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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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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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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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11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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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 둔재지로(鈍才之路) (2)

DUMMY

또 다른 부탁들을 들어주기 위해 심하령은 곧장 검문을 나섰다. 그런 그녀를 배웅한 다음, 나는 곧장 검문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다. 내가 소문주가 아니었다면 결코 멋대로 들어갈 수 없는 그곳으로. 그곳에서 나는 마음 한구석을 쿡쿡 쑤시는 가시를 빼낼 것이다.


“아버지, 소자 군입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검문 안에 조성된 대나무 숲 앞에서 나는 조심스레 인기척을 냈다. 잠시 후, 대나무 숲에서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숲에 들어오는 것을 허하는 말이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대나무 숲을 가로질러 당도한 곳은 아무것도 없는 평탄한 땅이었다. 그 한가운데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한 손에는 협봉검을 쥐고 다른 한 손은 뒷짐을 지고 있으며, 한 일자로 다문 입과 대나무처럼 꼿꼿한 자세에서 절정고수의 풍모가 엿보인다.


저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몰랐을 때는 그저 무뚝뚝한 검객으로만 보였지만 직접 저 경지를 체득하고 나니 확연히 보인다. 아버지는 강하다. 단지 무공뿐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완성되어 가는 모습이 역력했다. 천의검문이 무림의 기둥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다.


“그래.”


아버지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는 나를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 아이도 인사를 하고 갔지.”


“심 소저 말씀이십니까?”


그때 아버지가 눈썹이 꿈틀했다. 이런, 내가 무언가 실수를 한 걸까? 하지만 의복도 깨끗한 것을 입었고, 별다른 실수를 한 게 없는데 왜 저리도 심기가 불편해지셨을까?


“아직도 그 아이를 그렇게 부르느냐?”


“.....아직은 그렇습니다. 혼례를 올리기 전에는 쉽게 말할 생각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심하령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에 그리 한 것이지만 워낙에 습관이 되어 입에서 통 떨어지지 않는다. 이에 아버지는 별다른 말없이 화제를 넘겼다. 참 다행히도 말이다.


“과연 그 아이가 말한 대로다. 확실히 변했어.”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허리에 찬 검에 손을 얹었다. 허나 늦었다. 아버지의 검이 내 목을 노리고 짓쳐들었다. 죽는다. 이대로 있으면 죽는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고 죽는다. 백윤이 또다시 천의검문을 집어삼키고 무림을 멸망으로 이끌 것이다. 그리고 서역마저도 멸망하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 죽을 수 없다.


“크윽!”


나는 바서질 정도로 강하게 이를 악물고 검을 빼들려 했다. 그러나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비루한 몸은 내 정신이 원하는 만큼 움직이지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다. 이대로 끝인가? 분하다. 하지만 도리가 없다. 그렇게 나는 죽었다.


“허억!....”


목줄기를 움켜쥔 죽음의 손길이 돌연 사라진다. 나는 부릅뜬 눈을 깜빡이며 뻣뻣하게 굳은 목에 손을 댔다. 상처하나 없다. 아니, 상처가 생길 리 없었다. 아버지는 실제로 검을 뽑은 적이 없었다. 다시 말해서 이건 살기에 의한 착각이었다.


“바뀌었다는 말은 부족하다. 확실히 성장했구나.”


“......시험해 보신 겁니까?”


죽음 직전에 몰려 있던 나는 간신히 입을 열어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렇다.”


기가 질린다. 하지만 웃음이 먼저 나왔다. 나는 둔재였지만 정말로 천운을 타고난 놈이다. 더없이 헌신적인 정혼자를 두고 있는데다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내게 누구보다 좋은 가르침을 줄 사람이라니. 이런 환경에서 반쯤 자포자시해서 타성적인 수련만 일삼았던 내가 한심스러웠다. 그렇기에 지금은 오히려 가슴이 벅차올랐다.


“백 소협을 제자로 들이셨다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도 없다. 그러나 이건 부정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기에 아무런 말씀도 없으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만일 그가 검문에 위협이 되면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럴 것이라 생각하느냐?”


아버지는 백윤을 이익이라 여겨 문도로 받아들이셨을 것이다. 설령 내게 패배했더라도 백윤의 능력은 발군이었으니 말이다. 말하자면 이 역시 피할 수 없는 필연이리라. 단순히 내가 바뀌는 것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필연.


“위 장로와 백 소협의 분위가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제가 나오니 서로 시선을 주고받더군요.”


아버지는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다. 어느정도 짐작하셨던 모양이군. 어느 정도 내가 사라진 다음 벌어진 일이 상상이 된다.

아버지는 의심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고지식하게 백윤과 위 장로간의 관계를 머릿속에서 밀어내신 게 분명하다. 아버지는 강하다. 두 사람이 적이 된다면 단숨에 베어버릴 힘이 있기에 공명정대한 의지를 관철하셨을 게 분명하다.


“어찌하기를 바라느냐?”


아주 오래 전부터 아버지는 중대사를 결정하기 전에 내 의사를 물어오셨다. 그때마다 나는 어영부영 대답을 미루거나 애매한 대답을 늘어놓기만 했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번에도 애매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의미는 완전히 달랐다.


“그냥 두어도 무방하다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아무리 힘을 써 봐야 결국 두 사람일 뿐. 설령 백 소협이 사파의 세작이라 해도 지금으로선 검문에 해가 되지 못합니다.”


“백윤이 마제(魔帝)의 소생이라 해도 말이냐?”


나는 흠칫 놀라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아시는군. 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 힘껏 머리를 짜냈다. 그러나 대답의 형태를 잡기도 전에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네 판단은 옳다. 나는 백윤과 독대하여 많은 것을 알아냈다. 위 장로가 파천마제의 수하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파천마제가 없다. 파천마제는 물론이고 사파 자체가 마물들에 밀려 지리멸렬하고 있다.”


강자존이라는 사고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더욱이 그 구심점이 사라진 상태였기에 내분이 심각하기도 했지. 아버지는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을 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사파이든 정파이든 기회를 줄 것이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천의검문의 한 사람이 천의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철저히 실리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의지다. 이건 모순되지만 저 말을 설명하는 유일한 말이었다. 나 역시 그런 아버지를 본받아 끊임없이 검도를 추구했던 만큼, 저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허나 아버지는 모른다. 때로는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거짓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아버지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는 것이 있음을.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떠벌리는 대신 지금은 아버지라는 거목에 기대기로 했다.


“문주의 결정에 여부가 있겠습니까? 소자, 분골쇄신하여 검문에 힘이 되겠습니다.”


아버지는 내 말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나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지레짐작일까? 기왕이면 아니었으면 좋겠군. 언젠가 아버지께 드릴 부탁이 있으니 말이다. 우선 지금은 작은 부탁을 청하도록 하자.


“그 대의에 앞서, 소자 청이 있습니다. 검문 밖에서 기거할 것을 허하여 주십시오.”


“이유가 있느냐?”


예전에도 이런 부탁을 드렸던 때가 있었지. 백윤의 재능에 자괴감을 느끼고 도망치려 했던 때가. 그때를 떠올리며 나는 그때와는 다른 이유를 들어 보였다.


“홀로 폐관수련에 매진하고 싶습니다.”


“내 가르침이 못 미덥다는 말이더냐?”


아버지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금방이라도 아버지의 살기가 내 목줄기로 날아들 것 같아, 나는 몸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부디 아버지가 이런 내 반응을 나쁘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과할 뿐입니다.”


“과함은 곧 부족함이니. 결국 내가 모자라다는 말이구나.”


말장난 같은 문답이군. 여기서 어영부영하다가는 결국 아버지의 뜻대로 된다. 그렇기에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느껴지신다면 그게 맞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아버지는 제게 가르침을 주실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내뱉고 나는 다시 살기가 날아들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없다. 너무 조용하다. 바람소리가 대나무를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만 자욱하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눈을 보았다. 그리고 눈물이 왈칵 치솟을 것만 같았다.


“그러하더냐.”


구구절절한 변명 없이도, 아버지는 나를 믿었다. 기쁨과 놀라움. 그리고 죄스러움이 뒤섞여 콧잔등과 눈가를 찌릿하게 찔러댔다. 절정의 무인이 되어서도 아버지는 못난 아들의 말에 고개를 숙일 줄 아시는구나. 아직 이 못난 아들을 믿고 계셨구나. 이것이 천의검문의 문주, 정천검(貞天劍) 도윤형이라는 사람이구나!


그제야 나는 내가 과거 무슨 짓을 해버렸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믿음을 배신했던 것이다. 나는 백윤을 가르치는 게 더 기쁠 거라 말했다.

그렇지만 그건 개소리다. 아버지는 누구에게나 천의로의 길이 열려 있다 믿고 계셨다. 그 믿음을 저버리고 검을 버린 건 나다. 그리고 아버지는 내 생각을 존중하여 검을 억지로 쥐여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 소자..... 물러가겠습니다.”


여기서 느닷없이 울기라도 하면 나는 정신 나간 놈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버지라면 이런 것도 이해하실지 모르지. 내가 나를 스스로 병신 같은 놈이라 여길 뿐이다.

그렇게 나는 재빨리 몸을 돌려 한껏 시큰해진 얼굴을 아버지의 눈에서 치웠다. 그리고 그대로 온 힘을 다해 대나무 숲을 빠져나갔다.


“빌어먹을....”


나는 울었다. 백윤이 나를 모독했을 때, 토리나가 죽었을 때, 소렌에 구원을 받았을 때처럼 하염없이 울면서 달려 나갔다.


“정말 해낼 수밖에 없잖아. 해내야만 하잖아. 나는.....”


나는 누가 볼세라 전력으로 경공을 운용해 검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정말 한껏 소리 내어 울었다. 앞으로 쌓일 눈물을, 나는 그때 모조리 쏟아내었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평소같으면 한 편이 1만자에 육박했을텐데 자주 올리려니 확실히 한계가 보입니다. 기계처럼 글을 써내기에는 아직 공부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연참을 하면 양은 더 많겠지만 왠지 작품 자체의 질이 더 떨어지는 기분도 듭니다. 전체 편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지 매의 눈으로 잘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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