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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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소옥
작품등록일 :
2012.08.29 12:33
최근연재일 :
2012.08.2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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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4.29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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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구룡지로 21장 명문

DUMMY



구룡지로...



21장... 명문...



"팽가에 적을 두고 있는 이들은 모두 들으시오.

집을 떠난지 칠개월만에 돌아왔소. 현판이며 연무장이며 화원이며 대소전각들은 다 그대로인데 사람들은 없더이다. 삼십이 다 되도록 자라온 이 팽가에 내가 알던 이들은 어디에도 없더이다.

그저 부화뇌동의 씁쓸한 인심들만 나뒹굴더이다.

내 이해 못하는건 아니오. 가주가 바뀌건 말건 어차피 같은 팽가의 핏줄임에야 당사자가 아닌 그대들에게 그 것이 무에 그리 대수이겠소?

허나... 아닌 것은 아닌 것이오. 불의라고 생각되어짐을 애써 미루고 감추기만 한다면 그 불의의 의기양양함으로 인해 또 다른 불의를 불러 일으키게됨이 자명함을 어찌 모른단 말이오?

직위가 낮거나 신분이 하찮다는 핑계는 꺼내지도 마시오. 왜 세가인 것이오?

왜 팽가가 수백년 동안 하북을 대표하는 명문세가로 불리우는 것이란 말이오?

그대들은 명문이라는 허울이 곧 바로 그대들에게 덧씌워진 족쇄임을 정녕 몰랐단 말이오?

명문이 명문다운 처신과 행동을 잃었을 때 그는 더 이상 명문이라 불리울 수 없음이오.

내 비록 오늘 가문으로 돌아와 그 무너진 명문의 기상을 바로 잡고자 하였으나 이미 명문임을 포기한 하북팽가를 다시 이끌고픈 마음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소.

팽가는 오늘로 현판을 내리거니와 그대들의 누대에 걸친 봉사와 희생을 한번의 실수로 폄하 하지는 않으리다. 사업장들과 임야, 전각들을 모두 정리할 것이니 각자들의 몫을 받아 들고 떠나도록 하시오. 허나 명심할 것은 다시는 차후 강호 어디에서나 팽가의 식솔이었음을 토설하지 마시오. 행여 내 귀에 허튼 소리가 전해질 시에는 반드시 이 말의 무거움을 맛보게 하리리다."


날이 시퍼렇게 선 비수처럼 냉랭하게 가슴을 파고드는 팽호의 말이 끝나자 부복해 있던 중인들이 부끄러움과 당혹함으로 어쩔줄 몰라하며 다시금 오열을 터뜨린다.

앞줄에 부복해 있던 장로들 이하 호원, 내당, 외당등의 주축 무사들이 청석판에 머리를 찧으며 팽호의 재고를 앞다투며 요청하지만 연무장을 가득 메우는 절규 어린 참회의 눈물과 용서를 차갑게 외면하며 돌아서는 팽호를 붙잡은건 뜻밖에도 한켠에 가만히 시비의 부축을 받으며 서 있던 노구의 태태였다.

부축하던 시비의 손길을 뿌리치고 비틀거리며 팽호에게 다가온 곱게 늙어 인자하기 이를데 없는 노태태가 어렵사리 무릎을 꿇으며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소가주... 이 늙은이를 부디 용서하시오.

나이만 헛먹은 아녀자의 어리석은 소견 탓에 윗어른으로서의 할 일을 못하고야 말았소이다.

이 몸이 가문의 정통을 바로 세우려 하지 않았거늘 어찌 아랫사람인 저들이 또다른 하극상을 꿈꾸리까? 모두가 이 늙고 보잘 것 없는 늙은이가 가문의 윗사람 노릇을 소홀히 한 부덕 탓이 아니겠소? 첫째도 셋째도 다 내가 배아파 낳은 자식이라 결국은 꾸짖음이 모자랐소이다.

게다가 수백년 누대로 이어온 세가의 마지막 파국만은 어떻게든 막고 싶었다오.

부디 가족끼리의 상잔을 막지 못한 이 못난 할미를 내치고 또 욕해주시구려...

다만 복지부동한 죄가 크기는 하나 그저 윗사람들의 명을 따랐을게 대부분인 우매한 저들을 용서해 주시구려...

소가주... 이 못난 할미의 마지막 부탁이라오."


본디 이 태태는 정마대전이후에 급격히 세가 소진된 팽가를 청상과부의 몸으로 어린 삼형제들을 이끌며 부단히 노력한 끝에 다시금 지금의 당당한 하북팽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만든 철혈의 여장부로 소문났던 황보혜였던 바...

일찌기 태산에 터를 잡고 천왕보와 천왕삼권, 그리고 뇌진검법으로 유명한 황보세가의 후손으로 같은 오대세가인 현 황보세가의 가주인 황보숭의 하나뿐인 누이이기도 하다.

평생을 팽가를 위해 몸바쳤던 황보혜가 노구를 꿇으며 용서를 빌자 내내 냉랭한 신색이었던 팽호가 황망해 하며 다급히 황보혜를 일으키려 하나 이 노태태는 그저 요지부동이다.


"할머니... 왜 이러세요? 황망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솔직히 원망스럽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으나 제가 어찌 할머님의 사죄를 받다니요? 있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

저들은 이제 그냥 각자 저들의 길을 가도록 놔두세요.

저는 가문을 이렇듯 풍비박산하게끔 만든 단초를 제공한 놈들에게 죄를 물어야 합니다.

팽가를 한낱 야욕의 수단으로 휘둘릴만큼 만만히 얕보았음을 후회하게끔 쓴 맛을 안겨 주어야 합니다.

충보다는 본신의 안위가 먼저인 이들 따위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다고요.

저런 이들에게 휘둘리는 가문 따위는 더 이상 바람막이라도 필요치 않단 말입니다."


"쫘악~..." 시원하리만큼 경쾌한 소리가 울려 나오고...


팽호의 고개가 거의 직각으로 돌아갈만큼 뺨을 갈겨버린 황보혜가 혼신을 다한 여파로 중심을 잃고 허물어지자 마침 옆에서 두 노소를 지켜보던 금혜란이 다급히 신형을 날려 부축한다.

어안이 벙벙한 팽호가 금혜란의 품에 안겨 숨을 몰아 내쉬며 형형한 눈빛으로 노려보는 황보혜를 쳐다 보자 분에 겨운 목소리로 다시금 황보혜가 입을 연다.


"이놈!... 말이면 다인줄 아느냐?

고얀 놈... 가문 없이 어찌 네가 있을 수 있단 말이냐?

네 알량한 도강이 오로지 너만의 것이더냐?

아비와 할아비, 그리고 선조들의 유학의 이어짐이 아니더냐?

더구나 가문의 모욕이 어찌 네 놈 혼자만의 수치이더냐?

가문의 모욕은 가문의 힘으로 갚아야 제격인 것을...

누구나 한 번의 실수는 있는 법...

따지고 보면 그들의 농간으로 인한 피해자일 수도 있는 저들에게도 굴욕을 떨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마땅칠 않겠느냐?"


추상같은 호통이 황보혜에게서 터져 나오자 묵묵히 그녀의 말을 곱씹어 보던 팽호가 이윽고 그대로 무릎을 꿇고 금혜란에게 기대어 있는 황보혜에게 대례를 올린다.


"할머님... 우매한 소손의 편협함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드리옵니다.

하잘 것 없는 분노와 실망에 굳게 닫혀버린 마음의 문이 이제야 열리는듯 합니다.

소손... 결국은 팽가의 자식일 수 밖에요.

제가 거두겠습니다.

오욕도 영광도 다 팽가의 자식인 제 몫임을 더는 부인 않겠습니다."


팽호의 담담하면서도 견정한 말을 듣자 파리해졌던 황보혜의 노안이 홍조를 되찾고 어느덧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린다. 격정에 채 말을 잊지 못하는 황보혜를 따뜻이 보듬어 안는 금혜란의 모습을 뒤로 하고 다시 연무장 앞에 선 팽호가 심유한 눈빛으로 부복해 있는 이들을 내려보는데...

문득 멀게는 팽호의 할아버지뻘 되는 수석장로인 팽석천이 자리를 차고 일어나 입고 있던 비단장포를 벗어 한켠에 던져 버리고는 오체투지를 하며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연다.


"소가주... 지금 용서를 바라지는 않겠소이다.

또한 어떤 말로 충성을 맹세하더라도 진정이 전달될리 만무하리오.

이 늙고 보잘 것 없는 몸...

백의종군하리다. 부디 전장터의 졸로나마 써 주시구려...

팽가의 굴욕은 내게 있어 그 무엇보다 우선하는 법...

부탁하거니와 굴욕을 갚을 기회를 주시기 바라오."


팽석천의 절절한 말이 끝나자 미처 팽호가 대답하기도 전에 연무장에 부복해 있던 모든 이들이 하나같이 일어나 겉옷 상의를 벗어 던지고 오체투지를 하며 한결같이 외친다.


"소가주!... 기회를 주시오.... 부디 기회를 주시오..."


그 광경을 목도하던 팽호가 몇번이고 무어라 말하려다 다물고 만 입술이 부르르 주체할 수 없이 떨리더니 끝내는 붉어진 눈가로 굵은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곁에서 안타까이 지켜보던 제갈지, 당가려등도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 내고... 박휘의 나즉한 되뇌임이 나머지 용들에게 새겨지듯 가슴에 스며든다.


"명문... 명문세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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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구룡지로 24장 공명 +5 11.06.01 7,869 57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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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구룡지로 22장 마정 +5 11.05.12 8,361 62 6쪽
» 구룡지로 21장 명문 +6 11.04.29 8,427 6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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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구룡지로 19장 삼살 2 +6 11.04.27 8,576 61 9쪽
18 구룡지로 18장 삼살 1 +3 11.04.26 8,711 59 8쪽
17 구룡지로 17장 철갑 +3 11.04.26 9,520 59 8쪽
16 구룡지로 16장 팽가 +3 11.04.26 9,198 61 8쪽
15 구룡지로 15장 출곡 +3 11.04.25 9,319 62 5쪽
14 구룡지로 14장 태동 +4 11.04.25 9,779 6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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