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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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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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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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5.04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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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시작과 끝이 교차할 때. (3)

DUMMY

저택 앞에서 조금 망설이다가 나는 정문을 통해 저택으로 들어섰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쩐지 연합은 나를 적으로 대하지 않는 듯 했다. 그러니 성미에 맞지 않게 숨어서 들어갈 필요도 없으리라.

그렇게 당당히 저택에 들어온 나는 벨스터에서와 마찬가지로 묘한 향수를 느꼈다. 폰테일 저택에 와본지도 수년이 다 되어 가건만 이곳은 처음 보았던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검박한 외관부터 시작해서 저택 주위에 펼쳐진 연무장까지.

그러나 아주 변함이 없는 건 아니었다. 우선 저택의 주인이 바뀌었다. 그리고 연무장의 무인들도 모두 젊은이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누구십니까?”

저택에 다가가고 있으려니, 수련에 매진하던 이들 중 나와 가장 가까이 있던 소년 하나가 쪼르르 달려와 땀을 훔치며 묻는다. 변변한 경비병 하나 없는 모습도 여전하군. 하기야 어떤 수상한 자가 쟁쟁한 검사가 가득한 이곳을 정면으로 방문하겠는가?

“폰테일의 영애를 뵈러 왔습니다.”

“영애라면.... 공작각하 말씀이십니까?”

소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다. 이에 나는 미약한 탄성을 내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명실상부한 공작으로 인정받은 모양이군. 하기야 드래곤을 물리친 위업을 달성했으니 다른 귀족들도 마냥 반대할 수는 없었을 테지.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소년이 내 말을 전하러 연무장 한가운데로 돌아가 버린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차라리 숨어서 들어가는 게 조용했으리라는 걸 직감했다. 소년이 말을 전한 상대는 바로 소렌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두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도군 씨!”

크리스가 환하게 웃으며 이쪽으로 달려온다. 반면 플로렌스는 차가운 얼굴로 이쪽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그나마도 나와 시선을 맞추지 않으려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나는 어떻게 대하는 게 좋을지 몰라 늘 하던 대로 무뚝뚝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에 크리스는 여느 때처럼 밝은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대체 얼마만이에요? 그때 갑자기 드래곤하고 싸우러 간 다음으로는 처음 만나는 거죠?”

“그런 것 같군요.”

크리스의 호들갑을 죽 지켜보던 플로렌스는 끝까지 별다른 인사를 건네지 않을 것 같다. 이에 크리스가 슬쩍 옆구리를 찌르니 그제야 못 이기는 척 입을 열었다.

“소렌님과 힘을 합쳐 드래곤을 물리치고 검은 별을 몰아냈다고 들었습니다. 참 아쉽게 되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종적을 감추지만 않았어도 검은 별을 떨어트릴 수 있었을 텐데요.”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인사 아닌 인사를 건네는 플로렌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잘 알 것 같았다. 열등감, 부끄러움, 그리고 자기 비하다. 참 익숙한 감정이지.

“아, 그럼 일단 소렌님께 안내해 드릴게요. 플로렌스, 미안하지만 수련지도를 좀 혼자 맡아줘.”

크리스가 재빨리 대화에 끼어들어 서먹한 분위기를 흩어냈다. 이에 플로렌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도로 제 자리로 돌아가서 수련을 지도한다.

“죄송해요. 도군님이 너무 달라져서 불편한 모양이에요.”

“괜찮습니다.”

은근히 나를 하찮게 여기던 그녀다. 지금 와서는 당연히 나를 대하기 껄끄럽겠지. 외려 크리스처럼 살갑게 구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아무 이유 없이 강해졌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걸까?

서슴없이 저택의 문을 열어젖힌 크리스는 2층에 있는 응접실로 나를 안내했다. 응접실에 다다르자 크리스가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말했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공작 각하께서 오실 거예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크리스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연무장으로 돌아갔다. 홀로 응접실에 남은 나는 조금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벨스터에서 만난 이들도 그랬지만 여기서도 나를 적대하지는 않고 있다. 나는 엘프의, 그리고 연합의 적이 될 것이라 확신했는데 말이다.

“정말로 너였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차에 응접실 문이 달칵 열리고 소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야윈 모습이 안쓰럽지만 두 눈만은 형형하게 빛나는 그녀가 한걸음 한 걸음 다가온다.

“어서 와.”

소렌이 악수를 청하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무뚝뚝한 인사를 예상했건만 조금은 그녀도 변한 걸까?

“미안. 많이 늦었다.”

“괜찮아. 잘 돌아왔어.”

소렌의 뒤를 이어 하인 몇이 들어와 응접실 탁자에 다과상을 차린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와 바삭한 다과를 사이에 두고 소렌이 미소를 지우지 않고 뚫어져라 나를 바라본다. 그 시선이 조금 어색해서 나는 헛기침을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하나 궁금한 게 있어. 사람들이 다 나를 영웅 취급하는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일이야? 엘프들과 척을 지기로 한 거야?”

“그건 아니야. 공식적으로 너는 엘프를 살육한 사악한 적이야. 실제로 체포령이 떨어지기도 했지. 그걸로 간신히 엘프들이 연합을 들쑤시려는 걸 말렸고.”

“흐음, 그렇다면 비공식적으로는 그렇지 않다는 소리야?”

소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비공식적으로 너는 연합의 영웅이야. 드래곤을 물리친 드래곤 슬레이어이자 검을 별을 몰아낸 대단한 존재지. 그리고 너라는 영웅 덕분에 연합이 그나마 이정도로 버틴 거라고 생각해. 전설과 희망이란 의외로 중요한 거니까.”

드래곤을 직접 물리치지는 않았지만 굳이 싸우라면 못 싸울 것도 없다. 아니, 오히려 혼자서도 드래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그런 사실을 힘겨운 싸움을 거쳐 온 소렌 앞에서 드러내는 것이 조금 껄끄러워,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딴소리를 했다.

“비공식적인 것 치고는 꽤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것 같던데.”

“애초에 사람들은 엘프와 한편이라는 것도 잘 와 닿지 않는 모양이야. 뜬구름 같은 존재보다는 눈앞에서 자신을 구해준 쪽을 같은 편으로 여기는 게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소렌의 미소가 지워진다. 그리고 그녀는 늘 보여주던 딱딱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네가 살아서 나타난 이상 그런 형편도 곧 바뀔 거야.”

“무슨 말이야?”

소렌은 당장 대답을 주지 않았다. 이윽고 차가 모조리 식어버렸을 때가 돼서야 소렌은 무거운 입을 뗐다.

“너무 강한 힘은 두려움을 낳아. 드래곤 슬레이어도 그래서 여러 곳으로 흘러들어갔어. 아무런 연고가 없는 사람은 소속을 만들어서라도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큰 힘의 균형을 유지했지.”

그렇군. 그래서 벨스터가 그런 이상한 땅에 자리잡은 거였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국가가 형성될 위치는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너는 달라. 한 사람은 여럿으로 나눌 수는 없어.”

“그리고 한 곳에 소속될 수도 없겠지. 그렇게 됐다간 균형이 깨질 테니까.”

단숨에 대륙 전체의 세력구도를 통찰하고 나는 그렇게 말했다. 만약 엠펠로니아가 무너진다면 연합의 단결도 흐지브지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내 소속 역시 희미해지고, 나는 통제할 수 없는 재앙 그 자체가 된다.

“도군 네 말대로야. 그리고 무엇보다 너는 가차없이 엘프를 죽였어. 전후사정은 몰라도 이 사실만은 여럿이 목격했기 때문에 숨길 수 없어. 그 탓에 네가 사라진 걸 모를 때만 해도 연합은 너를 정말로 적으로 여기고 있었어. 다른 무엇보다 그 힘이 우리를 향지도 모르니까.”

그 누구라도 사람을 문 적 있는 투견을 기를 생각은 없겠지.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제피온을 쓰러트리는 일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설령 그가 본신의 힘을 되찾는다 해도 나는 결코 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이후가 문제다. 방관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혼돈의 사도라는 이름대로 정말로 혼돈을 일으킬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

“만약 내가 사라진다면?”

“사라져?”

“오리엔트로 은둔한다는 것도 있고, 아니면 미쳐서 자살했다거나 암살당했다고 할 수도 있지. 그런 식으로는 처리할 수 없을까?”

실제로 나는 어느 정도 그런 최후를 마음먹고 있었다. 혼돈의 사도로서 짊어진 죄는 크다. 잠시 잊을 수는 있어도 결코 나를 놓아주지는 않는다. 그런 최후를 가늠해서 나는 소렌에게 색다른 제의를 건넨 것이다.

그런데 어째 대답이 없다. 무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소렌은 찻잔을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그리고는 돌연 북풍한설같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농담이겠지?”

그 순간 날카로운 직감이 머리를 옭아맸다. 믿을 수가 없다. 여기서 진담이라는 말을 했다가는 소렌이 검을 빼들고 내 생각을 꺾으려 할 것 같다니. 대체 어떤 이유로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천의결을 안 믿을 수도 없으니 일단은 농담이라 치부해 둘까?

“농담이야.”

“별로 재미는 없었어. 조금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어 줬으면 해.”

소렌의 기세가 점차 진정된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차를 마셔 바싹 말라버린 입을 축였다.

“그래서 방도를 찾아봤어. 만약 네가 과대평가된 존재라면 어떨까 하고. 사실은 다른 이들과 힘을 합쳐야 간신히 제피온을 쓰러트리는 수준이라고 알려지면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돼.”

그렇게 말하며 소렌이 품속에서 둘둘 만 종이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깔끔한 노끈으로 묶인 그 종이를 펼쳐드니, 그 안에는 수려한 필체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건 임명장이야. 예전에 우리가 있던 부대가 재편되면서 새로 만들어진 거지.”

이제 소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다. 비공식적으로 내 힘이 어떻든 상관없다. 공식적으로 내가 다른 이들과 힘을 합쳐 제피온을 쓰러트리면 앞서 언급한 문제는 해결된다.

“탁월한 기만이네. 알았어. 여기에 서명하면 되는 건가?”

임명장에 서명을 하려다 문득 빈칸이 없다는 걸 알아채고 나는 멍한 얼굴로 소렌을 바라보았다. 소렌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서명은 반년 전에 내가 대신했어. 그리고 부대 편제에도 이미 네가 들어가 있지. 군복은 내가 보관하고 있고 월급은 네 이름으로 은행에 맡겨뒀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이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자리는 명예직이 아니다. 소렌은 내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 확신하고 이렇게 모든 준비를 마쳐 놓았던 것이다.

“그렇구나.”

나는 웃었다. 어쩌면 내가 1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한 건 이 세상에 더 큰 혼란을 가져올 운명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렌은 그런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오직 그녀의 신념을 따라서. 그 사실이 나는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아직도 주인공은 천의결 없으면 멍청할 뿐.... 아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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