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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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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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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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2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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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3. 천의검문의 소문주 (1)

DUMMY

동평왕의 영지로 떠나는 길은 단순한 여행길이 아니다. 이것은 엄연히 험난한 수련의 길이었고, 나는 험로를 자처해서 더욱 고된 수련을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행로는 평화로워서, 나는 평소와 같은 수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소문주니임!”


나무를 툭툭 치며 심심함을 달래던 설초아가 방긋 웃으며, 철의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는 내게 달려왔다. 그러나 나는 움직임을 멈추지도 않았고, 그녀를 응대하지도 않았다. 여기서 수련을 끊기도 싫었고, 설초아의 말에 대답할 의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소문주라는 건 참 좋은 자리지.


“으앙! 대주님, 소문주님이 저 무시해요.”


내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으니, 설초아는 이번엔 옆에서 명상에 빠져 있는 한상염에게 달려갔다. 검문을 떠나 온 후로 이런저런 일을 잘 받아주었던 그도, 지금은 무뚝뚝하게 설초아를 밀어낼 뿐이었다.


“초아야. 부디 수련을 할 때는 점잖게 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어찌 소문주님의 수련을 방해하느냐?”


“에이 설마 방해가 될까요? 저렇게 단순한 수련을 하는 건, 저랑 이야기하면서도 할 수 있잖아요.”


제기랄, 설초아의 말이 귀에 닿는 순간 마음이 흐트러져 나는 균형을 잃을 뻔 했다. 나는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집중을 하지 않으면 초식의 형을 잡기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설초아의 눈에는 내가 참 쉬운 수련을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초아야. 더 이상 말썽을 부리면 수련을 더 늘리겠다.”


보다 못한 한상염이 눈에 불을 켜고 엄포를 놓으니 그제야 설초아는 기가 죽어서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그늘로 돌아갔다. 죽다 산 기분이군. 나는 다시 수련에 집중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호흡을 골랐다.


“후우.”


숨을 고르니 자연히 주위가 눈에 들어온다. 잘 꾸며진 후원이 정말로 그럴싸하다. 심하령이 노잣돈을 얼마나 마련한 건지는 몰라도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정도임은 분명했다. 매번 괜찮은 객잔 하나를 통째로 빌리는 수준이라면 말이다.


“설 소저. 후원의 가지를 꺾으면 안 됩니다. 한 그루에 은자 열 냥도 넘는 귀한 나무인데 변상하고 싶다면 꺾으셔도 되고요.”


줄곧 그늘에서 내 수련을 지켜보던 심하령이 다시 애꿎은 나뭇가지를 꺾으려 드는 설초아에게 주의를 주었다. 이에 설초아는 더욱 울상이 되어서 나무로부터 멀어졌다.


“초아 너는 수련을 다 마쳤느냐?”


한상염이 한껏 시무룩해진 설초아에게 묻자, 설초아는 흠칫 놀라더니 곧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말은 안 하겠지만 참 지독히도 수련을 싫어하는군. 저런 사람이 천의검문에 있다는 게 점점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검문을 떠나온 첫날 견식했던 검은 분명 뛰어났다. 그런데 저리도 수련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니, 나로서는 여러모로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상황이다.


“안되겠구나. 나가자. 넌 나와 같이 수련을 해야겠다.”


“으아악!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설초아가 재빨리 객잔 쪽으로 몸을 날렸고, 그제야 한상염은 서슬을 거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만사에 믿음직스러운 그도 외외로 설초아를 상대하는 게 어려운 모양이다.


“정말 두 분께 면목이 없습니다. 천검대의 한사람이 저렇게 게을러서야..”


한상염이 한탄이 뒤섞인 사죄를 하는 것을 보며, 심하령이 지나가는 말투로 말했다.

“과연 왜 한 대주께서 설 소저를 데려온 건지 알겠어요. 자리를 비우면 수련을 등한시할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셨죠?”


“그렇습니다. 분명 오성도 출중하고 근골도 훌륭한데 유독 심성만 저리 부족합니다.”


“그런데도 천검대에 있다는 건, 정말로 재능이 탁월하다는 말씀이군요.”


심하령이 재지가 번뜩이는 눈으로 설초아가 사라져 간 객잔 뒷문을 바라보다 내게 시선을 주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다. 설초아는 그야말로 나와 정반대에 서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가까이 정반대되는 사람이 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


한참이나 육합권의 투로를 익히던 나는, 이번에는 마보 자세로 허리에 찬 검을 휘두르는 수련을 시작했다. 그와 함께 심하령이 기다렸다는 듯 새로운 화제를 꺼내들었다. 슬슬 속을 떠볼 모양이군. 검을 휘두르는 수련만큼은 조금 한눈을 팔아도 좋을 정도로 익숙해서, 나는 슬쩍 저들의 대화를 엿듣기로 했다.


“헌데 대주님께서는 도 공자께서 기초적인 수련만 하는 게 이상하다고는 생각지 않으신가 봐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상염이 정말로 모르겠다는 투로 되물었다. 역시 그는 내게 한 점의 의문도 품지 않은 모양이다. 단 한번 진천을 보여준 것으로 족하다는 의미일까?


“대주님이 외인도 아닌데 상승의 무공을 수련하는 걸 내보이지 않으시잖아요. 사실 제가 도 공자께 대주님께 조언을 구해보라 했는데 영 내키지 않으신가 봐요. 그래서 하는 말이에요.”


능청스럽게 핑계를 대서 제대로 속여먹으려 드는군. 그러니까 이건 대주에게 묻는 게 아니라 사실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이건가? 하지만 실상은 대주의 속을 떠보려는 것이고. 그러면서 심하령의 표정은 장난기마저 서려 있어, 나도 한순간이나마 착각할 뻔 했다.


“죄송합니다만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아직 진천검결을 반절도 익히지 못한 제가 무슨 조언을 드리겠습니까?”


“어머, 그런가요? 그럼 완성은 이십성 정도 되야 하는 모양이네요.”


한상염이 진천검결을 십성 이상 성취했다는 건 널리 퍼진 이야기다. 이를 두고 심하령은 이십성이라 비꼰 것이다. 이에 한상염은 다시 우직하게 대답했다.


“제가 진천검결의 겉을 완벽하게 익힌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십이성 대성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스스로의 노력과 천운이 따르지 않으면 결코 넘볼 수 없는 경지이지요.”


“그렇다면 대주께서는 도 공자의 경지를 어찌 보시기에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너무 이야기에 집중했는지 나도 모르게 검 끝이 흐트러진다. 그것을 다시 바로잡으며 나는 이어질 한상염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과연 그는 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어쩐지 나는 이런 사소한 평가를 듣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모릅니다.”


너무나도 당당히 모른다는 말을 하니 오히려 명쾌하게까지 들린다. 심하령이 이 점이 꽤 마음에 안 드는지 조금 퉁명스럽게 되물었다.


“모르신다면 대체 무슨....”


“설명드리기는 어렵습니다만, 소문주께서는 감히 제가 넘볼 수 없는 곳에 계신 느낌이 듭니다. 그때 비무에서 보이신 진천은 그 일면일 뿐, 진짜 소문주의 실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번에는 검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 과하게 힘이 들어간 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흙바닥에 박혀 들어갔다. 한 치도 넘게 땅에 박힌 검을 빼내려 애쓰는 와중에 심하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느낌. 또 느낌이군요. 종조부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죠. 대체 그 느낌이 대체 무엇이기에....”


“의가제일! 그분을 만나보셨습니까?”


느닷없이 한상염이 잔뜩 흥분해서 심하령에게 바짝 다가갔다. 이에 심하령이 흠칫 놀라서 손바닥을 번쩍 들어 그를 제지했다. 잠시 후 흥분을 가라앉힌 한상염은 고개를 숙여 사죄를 구하고, 심하령이 말했다.


“당연히 그렇지요. 제 종조부님이신걸요.”


“물론 그렇겠지만 제가 궁금한 건 그분께서 검문에 다녀가셨는지의 여부입니다. 심가장의 독문무공을 대성하신 분께 꼭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아, 저..... 종조부님은 사람 만나는 걸 꺼려하셔요. 그리고...”


무인의 투기에 당황에서 심하령이 더듬거렸다. 그러나 급기야 이제는 한상염에게서 무지막지한 투기가 밀려와 심하령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종손녀이시니 그분께서도 꺼리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부탁드립니다. 그분과 비무를 치르고 싶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심하령이 단호하게 거절하려 하지만 한상염은 이미 심하령은 안중에도 없었다. 지금 아마 심하령을 단지 심유환에 이르는 길로만 보고 있을 것이다. 이대로 뒀다가는 당장 심유환을 만나러 돌아갈 기세다. 나는 검을 집어넣고 한상염의 뒤로 걸어갔다. 그리고 잠시 내가 할 말을 궁리해 보았다.


“천검대주.”


나직히 한상염을 부르니 그제야 한상염이 정신을 차리고 내 쪽을 향했다. 그와 함께 무지막지한 투기도 사라져, 심하령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소, 소문주님. 제가....”


한상염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고는 처음으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나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로 안 내키지만 여기서 멍청하게 굴었다가는 도리어 의심만 살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어울리지도 않게 추상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자연스럽게 그런 방향으로 생각이 움직였다.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 어딜 잘리고 싶습니까? 대주로서의 체면을 고려해서 목이 아니라 팔을 자르는 것으로 끝내려 하는데 동의하십니까?”


“원하신다면 그리 하십시오.”


한상염이 입술을 꽉 깨물고 내게 오른팔을 내밀었다. 서슴없이 생명이나 다름없는 오른팔을 내미는 그를 보고, 나는 당황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어수룩한 모습을 보이는 대신 허리에 찬 검을 천천히 뽑아들고 있었다.


“좋습니다.”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하다. 아니, 은은한 분노가 일고 있다. 내가 이럴 리 없다 비명을 지를 지경이다. 나는 이런 일에 사람의 팔을 자를 사람이 아니다. 마치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다른 무언가가 나를 조종하는 것 같다. 그리고 놀랍게도 나는 그것을 멈출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말리지 않았다.


“도 공자!”


평소와는 확연히 다른 나를 보고, 심하령이 기겁해서 소리를 지른다. 그 소리에 놀란 설초아도 객잔 후문을 박차고 후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두 사람의 놀란 얼굴을 외면한 채 나는 단숨에 일검을 내질렀다.


“꺄악! 대주님!”


설초아가 날카로운 고함소리와 함께 내게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철장갑을 낀 주먹을 내뻗었다. 설초아의 권격을 인식한 순간, 이상하게 붕 떠 있던 마음이 털을 곤두세웠다. 다시 무의식 안에 잠들어 있던 것들이 눈을 떴다.


“어설퍼.”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투로였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설초아의 권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투로 사이에 서슴없이 발길질을 가했다.


“꺅!”


설초아의 움직임이 어지러워진다. 절묘하게 파고든 다리가 설초아의 발목을 걸었다. 아직 수련이 부족한 것인지, 그녀는 이것만으로도 초식을 완전히 흩어버리고는 허우적댔다. 문득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재능을 이리도 단련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대주님!”


심하령이 눈을 질끈 감은 채 오른팔을 내밀고 있는 한상염을 잡아당긴다. 하지만 한상염은 바위를 깎아 만든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내 검은 한상염의 오른팔 소매만을 갈랐기 때문이다.


“대, 대주니임....”


설초아가 울상이 되어서 한상염의 품 속에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곧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상염은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입이 다시 내 생각을 뛰어넘어 멋대로 움직인다.


“천검대가 이리도 형편없는지 몰랐습니다.”


형편없다니. 내가 어찌 이런 허세를 부린단 말인가? 머리로는 납득이 될 리 없건만, 나는 한편으로는 그 말이 합당하다 느끼고 있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 심하령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한상염과 나를 번갈아보고 있었다.


“대주라는 자는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데다 대원은 천방지축에 게으름뱅이라니.”


기호지세라 하였던가? 이미 내뱉은 말은 더 이상 무를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내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는 대신, 마음 속에서 우러나는 대로 입을 놀렸다.


“대사가 코앞이라 피를 보지는 않겠지만 두 번은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다.”


한상염이 설초아를 품에서 떨어트리고는 온전히 남은 오른팔을 굽혀 부복한다. 그리고 이어서 설초아 역시 어리둥절해서는 덩달아 몸을 낮추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치 꿈결에 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쏟아낸 기분이다.


“두 분께서는 오늘 다른 곳에서 묵도록 하세요.”


심하령이 말했다. 그리고 짤랑이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따로 여비를 주는 모양이다.


잠시 후 두 사람의 기척이 사라지고 나는 다시 몸을 돌려 심하령 쪽을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심하령은 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얼굴이다. 매도 먼저 맞는게 낫겠다 싶어, 나는 선수를 쳤다.


“경솔했다 생각하시면 얼마든지 꾸짖어 주십시오.”


나는 한껏 붉어지려는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다행히도 숨을 몇 번 내쉬니 얼굴이 붉어지지는 않는다. 심하령이 객잔 후문을 힐끗 바라 보았다.


“괜찮은 거예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한 대주라면 도 공자의 행동에 의문을 품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심하령이 꾸벅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조금은 감사드려요. 두 사람의 관계를 알면서 공연히 제가 종조부님의 이름을 꺼낸 탓에 이렇게 된 것에 사과도 드리고 싶어요.”


“설마 그렇게 사이가 안 좋았던 겁니까?”


좀처럼 상상이 안 된다. 한상염은 절제와 예를 갖춘 무인이다. 그런 자가 어찌 배분이 한참 위에 있는 심유환과 싸워보려 안달을 낸단 말인가?


“사실은.... 전에 한 대주가 형편없이 진 적이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한 대주가 말입니까? 흐음,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아직은 한상염이 그 정도의 반응을 보인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에 심하령이 고개를 저으며 세 개 펴 보이며 말했다.


“한 번도 아니라 여러 번이요. 마지막으로 싸웠을 때는 삼일동안 백 오십 번도 넘게 졌다고 들었어요. 그 전에는 훨씬 많이 졌다고 하고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숫자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에서 열 배가 넘는 숫자라니. 그리고 그렇게 지고도 계속 비무를 청하는 한상염도 제정신은 아니어 보인다.


“미친 것 같은 숫자군요. 그렇게까지 이겨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이기면 심득을 전해준다 했나 봐요. 한 대주의 무공이 정체된 건 꽤 오래 되기도 했고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는 어느 정도 한상염의 간절함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완벽히 이해하는 건 역시 어려웠다. 아무리 그런 이유가 있다 해도 소문주의 정혼자를 핍박하던 건 납득할 수 없다.


“아무튼 천의검문의 제자가 무례를 저지른 점,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일이 끝나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테니 염려 놓으십시오.”


“아, 아뇨. 괜찮아요. 사실 종조부님이 유치하게 한 대주를 도발한 것도 있거든요. 자업자득이죠 뭐.”


심하령은 다행히도 앙심을 품지는 않은 것 같다. 이에 안도하며 고개를 드니 심하령의 얼굴이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모든 것을 밝힌 다음부터는 뾰로통하던 얼굴이 미미하게나마 풀어져 있었다. 석상같던 소렌의 표정을 읽어내던 내 눈썰미니 틀리지는 않을 텐데.


아무튼 그녀가 기분이 나아졌다면 그걸로 족하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다시 수련을 하기 위해 검을 쥐었다. 그러나 그 순간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감각이 느껴져 흠칫 놀라서 검을 떨어트릴 뻔 했다.

그것을 다시 확 잡아채면서, 나는 내 몸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이 다시 한 번 놀랐다. 무의식에 지배당한 다음에는 늘 엉망이 되었었는데 이번에는 멀쩡하다. 얼마 움직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분명 이건 변화였다. 각고의 노력이 맺은 자그마한 열매였다.


“괜찮군.”


웃음도 잠시다. 나는 이 기분을 안고 다시 검을 휘둘렀다. 내 길은 틀리지 않았다. 무의식에 과연 어떤 괴물이 잠들어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괴물과의 줄다리기에서 처음으로 승산을 엿보았다. 그렇다면 좀 더 힘껏 줄을 잡아당길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지.


그렇게 오늘도 나는 지루한 수련과 함께 하루를 마쳤다. 검문을 떠나온 지 어언 닷새가 되는 때의 일이었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주인공이 오랜만에 허세 좀 부리는구나. 문제는 진짜 허세일지도 모른다는 점.

혹시 여러 편을 이어서 볼 때  뭔가 이상해 보이지 않으신가요? 이상한 점이 있다면 서슴없이 지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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