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rior Strug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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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개
작품등록일 :
2013.01.31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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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0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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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7.23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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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연 (6)

DUMMY

“안녕하세요! 저는 천의검문 제일의 권사! 설초아입니다!”


지금 내 눈앞에는 긴 머리를 한 줄로 땋은 소녀가 헤실헤실 웃으며 철장갑을 낀 양 손을 한데 모아, 포권지례를 취하고 있었다. 저리도 포권이 안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냥 꾸벅 고개를 숙이는 게 더 분위기에 어울릴 것 같다.


“한 대주님. 설마 저분이....”


“그렇습니다. 우리와 함께 동평왕의 땅으로 갈 일행입니다.”


한상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인정하니 심하령이 노골적으로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짚었다. 한상염과 함께 나온 이는 놀랍게도 채 약관도 되지 못한 소녀였다. 저런 앳된 소녀가 천검대면, 역시 천재겠지. 어쩐지 그리 생각하니 저 소녀와 동행하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는다.


“한 대주님. 아시겠지만 이 일은 단순히 동평왕의 땅에 다녀오는 게 아닌데요.”


심하령의 어조가 흡사 나를 대할 때처럼 변했다. 남에게 저런 태도를 보일 정도라면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군.


“걱정 마십시오. 미욱하게 보이더라도 초아는 동평왕의 땅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길잡이로는 탁월합니다.”


“저도 길은 잘 알거든요 사실은.”


심하령은 설초아라는 소녀에게 다시 시선을 주었고 이에 설초아는 생글생글 웃으며 심하령에게 한걸음 다가갔다. 이에 흠칫 놀라서 뒤로 물러서며, 심하령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시죠?”


“무슨 일이라니요? 그냥 언니가 너무 예뻐서요.”


재지가 넘치는 그녀도 이런 소녀에게는 대처할 바를 모르겠는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이런 면을 알아차렸는지, 설초아는 더더욱 심하령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우와, 화장도 하나도 안 했네요. 근데 어쩜....”


“초아야. 무례하구나.”


한상염의 말이 떨어져서야 설초아는 몸을 빙글 돌려서 심하령에게서 멀어져갔다. 그제야 마음이 진정되는지, 심하령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아직 소녀의 치기는 그칠 줄 몰랐다. 이번에는 내 차례인가?


“소문주님.... 맞으시죠?”


“그렇습니다.”


나는 착 가라앉은 기분으로 대답했다. 설초아의 행동거지는 하나부터 전부 내 마음을 진창에 빠트리고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 저렇게 처음부터 살갑게 굴었던 이는 하나 뿐이다. 토리나 볼마르그. 그녀가 떠오르니 자연히 나는 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흐음, 문주님은 멋있는데 소문주님은 별로.......”


“어허, 초아야!”


급기야 한상염이 설초아의 뒷덜미를 잡아채서 그녀를 내게서 떨어트려 놓았다. 그리고는 내 표정이 굳은 것을 알아채고는 그 자리에 부복해서 사죄를 구했다.


“소문주. 용서하십시오. 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대원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서...”


“괜찮습니다.”


한상염의 고함소리를 듣고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설초아는 토리나가 아니다. 그리고 그 일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다. 토리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 볼마르그 공작과 그 뛰어난 자식들이 토리나를 지켜줄 것이 분명하다.


“초아 너도 사죄를 드려라.”


한상염이 연신 그녀의 머리를 꾹 눌러 심하령과 내게 사과를 하게 만들었다. 심하령은 여전히 떨떠름하게 인사를 받아주었고, 나는 인사를 받아 주는 대신 딱딱한 태도로 물었다. 난 아직 완전히 기분이 풀린 건 아닌 모양이다.


“그런데 그 짐은 뭡니까?”


나는 한상염이 짊어진 큼직한 짐을 바라보았다. 모포나 건량 따위를 넣은 짐 치고는 너무 크다. 뭔가 다른 게 들어있을 텐데 과연 뭘 집어넣었을까?


“봐요 대주님. 이거 안 될 거라고 했잖아요.”


설초아가 싱글벙글대며 말했다. 이에 한상염은 대꾸도 하지 않고 큰 짐덩이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초아의 수련을 위한 물건들입니다. 무게를 늘린 검이나 허수아비, 모래주머니. 그리고....”


“한 대주님.”


심하령이 꽤 싸늘해진 목소리로 한상염의 말을 끊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과 함께, 심하령이 단호하게 말했다.


“왜 그런 걸 가져가지는 거죠? 혹시 제가 목적을 착각하고 있나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두 분께 폐가 되는 일은 없을 테니 염려 놓으십시오.”


“폐가 되고 안 되고는 그 때가서 볼 일이지요. 그리고 저 분이 우리 일이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네요. 그러니 당장...”


“됐습니다. 저희도 약간 준비를 해야 하니 먼저 정문에 가 계십시오.”


나는 심하령의 말을 가로채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한상염이 진심으로 감격해서 몸을 낮추었다. 반면 설초아는 조금 어두운 얼굴로 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군. 나는 그녀가 무엇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


“도 공자. 대체 무슨 생각인가요?”


천검대의 두 사람이 사라지자마자 심하령이 은근슬쩍 나를 쏘아보며 물었다. 겉으로는 질문이지만 실상은 질책이나 다름없다.


“뭐가 말입니까?”


“천의검문만 제후와의 협력에서 밀려나면 어떻게 되는지 자세히 설명해 드려야 하나요? 한 대주가 함께라도 해서 짐을 더 늘려서 어쩌자는 건가요?”

“정 그렇다면 짐은 좀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그 짐 말고 설초아라는 사람 말예요. 공자께서는 안목이 정말 형편없군요.”


심하령은 그리 말하고는 뒤늦게 주위를 살피고서 나를 인적이 뜸한 곳으로 이끌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 거처 근처에 도착했고, 그제야 심하령의 타박이 이어졌다.


“설초아라는 사람, 어때 보였나요?”


“꽤 훌륭해 보였습니다. 같은 또래 중에서는 상대가 없지 않을까요?”


나는 저 또래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서역과 비교한다면 설초아의 실력은 꽤 출중한 편이었다. 그러나 심하령의 기준은 나보다 훨씬 엄격한 모양이다.


“확실히 나이에 비해 실력은 뛰어나 보였어요. 하지만 그 정도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한 대주가 아무리 강해도 저만도 못한 하수를 데리고 무슨 실력을 발휘하겠어요?”


“그건 소저께서 너무 출중하신 까닭이 아닐까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 소저께서는 본래 한 대주의 조력도 염두에 두지 않으신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그렇다면 한 대주가 제 실력을 발하든 아니든 상관 없지 않습니까?”


내 추측에 심하령의 말문이 막혔다. 예상대로다. 한상염을 보고 당황했던 건 확실히 그래서였군. 나는 심하령이 입을 다문 틈에 방으로 들어가 몇 가지 것들을 챙겼다. 그런 나를 쫓아서 방으로 들어온 심하령이 재차 나를 압박해왔다.


“그건 너무 상정 외였기 때문이에요. 아직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는 이에게 공자의 실력을 드러내서는 안 되잖아요.”


“그는 적이 아닙니다.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러시겠죠. 사람 마음까지 읽을 줄 아신다니, 참 훌륭해지셨네요. 그것도 저 천의결 덕분인가요?”


심하령이 방 한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심코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을 돌린 나는, 가운데장이 뜯겨져 나간 채 바닥에 널브러진 천의결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아닐 겁니다.”


나는 천의결을 익히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직 익히지 않았다. 나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천의결을 체득하였고, 지금은 내가 천의결을 터득하기 전이다. 실제로 천의결이 발하는 기이한 직감은 꿈에서 깨어난 이례로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적이든 아니든 상관없을 겁니다. 일단 대외적으로 저는 진천을 터득한 소문주입니다. 그렇다면 섣불리 저를 얕보지는 않겠지요.”


한상염에게서 느낀 진심을 전할 자신이 없기에, 나는 나름대로의 이유를 붙여서 설명을 해 주었다. 다행히도 그녀는 꽤 놀란 얼굴로 내 설명에 납득해 주었다.


“그렇군요. 일단 의심을 거두면 그런 식으로 볼 수도 있네요.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이번에는 제 생각이 짧았어요.”


나로서는 심하령이 자연스럽게 사과를 건네는 것이 더 놀랍다. 사람 이전에 옳고 그름을 저리 쉽게 알아채고 인정하는 자세는 결코 쉽게 얻는 것이 아니다. 심가장의 미래는 참으로 밝구나. 저런 후계자가 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심가장이 무너지는 일은 없을 테지.


“그렇지만 이상한 점은 있어요. 한 대주가 굳이 설초아를 데려가는 점이요.”


“설 소저가 수상하다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네. 수상해요. 너무 스스럼이 없는 거야 천성이라 해도 권사를 자처하는 자가 천검대에 있다니요? 어쩌면 위 장로가 개입되었을지도 몰라요. 백윤처럼요.”


권사가 천검대에 있다는 건 확실히 이상해 보인다. 그러나 내 무인으로서의 직감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마 설 소저는 검에도 능할 겁니다. 다만 본인이 권에 더 관심이 있을 뿐이고요”

“어떻게 확신하시죠?”


나는 말문을 잇지 못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무공이 하나 뿐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흠, 어쩌면 천의결 덕분......은 아니고,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농담처럼 말하려다 나는 무언의 살기를 느끼고 말을 바꾸었다. 심하령은 정말로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걸 싫어한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되는군.


“그렇군요. 그게 사실이라 한다면 굳이 한 대주가 수련생에게나 필요할 것들을 가져가는 것도 조금은 납득이 되네요. 검에 관심이 없는 천검대원에게 검을 억지로 가르치기 위함이라면...”


“그렇다면 아마 이 행로도 그 일환이겠지요.”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천의결을 집어들며 말했다. 그리고 무심코 천의결을 가볍게 넘겨 보며 구결을 되뇌었다. 그러다 문득 나는 내가 또 천의결을 원하려 함을 깨닫고 얼른 천의결을 책장에 꽂아넣었다. 천의결의 구결을 익히는 순간 다시 혼돈의 유혹이 들려올 것 같았다.


“어떻게 됐든 정말로 한 대주를 다시 봐야겠군요. 공과 사를 이리도 구분하지 못한다니.”


그렇게 보이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한상염이라는 사람에게 공과 사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는 천의검문에서 태어나 천의검문에서 죽을 사람이다. 설초아를 검문의 일원으로 만드는 일은 결국 검문을 위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도 그걸 알고 한상염에게 모든 걸 위임하셨겠지.

한상염이 이런 괴상한 선택을 한 이면에는 여러 일을 한 번에 치르면서도 임무를 완수할 자신감이 있을 것이다. 정말 세상에는 너무 괴물 같은 사람이 많아. 새삼 내 자신의 능력이 정말로 미약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나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감상이나 비평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작가의말

사실 새로운 얼굴이 아니라 소렌이 천검대로 나올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도군이 없는 서역에서 적수를 찾지 못하고 소렌이 무림으로 온다는 떡밥은 이미 존재하거든요. 하지만 아쉽게도 시간대도 잘 안맞고, 여태 소렌이 있다는 걸 몰랐다는 게 말이 안돼서 기각했습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별 내용도 없는데 한편이 지나갔네요. 앞으로 오타는 연참대전 이후에 수정하겠습니다. 알고 보니 연참대전 중에 수정하려면 신고(?)를 해야 하더라고요. 오타는 그 범주에 안 들지도 모르지만 혹시 모르니 유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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