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먼 연대기 (윙클리드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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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魔井)
작품등록일 :
2016.06.20 01:12
최근연재일 :
2016.12.05 08:1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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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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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20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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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경매와 왕녀의 피 2

DUMMY


“잊을 리가 없잖아요!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도 괜찮아요. 몰라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도 있어요. 설령 당신이 인간이 아니더라도 ···.”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마지막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몸을 무언가가 통과했다.


그 순간 처음으로 아름답다는 감정을 느낀 빛나고 아름다운 돌이 보였다. 밝은 빛 아래에서 유일하게 눈에 띄는 붉고 푸르고 보라색을 가진 돌이 빛을 냈다.

동시에 온몸의 구석구석을 짜르르한 느낌이 훑고 지나갔다. 모든 시간은 찰나이자 영원이었다. 일종의 깨달음이라 할까.

갑자기 머리가 더 맑아졌다.



“그렇군요. 지금은 제가 힘이 없군요, 엘자. 전···.”



엘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여전히 창을 향한 모습인 채.



“···아니요. 방금 당신의 ‘잠재력’이 해방됐어요.”



그리고 천천히 뒤돌더니 침대 옆에 선 나를 향해 다가왔다. 엘자가 바로 앞에 섰을 땐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윙클리드, 당신은 강한 힘을 가질 거예요. 이제야 알겠군요. 인간인 당신에게 내가 느꼈던 특별한 호기심과 희미한 감정의 원인을. ‘운명으로 맺어진 자’, 당신은 모든 것을 기억할 것이고 이젠 돌아갈 수 없어요.”



그녀의 눈 안에서 조금 전에 봤던 환영 속의 돌이 보였다가 사라졌다. 그녀의 눈은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이면서 이성적인 극지의 빙하였다.



“다시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나를 찾아오세요. 앞으로 그대에겐 많은 길이 펼쳐질 거예요. 익숙한 곳과 낯선 곳을 거쳐 내가 남긴 모든 흔적과 단서를 찾으세요.”



“어떻게 찾죠?”



이 넓은 세상에서 막연하게 흔적과 단서라니! 해방된 잠재력은 뭔지, 내가 가질 강한 힘이란 게 뭔지도 감이 안 왔다. 그녀의 눈 속에 내가 비쳤고 그 속의 내 눈에는 그녀가 비쳤다.



“윙클리드, 당신은 그럴 수 있고 그렇게 할 거예요. 우리는 결국 다시 만날 거예요.”



그녀가 말을 마침과 동시에 내 입술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따뜻하면서 부드럽고 말랑한 감촉이.

나는 그녀를 알고 있었다.

자세히는 아니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별의 나이보다 오래됐지만 누구보다 젊은 그녀를.


머릿속이 정지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는 다시 처음의 장소에 서 있었다. 엘자는 손에 든 부채의 깃털 모양장식을 모두 뽑아 흩뿌렸고, 장식은 조각이 나면서 떨어졌다.


‘이게 당신을 도와 줄 거예요.’


그녀는 내 나이 소녀들 같은 생기가 있었으며, 정말로 기뻐 보였다. 곧이어 닫힌 창문을 통과하면서 엘자가 사라졌고, 난 꿈에서 깨어났다.


쿵.

눈을 뜨니 카펫이 깔린 바닥이 사선으로 보였다. 천천히 일어서자 온몸이 욱신거렸다. 난 침대 옆에 떨어져 있었고, 바닥과 닿아있던 왼쪽 머리와 팔이 아팠다.


해가 뜬 지 오래됐는지 강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자리 잡고 있었다.


벌떡 일어나 보니 꿈에서만큼 빛이 들어오진 않았다. 아직 이른 아침이었다. 하지만 꿈이 너무나 생생했기에 난 엘자가 있던 곳까지 걸어가 봤다.


달가닥. 덜그덕.

발바닥에서 뭔가가 밟혔다. 슬리퍼를 통해서도 단단한 것의 감촉이 느껴졌다.

천천히 고개를 숙여 손으로 더듬으니 단단하고 매끈한 덩어리가 있었다. 주워들고 보니 작은 새 깃털 모양의 알록달록하고 투명한 조각이었다.


그 것들은 여기저기에 있었다. 밝은 햇살에 비춰보니 빛이 반사되는 반짝임이 유리와는 다른 물질로 보였다.


나는 깃털 모양의 조각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주워들었다. 양손 가득한 그 것들을 테이블에 올리자 소복하게 쌓였다.

이미 테이블 한 켠에는 책 한 권과 진한 커피가 반쯤 남아 있는 머그잔이 있었다. 그리고 엘자의 부채가 있었다.


부채!

꿈이지만 그녀의 모습과 목소리와 입술의 촉감이 생생했다. 새벽에 떠난다 했지만 개별연락이나 어떤 정보가 남아있을지도 몰랐다.

단서와 흔적을 찾아오라고 했으니까. 누군가 준 종이학을 담았던 병을 비운 나는 깃털알갱이들을 담고 외출을 준비했다.



호텔 워르는 언제 나와 마찬가지로, 아니 축제와 경매 탓에 평소보다 더 많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심지어 안내창구를 향해 바삐 걸어가다 누군가와 정면으로 부딪치기도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실수할 수도 있는 법이죠.”



방향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빛나는 청동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남자가 교양 있는 발음의 공통어로 말했다. 난 미안한 마음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 다음 안내창구로 갔다.


안내원은 커런덤남매가 공항 리무진을 불러 아침 일찍 체크아웃 했다고 했다. 수 시간도 전의 일이었다. 이미 방은 청소가 끝났고, 분실물에 관한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공항으로 쫓아가더라도 소득은 없어 보였다.


가슴 한가운데 바람구멍이 뚫렸다. 난 무엇 때문에 이리도 집착하는 걸까. 아침의 꿈 때문에?

아니다. 운명으로 맺어진 자? 그럴지도 모른다. 그녀의 말이 없더라도 엘자는 내가 정한 내 운명이었다.


머리에서 김이 날 만큼 생각을 하고서야 난 오늘이 보석경매가 열리는 첫날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혹시 어쩌면, 엘자가 아니라도 관련 있는 누군가가 경매장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커다란 루비를 아렌 아저씨를 통해 출품했으니.

최소한 대리인자격인 아렌 아저씨라도 만날 수 있겠지. 아저씨는 오랫동안 거래를 해 왔다니 그들에 관한 정보가 있을 테고.


난 마차형 택시를 잡아타고 메르구줌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도 경매장은 바로 입장할 수 없었다.


초청장을 받은 여러 귀빈들은 이미 입장했겠지만, 나 같은 일반인은 먼저 신분증을 보여줘야 했다. 그리고 참가장을 작성하고 번호를 받은 뒤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경매장은 박물관 한 쪽에 있는 특별기획실이었다.

총 5개의 전시실이 있는 이 구역은 제 1실이 경매장이었고, 그 외의 전시실은 모두 보안 장치와 관계자 대기실로 꾸며져 있었다.


경매장은 이미 많은 사람이 앉거나 서 있어 상당히 더웠다. 에어컨을 좀 더 세게 가동하고 나서야 공기가 쾌적해졌다. 나는 들어오면서 가져온 카탈로그를 펼쳐 들었다. 이번 경매에서 팔릴 품목들이 실린 것이었다.


상당히 두꺼운 안내책자에는 보석의 사진과 발견지나 원산지, 혹은 세공한 디자이너 등의 이름들과 함께 실려 있었다. 주먹 크기의 피죤 블러드, 여기 있다!


----------


『왕녀의 피.

녹지 비율이 높은 행성 서쟈르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나라가 있다.

원시의 거대한 숲을 아직도 간직한 그곳에는 많은 전설이 남아있다. 이번에 출품된 루비인 통칭 ‘왕녀의 피’도 전설을 가진 보석 중의 하나이다.


숲과 가까운 왕국인 제라에는 예부터 우수한 품질의 보석이 많이 나왔다.


어느 농부가 밭을 갈다 발견한 이 보석은 원래는 성인 남성 주먹 크기의 고고한 색과 품격을 지닌 하얀 오팔이었다. 하룻밤 동안 고민한 농부는 왕에게 오팔을 진상하고 밭을 빼앗겼다.

새로운 오팔이 나올지도 몰라서였고, 그 땅에선 더 이상의 보석이 나오지 않았다. 땅을 뺏긴 농부는 왕을 저주하다 잡혀 굶어 죽었다.


아름다운 색을 머금은 우유 빛 보석은 왕실의 보물이 되었다. 그리고 왕은 가장 사랑하는 다섯 번째 왕비의 생일선물로 줬다.


그러나 태생부터 죽음을 부른 오팔은 보통 보석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안 첫째 왕비가 보석을 갖고 싶은 욕심에 다섯 번째 왕비를 모함하여 죽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오팔을 가져가 황금허리띠에 매달았다.


세월이 지나 왕과 왕비가 늙자 젊은 왕녀들 간에 보석쟁탈전이 벌어졌다.

원인은 시간이 지나도 사람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오팔이었다.


결국 첫째 왕녀가 동생들을 왕성밖에 쫓아내고 보석을 가지게 됐다. 이후 오팔은 미혼의 첫째 왕녀들이 물려받게 되었고 보석을 왕녀의 수호석이라 부르게 됐다.


오팔이 발견되고도 200년이 지나 제라 왕국은 강대국인 사이젤 제국의 습격을 받게 되었다. 마침내 수도가 함락될 지경에 이르자 왕실은 피난길에 올랐으나, 유난히 행동이 느렸던 첫째 왕녀가 뒤처지게 됐다.


사이젤 제국의 장수는 숨어있던 왕녀 일행을 찾아냈고 아름다웠던 왕녀는 욕을 보이기 싫어 자결을 시도했다. 그녀는 갖고 있던 작은 단검으로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심장에서 흘러나온 피는 그대로 오팔에 닿았고 오팔은 한 명의 전사로 화했다. 전사는 적들을 모조리 죽이고 다시 사라졌으며 그 자리에는 붉게 물든 오팔만이 남아 있었다.

그 후 오팔을 ‘왕녀의 피’라 부르게 됐다.


‘왕녀의 피’는 최근 서쟈르를 방문한 커런덤 남매가 우연히 구매한 것으로 이제는 사라진 나라 제라국의 왕실 유물이다.

약간은 둔한 느낌의 커보숑 컷으로 다듬은 이 보석은 놀랄만한 크기에 전설과는 달리 처음부터 오팔이 아니었다. 이 보석은 원석에 가까운 루비로 그 이름만큼이나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의 ‘흠이 전혀 없는 피죤블러드’이다.』



작가의말

피죤 블러드... 

굳이 비둘기 피 색이 아니라도 예쁜 빨간색은 많은데... 


꽤 예전에 로마노프 왕조의 유물이 박물관에 순회 전시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본 의복과 생활용품들도 훌륭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보석이었습니다. 다이아에 사파이어에 루비에... 그외 여러 유색 보석과 준보석(다이아, 커런덤인 루비와 사파이어, 베릴중 에메랄드를 제외하면 준보석이라 부릅니다. 아, 이이야기는 앞으로 베릴도 나옵니다.)... 눈이 돌아가더군요.


 물론 디자인은 좀 고풍스러웠지만....


전생에 전 반짝이는 걸 좋아하는 까마귀였나 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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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괴담과 카니발 4 16.07.16 232 0 9쪽
11 괴담과 카니발 3 16.07.14 165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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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괴담과 카니발 1 16.07.12 15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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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라센 - 성년 파티 4 16.07.06 220 1 9쪽
6 사라센 - 성년 파티 3 16.07.05 168 1 10쪽
5 사라센 - 성년 파티 2 16.07.03 174 1 10쪽
4 사라센 - 성년 파티 1 16.07.01 190 0 9쪽
3 프롤로그 - 장례식과 손님들 3 16.06.29 215 0 9쪽
2 프롤로그 - 장례식과 손님들 2 16.06.28 323 2 9쪽
1 프롤로그 - 장례식과 손님들1 16.06.27 579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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