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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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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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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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22 0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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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1. 시작과 끝이 교차할 때. (6)

DUMMY

엘프 여왕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귀찮은 일이 모두 끝났다고 생각했다. 사실이 그랬다. 마음에 걸리는 일 하나는 어찌어찌 끝냈으니까. 이젠 제피온을 쓰러트리기만 하면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세상은 도무지 나를 내버려 둘 생각이 아닌 모양이다. 소렌과 함께 연회장 가로질러 나서려는데, 느닷없이 우렁찬 음악이 울려 퍼지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 변화를 느낀 순간, 나는 이 연회가 나를 좀 더 번거롭게 만들리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국왕 폐하께서 드십니다!”

약간의 술렁임과 함께 커다란 문이 열리며 한 무리의 시종들이 먼저 앞으로 나선다. 그리고 시종들은 그들의 몸을 울타리 삼아 기다란 길을 만들어냈다.

“도군.”

소렌이 내 어깨를 살며시 누른다. 뒤늦게 나는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은 이미 시종들이 만들어낸 빈 공간을 향해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응, 고마워.”

나는 괜히 고집을 부리는 대신 선선히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였다. 이런 행동도 꽤나 낯설다. 애초에 무림에는 왕이든 무엇이든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여기서도 변변히 고개를 숙일 이들은 없었고.

“모두 고개를 들라.”

위엄을 갖춘 나직한 목소리가 고요한 연회장에 울려퍼진다. 잠시 후 사람들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는 존재가 시종들이 만들어낸 공간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대들은 오늘 이 자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희끗희끗한 수염과 잔주름을 가진 로베른의 국왕은 노쇠를 연상시키는 것으로부터 오히려 위엄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국왕이 나타나자마자 느껴지는 위압감에 감탄했다. 풍채와 음성에서 피어오르는 위압감은 드래곤 슬레이어나 엘더처럼 무지막지하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존재보다 자연스러웠다.

“이 자리는 수많은 이들의 생명으로 이루어진 자리이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이들의 생명을 앗아갈 자리이기도 하다.”

이 연회. 그러니까 이런 평화는 수많은 이들의 죽음으로 지켜낸 평화다. 그러나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즉,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아직 많은 이들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말이지. 그래도 국왕은 마냥 연회에 취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러니 기억하라. 이 연회는 우리의 삶을 축복하는 것임과 함께, 우리를 위해 죽어간 이들을 위한 진혼제이며 비극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이정표인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국왕은 좌중을 쓱 둘러보다가 한 곳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내 옆에서 그의 말을 경청하는 소렌 폰테일에게.

“그렇기에 나 로베른의 국왕 알베르트 위그 로베른은 사지를 헤치고 나온 이를 치하하노라. 그리고..”

국왕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그와 함께 나는 본능적으로 온몸의 감각을 일깨웠다. 국왕의 시선이 위협이 돼서? 아니다. 그에게서 솟아오르는 위엄이 너무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강력한 적을 만났다고 착각한 걸지도 모른다.

“다시 우리를 위해 몸을 불사를 이들을 경외하노라.”

그 말을 끝으로 짧지만 길게만 느껴진 국왕의 연설이 끝났다. 그러나 연회장은 아직도 조용하기만 했다. 그런 이들을 바라보며, 국왕이 미묘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힘껏 박수를 한번 쳤다.

“이런, 짐이 너무 분위기를 흐른 모양이군. 연회를 즐기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연회를 만들어낸 이들을 잊지 말라는 것이지.”

국왕은 그렇게 말하고는 성큼성큼 시종들로 이루어진 벽을 빠져나가 술잔을 집어들어 단숨에 그것을 들이켰다. 그와 함께 경직된 분위기가 일시에 풀어지며 연회장은 차츰 소란을 되찾아갔다.

“폰테일 공.”

국왕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새로운 술잔을 시종으로부터 받아들고 이쪽으로 다가온다. 소렌이 딱딱한 표정으로 국왕 앞에 살짝 고개를 숙인다.

“폰테일의 검이 국왕 폐하께 인사 올립니다.”

“놀랍군. 그대가 연회 따위에 다 나왔을 줄이야. 그것도 에스코트까지 받아가며 도착했다는 소식을 이제야 믿겠어.”

“당연히 참석해야 할 자리일 뿐입니다.”

“그렇겠지. 하여튼 고개를 들게. 비록 로베른에 묶어두기는 했지만 그대는 공작위를 가진 자야. 이렇게 오래 고개를 숙이고 있더라도 나는 별로 편치 못하다네.”

그렇게 말하곤 국왕이 소렌 뒤에 멀뚱멀뚱 서 있는 나를 다시한번 주시한다. 그리고는 돌연 내게 술잔을 내밀며 호기롭게 웃었다.

“그대가 바로 그 영웅이로군. 검은 별을 궁지로 몰았던 바로 그 영웅. 내 잔을 받게. 그대는 감히 나와 잔을 마주할 자격이 있어.”

국왕의 말을 은연중에 주목하고 있던 이들이 경악하는 소리가 연회장을 한순간 뒤덮는다. 조용히 소곤대는 소리가 조금 격하게 귀를 간지른다. 특히 나를 외팔이라 멸시했던 귀족들은 잔뜩 경계한 태도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감사합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잔을 받아들고 그것을 입 안에 털어넣었다. 그리고 보니 술을 마시는 것도 오랜만이군. 몇 년 전에 최전방에서 마신 뒤론 처음이다.

“하하, 술을 마시는 모습도 역시 영웅답구나. 이 술을 단번에 마시는 이는 많지 않지.”

독한 술인가? 사실 나는 술을 즐기지 않다. 무엇보다 강력한 내공이 취기를 흩어내기에 나는 술을 마신 다음 어떤 기분이 되는지조차도 모른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국왕은 그런 나를 보고 꽤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국왕은 다시 시종에게 잔을 받고는 이번에는 소렌에게 그 잔을 내밀었다.

“아, 폰테일 공. 그대를 잊었군. 그대도 내 잔을 받게.”

“죄송합니다.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소렌의 무뚝뚝한 대답에 분위기가 일순간에 얼어붙었다. 그러나 소렌은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말을 이었다.

“아직은 술을 마실 때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 흘릴 피가 많습니다.”

국왕은 물끄러미 소렌을 바라보았다. 분위기는 점점 차가워져만 갔다. 역시 소렌은 정치판과는 어울리지 않아. 롤랜드의 선견지명에 감탄할 수밖에 없겠어. 이러니 소렌이 공작에 오르는 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지.

“흐음, 그대가 이 술에 흐트러질지 아닐지 궁금했지만 사실 그대가 옳지. 자, 그렇다면 이 잔은 영웅 중의 영웅인 그대가 받게.”

국왕이 약간 흥분해서 잔을 내게 들이민다.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 마시면서 나는 씁쓸한 술 맛을 느끼며 내심 혀를 찼다. 이 노인네가 잘 마시는 척 하더니 꽤 취했군. 방금 근엄하게 말하던 게 다 허사처럼 보일 정도다.

“그래, 자네의 이름이 무엇이라 했지?”

국왕은 내가 재차 잔을 비우는 걸 보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이름도 잘 모르면서 뭘 그렇게 치켜세우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독립기동부대의 부관, 세컨드 스퀘어 도군입니다.”

“세컨드 스퀘어? 어찌 그대는 그 정도 지위에 머물러 있는가? 폰테일 공. 당장 저 위대한 영웅을 진급시키게. 그래, 그리고 폰테일 공 역시 서드 스타에 머물러 있는 것도 볼썽사납군. 그대도....”

“폐하께서는 농이 지나치십니다.”

그때 한구석에서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던 림벨 후작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나와 소렌을 힐끗 바라 본 다음 말을 이었다.

“술을 잘 마신다고 영웅이라니요? 가당치도 않은 말씀을 다 하십니다.”

좌중이 소란스러워진다. 재미있군. 대부분이 림벨 후작의 말에 놀라거나 노여워하는 반면 몇몇은 림벨 후작의 말에 동조하고 있다. 그 몇몇의 모습을 자세히 보니, 절반 이상은 중소국에서 온 귀족들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겐가? 할 말이 있으면 저기 조그만 나라에서 온 손님들하고 함께 말해보게. 일일이 들어줄 시간은 없으니 말이야.”

국왕이 노골적으로 인상을 찌푸리는데도 불구하고 림벨 후작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을 뿐이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신은 다만 로베른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에 홀려 곤란한 지경에 처하는 걸 막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렌이 싸늘한 목소리로 묻자 분위기가 더욱 싸늘하게 식었다. 술을 거절할 때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림벨 후작도 이 분위기를 읽었는지 조금 흠칫 놀랐다가 이내 오만하게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

“영웅이라 불린 저자는 1년 동안이나 도망쳐 있던 자입니다. 만약 저자가 진짜 영웅이라면 지금쯤 검은 별을 떨어트렸어야 하지 않습니까?”

“영웅에게도 사정이 있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1년 전이든 지금이든 검은 별을 물리칠 수 있다는 건 확실할 터. 폰테일 공. 내 생각이 틀렸다면 내게 면박을 주어도 좋다네.”

“지당하신 말씀에 참견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소렌이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눈을 감은 채 대답한다. 그러나 림벨 후작은 아직 할 말이 남은 모양이다.

“폐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청을 드리옵니다. 폰테일 공이 계획한 그 무모한 작전을 불허하여 주시옵소서. 저자가 설령 강력한 소드마스터라 해도 검은 별을 쓰러트릴지는 미지수입니다. 오히려 검은 별의 심기를 건드려 다시 큰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사옵니다.”

잘 포장했지만 결국 소렌이 하는 일이 마음에 안 든다는 소리군. 그리고 소렌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야.

“잘도 그런 나약한 소리가 나오는군. 그대는 대체 누구의 편인겐가? 검은 별에게 넘어간 저들과 어울리더니 아예 똑같이 물든 모양이 아닌가?”

국왕이 언성을 높이자 이에 질세라 림벨 후작은 아예 바닥을 짚고 엎드려 떠들기 시작했다. 점점 저자가 마음에 안 든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저 저들을 통해 검은 별과 협정을 맺고자 할 뿐입니다. 폐하, 검은 별은 이미 연합의 힘을 경험한 바, 더 이상의 싸움을 원하지 않습니다. 부디 그 점을 헤아려 연합의....”

“개소리도 일품이군.”

더 이상은 못 봐주겠군. 힘이 있는 이상 이런 꼴을 좌시할 이유는 조금도 없다. 내공까지 실은 폭언에 림벨 후작이 벙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텅 빈 오른팔을 휘날리며 앞으로 나갔다. 연회장의 시선이 모두 내게 집중된다.

“쓸데없이 입 놀릴 필요 없다. 불만이 있다면 내게 말해봐라.”

일부로 기세를 발출하지 않고 나지막하게 말해 보았다. 어디까지 떠드나 보자꾸나.

“하!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함부로 끼어드는 게냐? 좋다. 오랫동안 도망쳐 있던 위대한 영웅께 묻지. 너는 검은 별을 압도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려는 순간, 나는 소렌의 시선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깨닫는다. 안타깝지만 나는 내 힘을 모두 드러내서는 안 된다. 소드마스터가 아무리 많아도 막아낼 수 없는 이 힘을 드러내는 순간, 나는 영웅이 아니라 연합의 적이 된다.

“그거야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지.”

“모른다? 당사자도 모른다면 누가 안단 말인가? 그런데 어찌 폰테일 공의 무모한 짓이 성공하리라 보장하는 것입니까? 이건 공연한 도발에 불과합니다. 폐하, 다시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드래곤 슬레이어도 어찌하지 못한 게 검은 별입니다.”

연회장은 점점 엉망진창인 각축전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젠장, 역시 이런 건 마음에 안 든다. 모든 걸 단숨에 쓸어버리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른다. 세상이 어찌 되든 말이다. 그나마 내가 참는 건 소렌 때문이다. 그녀가 이끌어 낸 결과를 공연히 망치고 싶지 않았다.

“정신 나간 소리! 그렇다면 림벨 후작 그대는 눈앞에 칼을 들이밀 사람을 두고 잠이나 자자는 말인가?”

국왕이 일갈하지만 림벨 후작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대답했다.

“폐하, 검은 별도 지쳤지만 연합은 더더욱 지쳤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니옵니다. 자카이야는 혼란에 빠졌고 라스탄트는 제 앞가림도 하기 벅찹니다. 남은 건 우리 로베른과 벨스터 뿐인데 그마저도 연합을 유지하는 데도 벅찹니다.”

“허어.....”

국왕이 이제는 피곤한 기색까지 보여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역정을 낼 기력도 다 소진한 모양이다. 이를 놓치지 않고 림벨 후작은 당당히 허리를 펴고 연회장에 모인 귀족들에게 물었다.

“로베른에 충성하는 이들에게 묻겠습니다. 그대들은 과연 무엇이 옳다 생각하고 있습니까? 검은 별을 자극해서 또다시 예기치 못한 전쟁을 치러야 하겠습니까?”

귀족들이 수군댄다. 슬슬 넘어가겠군. 전쟁은 결코 심심풀이가 아니다. 아무리 로베른이 강대국이고 저들이 그들 중 수위에 있는 귀족이라도 계속된 전쟁에는 지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체 그 때가 대체 언데 온단 말인가? 그 전에 검은 별이 쳐들어 온다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건 잘 알 테지.”

국왕은 귀족들의 분위기를 읽고 조금 태도를 굽혀서 림벨 후작에게 물었다. 이에 림벨 후작은 짐짓 뜻을 이룬 충신처럼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페하, 로베른의 검을 믿으시옵소서. 제 질자(姪子)만 해도 고작 몇 년 만에 소드마스터가 된 인재이옵니다. 이 외에도 로베른에는 앞날을 기대할 인재가 가득하옵니다. 하지만 아직 검은 별에 대적할만한 힘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폐하. 약간만 시간을 벌면 모든 건이 자연히 해결됩니다. 부디....”

쓸데없는 소리만 내뱉는 저 주둥이를 어떻게 곱게 닫히게 할지 궁리하는 찰나, 천의결이 움직였다. 머리가 지끈대며 엄청난 경고를 해 온다. 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움직였다.

“제기랄, 소렌!”

이심전심이라 했던가. 소렌이 국왕을 들쳐업고 한차례 크게 도약해서 그 자리를 피했다. 그와 함께 밤하늘로부터 천장을 뚫고 새카만 번개가 내리쳤다. 국왕이 서 있던 바로 그 자리로.

“크하하하! 시간이라고? 약간의 시간이라고?”

검은 번개 안에서 시커먼 육체를 가진 거구의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오거다. 그러나 단순한 오거는 아니다. 무언가에 의해 심령을 조종당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천의결을 통해 그 존재가 무엇인가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제피온!”

“웃기는 데는 소질이 있구나, 나약한 것들이란.”

검은 오거의 몸을 통해 제피온의 음성이 연회장에 울려 퍼진다. 연회장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귀족들은 서로 앞 다투어 몸을 피했고 림벨 후작은 코앞에 떨어진 번개에 거품을 물고 기절한 뒤였다.

“약간의 시간만 가지면 저런 떨거지들이 나를 죽일 수 있다고? 개소리도 분수가 있는 법이다. 한동안 가만히 놀아주니 기고만장해졌구나 인간들아.”

천천히 오거의 거체가 국왕을 향한다. 소렌이 국왕을 그녀의 뒤에 내려놓고 경계를 취하지만 그녀에게는 무기 한 자루 조차도 없었다. 아무리 소렌이라도 맨손으로는 제피온을 당해내기 버겁다.

물론 저 오거는 제피온이 조종하는 꼭두각시에 불과했지만 제피온은 절세의 고수이자 뛰어난 마법사다. 꼭두각시더라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운이 좋군. 알베르트. 언제까지 운이 좋을 수 있나 시험해볼까?”

“네, 네놈!”

국왕이 노호성을 터트린 순간 오거의 거체가 민첩하게 움직였다. 소렌이 단단하게 자세를 갖추고 맨몸으로 오거에게 달려들려 한다.

물론 나는 그것을 보고만 있을 바보는 아니다.

“천검.”

의념으로 이루어진 천 자루의 검이 연회장을 가득 메운다. 그리고 일순간에 천 자루의 검이 오거의 육체에 꽂힌다. 눈 깜빡할 새에 천 자루의 검이 꽂힌 오거의 몸이 흐물흐물 그 자리에 쓰러진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오거의 입은 열심히 제피온의 의사를 전하고 있었다.

“크하하! 그래, 이 정도여야지. 너는 그 정도의 힘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

“미친 것도 분수가 있어야지. 1년 동안 많이 미쳤구나.”

나는 걸레짝이 된 오거의 육신을 힘껏 걷어차며 비아냥거렸다. 그러자 막대한 내공에 정통으로 오거의 육중한 몸을 파고들어, 단숨에 절반 이상이 터져나간다. 그러나 제피온의 말은 그치지 않는다.

“아주 좋아. 재미있어. 그래, 그 힘을 가지고 어서 나의 마도(魔都)로 오너라. 그곳에 아주 재미있는 것을 준비해 두었지.”

“그래, 널 죽이는 일말이야.”

나는 차갑게 쏘아붙이며 다시 절반의 육신을 터트려 버렸다. 이제는 볼 약간과 윗입술만 남은 오거의 입이 쉴새 없이 들썩였다.

“크하핫! 그것도 재미있겠지. 하지만 더 재미있는 게 있다. 엠펠로니아에 유폐된 로베른의 공주는 기억하나? 엘레나 루이 로베른말이야.”

“무엇이!”

“어머니가.... 살아 계셨던 건가?”

국왕이 경악하고 소렌에게서 처음으로 표정변화가 생긴다. 유일하게 남은 그녀의 혈육이 살아있다는 소식에 놀랐고 또한 그녀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게 두 번째 이유일 것이다.

“자아, 위대한 영웅이여. 공주는 엠펠로니아 수도에 유폐되어 있다. 서두르지 않으면 공주는 죽는다. 흐음, 그래. 그 볼마르그의 딸년처럼 말이야.”

“..........할 말은 끝난 모양이군.”

완전히 잊었다고, 최소한 다시는 고개를 들지 않을 것 같던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 분노. 말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모독인 거대한 분노가 온몸을 불사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감정에 휩쓸리지는 않았다. 그 분노를 응축하고 또 응축해서, 그것을 하나뿐인 팔에 담았다. 그리고 그 주먹으로 오거의 주둥이를 단숨에 박살냈다.

질퍽한 격타음과 함께 오거의 주둥이가 완전히 박살나고 육편이 난무한다. 귀족들이 비명을 지르고 난리법석을 떠는 가운데, 오거의 육편을 통해 제피온의 말이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인간들이여, 막아보아라. 나의 군대는 이미 너희들의 코앞에 와 있다. 네놈들의 파멸은 이미 시작되었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이번 편은 여러모로 진상 캐릭터만 가득.........인 것 같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

  • 작성자
    ksks0724
    작성일
    14.05.22 06:51
    No. 1

    검은별이 적절한 때에 나와 분위기를 돌려주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2 요개
    작성일
    14.05.22 16:28
    No. 2

    타이밍을 조금 걱정했는데 괜찮아 보이나보군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4 아침기상
    작성일
    14.05.22 20:05
    No. 3

    왜 저는 악역이 거의 항상 호감이 갈가요 그러고보면 주인공들은 꽁으로 얻어서 악역이 힘들게 이뤄논걸 그냥 부수죠. 영화도 그렇고. 천재지변도아니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2 요개
    작성일
    14.05.22 20:36
    No. 4

    그리고보니 제 주인공도 똑같군요. 꽁으로 얻은 힘으로 악역이 이뤄낸 걸 부수려고 하죠 ㅋㅋㅋ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6 Kaibutsu
    작성일
    14.12.10 02:17
    No. 5

    폰테이 하나뿐만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42 요개
    작성일
    14.12.12 22:49
    No. 6

    오타 수정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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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시작과 끝이 교차할 때. (6) +6 14.05.22 1,658 21 18쪽
116 11. 시작과 끝이 교차할 때. (5) +4 14.05.19 1,570 24 20쪽
115 11. 시작과 끝이 교차할 때. (4) +6 14.05.09 1,381 32 12쪽
114 11. 시작과 끝이 교차할 때. (3) +4 14.05.04 1,505 26 11쪽
113 11. 시작과 끝이 교차할 때. (2) +3 14.04.30 1,651 35 15쪽
112 11. 시작과 끝이 교차할 때. (1) +6 14.04.28 1,926 35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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