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 연대기 (윙클리드의 비밀)

무료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마정(魔井)
작품등록일 :
2016.06.20 01:12
최근연재일 :
2016.12.05 08:10
연재수 :
40 회
조회수 :
11,294
추천수 :
9
글자수 :
167,280

작성
16.07.24 08:10
조회
217
추천
1
글자
9쪽

인간과 악마, 그리고 샤먼 1

DUMMY


사건을 증언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자료화면 모두에는 그 샤먼만 없었다. 투명인간처럼 말이다.


연이어 우주적으로 유명인사인 다이신 후작부인이 쇼크로 실려 갔다는 소식과 만약의 일이 생기면 유산을 받을 수 있는 친척들의 명단이 주르륵 나왔다.

세상에 폰트로르 부인이 다이신 부인과 제법 가까운 친척이었어?


쓰러진 관람객이 언급됐지만, 다행히도 영상에는 내 모습이 잡히지 않았다.

집에서 뉴스를 보며 견과류를 씹으면서 탄산수도 마셨다. 가볍게 휴식을 취하니 몸은 아무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일은 병원에 가봐야지.


나름대로 정보를 요약한 후 리큐르드와 화상통화를 하려고 통신실로 갔다. 아까 아저씨도 계셨고 했으니 뭔가 알진 않으려나.

예상과는 달리 아렌가의 집사는 리큐르드가 없다는 말을 했고, 분위기가 아렌가의 사람은 집에 없는 듯했다.


약간 실망한 채로 통신실에서 나와 방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난 기절할 만큼 놀랐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내 방 안에 있었던 것이다.


허리까지 오는 백금색 머리카락과 주름 하나 없는 흰 피부, 노랗게 반짝이는 눈, 15cm는 되어 보이는 노랗고 긴 손톱들.

방 한가운데에 조각처럼 서 있던 남자가 나를 향해 미끄러지듯 걸어왔다.



“윙클리드 프란시아 발세르? 나와 함께 가야겠군.”



난 내 앞에 서있는 남자를 빤히 쳐다봤다.


인간 같지 않은 느낌, 사람이 맞는가?

기묘한 존재감이 있는 남자였다.


그의 키가 꽤 커서 난 올려다봐야 했고, 그래서인지 해라체로 말했음에도 기분 나쁜 느낌은 없었다. 그는 왕족이나 고급 귀족 같은 분위기에 현자의 위엄까지 있었다.

그 때문에 나도 모르게 남자가 하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바로 옆의 드레스 룸으로 데려갔다.


옷장 옆에는 3단 거울이 있는데 평소에는 90˚ 가까이 벌려져 있었다.

거울을 통해 보니 그 남자는 남자임에도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웬만한 여자보다 훨씬 더 예쁘다니.


대리석을 깎은 것 같은 얼굴과 황금비율의 신체, 마치 빛나는 보석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다. 한 가지 흠이라면 목 주위를 따라 검은 글씨가 빽빽이 적혀 쇠사슬처럼 보이는 것 정도?


거울의 정면까지 걸어오자 갑자기 거울이 180˚로 펼쳐졌다.



“어···?”



남자는 펼쳐진 거울을 향해 아무 망설임 없이 걸어갔다. 물론 나를 꼭 쥐고서!



“이봐요. 잠시만요!”



정신을 차리고 힘껏 저항했음에도 남자는 나를 질질 끌고갔다.


깨진다!

거울과 부딪히는 순간 난 양손을 올려 앞을 가렸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세상에! 옛날이야기도 아니고 거울을 통과하다니!


거울의 저편에 잘 꾸며진 방이 나타났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건 신비 소설에 흔히 나오는 설정과 달리 그 방이 내 방과 좌우가 바뀌거나 한 구조가 아니라, 처음 보는 방이라는 점이었다.



“윙클리드?”



갑자기 리큐르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놀라면서도 겁먹은 소리였다.

황급히 쳐다보니 찻잔을 앞에 둔 리큐르드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동시에 ‘딱’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난 이미 리큐르드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앞에는 내 몫으로 보이는 찻잔과 과자도 생겨나 있었다.

뭐야?



“바뮤. 돌아가도 좋다.”



벽난로 쪽에서 낯선, 다른 남자어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뮤라 불린 하얀 남자는 그쪽을 쏘아보면서 우리가 걸어온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도 커다란 거울이 있었다. 바뮤는 우리가 들어왔던 것처럼 그 거울 속으로 그대로 걸어들어갔다. 갑자기 머리가 저절로 움직였다.


내가 움직인 게 아니야! 그걸 생각한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나고 손끈이 살짝 떨렸다.


맞은편에는 언제 앉았는지 검은 눈과 같은 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남자가 앉아 있었다. 젊은 모습이지만 눈 속에선 나이 듦이 느껴졌다.



“너희가 왜 여기 왔는지 아느냐?”



남자가 질문했다. 어딘지 음산하면서도 무게 있는 것이 마피아 보스가 연상되는 말투였다.



“당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이건 납치예요.”



리큐르드가 입을 열었다. 불쌍하게도 호기로운 말과는 달리 목소리가 달달 떨려 나왔다.



“어른들은 가출이라 생각할걸?”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받았다. 이미 리큐르드는 자신 앞의 찻잔만 바라보고 있었다. 식어버린 차도 과자도 그대로인 걸 봐 내내 쫄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왜 끌고 왔죠? 아저씬 청소년 취향의 변태인가요?”



난 나오는 대로 말한 내 입을 저주하고 싶었다.

평상시 말조심 하라는 얘기도 간혹 들었는데. 내가 아무리 잘 생겼어도, 이 말은 위험했다.


설마 인신매매 범은 아니겠지.

남자의 눈이 나를 바라봤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눈에 내 모습이 보였다. 난 그 순간 그자의 머리가 검은색이 아니라 어디선가 본 진한 청동색이란 걸 알았다.



“난 샤먼이다. 악마를 쫓고 있지. 거기 아렌 가의 아이는 알지도 모르겠다만 악마는 많은 종류가 있지. 난 그중에서도 광물계인 보석이 전공이다. 너희를 데려온 바뮤는 다이아계열 최상위급 악마로 지금은 내 종이다.”



딱딱딱딱.

리큐르드가 다리를 달달 떨면서 바닥에 구두 굽을 부딪쳤다. 그런데 이 자가 무슨 말을 한 거야? 얘도 납치당했어? 나처럼? 거기다 샤먼? 무언가 머릿속에서 떠오르려는데 다시 그가 말을 이었다.



“오늘 아침까지 이 행성에 악마가 하나 있다가 갔지. 너희도 알 거다. 엘자 첼린샤 커런덤, 커런덤계열의 최상위급 악마이지.”



이름을 듣자마자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반박이 펼쳐졌다.



“헛소리 하지 말아요! 악마라면 해를 끼치는 족속이잖아요?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이 어떻게 악마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말 따윈 지나가는 개도 안 믿을 거예요. 엘자는, 인간이예요. 음식도 먹고, 감기도 걸리고 감정도 가지고 있던데요?”



“윙클리드···.”



리큐르드가 살짝 불렀지만 난 아랑곳 않고 계속 말했다. 내가 이렇게 말을 잘하다니 스스로 칭찬해 주고 싶었다.



“아니, 그냥 갈게요. 미친 것 같은데 말 섞을 필요도 없겠네. 야, 가자.”



호기롭게 말하면서 리큐르드를 잡고 일어나려 했다.

그런데 의자에서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아, 바뮤라는 자를 종으로 부린다고 했지.


나를 이동시킨 것으로 보면 염동력자 같기도 하고, 뭔가 속박 주술 같은 건가.

미친놈의 성격을 잘 못 건드리면 안 되는데. 이 사람 미친 사람이 맞아 보이는데, 내가 방금 큰 실수 한 것 같은데?



“이봐요, 아저씨. 지금이라도 그냥 보내주면 신고는 안 할 테니까. 좋은 말로 할 때 헤어집시다.”



편안하게 앉은 자세로 나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보는 그 남자의 눈이 차가웠다. 속에서부터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이미 등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진짜 위험한 놈 같은데. 억지로 몸을 움직였지만 허리 아래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야앗!”



발버둥을 치려했지만 결국 먼저 지쳤다.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주머니에서 무언가 굴러 나왔다.


뚜껑 닫은 타원형의 투명한 유리병.


꿈에서였지만 엘자와 이별을 한 뒤 방에서 주운 조각들을 담은 병으로 언제나 가지고 다니기로 한 것이었다. 동실. 유리병이 공중에 떴다.



“힘의 조각. ···그래서 너에게 엘자의 냄새가 났군. 투명한색의 팬시컬러사파이어라.”



서서히 떠오른 유리병이 남실거리며 남자의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런 놈에게 뺏길 순 없었다. 난 재빨리 잔을 들어 남자를 향해 던졌다.


챙그랑.

찻잔이 남자의 눈앞에서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깨졌다. 깨진 조각과 튀어나간 찻물은 미끄러지면서 바닥에 떨어졌다. 그동안 난 양팔로 테이블을 짚고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채로 엉거주춤한 자세로 유리병을 낚았다.



“으앗.”



이 와중에 허리마저 삐끗해 눈물이 찔끔 날 지경이었고 이런 행동에 그가 코웃음을 쳤다.



“어리긴.”



주술과 방어막? 저 자는 진짜 위험한 자다!

몸속에서 경고가 울렸다. 아까부터 찌그러져 있던 리큐르드가 말하려던 게 이것이구나. 이제 보니 친구도 땀범벅인 게 무언가 시도를 한 거 같았다.


남자는 자신 앞에 있던 술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모든 악마가 어둠 속에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은 악마의 본질을 가리는 도구이지. 특히 보석계열의 악마는 돌의 특성상 어떤 악마보다 외모가 뛰어나다. 너희가 본 바뮤와 엘자처럼. 보석악마의 특징 중 하나가 어디서든 빛나는 외모와 긴 손톱이다. 그들은 사람의 ‘욕심’에 의해 생겨나고, 그것은 모든 악마의 공통된 에너지이지.”



그의 말에서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몸을 함부로 움직일 수도, 그리고 중간에 말을 자를 수도 없었다. 우리의 상태를 본 그는 만족한 듯이 다시 말을 이었다.



작가의말
이 번화에서 거울이 이동통로로 나옵니다. 여러 문화권이나 이야기에서 다루어진 부분인 것 같네요. (지금 생각나는 것은 거울 나라의 앨리스?)

어린 시절 거울너머 다른 세계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지요. 특히 엄마에게 혼난 날.

정말 그런 세계가 있었다면 나는 어느 세계에 살고 있을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샤먼 연대기 (윙클리드의 비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40화 이후건에 대한 보고입니다. 17.01.08 102 0 -
공지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16.12.14 86 0 -
40 어떤 방문자 2 16.09.15 292 0 9쪽
39 어떤 방문자 1 16.09.10 249 0 10쪽
38 첫 의뢰 4 16.09.07 134 0 9쪽
37 첫 의뢰3 16.09.07 249 0 9쪽
36 첫 의뢰2 16.09.05 283 0 9쪽
35 첫 의뢰 1 16.09.02 290 0 9쪽
34 또 다른 시작, 제 2의 직업 6 16.08.30 279 0 10쪽
33 또 다른 시작, 제 2의 직업 5 16.08.29 364 0 10쪽
32 또 다른 시작, 제 2의 직업 4 16.08.25 344 0 9쪽
31 또 다른 시작, 제 2의 직업 3 16.08.24 282 0 9쪽
30 또 다른 시작, 제 2의 직업 2 16.08.20 319 0 9쪽
29 또 다른 시작, 제 2의 직업 1 16.08.19 171 0 10쪽
28 새로운 친구 4 16.08.18 191 0 10쪽
27 새로운 친구 3 16.08.14 347 0 9쪽
26 새로운 친구 2 16.08.12 287 0 10쪽
25 새로운 친구 1 16.08.09 304 1 10쪽
24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지 3 16.08.07 349 0 9쪽
23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지 2 16.08.05 420 0 9쪽
22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지 1 16.08.03 330 0 9쪽
21 통제 구역 3 16.08.02 436 0 10쪽
20 통제 구역 2 16.08.02 429 0 9쪽
19 통제 구역 1 16.07.30 283 0 9쪽
18 인간과 악마, 그리고 샤먼 3 16.07.28 376 0 9쪽
17 인간과 악마, 그리고 샤먼 2 16.07.26 241 0 9쪽
» 인간과 악마, 그리고 샤먼 1 16.07.24 218 1 9쪽
15 경매와 왕녀의 피 3 16.07.22 263 0 9쪽
14 경매와 왕녀의 피 2 16.07.20 247 1 9쪽
13 경매와 왕녀의 피 1 16.07.18 284 1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