 마저 마셨다. 처음엔 아주 뜨거웠는데, 그새 다 식어 한 번에 다 마실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조사해 볼 터이니 그동안 지낼 방을 안내해 주시지요. 며칠이 걸릴지 모르니까요.”



내가 일어서며 할머니의 말을 자르자 입가에 흘린 침 한 방울을 닦으면서 할머니도 일어섰다.



“아? 아, 그래. 따라오게.”



사용인들은 제 각각의 자리에서 일하는 중이고, 노부인은 심심했는지 직접 안내를 했다.


집은 다락방을 포함해 방이 20개가 넘는 저택이었다.

3층 규모의 저택은 오래 전에 지은 뒤 한동안 보수를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쓸고 닦았어도 칠이 벗겨지거나 녹슨 못이 보였다.


현관 계단의 먼지가 낀 구석 틈에 잡초 싹이 조금 보였다. 실내에 들어서자 좀이 슬어 구멍이 숭숭숭 난 카펫이 보였다.


집에도 수명이 있다면 사신이 와도 이상하지 않은 곳, 군데군데 낡은 곳이 어찌 보면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복도는 사람의 무게가 실릴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살짝 색 바랜 벽지위로 벽지보다 오래된 초상화와 풍경화가 군데군데 걸려있었다.


역시 끼이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계단을 따라 올라갔다. 2층 오른 쪽 복도는 손님용이 늘어 서 있었고, 난 가장 바깥방을 안내받았다.


조용한 게 지금은 나 외엔 묵고 가는 손님이 없는 모양이었다.



“한 시간 뒤가 식사 시간이니 시간 맞춰 내려 오게나.”



할머니가 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 바로 창문부터 열었다.

먼지는 없었지만 오랫동안 비어 있었는지 약한 곰팡내가 폴폴 거렸다. 풀 냄새가 섞인 신선한 바람이 들어왔다.


하지만 아직 방안의 공지는 무거웠다.

곰팡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방을 풀면서 천천히 생각하니 집안 공기전체가 무거운 것 같기도 했다.


아니, 이 행성은 중력자체가 다른 곳보다 무거운 편이었다.


시골에 있는 저택이라 넓게 펼쳐진 정원너머 녹색의 초원이 보였다. 초원 위에는 하얗고 검은 무늬를 가진 소들이 굼실거리고 있었다.

불어 들어오는 공기 중에 희미하게 소똥냄새가 섞여 있었다.


저녁식사 시간까지는 시간이 있었다.


그 동안 다시 저택과 주변을 둘러봤지만 큰 이상은 없었다. 이상한 점이라곤 할머니의 말대로 정원 뒤쪽의 큰 나무 두세 그루가 뿌리 채 뽑혀 넘어진 정도였다.


밖에서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다 사용인의 안내를 받아 간 식당에는 할머니의 가족들이 먼저 와 있었다.



“당신이 샤먼인가? 그래, 당신이 보기에는 저주받은 집 같소?”



눈매와 광대뼈가 의뢰한 할머니를 닮아 아들로 보이는 사람이 시비조로 물었다. 의뢰인이 말한 도시에서 사업에 실패해 왔다던 아들인 모양이었다.

아들이지만 눈도 입도 삐뚤어진 보리스라고 했었지.


연배가 한참 되어 보이는 그에게 나는 간단히 눈인사를 한 뒤 말했다.



“아직까지는 단정 지을 수 없군요. 정원이 워낙 넓어 다 보지 못한데다 저택내부도 확인 못한 부분이 있거든요.”



“훗. 사기꾼이지 뭐. 저러고도 돈은 받겠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며느리로 보이는 여자가 소곤거리는 척하며 모두가 들릴 정도의 음

성으로 말했다.



“시골에 늙은 노친 네라 뜯어 먹을게 있나 싶어 왔겠지. 뭐, 풀이나 뜯고 가게 냅뚜지. 크크”



아들이 부인에게 대꾸를 했다.


진한 화장을 한 부인이 부채를 과장되게 흔들어댔다. 옆에서 큰 목소리로 말하는 아들도 행동거지가 가진 것 없는 자의 허세였다.


개뼈다귀가 닭뼈다귀 만난다더니 둘이 천생연분이 맞구나.


난 귀가 나빠 제대로 듣지 못한 할머니를 본받아 무시해 버렸다.

상대라는 것도 급이 같아야 하는 법이다. 내가 그네들을 무시해버리자 그 부부도 조용해지며 식사를 했다.


태양이 땅 아래로 사라지고 완전한 밤이 됐다.


사악한 기운은 밤에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 양기로 가득한 인간과는 달리 음기에서 생겨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저택 내부와 주변은 전기불로 매우 밝았다.


하지만 아무리 밝은 전등이라도 강렬한 생명력을 내뿜으며, 때로는 파괴적이기도 한 태양 빛을 따라 갈 순 없다.


일이나 시작해 볼까?


방으로 돌아온 뒤 가방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먼저 반지 알을 깨끗이 닦았다.


호펠학교 졸업반지와 쌍으로 끼는 테가 두껍고 알이 큰 반지는 언제나 요긴했다. 거기다 루비 원석들이 달린 팔찌 한 개를 팔에 두르고 역시 원석이 달린 남자용 브로치를 한 뒤 의자에 앉아 기다렸다.


내가 생각해도 참 주렁주렁 하군. 다음에는 커프스와 넥타이핀, 반지로 해결하도록 해야지.


만약을 대비해 문을 조금 열어 놓았다.

악마라면 특유의 기운이 느껴질 것이고, 대부분의 악마는 정해놓은 희생자를 괴롭히는 법이다.


하지만 의뢰인의 말을 들어보면 꼭 그런 것만 같진 않았다. 정말 해로운 존재가 있다면 움직임이 요란할 가능성이 있었다.


집안사람들이 두런두런 움직이는 소리가 점점 사라져 갔다.

삐걱거리는 복도의 소리도 사라졌다. 불도 하나 둘 꺼졌다.


시골의 밤은 빨리 오는 법이고, 이 집 사람들은 일찍 자는 편이었다.

마지막으로 점검하던 집사가 눈치를 줘서 방안의 불은 끄고 대신 스탠드를 켜 놓기로 했다.


데에엥.

괘종시계가 자정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사가닥.

종이 같은 얇은 물체가 벽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벽지나 회반죽 따위가 또 땅으로 이사 간 모양이었다.


두다다당. 둥둥둥.

천장에서 쥐들이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익. 끼기기긱.

잠시 뒤 다른 소리가 났다.


우당탕 거리는 곳 근방의 나무계단을 밟거나 뭔가 끌리는 소리였다. 소리가 낮고 묵직한 것이 누군가 불침번을 서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어둠에서 활동하는 동물이 집안에 들어온 것일 수도 있었다.


쓰가닥 쓰가닥.


쥐는 구석에 숨었는지, 이번엔 찍찍이는 소리 대신 귀뚜라미 같은 곤충이 내는 소음이 들려왔다. 날개나 다리를 비비는 듯한, 희미하지만 묘하게 신경 쓰이는 소리였다.


슬슬 일어나 볼까?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낭패다! 많이 피곤했었나?

그나저나 이 행성의 중력은 상당히 무겁구나.


쓰가닥 쓰가닥.

찜찜하고 신경 쓰이는 소리였다.


끼이기기기. 끼이익. 끼이기기기. 끼이익.

다시 마찰음이 들려왔다.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아, 저 소리가 수면을 유도하는 구나!

꿈의 여왕이 단호하게 명령했다. 잠들 거라!


결국 명령에 져버린 난 늙은 하녀의 비명소리에 깨어났다.



“아∼∼∼악!"



집주인 할머니가 시집올 때 데려왔다는 늙은 하녀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소프라노 가수 같은 고음으로 뱃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목소리로 독창을 시작했다.


작가의말

 중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말씀 하셨죠. 열심히 안하면 개뼈다귀 같은 남자가 닭뼈다귀 같은 여자 만난다고.


 오늘도 용뼈다귀가 되고 싶은 작가는 노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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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경매와 왕녀의 피 2 16.07.20 249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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