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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려은
작품등록일 :
2011.07.03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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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3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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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6.1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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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port Liarta - 18장 폭풍우 #04

DUMMY

제 18장 폭풍우 #04



-사락 사락

어둠속에서 루치야가 옷을 벗는 소리가 신경 쓰이게 들린다. 아란은 지금 사각팬티만 입고 앉아있었다. 반라의 상태. 바닥에는 여기저기 풍찻간의 구석에서 긁어모은 마른 짚불들이 깔려있다.

아란과 루치야가 있는 힘을 짜내서 끌어 모은 소중한 결과물이었다. 다행히도 습기가 없는 곳이 생각보다 꽤 되어서, 짚불을 수북하게 모을 수 있었다. 굉장히 좁은 면적이긴 했지만, 불 없이 체온을 보온 할 수 있다는 점은 정말 다행이었다.

그리고 아란은 모포를 펼쳤다. 깔고 앉아있었기 때문에, 군데군데 물이 묻어있기는 했지만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마른 모포였다.

-툭

아란의 뒤에서 뭔가가 살포시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쪽으로 루치야의 수줍은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다 됐어. 아, 아란."

"으, 응. 그, 그래? 그, 그럼 이리로 와."

-두근두근

아란은 순간적으로 심장이 거세게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반라의 소녀가 자신의 뒤에 서있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그래도 아란은 이런 상황은 머리에 털 나고 처음 겪는 일이었다. 너무나 긴장되고 떨렸다.

-사락 사락

소녀가 짚불을 밟는 소리가 소년의 예리해진 청각을 강타했다. 너무 어두워서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으니 쓸데없이 청각만 예민해졌다. 여하튼 그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아란은 괜스레 온몸이 뜨거워 지는 것 같았다. 일단 추위는 가신걸 보니 단계적 효과로는 만점을 줘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꿀꺽

아란은 마른침을 삼킨다. 모포를 쥔 손이 조금씩 떨렸다. 자신의 바로 뒤에, 엄청 섹시한 미소녀가 반라의 상태로 있다는 사실이 아란의 마음을 너무나도 떨리게 하고 있었다. 그게 자신의 친구 루치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윽고, 소녀는 소년의 바로 뒤에 등을 지고 앉았다.

서로의 등을 지고 앉은 아란과 루치야. 살갗과 살갗이 맞대인다. 아란은 그 순간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 한 아찔한 감각에 살짝 몸을 떨었다. 그런데, 그건 루치야도 마찬가지 인 것 같았다. 맨살과 맨살이 맞닿는 느낌이 이런 느낌이구나. 소년은 괜스레 입이 히죽 하고 벌어진다. 그때, 루치야가 아란에게 조심스럽게 말한다.

"아, 아란. 모포…."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아란.

"아, 아. 미안 루치야."

아란은 그제서야 모포의 끝을 잡고 루치야에게 넘겨 한 바퀴 감싸며 둘렀다. 모포는 의외로 조금 커서 한 바퀴 둘렀는데도 불구하고 여유가 좀 남았다. 그러자, 모포의 내부가 둘의 열기로 조금씩 데워지기 시작했다.

그랬다. 아란이 생각한 방법은 이것이었다. 옷을 말리기 전까지 모포를 쓸 수 없다면, 아예 옷을 벗어버리고 쓰면 되는 거다. 그런데, 그 방법은 루치야 때문에 마지막까지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루치야도 옷을 모두 벗어야 하는데, 루치야는 여자가 아닌가. 자신이 옷을 벗는 것과는 경우가 다른 것이다. 아란은 그 방법이 루치야에게는 너무 민망하고 미안한 나머지, 끝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건데, 너무도 상황이 급박했다. 그래도 생각 외로 체온을 나눈다는 방법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란이 괜스레 루치야 때문에 멋대로 흥분해버리는 바람에 언 몸은 아까 추위에서 덜덜 떨었다는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녹일 수가 있었다. 추울 때 알코올을 마신 것과 비슷한 효과랄까.

그런데, 부작용도 있었다. 아란은 자신의 아랫도리가 계속 멋대로 고개를 들려 하는 통에 그게 신경 쓰여 미칠 지경이었다. 그것만 빼면 아란에게 딱히 불편한건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건, 등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아란의 그 혈기왕성한 장면을 루치야가 볼 수 없달까. 문득, 아란은 루치야에게 한마디 한다.

"미안해. 루치야. 이렇게 괜히 민망하게 만들어서…."

"아, 아냐 아란. 괜찮아. 나는, 그리고 물에 빠진 건 나 때문이기도 하고…."

"그래도 미안해. 정말 면목 없어."

"괘, 괜찮대두. 오, 오히려 내가 좀 득본 기분이기도 하구…."

"음?"

"아, 아냐. 그, 그냥 괜찮다구."

"응. 알았어."

루치야는 아란이 마지막말을 못 들었기를 바라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란은 루치야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너무 부끄러워서 그러는가보다 하고 넘어갔다.

아란은 그런데,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등을 맞대고 있는 둘이기 때문에 등을 통해 루치야의 정보가 들어오고 있었다. 무지무지 따뜻한 루치야의 등, 그리고 약하게 울려오는 소녀의 고동소리. 그런데 그 사이를 가로막는 이질감이 없었다.

마치 소녀가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 같달까. 그녀의 긴 머리카락은 루치야가 모두 한쪽 앞으로 늘어뜨리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는 쳐도 속옷의 느낌이 나야했다. 그 등판을 가로지르는 끈 같은 것 말이다. 근데 그런 느낌이 조금도 없다?

"루치야."

"응?"

"저기말야. 이런 말하면 좀 뭐한데…."

"뭔데?"

"혹시, 소, 속옷 이, 입었지?"

"으, 응?"

"호, 혹시 다, 다 벗었어?"

"……."

"……."

"…응."

-쾅

뭐시라? 아란은 머릿속에서 거대한 충격이 내리꽂히는 게 느껴졌다.

"아, 아니… 속옷정돈 입어도 되, 되는데…."

"그, 그랬었어? 아란이 그냥 다, 다벗으라길래…. 시, 싫어? 그, 그럼 다시 입을까?"

"아, 아냐. 괘, 괜찮아."

'반라의' 초절정 미소녀가 알아서 '전라의' 초절정 미소녀가 되어 주셨는데, 싫어할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아란은 복잡한 마음을 억지로 꾹꾹 눌러담은채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노력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게 집중력이라고 아란은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루치야가 지금 옷을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면 그럼, 그 큰 가슴도… 문득, 아란은 루치야의 커다란 가슴이 상상되었다. 굉장히 크고 부드러운 소녀의….

사실 상상하고 말고 자시고할 것도 없었다. 바로 뒤에 그 실체가 있는걸, 눈만 돌리면 소녀의 멋진 나신을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다. 그래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란은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랫도리가 빳빳해진 것을 느끼고 반 공황상태가 되었다.

이 눈치 없는 놈(?)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아란은 갑자기 자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엄청 예쁜데다 몸매도 완벽한 루치야의 나신이 바로 뒤에 있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흥분에 덜덜 떨리고 있었다.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수컷인가.

그때였다. 루치야의 입이 열린 것은….

"이렇게 있으니까. 좋다. 아란…."

"으, 응?"

"왠지 굉장히 안심이 된 달까?"

"그, 그래?"

"응, 아란과 함께 있으면, 왠지 맘이 편해져."

"흐음, 좋은 건가?"

"킥! 아란은 항상 그랬잖아? 어렸을 때부터 책임감도 강하고, 정의감도 강하고, 재밌는 얘기도 많이 해줬잖아. 난 항상 아란이랑 있으면 즐거웠는걸?"

"그래?"

어렸을 적 생각이 났는지 키득거리는 루치야. 아란은 왠지 루치야에게 굉장히 미안해졌다. 그래, 이런 루치야다. 자신을 믿고 있다. 자신이 그녀에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그녀다. 자신은 항상 그녀를 지켜줘 왔으니까. 아란은 피식 웃었다.

그래, 그랬다. 아란도 루치야와 있으면 항상 즐거웠다.

"이제 아란에게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런 시간들은 줄어들겠지?"

'루치야?'

루치야는 왠지 슬픈 어조로 그렇게 말한다.

"왠지 그럴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리리스가 너랑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우리사이가 점점 멀어질 것 같은 거 있지?"

'그렇지 않아.'

"리리스에게 잘 대해줘 아란. 내일 아침 일찍 가서 사과하구."

'…….'

"소중한 사람은, 절대로 잃어버리지 마."

'…….'

"알았지 아란?"

"으, 응."

'응.'이라는 대답. 아란은 그 말밖에 루치야에게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리리스와의 관계 개선에 힘을 쏟으면서, 루치야와의 관계 또한 소원해져 있었다. 아란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리리스 때문에 루치야에게서 멀어진 건 자신이다. 하지만, 루치야는 그런걸 전혀 불평하지 않았다. 미안했다. 지독하도록 미안했다. 너무도 고마운 친구.

아란은 그렇게 그렇게 조용히 앉아서 등으로 전해지는 소녀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루치야는 등으로 전해지는 소년의 체온이 너무나도 따뜻하고 좋았다. 맨살을 맞댄다는 것. 마치 자신이 그의 것이 된 것 같은 기분 좋은 아늑함. 만족감. 그런걸 느낀다. 지금 이 상태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하지만, 마냥 기분 좋기만은 하지 않았다. 소녀의 친구. 그리고 소년의 여자친구. 리리스.

그녀가 떠올랐다. 리리스를 생각하면 루치야는 지금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그녀를 배신하는 기분.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그녀 앞에서는 모두 허울 좋은 변명일 뿐이다. 문득, 루치야는 아란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몇 마디를 끝으로 마지막 말을 했다.

"소중한 사람은, 절대로 잃어버리지 마."

'나처럼….'

그건, 아란에게 한 말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그러나 소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래선 안 된다고….

문득, 뭐가 진짜 자신의 마음인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결론은 나와 있다. 그래서 소녀는 그걸 자기 자신에게 최면처럼 되뇌인다. 그래 되었다.

'이젠 된 거야. 그래, 이제 이걸로 된 거야.'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을 아려오는 아픔까지는 소녀도 어쩔 수가 없었다.


-짹 째짹 짹짹!

아침산새들의 지저귐이 아란의 단잠을 깨웠다. 햇살이 아란을 눈부시게 만들었다. 소년은 한참 눈을 찡긋거리며 빛을 피하려다 눈을 뜬다. 그런데 주변풍경이 좀 이상했다. 평소에 잠이 들던 집이 아니다? 생소한곳. 아란은 잠시 동안 몽롱한 머릿속을 정리하려 했다. 그리고 자기가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공간에서 자고 있는지도….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누군가가 자신과 같이 잠들어있었다. 근데 자신또래 여자다.

'뭐지? 내 마누란가?'

아란은 꿈결에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버렸다. 그럴 리가! 생각해보니 자신은 결혼한적조차 없다! 머리가 멍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웅성웅성..

바깥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스스한 차림새로 일어난 아란은 앉아서 정신을 추스렸다.

'뭔데 이렇게 시끄러워!?'

"아, 아저씨!! 여기, 여기에요!! 빨리요! 아란, 아란이 죽을지도 모른다구요!!"

여자아이의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아란은 그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목소리는 리리스!?'

그제서야 아란은 지금 자신의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생각났다. 어제 루치야와 여기 풍찻간에 갇혀, 체온을 나누는 것으로 얼어붙을 뻔 한 하룻밤을 간신히 버텼었다. 그런데 아침이 되고나니, 참, 오해의 소지가 많을법한 모양새가 되어있었다.

아란은 밖의 이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서둘러 루치야를 깨워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기위해 고개를 돌렸다.

"컥!"

그러나, 루치야를 보자마자, 번개처럼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린다. 루치야는 지금 전라의 상태였다. 물론, 모포가 덮여져 있어. 중요부위는 다 가려져 있었지만, 모포 바깥으로 드러나는 뽀얀 살결만 봐도 아란은 심장이 떨렸다. 드러난 루치야의 어깨 밑으로 커다란 두개의 언덕위에 모포가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다.

루치야의 호흡에 따라 그 언덕이 들썩인다. 아란은 도저히 제정신으로 그걸 볼 자신이 없었다. 어젯밤과는 상황자체가 틀렸다. 어제는 어둡기라도 했다지만, 지금은 그런 장면들이 적나라하게 보인다는 게 문제인 것이다.

"아, 모두들 힘 좀 씁시다!! 이정도 장정들이 모였는데 이걸 못 들어 올린다는 게 말이 돼?"

"후우, 아가씨가 무사하셔야 할 텐데."

"빠, 빨리요. 아저씨들!! 아, 아란이!!"

그런데 밖의 소란이 심상치 않았다. 꽤나 많은 사람들이 온 것 같았다. 개중에는 루치야의 저택사람들도 끼어있는 것 같았다. 언젠가 들어본 목소리들이다. 리리스가 이들을 불러준 걸까. 어쨌거나, 저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어서 루치야를 깨우지 않으면….

아란은 눈을 감고 루치야를 흔들어 깨운다. 맨눈으로 나신의 루치야를 볼 자신이 없다.

"루, 루치야! 크, 큰일 났어."

"으음…."

"이, 일어나. 지, 지금…."

"으응…?"

루치야는 피곤한지 쉽게 눈을 뜨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밖에서는 -시끌시끌 풍찻날개를 뽑아내는 듯 -그그극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란은 다급해져서 루치야를 더 세게 흔들었다.

"루, 루치야!! 일어나!!"

"응…? 아, 아란!?"

그제서야, 눈을 뜬 루치야. 그러나 그녀도 잠에 취한 채 어쩌지 못하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아란을 바라본다. 아란은 사태의 심각성을 비몽사몽 하는 루치야에게 전달하려 노력했다.

"루치야! 지금 큰일 났어. 밖에 사람들이 와 있어."

"으, 응?"

금방 눈을 뜬 루치야는 아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 잠이 덜깬 모양이었다.

"우, 우릴 꺼내줄려는 사람들이긴 한데…."

-쾅! 쾅!

"아란!! 루치야!! 거기 있어? 있으면 대답 좀 해봐!!"

그때마침,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리리스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왔다. 벌써 풍찻날개를 거의 다 들어낸 것 같았다. 루치야도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루치야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앉는다.

"꺅!"

"우왁!"

그러다, 자신이 실오라기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임을 깨닫고 모포를 목까지 끌어올린다.

아란도 다급한마음에 고개를 돌리다, 루치야의 속살이 스쳐지나가자 깜짝 놀란다. 아란은 당황해서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아, 아무래도 어서 옷을 입는 게 좋겠어. 이, 이대로라면…."

"응."

루치야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밖에는 바로 그 누구도 아닌 리리스까지 와있었다. 아니,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앞장서서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애가 타는 상황이리라, 두 친구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에 말이다.

아란과 루치야의 입장에서는 그게 바로 미치고 팔짝뛸 노릇이었다. 지금 둘의 이 상태는 둘에게는 나름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으나, 보는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지 않은가. 옷을 홀딱 벗고 밤을 같이 지샌 남녀다. 야릇한 오해를 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리라.

"루, 루치야. 빨리 옷 입어. 아, 아냐아냐. 내가 속옷 가져다줄께 거기서 입어."

"으, 응. 알았어. 아란."

아란은 팬티바람으로 급하게 돌아다니며 루치야의 아직 마르지 않은 옷들을 모아 가져다주었다. 루치야는 모포 속에서 속옷부터 주워 입기 시작한다.

"자, 이제 거의 다 됐다!! 힘들 내라고!!"

"하녀장님!! 이거 그냥 들어내는 것보단 뒤로 넘어뜨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래, 그냥 넘어뜨려버려!!"

"아저씨들!! 빨리요! 아란이랑 루치야가… 죽을 수도 있다구요!!"

그런데, 바깥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풍찻날개를 넘어뜨린다면, 바로 철문이 열리는 상황이었다. 아란과 루치야는 마음이 더 급해졌다. 아란은 어제 벗어놓은 자신의 옷들을 한데 모아 놓고 바지부터 껴입으려 들었다. 아직 마르지 않고 젖어있어 축축한 느낌이 다리를 적셨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급한 마음에, 바지에 대충 다리를 밀어 넣는다.

"됐다!!!"

-쿠구궁!! 쾅!!

하지만, 그 순간, 풍찻날개가 넘어가는 굉음과 함께 철문이 벌컥 열리며 연녹색 소녀가 뛰쳐들어왔다.

"아란! 루치야! 살아있어!? 이젠, 괜찮…."

"아…."

"……."

그러나, 둘의 모습을 보고는 그대로 굳는다.

그에 브래지어를 걸치고 있던 루치야는 놀란 나머지 모포를 끌어올렸고, 간신히 한쪽 다리를 바지에 집어넣고 있던 아란은 바지를 입는 그 자세 그대로 굳었다.

루치야네 저택사람들도 들어오다, 둘의 모습을 보고는 다들 굳는다.

"……."

"……."

잠시 동안 풍찻간 안에서 정적이 흐른다. 다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이 기묘한 분위기. 그 정적을 깨며 아란이 어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이거다… 오, 오해라고 말하면, 다들 믿어줄까?"



"오, 오해라니깐. 리리스!"

아란의 말을 들으며, 길을 걸어가는 리리스.

"알았어. 아란. 알았다구."

리리스는 아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풍찻간에서 루치야는, 저택사람들이 이것저것 해서 저택으로 데려가는 것 같았고, 아란은 먼저 대충 젖은 옷을 껴입고 리리스를 따라 급하게 내려왔다.

그런데 리리스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아란은 오히려 이런 리리스의 반응이 무서웠다. 그래서 빠르게 리리스를 따라가며, 다시 반복한다.

"리리스, 정말이야. 믿어줘!"

"알았어."

"지, 진짜야!"

"하아, 알고있다구. 아란. 오해 같은 건 하지 않았어."

리리스는 한번 한숨을 쉬고는 그렇게 매달리는 아란을 향해 다시 또박또박 말했다.

"지, 진짜지?"

"그래 아란, 알고 있어. 나 귀찮으니까. 그만 좀 말하게 해줄래?"

"으, 응."

귀찮다는 리리스. 그런 리리스의 반응에 아란은 주눅이 들어서 입을 다문다. 사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어제 리리스에게 커다란 상처를 준 아란. 엎드려 빌어도 시원챦았다.

"……."

"……."

"자, 잘 가."

"응."

침묵의 시간 끝에 도착한 리리스의 집 앞. 아란의 인사에 리리스는 냉랭한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가 버렸다. 집안으로 들어가는 리리스의 뒷모습에 왠지 불안해졌다.

결국, 어제 일에 대한 사과도 하지 못했다. 리리스의 분위기가 너무 좋지 않았기 때문에 말을 꺼낼 타이밍조차 만들지 못했다. 사과한다 해도 받아줄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끝내 용기를 내지 못했다.

아란은 결국, 긴 한숨을 내쉬며,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젖은 옷을 입고 있어서인지 아침공기가 너무나도 차갑게 느껴졌다.

아란은 그날 엄마 아빠에게 엄청 혼났다. 이 추운 겨울날 멋대로 나다니다 죽을 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치야까지 끌어들여 덩달아 위험하게 만들었다. 조금이라도 잘못했다간 둘 다 얼어 죽을 수도 있었다. 아란은 부모님에게 한참동안 꾸지람을 듣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다음 날부터 날씨가 훨씬 추워졌다. 온 마을이 꽁꽁 얼 정도의 날씨. 그리고 루치야가 찾아왔다. 아란네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리기 위해서 였다. 루치야는 아란네 부모님에게 인사하고선 아란과 함께 점심을 같이했다.

그동안 루치야와 많은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날 루치야도 어머니에게 엄청 혼났다는 것과, 그 풍찻간을 결국 철거하기로 결정했다는 것, 그리고 다행히도, 풍찻간에 사람들이 몰려왔을 당시 대부분이 루치야네 저택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마을에 이상한 소문은 퍼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마지막으로, 리리스가 화가 많이 난 것 같았으니 조금 시간을 두고, 리리스에게 찾아가 사과하라고 조언까지 해준다.

"미안해, 아란. 괜히 나 때문에…"

"으… 그거야 어쩔 수 없지 루치야. 여튼 신경써줘서 고마워. 리리스도 오해하지 않았다고 했으니. 그렇게 심각하게까지 생각하진 않을 꺼야."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러길 바라는 수밖에…."

"리리스의 화가 좀 가라앉으면 가보는 게 좋겠어."

"응."

그렇게 루치야는 아란에게 걱정스러운 듯, 조심스레 조언을 해주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아란은 이 추운 겨울이 조금이라도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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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La~port Liarta - 21장 제도로.... #02 +10 08.07.11 1,757 5 20쪽
71 La~port Liarta - 21장 제도로.... #01 +12 08.07.08 1,855 5 12쪽
70 La~port Liarta - 20장 습격 #04 +13 08.06.27 1,807 5 12쪽
69 La~port Liarta - 20장 습격 #03 +12 08.06.26 1,746 5 19쪽
68 La~port Liarta - 20장 습격 #02 +14 08.06.25 1,753 5 19쪽
67 La~port Liarta - 20장 습격 #01 +5 08.06.23 1,814 5 11쪽
66 La~port Liarta - 19장 하얀…. #01 +20 08.06.16 1,936 4 21쪽
» La~port Liarta - 18장 폭풍우 #04 +10 08.06.11 1,827 4 20쪽
64 La~port Liarta - 18장 폭풍우 #03 +9 08.06.10 1,845 4 18쪽
63 La~port Liarta - 18장 폭풍우 #02 +5 08.06.03 1,870 5 15쪽
62 La~port Liarta - 18장 폭풍우 #01 +24 08.05.31 2,003 5 14쪽
61 La~port Liarta - 17장 깨어진 우정 #02 +12 08.05.28 2,003 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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