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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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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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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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2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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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천의검문의 소문주 (2)

DUMMY

마차 안은 무척 조용했다. 늘 천방지축처럼 재잘대던 설초아도 조용히 몸을 웅크린 채 마차 바닥만 보고 있었고, 덕분에 늘 주의를 주던 한상염도 침묵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심하령과 나는 평소대로 조용히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으으....”


설초아는 이 무거운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몸을 뒤틀고 있었다. 그렇지만 대놓고 그것을 표하지는 않고 있다. 평소 한상염에게 주의를 받은 다음에도 이런 모습은 종종 있었지만, 이번에는 한상염 뿐만 아니라 내 눈치도 보고 있다는 게 다른 점이다.


“한 대주.”


소란스러운 마차 소리에도 불구하고 한상염은 귀신같이 내 목소리를 듣고는 마부석 쪽으로 나 있는 작은 창을 열고 우리 쪽으로 얼굴을 향했다. 그러면서도 고삐를 쥔 몸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다. 대단하군. 마차는 꽤 흔들리고 있는데 한상염의 몸은 흔들림 하나 없다.


“다음 목적지까지는 얼마나 남았습니까?”


“적어도 한 시진 내 도착할 것입니다. 식사 시간에 늦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상염은 그 때 이후로도 별다른 변화 없이 충직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팔을 자르려 했던 나를 꺼림칙해 하는 모습조차도 없다. 그릇이 크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무신경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오히려 심하령이 더 나를 꺼림칙하게 여기고 있었다.


“설 소저.”


“네! 아, 아니. 부르셨습니까?”


애초에 내가 볼일이 있는 사람은 한상염이 아니라 설초아였다. 먼저 한상염에게 말을 걸어 딱딱한 분위기를 풀 생각이었는데 별 효과는 없었던 것 같다. 한껏 격식을 차려 대답을 하려 꿍얼대지만 역시 설초아에게 이런 건 어울리지 않았다.


“제가 소문주라는 걸 잊고 편하게 계셔도 좋습니다. 이제부터 더 오랫동안 함께 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다가는 금방 지칠 겁니다.”


“그래요, 편하게 있어요.”


심하령까지 나를 거들자 설초아는 화색이 돌아서 한상염 쪽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한상염은 별다른 말이 없다. 이를 긍정적으로 해석한 설초아는 금세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심하령과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것도 대단한 천성이다.


“아, 언니. 그런데 궁금한 게 있어요. 평도(平都)로 가려면 한중성(城)을 거치는 것보다는 그냥 가도를 따라 가는 게 좋잖아요. 왜 한중성으로 방향을 잡으셨어요?”


“거기서 식량이나 이것저것을 조금 보충하려고요. 큰일을 하러 가는데 가는 길이 불편해서는 안 될 테니까요.”


그리고 보니 이건 참 호사스러운 행로다. 매번 객잔을 통째로 빌려서 묵는 것도 그렇고, 기진맥진할 정도로 수련을 한 다음에도 늘 깨끗한 옷이 준비되어 있는 점이 유독 그러했다. 과연 천의검문의 소문주라는 자리는 보통 위치가 아니다. 이런 자리를 스스로 포기하려 들었다니, 다른 이들이 알았다면 몰매를 맞았겠군.


“그럼 혹시 한중성에 하루 정도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네. 물자 보충 외에도 몇 가지 할 일이 있거든요.”


“그럼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한중성에 유명한 숙수가 있거든요. 날씨도 더워서 입맛도 없는데 맛있는 거 먹으면 소문주님도 훨씬 힘을 내실 거예요!”


갑자기 내 이야기가 나오니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게 된다. 그리고 창 밖 풍경에서 눈을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보던 중, 심하령과 눈이 마주쳤다.


“도 공자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나요?”


무얼 어떻게 생각한다는 말이지? 멍하니 심하령의 말을 되새기던 나는 이내 그것이 한중성의 유명한 숙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정에 차질이 없다면 상관없겠지요. 소저께서 결정해 주십시오.”


어차피 돈을 내는 건 그녀이기에 나는 심하령에게 결정을 맡기기로 했다. 이에 심하령은 조금 고민하다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일단 가서 결정하도록 할게요. 제가 원하는 것들을 구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면 그 정도는 가능할 거예요.”


당연히 이 말에 설초아가 환호성을 내지르는 건 정해져 있었다.



한중성은 오래 전부터 중원의 요지로 이름난 곳이었다. 드넓은 평야를 중심으로 험준한 산과 강이 외부의 위협을 배제하고, 유속이 그리 빠르지 않은 넓은 강을 따라 온갖 물산이 오고가는 중원의 중심지였다. 가히 일국의 수도가 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요지였다.


“와아, 정말로 사람이 많아요.”


천의검문이 있는 곳도 꽤 이름난 땅이지만 이곳에 비하면 그냥 촌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아직 성문을 지나지도 못했지만 성문 너머로는 드높은 전각이 가득했고, 사람들은 길을 꽉 메우고 있었다.


“어어, 다 마차에서 내려서 걷네요?”


창밖에 머리를 내밀고 신나게 구경을 하던 설초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과연 우리 외에도 마차에 탄 이들은 꽤 많았지만, 그들은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성문에서 한참 먼 곳에서 내려 검문을 받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군요. 제가 알기로 한중성은 이런 검문을 하는 곳이 아닌데 무슨 일이 있는 모양입니다. 우선 속도를 줄이겠습니다.”


한상염이 나직이 내뱉는 말에 설초아가 불안하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확실히 소란스러운 가운데서도 분위기는 엄중하다. 그러나 심하령은 대수롭지 않아 보였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수문장에게 곧장 가서 이걸 보여주세요.”


심하령이 작은 창을 통해 작은 패를 건네주었다. 검게 칠해진 나무패였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보통 물건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지체 없이 성문 쪽으로 향했고, 당연히 수문장에게 제지를 받았다. 마차를 멈춰세운 수문장은 마차를 슥 훑어보고는 말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검문을 받아야 지나갈 수 있소. 아무리 지체가 높다 해도 말입니다. 그러니 전부 내려 주셔야겠습니다.”


번거롭게 자신이 움직인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일까? 수문장은 꽤 불쾌해 하며 말했다. 그러나 한상염이 작은 패를 건네주자마자 금세 그 태도가 바뀌었다.


“심가장의 마차였소?”


“아니오. 천의검문의 마차요.”


한상염이 대답했다. 수문장은 흠칫 놀라서는 재빨리 뒷걸음질 쳐서 마차에서 멀어졌다. 그리고는 곧장 성문을 열라 소리를 질렀다.


“와, 정말로 그냥 보내주네요.”


설초아가 수문장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에 심하령은 한상염에게 패를 받아들며 말했다.


“한중성의 주춧돌 하나까지도 모두 심가장으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성주도 생각이 있다면 무슨 일이 있든지 감히 천의검문을 의심하지는 않겠지요.”


천의검문이 가진 무게란 그 정도였던가? 나는 새삼스레 천의검문이라는 이름이 갖는 무게를 실감하며 다시 한중성을 바라보았다. 길이란 길은 전부 잘 닦여 있었고 사람들은 활발하게 제각기의 할 일에 몰두하고 있다. 또한 곳곳에 보이는 병사들은 굉장히 잘 단련된 정병이었다.

한마디로 한중성은 로베른의 수도에 비해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런 곳도 천의검문의 위세에 눌린다니, 점점 천의검문의 힘이 내 상상을 벗어나는 것 같았다.


“객잔이 제법 훌륭하군요.”


어지간한 객잔에도 놀라지 않던 한상염도 한중성 한가운데 위치한 화려한 객잔에 들어서서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건 흡사 객잔이 아니라 귀족의 저택을 보는 것 같군. 볼마르그 공작의 저택보다 더 화려했으면 화려했지, 못한 점은 별로 없었다.


“일단 방을 잡아 둘 테니 대주는 쉬고 계세요. 밤새 마차를 몰았으니 피곤하실 텐데요.”


심하령이 말했다. 이에 한상염은 내 쪽을 바라보았다. 한상염이 번거롭게 내 의사를 묻기 전에 나는 먼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리고 설 소저도 쉬고 계세요.”


“넵! 아, 그런데 한중성 구경을 좀 하고 싶은데 같이 가실래요?”


설초아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이에 심하령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고, 설초아는 풀이 죽어서 한상염과 함께 점소이의 뒤를 따라갔다. 두 사람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나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아마 혼자서라도 갈 것 같은데 위험하진 않겠습니까?”


화려한 곳일수록 위험은 존재하는 법이다. 아무리 설초아가 꽤 실력이 있다 해도 결국 어린 소녀다. 혼자서 이런 곳을 돌아다니는 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심하령은 그것마저 생각해 둔 다음이었다.


“아마 한 대주가 혼자 보내지는 않겠죠. 만약 한 대주가 설 소저에게 끌려간다면 하루 정도 여기 묵어야 할 것 같아요. 한 대주도 좀 쉬어야죠.”


“그렇군요. 그럼 저도 가 보겠습니다.”


나는 나대로 수련을 하기 위해 두 사람이 간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아뇨, 공자는 저와 함께 갈 곳이 있어요.”


심하령이 그런 나를 제지하며 나를 객잔 밖으로 끌고나갔다. 어영부영 그녀에게 끌려가며 나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필요한 물건을 구하는 건 늘 그녀 혼자서 해왔을 텐데 내가 달리 할 일이 있던가? 차라리 수련이라도 하라고 말한 건 그녀였을 텐데.


“제가 할 일이라도 있습니까?”


“네. 이런 곳에 소녀 혼자 돌아다닐 수는 없잖아요. 당연히 사내대장부가 함께 가 주셔야죠.”


농담이겠지. 심하령의 실력은 이미 나를 훌쩍 뛰어넘어 있다. 모르긴 해도 심가장이라는 배경까지 고려한다면 한중성에서 그녀에게 해코지를 할 사람은 전무할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드러난 걸까? 심하령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잊었나요? 슬슬 종조부님의 금제에 손을 써 두어야 하잖아요.”


잊고 있던 게 당연하지. 나는 이 생각은 드러나서는 안 된다 생각하며, 억지로 표정을 굳히곤 물었다.


“어르신께서 오셨습니까?”


“아뇨, 제가 그 방법을 배웠어요. 그러니까 잠자코 따라오세요. 심가장의 거점으로 가서 금제에 손을 써 드릴 테니까요.”


곤란하다. 설마 이러다 금제가 사실 금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어쩌지? 그리고 보니 심유환과 심하령은 서로를 한 번씩 속인 셈이군.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만약 들키더라도 이 점을 말한다면 심하령도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진 않을 것 같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이런 소소한 이야기를 쓰는 것도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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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3. 천의검문의 소문주 (3) +3 14.07.26 1,342 33 12쪽
» 3. 천의검문의 소문주 (2) +5 14.07.25 1,460 36 10쪽
138 3. 천의검문의 소문주 (1) +3 14.07.24 1,821 37 16쪽
137 2. 기연 (6) +8 14.07.23 1,717 36 11쪽
136 2. 기연 (5) +8 14.07.22 1,584 34 15쪽
135 2. 기연 (4) +5 14.07.21 1,511 42 12쪽
134 2. 기연 (3) +9 14.07.19 1,473 36 19쪽
133 2. 기연 (2) +6 14.07.18 1,571 38 13쪽
132 2. 기연 (1) +9 14.07.17 1,715 46 14쪽
131 1. 둔재지로(鈍才之路) (6) +11 14.07.16 1,682 38 13쪽
130 1. 둔재지로(鈍才之路) (5) +8 14.07.15 1,448 36 13쪽
129 1. 둔재지로(鈍才之路) (4) +9 14.07.14 1,447 34 10쪽
128 1. 둔재지로(鈍才之路) (3) +4 14.07.12 1,594 38 13쪽
127 1. 둔재지로(鈍才之路) (2) +6 14.07.11 1,586 4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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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0. 호접지몽(胡蝶之夢) (2) +10 14.07.05 1,842 34 23쪽
124 0. 호접지몽(胡蝶之夢) (1) +15 14.06.28 1,901 33 7쪽
123 11. 시작과 끝이 교차할 때. (12) +6 14.06.28 1,665 35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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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11. 시작과 끝이 교차할 때. (10) +2 14.06.13 1,223 2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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