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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려은
작품등록일 :
2011.07.03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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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3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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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6.10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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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La~port Liarta - 18장 폭풍우 #03

DUMMY

제 18장 폭풍우 #03



아란의 눈이 머문 끝, 풍찻간의 거의 끝인 4,5층높이쯤 되어 보이는 높이에는, 사람이 지나다닐만한 크기의 창문이 하나 있었다. 아무래도 풍차를 청소할 때 열던 게 아니었을까 싶은 창문이었다. 그 창을 통해 밖에 비가 부슬부슬 쏟아지는 게 보였다. 그런데 그 높이 까지 램프불이 닿지 않는 탓에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높이를 가늠한 아란은 램프를 집어 들고 말했다.

"루치야. 저위에 창이 하나있어. 보여?"

"응? 어, 응. 보여. 그런데 저길…."

"내가 한번 올라가 볼께. 그래서 뭐때문에 문이 열리지 않는지도 보고, 혹시라도 디딜만한 게 있으면, 저쪽을 통해서 밖으로 나갈 수 있을 지도 몰라."

"뭐? 너무 위험해 아란!!"

루치야는 아란의 말에 질색한다. 그도 그럴 것이, 위쪽은 어두운데다. 눈어림으로 봐도 상당히 높았다. 설사 저위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다하더라도,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위험했다. 설사 디딤돌이 있다하더라도 빗물로 미끄러워져 있을 터,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땅바닥에 처박히는 건 순식간이다. 높이만하더라도 12~14미터 정도, 그냥 떨어지면 아무리 대단한 아란이라 하더라도 즉사다 즉사.

그렇지만, 아란은 괘념치 않는 듯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램프를 좀 가져갈게. 저 위쪽은 안보여서 위험할 것 같아. 일단 올라가보고 안되겠다 싶으면 바로 내려올게."

"그, 그래도…."

"그럼, 루치야도 같이 올라가자. 그럼, 내가 혹시 실수해서 위험해져도 루치야가 구해 줄 수 있잖아.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방법은 저 길밖에 없다구. 혹시, 여기서 밤새도록 죽치고 있을 수는 없잖아?"

"그, 그렇지만…. 하아, 알았어."

아란의 말에 루치야는 반론을 하지 못하고 아란을 따라간다. 수조 옆으로 도착한 아란. 수조를 내려다본다. 꽤나 깊이 있게 물이 차있었다. 그리고 저쪽 밑에 뚫린 구멍으로 물이 조금씩 빠지고 있어 물이 차도 일정수준이상 올라오지 못하도록 되어있었다. 의외로 깊은 수조를 보자 흔들리는 아란, 그러나 심호흡을 함으로써 다시마음을 다잡는다.

"후우, 루치야 잘 따라와야 돼."

"알았어."

램프의 손잡이를 입에 문 아란이, 수조의 턱을 밟고 올라가 사다리 위로 올랐다. 그리고는 천천히 한손한손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루치야도 아란의 뒤를 따라 사다리를 올랐다.

사다리는 철제였는데 빗물과 습기 때문에 축축했고, 미끌미끌했다.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는 사다리를 놓치고 저 밑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축축하게 수분을 머금은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손바닥 안에서 느껴진다. 아란은 조심스레 사다리를 올랐고, 부지런히 손과 발을 놀린 결과 간신히 큰 창문이 있는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란은 한손으로 사다리를 잡고 램프를 들어 이리저리 비춰보았다. 다행히도 발을 디딜 수 있을 정도의 디딤돌이 있었다. 아란은 그 위에 올라서서 루치야에게 말했다.

"루치야. 조금만 힘내, 여기 발을 디딜 수 있는 돌이 있어. 물론, 그야말로 그냥 디딜 수 있는 정도이지만…."

"으, 응."

루치야는 아란이 비춰준 디딤돌 위로 올라섰다. 정말 발 한 칸 올라갈 정도의 작은 공간이었지만, 사다리 끝을 잡고 있으니 그럭저럭 버틸만했다.

아란은 램프를 들었다. 나무로 이리저리 이어진 대들보와 풍찻간의 천정이 드러났다. 평소에는 몰랐지만, 무지 낡아 보였다. 비에 잔뜩 쩔어있는 그것들은 빗물을 바닥으로 뚝뚝하고 떨어뜨리며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들보 사이로 낡고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거미줄을 잔뜩 머금은 채 자리하고 있었다. 한때 이 마을에 풍요로움을 가져다 줬던 풍차는 이미 정지한 상태다. 사용하지 않은지 십 몇 년은 되어버린 이 풍찻간의 기계장치는 그렇게 다 된 수명을 끌어안고 죽어있었다.

"후우…."

아란은 그렇게 적당히 풍찻간 천정의 감상을 마치고는 아래쪽을 내려다본다. 램프를 들고올라와서 그런지 아래쪽은 새카만 어둠에 삼켜진 상태였다. 검은 수조에 램프를 든 아란의 모습이 조그맣게 비쳤다. 꽤나 높다 여기. 아란은 아찔함을 느끼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문제의 창문을 돌아보았다.

-덜컥덜컥!

창문은 비바람에 의해 심하게 덜컥거리고 있는 상태였다.

"아란, 왠지 위험할거 같은데?"

루치야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창문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비가 다닥거리며 유리창을 시끄럽도록 때린다.

"바람이 좀 세게 불긴하겠지만,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을 꺼야."

아란은 루치야를 안심시키려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램프를 비춰 창문을 살펴본다. 창문은 밖으로 여는 미닫이인 것 같았다. 중간에 고리가 걸려있었다. 그러나 그 외의 잠금장치는 되어있지 않은 것 같았다. 아란은 고리를 걸쇠에서 빼내기 위해 램프를 루치야에게 건넨 뒤, 손을 고리에 가져갔다.

"뺀다?"

-끄덕끄덕

아란이 루치야를 돌아보며 말하자, 루치야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사다리와 램프를 쥔 두 손에 힘을 넣었다.

-딸깍!

생각 외로 고리는 걸쇠에서 너무 쉽게 빠져나왔다. 그리고선 아란은 한쪽창문만 활짝 열었다.

-쾅!

-휘유우우우우우~ 쏴아!!!

하지만, 그러자마자 새 찬 비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와 아란의 얼굴을 강타했다. 휘청거리며 비명을 지르는 아란.

"우, 우왁!"

"아, 아란!!"

놀란 루치야가 아란을 불렀다. 그래도 아란은 휘청거리기 만할 뿐 다행히도 사다리를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아란은 간신히 중심을 잡은 채, 십년감수했다는 표정으로 루치야를 보고선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아~."

루치야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란은 쏟아져 들어오는 빗물세례를 그대로 맞으며 고개를 조심스럽게 밖으로 내뻗어 보았다. 그리고는 저 밑을 쳐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철문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건 세로로 땅속에 박힌 거대한 나무판때기였다.

"헉, 뭐야!"

얼핏 보면 거대한 톱이 땅속에 콱 꽂혀있는듯 한 모양이었다. 기가찬 아란은 그 나무판때기를 자세히 본다. 알고 보니 그건 풍차의 한쪽날개였다. 왼쪽 위를 올려다본다. 역시나 풍차의 한쪽날개가 부러져 3장의 날개가 비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풍차 날개 한 짝이 거센 폭풍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져 나간 것 같았다.

"좀, 어때!!"

루치야의 외치는 목소리가 바로 뒤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바람에 섞여 아스라히 들린다.

"좋지 않아. 우리 힘만으로 철문을 여는 건 무리겠어!! 풍차날개가 부러져서 그게 철문을 틀어막고 있어!!"

"뭐!? 진짜!?"

루치야는 깜짝 놀란다. 루치야도 간신히 고개를 내밀어 철문 쪽을 내려다보고는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하지? 아란? 우리 그럼 갇히는 거야!?"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저 밑으로 뛰어내리는 건 어때, 이 위에서…!!"

아란은 고개를 내민 채로 아래쪽을 내려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루치야는 고개를 흔들면서 말한다.

"아니, 무리야. 이 높이에서는 떨어지면 위험해. 운이 나쁘면 그대로 죽을 수도 있다구!!"

"그래!? ……후우, 그럼 어떻게 하지!?"

낙담한 아란.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란의 질문에 루치야는 자기쪽 창문을 닫으며 말했다.

-탁!

"일단, 내려가자. 내려가서 어떻게 방법을 강구하면 떠오를지도 몰라."

"…알았어."

결국 아란은 루치야의 말에 수긍했다. 루치야 말대로, 앉아서 머리를 맞대면 어떤 방법이 떠오를지도 몰랐다. 아란은 먼저 사다리위로 오르며 말했다.

"루치야. 내가 먼저 내려갈게. 램프 줘."

"응, 여기."

아란은 램프를 받아물고 천천히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사다리 자체에 물이 잔뜩 묻어있었기 때문에 미끄러지기 쉬웠으므로 한발자국씩 조심조심 옮겼다. 손이 시커멓게 되었겠다. 아란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며 조심스레 사다리를 내려왔다.

루치야도 비가 들이치는 창문을 닫고 처음처럼 고리를 걸어놓고선, 먼저 내려가는 아란을 따라 사다리를 타고 내려간다.

아란과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그러다, 아차 싶었다. 방금 생각났다. 지금 그러고 보니 자신은 치마를 입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아란이 램프까지 물고 있어 고개만 올려다보면 치마속이 훤히 들여다보이게 된다. 그것도, 조명까지 훤히 비추는 채로 말이다.

루치야는 그제서야 자신이 먼저 내려갈걸하며 후회한다. 다급해진 루치야는 아란에게 허둥대며 말했다.

"아, 아란! 저, 절대 위쪽 올려다보면 안 돼. 응?"

"읍응? 읍응, 왜?"

그러나, 아란은 그때마침 루치야의 말에 아무런 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다.

"꺄악! 아, 안 돼!! 아란!!"

"읍, 으압!!!"

루치야는 아란이 무심코 고개를 들어버리자, 너무도 놀라서 치맛자락을 한손으로 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아란도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다가, 루치야의 치맛자락이 눈앞을 어지럽히는데다 루치야의 자지러지는 듯 한 비명소리가 들리자, 놀래서 램프를 입에 문채 덩달아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그게 실수였다. 루치야는 그 과민반응 때문에 그 순간, 자신의 몸을 사다리에 지탱해주던 생명 같은 오른손이 미끌려 버렸다.

-미끌

"아!…"

"읍!?"

루치야의 오른손이 사다리에서 떨어지자 몸이 천천히 밑으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루치야는 아차 싶었다. 아란도 루치야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나가자 너무도 놀랐다.

소녀의 몸이 바닥으로, 바닥으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소녀는 자신의 실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허공으로, 허공으로 떨어졌다.

-탁!

하지만, 그때 마침 다행히도 아란의 오른손이 루치야의 오른팔을 낚아챘다. 루치야는 아란의 팔에 매달려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아, 아란…."

"으,읍!! 으읍!!"

아란의 램프를 문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아란도 어느새 미끄러졌는지 왼쪽팔만 사다리를 꽉 붙잡고 매달려 있었다. 루치야는 놀라움과 고마움 그리고, 미안함이 골고루 섞인 표정으로 아란을 바라본다.

"꽈,꽙잡압!!" (꽈,꽉잡아!!)

꽉 잡으라는 뜻이리라. 아란은 간신히 몸을 추슬러 사다리에 매달린다. 다리를 사다리에 걸치는데 간신히 성공했다. 이제 오른손에 매달린 루치야를 자신의 밑의 사다리로 붙잡게만 하면 한시름 덜게 되리라. 그래, 그럴 수 있다면 말이다.

-뿌직…

그 순간, 뭔가가 부서지는 듯 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란은 그 소리와 함께 사다리가 조금씩이지만 기울어지고 있다고 느껴졌다. 아란은 황당한 눈초리로 사다리를 훑어본다.

그런데, 이럴 수가 철제사다리를 벽에 고정시켜 주고 있던, 못이 튀어나오고 있는 게 아닌가. 아란은 그 광경에 자신의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아까 루치야를 잡을 때, 가중된 무게가 사다리에 무리를 주게 된 것 같았다. 그러자, 이렇게 가장 약한 부분이 꺾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란이 발을 디디고 있는 부분, 바로 그쪽부분이 꺾이기 시작했다. 아란은 아래쪽을 내려 보았다. 반쯤 내려오기는 했지만, 아직 밑은 3층 정도 높이의 무시무시한 높이였다.

그러는 순간에도 사다리는 꺾이고 있었다.

"어, 어…"

"어, 어, 어…"

-팅!

"어, 이런…."

못이 완전히 뽑혔다. 그러자, 사다리는 고삐 풀린 미친 말처럼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꺾이기 시작했다.

-키이이익---!!

"꺄아아악!!"

"우와아아악!!!"

-챙그랑!

철제사다리는 굉음과 함께 정확하게 역 기역자로 꺾임을 멈췄다. 그러자, 매달려있던 둘은 가중된 중력을 온몸으로 느끼며, 아래 수조 속으로 처박혔다.

"꺄악!!"

"우왁!"

-철푸덕! 첨벙! 촤아악!

둘은 사이좋게 나란히 비명을 지르며 수조 속으로 입수했다. 꽤나 넓은 수조 속에 한바탕 물보라가 일어났다.

"어푸! 어푸! 루, 루치야!!"

"푸하! 아, 아란!!"

다행히도, 수조는 충분히 깊어 바닥에 머리를 갖다 박는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란과 루치야는 잔뜩 물을 먹은 채 튀어올라 서로를 찾았다.

"괘, 푸하 괜찮아!? 루치야?"

"푸후!! 콜록! 콜록! 괘, 괜찮아. 아란은?"

"나, 나도 쿨럭!! 딱히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아."

-첨벙 첨벙 첨벙~!

서로의 무사함을 확인한 둘은 대충 헤엄쳐 수조 밖으로 나왔다.

-촤아악!!

둘이 밖으로 나오자, 물을 양껏 먹은 둘의 옷이 -촤악 하고 물을 뱉어냈다. 최악이었다. 둘 다 두꺼운 옷을 입고 왔었는데, 그 옷이 물을 먹자 엄청나게 불어 온몸을 압박하고 있었다. 뭔가 방법을 찾으러 올라갔으나, 대실패. 그리고 덤으로 물까지 먹었다. 이보다 최악일수 있을까. 정말 최악이었다.

잠시 후, 둘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어둠속에서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 앞에는 꺼진 램프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나 아란과 루치야는 어떻게 해볼 방법이 없었다. 지금 둘은 완벽하게 풍찻간 안에 갇힌 상태였다. 철문은 육중한 풍찻날개가 단단히 틀어막고 있었고, 밖으로 통하는 유일한 구멍인 꼭대기의 창문은 올라가는 다리가 똑하고 꺾여버렸다.

내일 누군가가 와서 철문 앞의 저걸 치워주지 않는 이상, 둘은 죽었다 깨나도 여길 벗어날 수 없었다.

게다가, 아까 수조에 빠지면서 램프도 같이 빠지고 말았다. 그래서 불이 꺼져버렸는데 아란이 주머니 속에 넣고 있던 성냥들도 물에 빠지면서 모두 다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 때문에 둘은 불도 없이 어둠속에서 이렇게 젖은 몸을 끌어안고 가만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지금은 여름도 아닌 한겨울이었다. 그런데, 온몸이 물에 젖어 버렸다. 아란과 루치야는 두꺼운 외투는 진작에 벗어 한쪽구석으로 치워버렸다. 물에 젖은 외투는 보온은커녕 몸의 열을 뺏어가기만 할 뿐이다.

그렇다곤 해도, 옷의 물이 마르면서 체온을 앗아가는 건 똑같았다. 이대로 밤을 지새면 십중팔구 얼어 죽으리라, 그럼에도 둘은 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최악이다. 상황은 너무도 절망적이었다.

"후우…."

아란은 추위에 덜덜 떨며 입김을 내뿜었다. 그러자, 어둠속에서 하얀 입김이 모락모락 퍼져가는게 보였다. 아란은 그 광경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란…."

"으,응?"

"추, 춥다…."

"나, 나도…."

문득, 루치야가 말을 걸자. 아란도 마주 대답했다. 정말 추웠다. 아까부터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건 루치야도 마찬가지 인 것 같았다.

그나마 둘은 지금 옷을 말리기 위해 이렇게 하고 있었다. 둘에게 마지막 희망이 있다면, 아란이 평상시에 방석으로 쓰던 모포 한 벌이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그건 물에 젖지 않았다. 그러나 춥다고 바로 모포를 두를 수는 없었다. 온몸이 젖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모포마저 젖어버리고, 둘은 그대로 얼어 죽을 수밖에 없으리라.

그래서, 모포를 두르기 위해서는 온몸의 물기를 말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둘은 이렇게 얼어 죽기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꾹 참고 물기가 마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얼어 죽을 것 같았다. 이빨이 -딱딱딱 자기도 모르게 부딪혔다. 아란은 아까부터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다고 자면 그대로 얼어 죽는다. 아란은 그렇게 생각하고 정신을 다시 바로잡았다.

그리고 지금이게 무슨 짓인가 다시 생각해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오늘 같이 습한 날에 이렇게 무턱대고 옷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간, 둘 다 얼어 죽고 난 다음 내일 정오쯤은 되서야 마를 것 같았다.

계속 이렇게 가다간, 농담이아니라 진짜로 얼어 죽는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아란의 머리를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 그 방법이라면, 그래. 그 방법이라면, 조금 낯 뜨겁긴 해도 아침까지는 어떻게든 견딜 수 있다. 아란은 드디어 최후의 수단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는 진짜 얼어 죽는다.

그렇게 생각을 끝낸 아란은 덜덜 떨리는 입을 힘겹게 열었다.

"루, 루치야."

"으, 으, 응?"

"이, 이대로는 아무래도 주, 죽겠어. 우, 우리."

"아, 아냐. 아, 아란. 희, 희망을 가, 가져."

루치야는 아란의 삶을 포기한 듯 한 말에 끝까지 힘을 불어넣어 주기위해 힘겹게 말한다. 루치야의 생각만큼은 갸륵했다.

"그, 그게 아니라. 나, 아무래도 최후의 방법을 써야할 것 같아. 저, 정말 이것만은 참고 싶었는데…."

"아, 아란? 뭐, 뭔데? 바, 방법이 있어?"

최후의 방법이라는 아란의 말에 혹한 루치야는 조금은 밝은 얼굴이 되어 아란을 바라본다. 그런데 방법을 말하는 아란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아란은 정말 괴롭다는 듯,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한다.

"루, 루치야. 미, 미안해."

"으응!? 뭐, 뭔데 그래!?"

"루치야…."

"으, 응?"

"버, 벗어줘야겠어…."

"……."

"……."

"에, 에에에엣!?"

당황한 루치야의 경악에 찬 외침이 풍찻간을 울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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