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 연대기 (윙클리드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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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魔井)
작품등록일 :
2016.06.20 01:12
최근연재일 :
2016.12.0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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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02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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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통제 구역 3

DUMMY

우리의 표정을 무시한 채 카난은 안쪽에서부터 힘들게 걸어 나오는 사용인을 봤다. 제법 나이든 남자로 무릎 관절이 안 좋아 보였다.



“오랜만입니다. 막내 도련님.”



“···다섯 달 만인가? 집사, 올해 몇이었죠?”



“66살입니다만.”



온 몸을 때리는 충격과 공포!


카난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나, 올랜드, 산드라 모두 같은 심정이었다. 집사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30살은 더 들어 보였다!



“주인님은 품종개량과 관련된 일로 출타중이라 계시지 않습니다. 마님은 얼마 전 감기에 걸린 뒤로 방에 계십니다. 식사도 방에서 하십니다.”



카난의 아버지는 화훼 연구가였지. 얼굴색이 노래졌다 흙빛이 된 카난은 집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계단을 뛰어올라 어머니의 방(아마도)으로 달려갔고 우리는 뒤에 남겨졌다.


생판 처음 오는 남의 집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는가. 그냥 얌전하게 바닥에 깔린 단순한 디자인의 카펫과 벽의 추상화나 감상하는 수 밖에.

홀은 검소하면서도 품위 있어 보였다. 어쩔 줄 몰라 구경만하는 우리에게 집사가 관심을 가져줬다.



“도련님의 친구 분들이십니까?”



“···아, 네. 학교 친군데요.”



“이쪽으로 오시지요.”



친절한 집사는 버려진 우리를 큰 응접실로 안내했다.

벽에는 광산에서 캐낸 모양 그대로의 사파이어 몇 개가 장식되어 있었다. 아, 바니아 왕국의 주요 생산물 중 하나로 여기도 예전에 작은 사파이어 광산이 있었지.


옛 왕조풍의 푹신한 쇼파에 앉아 응접실 창 너머를 봤다.

역시 시들한 나무들이 가득한 게 그나마 남은 우리 힘을 모조리 빼 갈 것 같았다. 멀리 보이는 온실 속은 관리하는 자가 없는지 상태가 더 심해 말라 죽은 식물도 있었다.


그 때문일 것이다.

잠시 뒤 간단한 음료와 과자가 나왔지만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다. 마을의 어색한 분위기가 우리 식욕마저 꺾어 버렸다.


불안한 기분을 떨치려고 잡담만 하다가 그마저도 멈출 때 쯤 카난이 나타났다.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하고서.



“설마 어머니도?”



“응. 마을 전체가···.”



안절부절 못하던 우리가 묻자 대답을 하던 카난이 결국 눈물을 흘렸다. 그가 오기 전 이미 집사에게 들었다. 일주일 전부터 마을에서 일어난 이상한 일들을.


그린그랑 유행병의 시작은 소문과 달리 시내중심지가 아니라 그린브룩에서 시작됐다.

어느 순간부터 동물들의 움직임이 둔해지더니 하나씩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무기력증과 함께 힘이 빠지면서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늙어 가기 시작했다는···.



“혹여 모르니 지금이라도 병원으로 가십시오. 검사 후 괜찮으면 이 도시에서 나갈 수 있습니다.”



불안한 표정으로 집사는 그렇게 말했었다.



“어머니가 편찮으신 데 어쩌니? 오늘 하루자고 갈래?”



손수건을 건네주며 위로해 주던 산드라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 말에 카난이 동요하자 올랜드가 재빨리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이 시간이면 상점도 다 닫을 테니.”



저 바보들. 이게 전염병증상인데 우린 어쩌라고?

너희는 연장자 아니, 이 곳 토박이의 말을 허투루 듣냐? 갑자기 어깨 쪽으로 으슬으슬 거리는 감각이 스며들었다. 단순한 한기나 감기 기운이 아닌 강렬하고 어두운 어떤 느낌이었다.


언젠가 경험했던 것 같은데, 정확한 기억이 안 났다.


하지만 반박해봐야 소용없어 보였다. 분위기 상 이미 묵고 가는 건 사실이 돼 버렸으니. 거기다 이미 그린브룩에 들어온 이상 밖으로 나가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었다.

집사의 말과 달리 우리는 예비 좀비 같은 잠복기의 감염자가 됐을 테니까.



“오늘, 아무도 잠들지 마.”



저녁 식사시간, 분명 맛있는 것들인데 왠지 맛없어 보이는 음식이 가득한 식탁에서 난 친구들에게 말했다.


찜찜한 느낌이 맞다면··· 밤을 새고 나면 정말로 마을을 벗어날 수가 없을 테니까요. 집사가 눈으로 말한 뒷말을 연상하며 난 조용히 친구들을 봤다.


대답이나 반발도 없이 잠시 나를 쳐다보던 친구들도 물끄러미 음식을 보고만 있었다. 마을의 상태를 안 뒤 충격으로 생기가 사라진 카난과 친구들의 침묵.

그 것은 무기력의 전조이고 절망이며 공포였다.


양쪽 발을 타고 피부 밑에서 스멀거리는 감각이 올라왔다. 그 느낌은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졌다. 마치 벌레가 온 몸을 꿈틀거리며 기는 것 같았다. 불편한 기분이 점점 강해져 난 그 감각을 떨쳐내기 위해 차가운 물을 마셨다.


그리고 후회했다.


목구멍으로 물이 넘어가는 순간 속에서부터 뒤틀리는 느낌이 올라왔다. 점차 강해지는 힘에 나는 균형을 잃었고 물 컵을 떨어트렸다.


퍽. 챙그랑.

내가 의자에서 떨어지고 컵이 깨진 것은 동시에 일어났다.


아, 기억났다. 핀시아 때랑 같다! 어떤 ‘존재’가 개입됐다. 남아있던 물이 손에 튀면서 무언가가 불빛에 반짝였다.


-----------------


어둡고 좁았다. 비탈이 심하고 미끄러운 바닥에 매우 추운 곳이기도 했다. 그 곳에 차갑고도 깨끗한 물이 쉼 없이 흘렀다.


졸졸졸.

입자 고운 진흙이 쌓이고 단단한 돌바닥이 있는 수로는 길 없는 미로였다. 오랜 세월동안 물길이 만든 개울은 때로는 넓고 때로는 좁게, 여기저기 갈라졌다가 합쳐지기를 반복했다.


쉼 없이 흐르는 물은 어둠속에서 크고 작은 폭포와 웅덩이와 호수도 만들었다.


물길의 일부는 계속해서 지하로 흘러 비밀의 방과 도로를 연결해 도시를 만들었다. 또 다른 일부는 지상으로 빠져나왔다.

햇빛 속의 물은 산골짝의 샘물과 개울이 되었다. 산에서 내려와 마을로 오는 개울도 있었다.

일부 물줄기는 정원 있는 집들을 지나 녹색 언덕과 키 작은 풀이 만발한 곳을 돌고 돌아 마을을 빠져나갔다.


산 아래에서 계속 흐르는 지하수는 마을 밑 깊은 곳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 일부는 마을 공동 우물로, 일부는 가정용 우물로, 또 다른 일부는 공동 취수장으로 흘렀다.

저 아래서부터 펌프를 타고 올라온 물은 수도관을 타고 각 가정의 물탱크와 수도꼭지까지 연결됐다.


그리고 그 물을 따라 흐르는 ‘것’이 있었다. 기나긴 여정을 따라서.


특별한 색은 없으나 어두운 색이었다. 향은 없지만 구린내가 났다. 형체는 없으나 존재감은 있었다. 그 것은 의식은 없지만 의지가 있는 ‘것’이었다.


‘형체를 갖고 싶어! 언제나 젊고, 아름답고, 향기롭고, 생기 있는!’


저 깊은 곳,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는 지하도시 중심지에 거대한 호수가 있었다.

부그르르.

그 가운데에서 커다란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어둡고도 강하며 사악한 의지를 지닌, 시커먼 힘을 가진 움직임이.


‘크아아∼ 아직도 모자라, 아직도! 조금 더, 좀 더 많은 생명력을! 생명을! 생기를! 나를 보고 있는 것이··· 너냐?’



-------------------



“헉!”



갑자기 통증이 몰려왔다. 벌레가 기는 감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신에 큰 구렁이가 온 몸을 죄는 느낌이 들었다. 강하게 감아쥐어 뼈마디가 부서지는 것 같이 숨쉬기도 힘든 그런 고통이 덮쳤다.



“윙클리드?”



친구들이 소리를 지르며 다가왔다. 나도 모르는 새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물과 관련되어 잠시 동안 본 거대한 그 무엇에 대해 경고 해주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찰나의 환영. 깨진 유리 조각 사이에서 몸을 일으킬 새도 없이 이번엔 눈앞이 캄캄해지며 친구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꾸불거리는 뱀들이 내 몸을 묶어댔다.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 여러 색의 반점이 있는 다양한 색과 크기의 뱀들이 꿈틀거렸다.

자세히 보니 이건 여러 마리가 아니라 아주 기다란 한 마리였다. 그런데 이게 뱀이 맞는가?


아니 그 것은 거대한 지렁였다. 마디가 있고 축축하고 미끈거리는 것을 보니, 자세히 보니 색도 갈색과 분홍색이잖은가.

그런데 지렁이한테 발이 달려 있던가? 무언가 스멀스멀 기는 느낌이 아무리 봐도 벌레의 발인데.


아, 노래기구나. 냄새고약하고 무수히 많은 발이 달린 혐오스런 벌레. 노래기치곤 색이 너무 검은데?


노래기와 닿은 부분이 뜨겁고 아픈걸 보니 독이 강한 지네인가? 그런데 정말 지네가 맞는가? 다시 보니 줄지어 있는 커다란 개미 떼 같은 데?


그렇구나. 이건 꿈이다! 지독히도 현실적인 꿈.

개미인지 뱀인지 다른 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내 사지를 잡아당기고 꼬집고 구겨댔다. 그러다 피부를 뚫고 근육사이로 들어갔다 나왔다가, 몸을 물어뜯어 구멍을 내며 움직였다.


아까까진 엄청난 고통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신경이 마비됐던지 모두 죽었던지 먹혔던지···. 먹혀?


고통에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이런 생각이 들다니 말이다.


얼굴 쪽에서 뭔가가 자꾸만 입으로 들어오려 했다. 하지만 행운인지 불행인지 내 입은 닫혀 있었다. 굳게 다문 입을 그대로 두자 그게 코로 들어오려는지 위치를 바꾸었고 난 숨을 멈추었다. 악한 기운은 숨을 타고 들어와 영혼을 침범하는 법이니까 말이다.


어차피 이건 꿈이다. 설마 질식해 죽겠는가?


작가의말

잡스런 꿈을 꾸면 몸이 피곤하더군요. 가장 최근작은 쓰나미를 피해 도망가는 꿈이었습니다. 

 외계인이 나왔던 꿈보단 나았습니다(스타워즈급의 기술에 브이급의 이야기...)


얼마전에 본 뉴스를 보니 바닷가재는 이론상 영생하는 생물이라더군요. 노화 관련 유전자의 텔로미어 복구가 가능하다는. 음... 해파리의 강력한 라이벌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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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인간과 악마, 그리고 샤먼 2 16.07.26 241 0 9쪽
16 인간과 악마, 그리고 샤먼 1 16.07.24 218 1 9쪽
15 경매와 왕녀의 피 3 16.07.22 263 0 9쪽
14 경매와 왕녀의 피 2 16.07.20 247 1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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