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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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연소옥
작품등록일 :
2012.08.29 12:33
최근연재일 :
2012.08.2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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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0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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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지로 25장 화궁

DUMMY

구룡지로...



25장... 화궁...




청상과부의 몸으로 어린 아들 셋을 데리고 지금의 팽가로의 반석을 다진 황보혜의 거칠고 굳은 성정은 익히 강호에 널리 회자된 바 있으나 의외로 장중보옥인 하나뿐인 손녀가 그에 못지 않은 호기를 지녔음은 팽가만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나이 일곱이 되던 해 소봉이라는 이름이 너무 나약하다며 열흘을 단식하고 버틴 끝에 끝내 소용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갖기에 이를뿐 아니라 뼈마디가 굵어지자마자 한참이나 위인 사촌오빠들을 대련을 빙자해 무자비하게 패고 다닌 일화는 팽가의 식솔들에겐 너무나 유명한 일이었다.


팽가의 무공과 도법이 장대한 체구를 바탕으로한 신력에 기인하는 바가 아니었다면 이미 가문제일의 후기지수일 것이 분명할 정도로 무공에 대한 소질과 열의가 남다른 점이 있는 이 왈가닥 아가씨를 어느 누구 하나 할것 없이 사랑하고 아끼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행여나 그녀의 평판에 누가 될까 이에 관해 언급하는 것은 아예 금기시되어 왔을 정도였다.


단 셋뿐인 사촌들이었기에 그 우애마저 남달랐으니 팽호, 팽지평, 팽소용등은 친남매 이상의 정으로 서로를 아껴왔는 바...

아비인 팽만호의 반역을 용납할 수 없다며 팽가를 박차고 나와 절친한 친구인 강호삼미중의 하나인 화부용 언산산의 산서의 진주 언가에 몸을 의탁해온 팽소용에게 아비인 팽만호의 부음이 전해진 것은 일이 벌어진지 이틀 뒤인 삼월 십일이었다.


한달음에 달려와 아비의 위패 앞에서 일각 가까이 목놓아 울던 팽소용이 이윽고 도를 빼어 들고 팽호의 거처로 난입하자 마침 다가올 취임식과 별동대 삼대의 수련성과에 대해 논의하고 있던 구룡들이 분연히 그 앞을 막아선다.

팽소용이 퉁퉁 부은 눈으로 서릿발같은 냉기를 흩날리며 첨예한 예기를 높여가자 서둘러 팽호가 나서서 팔룡들에게 그녀를 소개한다.


"동생입니다. 팽소용. 삼숙부의..."


팽호의 말에 저마다 연민의 빛을 감추지 못하는 팔룡들 사이를 제치고 들어선 팽소용이 착잡한 눈빛으로 잠시 머뭇거리더니 갑자기 팽호와의 사이에 놓여져 있는 장방형의 탁자에 거세게 도를 꼽는다.


"호오라버니... 우린 원수인가요?

대답하세요!... 우린 원수인가요?..."


팽소용의 물음에 처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채 팽호가 뇌까리듯 대답한다.


"용아야... 우린...

아니 넌... 그저 천지에 오직 하나뿐인 내 동생일뿐이다."


분기에 가득차 있던 팽소용의 얼굴이 팽호의 말에 허물어지듯 일그러지며 다시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리자 어느새 다가선 팽호가 가만히 팽소용을 품에 안으며 어깨를 다독거린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구나..."


"아니야... 살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평오라버니는 비록 그리 되었어도 호오라버니만은 무사하리라 빌고 또 빌었어...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용아가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구나...

우리 가족의 불행은... 잊기는 어렵겠지만 잠시 미루자꾸나...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놈들의 목숨으로 그분들의 평안을 빌자꾸나..."


팽호의 다독거림에 팽소용의 울음이 잦아들고 안타까이 이모습을 바라보던 팔룡들에게 정식으로 팽호의 소개가 이어지자 열 일곱 소녀답지 않게 꿋꿋이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처들며 담담히 포권을 나누는 팽소용의 모습에 다들 감탄을 금칠 못한다.

어수선한 수인사가 끝나고 다시 착석한 구룡들의 회의가 이어지자 묵묵히 듣고 있던 팽소용이 별동대의 편성과 수련에 관심을 나타낸다.


이미 정마련이 실질적인 살부의 원수임을 직시하고 있던 팽소용이 별동대로의 자신의 참가의 당위성을 역설하자 험난한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을 가녀린 소녀의 투정으로 치부하던 구룡들이 결국 저마다 수긍하기에 이르고...

회의가 끝나자 마자 철궁대, 멸화대, 암혼대등을 헤집고 다니던 팽소용이 마침내 마음을 정하고 찾아간 사람은 의외로 다름 아닌 박휘였다.

떨떠름한 표정의 박휘의 앞에 선 팽소용이 딴엔 교태로운 웃음을 띄며 넌즈시 말을 건넨다.


"박대협... 저 궁 좀 가르쳐 주세요.

별호가 신궁이라면서요?

얼만큼 잘 쏘시기에 그런 별호를 감당하시나요?

진짜로 왠만한 적들은 가까이 오기도 전에 다 황천으로 보내 버리시나요?..."


아직도 채 붓기가 가시지 않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턱밑에 다가서며 조잘대는 팽소용을 어이없이 바라보던 박휘가 이윽고 정신을 차린듯 민망한 헛기침을 몇번 날리며 입을 연다.


"팽소저... 이 박모는 소저의 말씀을 감당하기 어렵소이다.

이미 일신의 무공이 상당한 걸로 아는데 굳이 궁이라니요?

궁술의 효능이야 적지 않음은 사실이나 익히기가 실로 까다롭기 그지없음은 미처 모르시지요?

설령 재능이 있다손 치더라도 만족할만한 수준의 경지에 오르기까지는 실로 지난한 시간이 소요되기도 하고요..."


"흥!... 그래서 안되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소매가 그래도 고심 끝에 부탁드리는건데 일언지하에 거절이라니?

설마 팽가의 체면은 안중에도 없으신건가요?

뭐 사실 대안이 있더라면 이런 구차한 부탁은 하지도 않았을거에요...

벽창호같은 가주오라버니 성격상 정마련과의 일전에 무작정의 동행은 꿈도 못꾸겠고...

그나마 별동대의 일원이라면 받아들일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좀스럽게 살수짓이나 비겁하게 폭약덩어리 들고 설치는건 영 내키질 않아서...

그래도 궁은 폼나잖아요... 헤헤... 신궁이라... 별호도 멋있고...

나 궁 좀 가르쳐줘요. 아직 신궁으로 불리웠던 여자는 없죠?

신궁 팽소용... 멋지다! 나 이거 할래..."


거듭된 팽소용의 속사포같은 조잘댐에 멍하니 입을 벌린채 황망함에 어쩔줄 몰라 하던 박휘가 불현듯 차가워진 눈빛으로 팽소용에게 일침을 가한다.


"팽소저... 궁술이 그리 쉬이 보이던가요?

멋있어 보이기 위해... 그나마 만만해 보이니까...

나어린 처자의 경망스러움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무에 대한 예가 너무 없질 않소?

팽가에선 그리 하여도 되는 것인지는 모르나 고려에선 그리 배우고 가르치지는 않소이다.

이 얘기는 안들은 것으로 하겠소이다."


차갑게 굳은 안색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는 박휘의 기세에 움찔 놀라며 한걸음 옆으로 물러선 팽소용이 석류마냥 붉은 입술을 꼭 깨물며 나즉히 뇌까린다.


"쳇! 노친네가 성미 하고는... 내가 좀 심하긴 했나?

흥! 그래도 그렇지... 가르쳐 주기 싫으면 그냥 말것이지.

감히 팽가를 언급해?...

좋아. 이대로 물러서면 그야말로 팽가의 여식이 아니지...

각오해! 노친네..."


서릿발같은 팽소용의 다짐이 전해졌는지 저만치 발길을 재촉하던 박휘가 불현듯 느껴지는 섬칫함에 사위를 급히 둘러본다. 이후로 장장 사흘내내 밤낮으로 어린 강아지마냥 박휘뒤를 졸졸 따르며 졸라대는 팽소용의 모습에 처음에는 신기한 구경거리를 보는듯 즐거워하던 구룡들도 그 끊일줄 모르는 집요함에 팽소용의 선택이 자기가 아니었음을 감사하기에 이르렀으니...


급기야 완강히 버티는 박휘를 핍박하는 마지막 수단으로 팽소용이 꺼내든 구룡회에 가입하겠다는... 십룡회로 명칭을 바꾸자는... 왜?... 자기도 이름이 용이니까 자격이 있지 않냐는...

터무니 없는 우기기엔 급기야 모두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야 말았으니...


미안함에 붉게 물든 얼굴로 더듬거리며 팽호가 재고의 요청을 박휘에게 전하자 난감하고 민망한 표정들의 구룡들을 일견하던 박휘가 결국 낙담한듯 한숨을 길게 내쉬며 팽소용의 청을 받아 들이며 비인부전의 원칙을 들어 사제의 연을 맺길 권하자 뜻밖에도 팽소용이 거부의 뜻을 밝힌다.


"사제지간은 무슨... 구룡들끼리는 그냥 가르치고 배웠다면서요?

나도 오호단문도 알려줄께요. 이래뵈도 강호에서도 삼대도법중에 하나니까 손해는 아닐껄요?

게다가 남녀가 매일 붙어서 가르치고 배우다 보면 정분날 수도 있는데...

나중에라도 뭐 사부랑 붙어 먹었느니 어쩌니 그런 소리 듣긴 딱 질색이니까..."


열 일곱 소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적나라한 표현에 다들 아연실색하며 뒷목을 부여잡는데... 정작 뜬금없이 미래의 구설수의 주인공으로 낙점된 박휘의 얼굴이 타오르듯 붉어지는게 아닌가?

그 모습을 목도한 팔룡들이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와중에 이 당찬 팽가의 금지옥엽...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엉거주춤 서 있는 박휘의 손을 잡아 끌며 유유히 사라지고야만다.


이것이 장차 호사가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게 되는 화궁 팽소용의 탄생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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