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포르리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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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려은
작품등록일 :
2011.07.03 01:44
최근연재일 :
2011.07.03 01:44
연재수 :
20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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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08.02.28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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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La~port Liarta - 5장 여신의 제국 #03

DUMMY

제 5장 여신의 제국 #03



"그랬다니까요!!"

"그래. 알았다. 알았어."

"으, 안 믿는 눈치인데요?"

"허! 결국엔 네 말을 줄이자면 사야저택의 저녁만찬을 마다하고 여기까지 왔으니 그만한 대우를 해달라는 소리가 아니냐? 내 몫의 간식까지 빼앗아먹으면서?"

아란과 이자크 노인은 도서관중앙에 놓인 책상 앞에 나란히 앉아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어두운 도서관을 책상위에 놓인 두개의 램프가 조용히 주변을 밝히고 있다. 도서관한쪽 벽면에 있는 큰 창문을 통해서 파란초승달이 보인다.

지금시각은 자정을 넘긴 새벽시간, 산속의 올빼미조차 잠들 조용한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영주성도서관은 작은 소년과 초라한 행색의 노인네가 투닥거리로 소란스러웠다.

"그건 아니죠. 애초부터 그건 제가 챙겨온 거였잖아요."

"어쨌거나, 이걸 먹겠다는 마음가짐엔 변화가 없는 거 아니냐."

"네."

-꽝!

"아얏!"

소년은 대답하는 순간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내질렀다. 노인이 아란의 대답과 동시에 소년의 정수리에다가 꿀밤을 한방 꽂았기 때문이다. 눈물이 핑글하고 돌 정도로 아팠다.

지극히 작은 부위가 아픈 것으로 보아 중지를 세워 찍은 것 같다. 다 죽어가는 노친네가 힘은 더럽게 세 가지고….

"아프다구요!!"

"아프라고 한 거다. 이 녀석아! 어디 뺏어먹을게 없어서, 다 늙어 죽어가는 노친네가 몸이 허해진 나머지, 샌드위치 한 개 좀 더 집어먹으려한 거 가지고서니, 눈을 새빨갛게 뒤집으면서 바락바락 뺏으려고 달려들어? 괘씸한 놈. 옜다, 이 녀석아! 안 먹는다. 안 먹어!"

그러면서 노인은 자기가 가져갔던 마지막 샌드위치 하나가 담긴 도시락 통을 소년에게로 -획하고 밀었다. 사각 도시락 통이 책상 위를 -스르륵하고 미끄러져 와 아란 앞에서 멈췄다.

"으…."

아란은 이게 어디가 다 늙어 죽어가는 노친네의 힘이냐고 톡 쏘아주고 싶었지만, 이자크 노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억지로 삼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곤 고통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도시락 통에서 마지막 남은 샌드위치를 집어 입으로 밀어 넣었다.

"맛있냐? 맛있어?"

-우물우물

노인의 가시가 돋친 목소리에도 아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맛있나보군. 암. 맛있어야지 맛있지 않으면, 그게 어디 사람인가? 노친네 마지막 남은 밥그릇을 빼앗아 먹는 건데 맛있어야지. 정말정말 꿀맛이겠지? 암. 그래야하고말고."

이자크 노인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그렇게 중얼중얼 말한다. 아란은 노인의 그 유치한 행동에 기가 찼지만 조용히 샌드위치를 씹는데 열중했다.

여기서 또 뭐라고 했다간 그대로 그 무시무시한 꿀밤이 날아와 자신의 정수리에 꽂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무슨 노친네가 저렇게 쪼잔 해? 그런 생각을 하며 아란은 조용히 샌드위치를 씹어 삼켰다.

"흥!"

아란이 대답을 하지 않자 이자크 노인은 잔뜩 뿔난 얼굴로 책을 들여다본다. 소년이 옆에서 흘끔흘끔 보니 노인은 흰 콧수염을 빳빳하게 세운 채 책이 원수라도 된 듯이 무시무시하게 쏘아보고 있다.

'윽. 삐졌구나.'

아란은 -하아 하고 한숨을 작게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곤 자기 책상위에 펼쳐져 있는 책으로 고개를 돌려 아까 읽다만 부분부터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럴 땐 가만히 놔두는 게 상책이다.

괜히 입을 열었다가는 괜히 화를 자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 아란은 계속 보던 책에 열중했다.

"……."

"……."

"……."

그러나 신경 쓰였다. 옆의 노인이….

이자크 노인이 책을 보면서 화가 풀리지 않은 듯 계속 씨근거렸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뻔뻔한 아란이라도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아란은 괜히 남은 샌드위치에 욕심을 낸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괜히 샌드위치 하나 더 먹으려다가 분위기만 험악하게 만든 꼴인 것이다.

이런 건 원하지 않았는데, 괜스레 미안해진 소년은 노인을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자크 할아버지, 화났어요?"

"아니, 화 안 났다!!"

아란의 질문에 이자크 노인은 고함치듯이 말했다. 조용한 도서관에 노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화났구만…."

소년은 속으로 삐질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노인에게 말한다.

"다, 다음부터는 엄마보고 많이 좀 싸달라고 할게요. 개수 딱 맞춰서…. 그러니깐 화났으면 화 푸세요."

"일없다~! 다음부터는 네 것만 싸오도록 해라."

"저, 정말요?"

"그래. 어허~ 누가 들으면 다 큰 영감쟁이가 꼬맹이 도시락 뺏어먹는 줄 알겠구나."

'아닌 게 아니라 정답이잖아요!!'

아란은 속으로 빽! 소리 지르며 항의한다. 속으로만….

물론, 실제로 그럴 용기는 없었기 때문에 힘없이 고개를 돌렸다. 삐져도 단단히 삐진 것 같았다. 성격 더러운 영감탱이, 무슨 놈의 속이 그렇게 쪼잔 하냐.

아란은 속으로 그렇게 이자크 노인의 욕을 하며, 침울한 표정을 하고 책으로 눈을 돌린다. 다시 도서관은 조용하게 침묵 속으로 가라앉았다.

"……."

"……."

"……."

이자크 노인은 아란을 곁눈질로 흘끗 봤다. 자기가 대놓고 면박을 주자 소년은 침울해져서 가라앉은 분위기를 하고선 책을 읽고 있다. 노인은 양심이 조금 찔렸다. 괜히 녀석에게 성질을 부려서 저런 불쌍한 표정을 짓고 앉아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노인의 머릿속을 떠다닌다.

물론, 아란은 속으로 신나게 이자크 노인의 좁은 속을 까대고 있었지만, 겉모습만 보고 소년이 침울해져 있다고 판단한 노인이 어찌 그걸 알겠는가?

일단 소년의 그런 표정을 보고 있자니 노인은 치밀었던 화가 조금씩 풀렸다.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않은가. 다 큰 어른이 꼬맹이 도시락 한개 더 먹으려고 아웅다웅한게 머그래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씩씩대고 앉아있나.

이자크 노인은 조금 민망해져서 턱수염을 쓰다듬는다. 아란을 흘겨보고 있자니 그 조그만 몸집에 축 처진 녀석이 괜스레 불쌍하게 느껴졌다.

저렇게 비쩍 골은 녀석의 도시락을 뺏어먹으려 했더니 괜스레 미안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자크 노인은 속마음과는 다르게 심드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야네 저택에 저녁을 초대받았다면서?"

"에?"

언제까지나 꽁해 있을 줄 알았던 노인이 의외로 빨리 말을 걸자, 열심히 속으로 호박씨를 까고 있던 아란은 화들짝 놀랐다.

하지만, 조금 눈치를 살피다 노인의 화가 조금은 가라앉은 듯 싶자 -휴우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란은 노인의 질문에 두근반 세근반하는 심정으로 조심스럽게 답했다.

"아, 그랬죠."

"근데, 거절을 했다면서?"

"네."

"왜 그랬던 거냐? 맛난 거 실컷 배불리 먹을 수 있었을 텐데…."

이자크 노인은 조금은 의외라는 듯이 흰 콧수염을 한손가락으로 뱅글뱅글 돌리며 묻는다. 그러나 아란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가볍게 답했다.

"아. 그거요? 뭐 당연하잖아요. 밤에 도서관에 오려면 일찍 자고 자정에 일어나야하는데, 루치야네에서 저녁을 먹게 되면 저녁 늦게 되서야 집에 도착하거든요. 그렇게 되면 도서관은커녕 잠자기도 급급해서 도저히 집을 나설 수 없게 되죠."

"흠, 겨우 그런 것 때문에 부잣집에서 초대한 저녁만찬을 발로 걷어찬단 말이냐? 이해할 수가 없구나."

노인이 아란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한 손을 내저으며 말하자 소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대꾸한다.

"헤헤. 그거야 도서관에 오는 게, 배불리 먹는 것보다 좋으니까 그렇죠. 게다가 이자크 할아버지가 있으니까 심심하지도 않구요. 킥킥~!"

아란은 그렇게 말하고는 키득댄다. 소년의 말이 신경 쓰였던지 노인은 눈가를 찌푸리며 되묻는다.

"웬 재수 없는 웃음이냐, 그건…. 그리고 내가 뭘?"

"이자크 할아버지랑 같이 있으면 그저 재밌다고 할까요? 할아버지는 뭐든지, 특히 기사들에 대해서도 많이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옆에만 있어도 유식해지는 기분이랄까. 전 이때까지 할아버지만큼 대단한사람은 본적이 없다구요."

아란은 이때까지 속으로 이자크 노인을 까댄것도 잊고, 열심히 칭찬했다. 사실 이자크 노인의 괴팍한 성정만 빼고 본다면 아란에게 이자크 노인은 굉장한 사람이었고 존경의 대상이었다.

소년에게 있어 노인은 대륙의 3현자와 비슷한 존재랄까? 하여튼, 아란에게 도서관출입을 허락해준 시점부터 노인은 소년에게 영웅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란이 칭찬하자 노인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나 밖으로 드러내지는 못하고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한다.

"어험, 그렇게 띄워줘도 아무것도 안 나온다~! 노친네한테 아부해서 뭘 받아먹을게 있다고."

"엇, 띄워주는거 아닌데…. 진짜라구요. 할아버지처럼 유식한사람은 우리 마을에 단연코 없다고 봐도 무방해요."

소년은 두 눈을 빛내면서 두 주먹까지 불끈 쥐고 노인에게 말한다. 절대자신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표정.

"그만해라. 낯 뜨겁구나."

이자크 노인은 아란의 칭찬이 어색했던지 손을 휘휘 저으면서 아란의 말을 막았다.

"에이. 진짠데…."

아란은 아쉽다는 듯이 그렇게 말하고 물러난다. 그 모습에 약간 민망해진 노인이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아란."

"네?"

"그 루치야라는 애 말이다."

"네."

"너랑 많이 친하냐?"

"당연하죠. 많이 친하죠. 어떨 때 보면 이얀보다 친하니까요. 저나 루치야나 둘 다 책을 좋아하니까 그런 게 더 친하게 만들어 주나 봐요."

그랬다. 아란과 루치야는 남들이 보기에도 각별할 정도로 친했다. 이얀보다도 사실은 루치야와 있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 사실 거기엔 둘에게(남들 입장에선 책을 읽는다는 특이한) 공통관심사가 있다는 게 크게 작용했지만….

그래도 아란은 루치야에 대한 생각을 하면 괜스레 미안해졌다. 영주성도서관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도서관에 들어오는데는 성공했으나 책을 빌려가지는 못했다.

저번에 루치야가 도서관에 대해 물어봤을 때, 아란은 그냥 대충 실패하고 그냥 나왔다고 둘러대었다. 사실 이자크 노인과의 약속 때문이기도 했지만, 괜히 루치야에게 걱정 끼치기 싫었던 것도 있었다.

그러나, 순진한 루치야는 그 말에 별달리 의심하지 않았다. 아란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흐음. 그래?"

"네."

"그럼 말이다. 아란…, 혹시…."

"……??"

"그 루치야라는 애가 네 '이거'냐?"

이자크 노인은 그렇게 말하면서 새끼손가락을 -까딱까딱 하며 내밀었다. 하지만, 아란은 아쉽게도 그게 무슨뜻인지 모르는 눈치였다. 뭐지? 새끼손가락이 뭐?

그렇게, 아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노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 루치야가 네 여자 친구냐는 말이다. 흔히 말하는 여자로써의 애인말이다 애인!"

그제야 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한 아란. 순식간에 작은 소년의 얼굴이 경악에 가득찬 표정으로 바뀐다.

"에엑~~!!?? 뭐라구욧?!!"

"그러니까, 여자친…."

"아, 아니에요! 아니라구요! 루치야와는 그저 친한 친구사이일 뿐이라구요!!"

이자크 노인이 뭔가 더 말하기도전에 아란은 당황해서 소리를 -빽 하고 지르고선 노인의 말을 막았다. 두 손을 격하게 흔들면서 부정을 하는 아란.

소년의 발작에 가까운 반응에 노인은 놀란 나머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소년을 응시한다.

"정말이에요! 그냥 친구라니까요!! 그냥 책 얘기나 함께 나누는 친구요!!"

당황한 나머지 열변을 토하는 아란. 소년의 높은 톤의 목소리가 도서관에 쩌렁쩌렁 울린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의 응징의 철퇴가 소년의 머리에 내리꽂혔다.

-꽝!!

"으악!"

"요 녀석아! 아니면 아닌 거지. 뭘 그리 시끄럽게 떠들어대냐! 심장 떨어질 뻔 했잖느냐. 이 노친네 심장마비로 돌아가시는 꼴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게냐!!?"

"으…, 으…."

아란의 눈앞에 별이 보였다. 노인의 꿀밤은 아주 매서웠기 때문이다. 맞은 부위가 지끈거린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째서 어른들은 루치야얘기만 나오면 여자 친구와 연결 시키는걸까?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친구일 뿐인데….

아빠나 엄마도 루치야 얘기라면 나오기가 무섭게 연인 어쩌고저쩌고 하지 않았던가. 이자크 노인도 그러는걸 보니 그런 건 어쩔 수 없는 어른들의 심리인가보다.

연인. 아란은 아직 심각하게 그런 것들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남녀관계라는건 소년에겐 전혀 상관없는 달나라 이야기였던 것이다.

가끔, 기사무용담에서 사랑, 뭐 이런걸 주제로 하는 책들도 있었지만, 그저 '음, 멋지구나.' 하고 생각했을 뿐 정작 자신이 직접 '멋진 사랑을 할 거야.' 뭐 그런 식으로 생각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 작은 소년에게 사랑이란 그저 멋진 기사들의 무용담에 추가되는 양념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연인이라……. 아란은 만약에 자신이 기사무용담의 주인공이라면 과연 상대는 누가 좋을지 생각해본다.

그러자, 문득 리리스가 떠오른다. 에메랄드빛 머리카락에 연녹색 눈동자, 새하얀 피부에 인형 같은 외모를 지닌 소녀.

리리스라면 아무래도 기사무용담에 나오는 절세미녀정도는 될 것이다. 소년의 상상 속에서 리리스는 예쁜 드레스를 차려입고 아름다운 정원 안에 서있었다.

그러나, 그 옆에는 멋진 기사가 된 자신이 아니라 왠지 모르게 멋지게 차려입은 이얀이 서있다.

기사무용담의 일반적인 내용흐름상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름다운 리리스 옆에는 지나칠 정도로 초라한 자기대신, 잘생기고 멋진 이얀이 더 어울렸기 때문이다.

윽, 이건 아니잖아. 아란은 자기가 상상하던 기사무용담을 머릿속에서 붕붕 흔들어 지운다. 자신같이 내세울 거 없고 초라한 꼬맹이가 기사무용담의 주인공이 된다니 참, 다시 생각해봐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도, 그것이상으로 자신이 봐도 잘 어울리는 이얀과 리리스였기에 그게 더 마음에 걸렸다. 아란은 이얀과 리리스를 생각하자 갑자기 침울해진다. 그냥 마음한구석이 묵직했다.

이얀은 리리스를 좋아한다고 했고, 리리스도 그다지 이얀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봤을 때도 둘은 정말 잘 어울렸으니까. 아란은 기뻐해야했다. 뭐 친구가 잘되면 축복해주는 건 당연했으니까. 그렇지만, 왠지 힘이 빠졌다.

이자크 노인은 아란이 축 늘어져있자 자신의 호통 때문에 그런 줄 알고 괜히 미안해졌다.

노인은 이럴 줄 알았으면 좀 살살 때릴걸 그랬나? 그냥 넘어가도 될 것을 성질을 못 참고 한대 쥐어박아서 공연히 일을 만든 게 아닌가? 하고 자문해본다. 오해를 해도 단단히 한 셈이다.

그러자, 아란은 한술 더 떠서 한숨까지 -푹푹 쉬며 우울한 표정을 하고 앉아있다. 이자크 노인이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불쌍하게 보였다.

친 손자 녀석처럼 여겨지는 아란이 그러고 있자 노인의 마음이 약해진 것이다.

물론 아란은 이얀과 자신의 엄청난 차이를 비교해보고 열등감에 못 이겨 한숨을 -푹푹 내쉬는 것이었지만 노인이 그것을 알 리 없었다. 노인이 입을 열었다.

"많이 아프냐?"

"네?"

아란은 노인의 말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근데, 어째 노인이 자기를 생각해주는 눈치다? 의외의 상황이라 소년은 잠시 멍청해졌다. 그러나 곧, 노인이 질문했음을 깨닫고 늦게나마 답한다.

"아…, 아뇨, 아프진 않아요."

"그러냐? 많이 아파보여서 너무 세게 친 건 아닌지 걱정했다."

'물론 세게 치긴 했지만….'

아란은 노인이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

"뭐라고?"

"아, 네?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하.하.하."

"음. 그래? 아무튼 다행이구나. 이번엔 개인적으로 좀 셌던 것 같더구나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살살치도록 노력하마."

절대로 안 때린다고는 안하는 노인이었다. 아란은 뒤통수에 식은땀이 한 방울 삐질 하고 맺히는 게 느껴졌다.

어째 생각해주는 건 고맙긴 한데, 속으로는 별로 고맙지가 않았다. 이거야 원 엎드려 절 받기지.

아란은 그렇게 생각하며 노인을 바라본다. 노인은 사과를 하는 게 어색했던지 헛기침을 -험험 하며 이야기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했다. 노인의 어조가 다소 누그러들었다.

"어험, 그런데 그 책은 무슨 책이냐? 도서관에 있던 거 같긴 하다만…."

그 말에 아란은 자기 책으로 눈길을 돌린다. 책의 겉표지에는 '데이하르트 제국의 비사' 라는 제목이 쓰여 있었다. 이것은 아란이 좋아하는 기사무용담 따위가 아니었다. 제국의 역사책이었던 것이다.

이자크 노인은 아란이 의외의 책을 읽고 있자 호기심이 생겨서 물어본다.

"역사책? 너 이런 책도 읽었었느냐?"

"아, 뭐 대단한건 아녜요. 저번에 이자크 할아버지가 말해주신 건국왕 알렉산드르대제와 위대한 진군이 생각나서 따로 그들에 대해 알아봤죠. 그런데 달의 여신과 세 개의 신기에 대한이야기가 나오더라구요. 그게 궁금해서…."

"호오. 그랬단 말이지? 음, 역사를 탐구하는 것은 좋은 자세다. 더구나 우리 제국의 역사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지. 예전의 제국기사들은 문무에 두루두루 교양을 넓히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단다. 그런데, 요새 기사가 되려하는 젊은 것들을 보면 올해가 제국력 몇 년인지조차 모르는 무지한 녀석들이 대부분이야. 칼질만 잘하면 다 되는 줄 아는 무지몽매한 녀석들이지. 칼만 잘 쓴다고 기사가 된다면, 그게 용병나부랭이나 무슨차이가 있겠니? 그런 면에서 네가 제국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니 참 다행이구나. 허허…."

아란이 제국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고 말하자 이자크 노인은 요즘의 얼빠진 기사 욕까지 해대며 매우 흡족해했다.

"음…, 그러면 할아버지는 제국의 역사에 대해 많이 아시나요?"

"음? 나? 허허~ 당연하지 않느냐. 지금은 이렇게 도서관을 관리하는 초라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나도 한때는 제국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제국의 위대한 기사들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했었단다."

"우와~! 대단해요. 이자크 할아버지 그럼 제국의 역사에 대해서 정통하시겠군요."

"그러엄~! 제국의 역사에 대해서는 나만큼 잘 아는 사람도 드물지."

당당하게 말하는걸 보니 뻥은 아닌 것 같았다. 아란은 그렇게 말하는 이자크 노인이 정말 굉장하게 보였다.

자신은 역사에 대해 잘 몰라서 그게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지만, 그 많은 제국의 역사에 정통하다면 과연 어느 정도일까? 짐작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란은 자신이 궁금해 했던 것을 노인에게 묻는다.

"와아, 그럼 혹시 달의 여신에 대해서도 잘 아시나요? 궁금해서 책을 봤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달의 여신에 관한 이야기는 잘 없네요."

"달의 여신?"

"네, 제국을 건국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음, 달의 여신이라면 어디보자, 건국왕 알렉산드르 대제에게 세 개의 성물을 주었던 여신 말이구나."

"네, 맞아요."

이자크 노인이 흰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진다. 달의 여신이라…. 그녀는 제국의 초기의 수호여신이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고대종교의 신이었다.

노인은 그 이야기를 아란에게 해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계속>

이제 슬슬 글 쓰는데 속도가 붙는 거 같네요. 일주일에 세 번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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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La~port Liarta - 3장 도서관의 노인 #01 +5 08.02.09 3,870 7 9쪽
10 La~port Liarta - 2장 지하통로 #04 +12 08.02.06 3,808 5 15쪽
9 La~port Liarta - 2장 지하통로 #03 +4 08.02.02 3,925 7 16쪽
8 La~port Liarta - 2장 지하통로 #02 +9 08.01.30 4,083 7 15쪽
7 La~port Liarta - 2장 지하통로 #01 +6 08.01.26 4,581 7 12쪽
6 La~port Liarta - 1장 하얀 호수마을 #04 +10 08.01.24 4,801 6 11쪽
5 La~port Liarta - 1장 하얀 호수마을 #03 +8 08.01.24 5,507 7 13쪽
4 La~port Liarta - 1장 하얀 호수마을 #02 +18 08.01.24 6,923 9 14쪽
3 La~port Liarta - 1장 하얀 호수마을 #01 +10 08.01.23 10,062 11 10쪽
2 La~port Liarta - Prologue +13 08.01.23 11,863 13 12쪽
1 La~port Liarta - La~port Liarta +57 08.01.23 17,998 15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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