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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려은
작품등록일 :
2011.07.03 01:44
최근연재일 :
2011.07.03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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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7.13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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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La~port Liarta - 22장 여행자의 밤 #01

DUMMY

제 22장 여행자의 밤 #01


가파른 오르막길 위에는 거대한 성이 있었다. 그 밑은 낭떠러지, 떨어지지 않을까 위태위태해 보이기까지 하는 고성이었다. 성의 아래에는 바로 드넓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성 맨 꼭대기서 본다면 성의 주위가 전부 바다에 포위된 듯 보였다. 바로 커다란 섬 위에 세워져 있는 성이었던 것이다. 깎아지른듯한 절벽 위에 우뚝 세워진 그 성은 그 엄청난 크기만으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오래된 탓인지, 관리를 해주지 않은 탓인지, 여기저기 무너져서 아주 낡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아 황혼빛이 금빛가루처럼 눈부시게 성의 외곽을 비춘다. 그렇게만 보면 굉장히 아름다워보이는 성이었다.

-철컹! 철컹!

그 황혼빛이 비쳐 들어와 주황색으로 군데군데 반짝이는 내성 안을 검은 로브의 마도사가 걷고 있었다.

-철컹! 철컹!

그러나 혼자가 아니었다. 그 주위에는 네 명의 검은 갑주로 전신무장한 기사들이 마도사를 호위하고 있었다. 그들의 갑옷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철컹거리며 요란하게 울렸다. 길을 따라 걷던 마도사는 이윽고, 커다란 홀에 도착했다. 깨진 벽돌 틈 사이사이로 바다위의 노을이 아스라이 보였다.

-철컹! 철컹! 척!

홀의 입구로 들어온, 마도사는 심상치않은 낌새를 눈치 채고 그 자리에 멈췄다. 같이 들어오던 검은 기사들도 마도사를 따라 걸음을 멈췄다. 홀 안은 옛날 교회 미사에라도 쓰이는 곳이었던 듯 예배당 같은 엄숙한 분위기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홀 반대쪽 끝의 강단에는 누군가가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넓은 홀 안이라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웬 남자의 실루엣이었다. 마도사의 인기척을 눈치 챘는지 그는 천천히 돌아본다. 그제야 남자의 외모가 드러났다. 황금빛 머리에 특이한 붉은 눈동자를 지닌 남자였다. 2미터에 가까운 커다란 키에 목 옆의 깃이 빳빳하게 선 검은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말끔한 안쪽의 정장 수트위에 은빛 하프플레이트를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어딘가 기품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 남자는 마도사를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흥! 뭐야. 애송이 마도사인가. 무사한 걸 보니, 갔던 일은 잘 되었나 보군. 그렇다면, 역시 괜히 '카난 최강의 마도사'라는 별명이 붙은 건 아니었구만."

남자의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홀 안을 울렸다. 놀랍게도, 그 남자는 무시무시한 마도사앞에서도 전혀 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히려 반대로, 기쁜듯한 붉은 눈빛마저 뿌리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랜만에 찍어누르고 싶은 상대를 만난 야수의 눈빛이었다.

"오랜만이군요. 모든 뱀파이어들의 로드이자, 마물들의 제왕인 '오르카의 파수꾼'이여."

"그래!"

마도사는 무미건조한 소리로 그렇게 인사치레로 말했다. 그러자, 남자의 입이 미소를 그리면서, 감추어져 있던 날카로운 송곳니가 반짝 빛났다. 그는 바로, 천 년 전 사라진 걸로 알려졌던 마물들의 귀족, 뱀파이어였다!

'오르카의 파수꾼'

세상의 끝이라 불리우는 마물의 섬, 오르크하이리스를 지키고 있다는 괴물이었다. 이런 젊은 남자였다는 게 조금 의외였긴 했지만, 그의 정체는 무려 '뱀파이어 로드'다. 저렇게 보여도 수천년을 살아온 괴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여기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여긴, 마물의 섬 '오르크하이리스'라는 소리였다. 마도사는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런 외진 섬을 찾은 것일까.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마도사는 그 '오르카의 파수꾼'과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뭐지?"

"성배의 행방을 찾고 있습니다. 당신은 알고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혹시, 알고 있습니까?"

"호오? 성배라…."

사내는 마도사의 말에 재미있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진한 미소를 그려 보인다. 그가 그렇게 곰곰이 생각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마도사는 기사들은 입구에 세워둔 채 홀의 중앙으로 나아왔다.

"그러고 보니, 네 녀석이 그런 힘을 가지게 된 것도 '검은성배'의 위력 때문이었지?"

"……."

무언의 긍정, 마도사가 입을 꾹 닫고 있자, 남자는 다시 한번 -피식한다.

"보아하니, 지저미궁에서, '현자의 돌'도 얻은 듯한데, 왜 그렇게 성배에까지 집착하지?"

"이유까지 말하는 거야 어렵지 않으나, 그것까지 당신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요?"

그가 추궁하자, 마도사는 그렇게 반문한다. 한마디로, 당신은 알 필요 없으니 알고 있는 정보나 뱉으라는 소리였다. 그 말에, 이 강력한 흡혈귀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씨익 웃는다.

"그렇다면, 나도 말해줄 의리는 없지. 뭣 하면 힘으로 나의 입을 열게 해보시던가!"

그러면서, 뱀파이어는 망토를 젖히며 팔을 옆으로 쭉 뻗었다. 안쪽이 붉은, 검은 망토가 -펄럭하고 젖혀지며, 검은 가죽 건틀렛과 은빛 가더로 무장한 오른팔이 튀어나왔다. 건틀렛을 낀 검은 손이 공중을 움켜쥐자, 핏빛 마나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며 칠흑 같은 묵 빛 창이 소환되어 그 손에 쥐어졌다.

-콰르르륵! 처억!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마도사는 나직하게 말한다.

"…마왕의 창, 발뭉…. 파수꾼이여. 당신과 싸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크큭, 내빼는 건가? 쥐새끼처럼? '바빌론의 군주'를 쓰러뜨리고는 겁쟁이가 되어버렸나?"

그는 그렇게 송곳니를 씰룩이며 이죽거린다. 그제야, 마도사는 깨달았다. 애초에 이 남자는 자신에게 성배의 행방을 곱게 말해줄 생각 따윈 없었다. 단지, 그는 자신 앞에 있는 강한 상대와 어떤 식으로든 붙고 싶어 안달이 난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마도사는, 그의 강력한 도발에도 고개를 한번 갸우뚱할 뿐이다.

"…이상하군요. 만약, 싸우게 된다 해도, 제가 당신을 다치게 하지 않고 제압할 수는 없을 것 입니다. 정녕, 그냥은 말해 주실 수 없다는 것입니까?"

허나, 마도사의 그 말이 남자의 심기를 다시한번 크게 긁었다.

"하! '제압'? 감히 누구 앞에서 제압을 운운하는 것이냐! 설마 네 녀석의 요상한 술수와 저따위 장난감으로 날 어찌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이 강력한 뱀파이어의 제왕은 황당하다는 말투로 창끝으로 홀의 입구에 서 있는 검은 기사들을 가리키며, 오만한 인간의 마도사를 내려다보았다.

"저의 힘은 저들뿐만이 아닙니다. 지금의 저는 즉시라도 저의 수십만 권속들을 불러내어 당신과 맞서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웃기는군!! 그 말을 들었으니, 더더욱 그냥은 말해주지 못하겠다!! 판데모니엄의 수천만 대군을 홀로 막아서던 나다!! 네까짓 녀석의 장난감 따위는 수십만이 아니라, 수백만이 달려들어도 전혀 겁나지 않는다!"

-웅웅웅~ 처억!

남자는 마도사의 말을 끊으며 외친다. 그는 그렇게 붉은 눈을 빛내고는 마창을 -붕붕 돌리면서 자세를 잡았다. 뱀파이어 제왕의 눈빛이 소름끼치도록 붉게 빛났다. 그러자, 그의 주위로 미증유의 붉은색 거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는 끝으로, 오만한 인간의 마도사를 향해 입을 열었다.

"덤벼라!"

-후우….

눈앞에서 전투태세를 취하는 그를 보고 있던 마도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한번 내쉬고는 눈을 -번쩍 떴다.

'암흑으로부터의 소환!! 현자의 돌!'

마도사의 두 눈동자에 조그만 황금빛 마법진이 그려지며 거대한 암흑의 마력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마도사가 손을 내뻗자, 그 손위로 기다란 스테프가 쥐어진다. 그 스테프의 가장 끝, 바로 그곳에 붉은색 보석이 요사스런 빛을 내뿜으며 빛나고 있었다.

"호오~ 그것이 현자의 돌."

마창의 끝으로 모든 힘을 모으고 있던 뱀파이어의 제왕은 한눈에 그것의 정체를 알아보고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휘오오~

그러나, 마도사의 폭풍 같은 마력의 소용돌이는 끝나지 않았다. 마도사가, '현자의 돌'을 소환하자, 그 뒤로 공중에 거대한 16개의 검은 파문이 일렬로 일어났다. 그 큰 홀을 가득 메울만한 규모였다. 그리고 그 커다란 파문 속에서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한, 강력한 마도사의 권속들이 차례차례 나오기 시작했다.

마도사가 가진 최강의 힘.

'불사의 군단!'

신화의 시절, 세상의 모든 인간을 공포에 떨게하였던, 바로 그 마왕의 권능이 인간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곧, 16명의 완전무장한 죽음의 기사들도 다가와 마도사의 곁을 둘러싸며, 검을 뽑으며 부복했다.

-철컹! 쿠웅!

"마이로드! 명령을 기다립니다!!"

그 압도적인 규모! 죽음을 뛰어넘은 최강의 군단! '불사의 군단'이 마도사의 진군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도사는 조용히 뱀파이어의 제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래도, 저와 싸우시겠습니까?"

어떠냐. 하는, 마도사의 말투. 하지만, 뱀파이어의 제왕은 고개를 숙여 조용히 웃기 시작했다.

"큭큭큭… 큭큭큭…."

"……!?"

"큭큭큭… 크하하하하하!!"

"……."

"재미있군!!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싸울 맛이 나지!!"

고개를 든 뱀파이어의 제왕의 눈빛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더 타오르는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의 기운은 어느 때보다 더욱더 투기로 불타고 있었다. 마도사 뒤의 파문 속에서는 아직도 마도사의 권속들이 밑도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수십만의 불사의 군단 앞에서도 마창 발뭉이 내뿜는 기세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다.

"와라!! 인간의 네크로맨서여!!"

이 강력한 뱀파이어의 제왕은 그렇게 적의 군대 앞에서 크게 호령했다.

-쿠오오오오!!!

-드드드드드드드드드!!

마도사의 손짓에 '불사의 군단'이 진군하기 시작했다. 수십만 대 일. 그 거대한 싸움이 오르크하이리스 전체를 진동시키고 있었다.


사냥꾼 하크의 딸, 애나는 저녁때마다, 산속의 지름길에서 늦게 오는 아빠를 마중나오는 것을 좋아했다. 어려서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와 단둘이서 사는 애나는 올해로 9살이었지만, 마을의 아이들보다 더 성숙하고 쾌활한 소녀였다. 엄마는 없지만, 생활력이 발군이어서, 마을 어른들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한 소녀였던 것이다. 그리고 소녀는 자신을 위해 매일 열심히 일하시는 아빠를 좋아했다. 날마다, 저녁 무렵부터 나와 배고픈 아빠를 위해 빵과 우유를 들고선 기다렸다. 하크는 이런 눈에 넣어도 안 아플법한 딸 애나를 위해 열심히 사냥하러 다녔다. 그래서, 마을 평판도 훌륭한 모범적인 사냥꾼이 되었다.

오늘도 애나는 산길에서 빵과 우유를 들고선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밤이 늦도록 아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해가 넘어간지 꽤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오시지 않는 것이다. 애나는 그래도 끝까지 아빠를 믿고 기다리기로 했다. 주변이 온통 새카맣게 어두워져서 조금 겁이 나긴 했지만, 아빠가 곧 오신다 생각하니 그렇게까지 무섭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탁! 탁! 탁!

그때였다. 누군가가 어둠 속 저너머에서 급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응?"

애나는 빵과 우유를 두 손에 든 채 누굴까? 하며, 궁금해한다. 혹시, 아빠? 애나는 순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빠가 자신이 나와서 기다릴 줄 알고, 걱정이 돼서 급하게 뛰어오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본다. 다시 자세히 보니 가죽모피옷에 모피 모자, 아빠가 맞는 것 같았다. 애나는 기쁜 마음에 앞으로 나가 아빠를 불러보았다.

"아빠!!"

그러자, 달려오던 남자는 애나를 알아보고는 속도를 줄였다. 애나의 예상대로 달려오던 남자는 하크, 애나의 아빠가 맞았다. 그런데 애나를 보고선 반가워하기는커녕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지금 새하얗게 겁에 질린 채, 뭔가에 쫓기는 듯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그는 애나에게 호통쳤다.

"애나야!! 지금 여기서 뭐하는게냐!!"

"에? 아빠 기다리고…."

그러나, 하크는 더 들을 시간조차 없다는 듯이 애나의 팔을 낚아채서 달리기 시작했다.

-탓!

"아앗!!"

아빠를 줄려고 들고 있던, 우유와 빵이 그때 마침,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걸 깜짝놀라 다시 잡으려는 애나는 아빠의 손을 놓쳐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철푸덕!

하크는 갑자기, 딸이 넘어지자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으앙~!"

애나는 땅바닥에서 무릎이 까져 넘어진 채로 피가 나자 울음을 터뜨렸다. 바닥이 온통 쏟아진 우유로 진창이 되어 질퍽거린다. 하크는 신속하게 딸을 일으켜 세우고는 어르기시작했다.

"자, 자, 착하지 애나야. 울음 뚝 그치고…. 이제, 아쉽게도 시간이 없단다. 무서운 사람들이 지금 우릴 쫓아오고 있어."

아빠의 '무서운 사람'들이 쫓아오고 있단 말에 겁을 먹은 애나는 울음을 그쳤다. 그런데 그 순간 저쪽 어둠 속에서 -쉿쉿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빠르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타다닥! 타다닥!

하크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줄 알았다. '그것'이다. 자신을 뒤쫓아오던 '그것!'. 그러나 하크는 그게 자신의 바로 뒤까지 쫓아왔던줄은 몰랐는지 당황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손을 꼭 잡는 존재가 있었다.

"아빠…."

바로 자신의 딸 애나였다. 꽤 겁먹은 듯 그렇게 소녀는 아빠에게 매달렸다. 하크는 그런 소녀를 내려다보고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쪽으로…."

하크는 자신의 딸을 데리고 옆의 수풀 속, 나무 뒤로 들어가 숨었다. 두 부녀가 숨자마자, 저쪽 길모퉁이에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파박! 타닥!

네발로 걷고 있는 그것은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침묵의 순간, 나무 뒤에서 딸을 부둥켜안고 앉아있던 하크는 작은 목소리로 애나에게 속삭였다.

'쉬이~~. 절대로 소리 내지말거라. 저것이 갈 때까지 조심히 기다려야해. 쉬이~~~~.'

애나는 다행스럽게도 잘 알아 들었는지 고개를 조심스레 끄덕이며 아빠에게 답했다.

"크르릉…."

-터벅! 터벅!

한참, 그렇게 그 자리를 맴돌던 그것은 구부정한 허리를 펴고 두 발로 일어섰다. 이윽고, 달빛이 구름 속 에서 모습을 드러내자, 그것의 실체가 드러났다. 놀랍게도 하크의 뒤를 쫓던 '그것'은 늑대도 승냥이도 아니었다. 그것은 헐벗은 사람이었다. 옷이라고는 간신히 여기저기를 가릴만한 누더기만을 걸친 사람. 그런데 사람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게, 그것은 하얗게 뒤집힌 동공과, 입을 벌릴 때마다 보이는 날카로운 송곳니, 도저히 보통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비정상적으로 기다란 손톱과 회색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괴물이 등장하자, -확 하고 뭔가가 썩는듯한 고약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그 그로테스크한 모습에 애나는 벌벌벌 몸이 떨리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저 괴물은 아직, 이쪽을 눈치 채지는 못한 것 같았다.

-킁! 킁!

"크르르…."

괴물은 이상한 듯 그렇게 킁킁대며 냄새를 맡았다. 바닥에 떨어진 우유와 빵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목표물을 찾는 듯 싶었다. 한참을 그렇게 킁킁대던 괴물은, 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앞으로 앞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였다.

-빠직!

괴물이 지나가자, 애나가 긴장이 풀린나머지, 발밑에 있던 나무조각을 밟았던 것이다. 애나와 하크는 그 소리에 기절할만큼 놀랐다.

"크릉…"

그 소리에 괴물은 -홱하고 고개를 돌리며 두 부녀가 숨어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했다.

최악이다. 하크는 그렇게 생각했다. 저 괴물이 이쪽으로 향한다면, 이미 여길 들킨거라고 봐야했다. 이렇게 되면 맞서 싸울수 밖에 없다. 저 추악한 괴물에게 자신의 사랑스러운 딸을 빼앗길 순 없었다. 하크는 울상이된 딸에게 속삭였다.

'무슨일이 있어도 절대, 움직이거나 고개를 들면 안됀다.'

-끄덕끄덕

애나의 그런모습을 보고 하크는 마음을 굳혔다. 하크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괴물을 향해 뛰쳐나갔다.

"야! 이 괴물아!! 덤벼봐!!"

수풀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가던 괴물은 하크가 그쪽에서 뛰쳐나오자, 그곳에서 하크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크는 동물가죽을 벗길 때쓰는 나이프 한 자루를 쥐고는 괴물에게 그렇게 소리질렀다. 하크는 겁이나 덜덜 떨리는 순간에도 어설프게나마 나이프를 휘두르며, 괴물을 견제하려 했다.

"크아아!"

그러나 견제가 먹히지 않았는지, 괴물은 한번 -크르르 하고 가래 끓는 소리를 내고는 하크를 향해 뛰쳐 들었다.

-휘휙!!

괴물의 기다란 손톱이 휘둘러졌다. 하크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며 피하려했다.

-찌익!

하지만, 괴물의 손톱의 길이가 비정상적으로 긴 탓에 앞섶을 스치고 지나갔다.

-치이익!

그런데 그게 패인이었다. 순간, 하크는 가슴이 불에 지진 듯 뜨거워졌다.

"끄으윽!!"

괴물의 손톱에 독이 있었는지, 가슴쪽에 덧대어놓은 모피와 하크의 가슴이 녹고있던 것이다. 그러자, 하크의 움직임이 잠시 주춤했다.

"캬아악!!"

괴물은 그때를 놓치지 않고, 공중으로 뛰어올라 하크를 덮쳤다. 괴물의 독에 녹고 있는 가슴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하크는 괴물과 함께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끄악!!"

-풀썩!

"캬악~!"

-푸욱!

"끄아악!!!"

하크위에 올라탄 괴물은 하크의 어깨를 한쪽 손톱으로 찔러 땅바닥에 고정시킨 후 하크의 목덜미를 날카로운 송곳니로 깨물었다.

-우드득!

"크르르…."

-푸악!

동맥이 터지면서 피가 튀었다.

"끄어얽……."

땅바닥에서 괴물에 쓰러진채 허우적대며 반항하던 하크는 결국 더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축 늘어졌다. 괴물은 그렇게 흘러넘치는 크의 피를 -추르릅 거리며 빨아먹기 시작했다.

한편, 수풀 속 나무뒤에 있던 애나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조용히 울면서 귀를 막고 앉아있었다. 너무 무서웠다. 아까는 아빠의 비명소리 같은 것도 나긴 했으나, 뛰쳐나갈 순 없었다. 아빠가 분명히 꼼짝 말고 있으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을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애나는 용기를 내서 살짝 고개를 들어, 수풀 바깥을 슬며시 쳐다보기로 했다. 그러나 바깥을 보는 순간 애나는 꼿꼿이 굳어버렸다.

'헉!'

아직, 그 회색 괴물이 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워있는 아빠 위에 올라탄 그 괴물은 쪼그려앉아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애나를 눈치 챈 기색은 없어 보였다.

"켁! 쿨렉! 쿨렉!"

그렇게 한차례 쿨럭거리며 기침을 하던 괴물은, 자신의 입에서 뭔가를 꺼내, 하크의 입에 집어 넣었다.

"크르르…."

그리고는 한 바퀴 이리저리 살피던 그 괴물은 네 발로 뛰어 천천히 어둠 속 저편으로 사라졌다. 괴물이 가고 나서도, 한참을 그렇게 서 있던 애나는 괴물이 멀리까지 갔다는 확신이 서자, 그제야 비로소 수풀 속에서 나왔다. 애나는 온몸에서 힘이 빠졌는지 비틀거리며, 땅바닥에 누워있는 아빠 곁으로 다가갔다.

"아, 아빠…흑, 흑~."

애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빠의 상태는 차마 눈뜨고는 못 봐줄만큼 처참한 몰골이 되어 있었다. 왼쪽 어깨는 구멍이나 커다란 피딱지가 앉아있었고, 가슴은 시커멓게 타들어가 있었다. 오른쪽 목덜미에는 네 개의 구멍이 나있었는데, 거기에도 시커먼 피딱지가 앉아있다. 그리고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애나는 차마 아빠를 두고 도망가지 못하고, 울먹이며 아빠를 흔들었다.

"아빠…엉~ 엉~ 엉!"

-꿈틀….

그러나, 그때였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빠의 팔이 한차례 꿈틀거렸다. 애나는 그걸 느끼고, 갑자기 울음을 뚝 그쳤다.

"아, 아빠…. 아빠?"

애나는 아빠를 흔들기 시작했다.

-꿈틀….

살아있다. 아빠는 아직 살아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애나는 아빠가 살아있는 것에 마음속으로 크게 다행이라 여기고는 더 세게 아빠를 부르며 흔들었다.

"아빠! 아빠!"

-꿈틀….

애나는 아빠가 깨어날 기미를 보이자 더욱더 세게 아빠를 부르며 아빠를 흔들기 시작했다.

"아빠! 눈 좀 떠봐요! 무서운 거 이제 갔다구요!! 아빠 눈을……."

-처억! 턱!

"……!!"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아빠의 억센 팔이 애나의 팔을 -턱 하고 잡았다. 깜짝 놀란 애나가 뒤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빠가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얼굴을 본 순간, 애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을 뜬 아빠의 동공은 아까의 그 괴물과 마찬가지로 하얗게 뒤집혀 있었던 것이다.

"크르르…."

소리를 내는 아빠의 벌어진 입에서 날카로운 송곳니가 빛나고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악~!!!!!"

어두운 산골짜기에서 소녀의 비명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계속>

오늘은 2부의 프롤로그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이겠군요. 슬슬 대륙의 강력한 존재들이 하나 둘씩 얼굴을 내비치기 시작합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풀어져 나가는 겁니다. 그런 존재들이 이제 앞으로 아란의 행보에 어떤영향을 끼칠지는 지금처럼 많은 관심으로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아란의 진정한 모험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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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La~port Liarta - 26장 기사대 기사 #01 +7 08.09.13 1,412 4 13쪽
87 La~port Liarta - 25장 망령 #02 +6 08.09.10 1,343 5 18쪽
86 La~port Liarta - 25장 망령 #01 +8 08.09.07 1,361 4 18쪽
85 La~port Liarta - 24장 안개속의 괴물 #03 +8 08.09.05 1,432 7 13쪽
84 La~port Liarta - 24장 안개속의 괴물 #02 +5 08.09.03 1,404 5 18쪽
83 La~port Liarta - 24장 안개속의 괴물 #01 +10 08.08.31 1,460 5 17쪽
82 La~port Liarta - 23장 달과 바람이 머무르는 #04 +8 08.08.28 1,469 3 17쪽
81 La~port Liarta - 23장 달과 바람이 머무르는 #03 +9 08.08.20 1,479 5 19쪽
80 La~port Liarta - 23장 달과 바람이 머무르는 #02 +11 08.08.12 1,450 6 14쪽
79 La~port Liarta - 23장 달과 바람이 머무르는 #01 +9 08.08.08 1,501 5 18쪽
78 La~port Liarta - 22장 여행자의 밤 #05 +5 08.08.01 1,580 6 13쪽
77 La~port Liarta - 22장 여행자의 밤 #04 +2 08.07.28 1,587 5 23쪽
76 La~port Liarta - 22장 여행자의 밤 #03 +4 08.07.24 1,564 5 13쪽
75 La~port Liarta - 22장 여행자의 밤 #02 +8 08.07.20 1,625 6 15쪽
» La~port Liarta - 22장 여행자의 밤 #01 +5 08.07.13 1,782 4 22쪽
73 La~port Liarta - 21장 제도로.... #03 - 1부 끝... +19 08.07.12 1,795 7 11쪽
72 La~port Liarta - 21장 제도로.... #02 +10 08.07.11 1,757 5 20쪽
71 La~port Liarta - 21장 제도로.... #01 +12 08.07.08 1,855 5 12쪽
70 La~port Liarta - 20장 습격 #04 +13 08.06.27 1,807 5 12쪽
69 La~port Liarta - 20장 습격 #03 +12 08.06.26 1,746 5 19쪽
68 La~port Liarta - 20장 습격 #02 +14 08.06.25 1,753 5 19쪽
67 La~port Liarta - 20장 습격 #01 +5 08.06.23 1,814 5 11쪽
66 La~port Liarta - 19장 하얀…. #01 +20 08.06.16 1,936 4 21쪽
65 La~port Liarta - 18장 폭풍우 #04 +10 08.06.11 1,827 4 20쪽
64 La~port Liarta - 18장 폭풍우 #03 +9 08.06.10 1,845 4 18쪽
63 La~port Liarta - 18장 폭풍우 #02 +5 08.06.03 1,870 5 15쪽
62 La~port Liarta - 18장 폭풍우 #01 +24 08.05.31 2,003 5 14쪽
61 La~port Liarta - 17장 깨어진 우정 #02 +12 08.05.28 2,003 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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