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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려은
작품등록일 :
2011.07.03 01:44
최근연재일 :
2011.07.03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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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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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port Liarta - 6장 기사의 꿈 #02

DUMMY

제 6장 기사의 꿈 #02



"기사라…."

아란은 넓은 풀밭 한가운데 팔베개를 하고 누운 채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늘엔 하얀 뭉게구름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태양은 적당하게 따뜻하게 내리 쬐었고, 시원한 바람이 풀들을 스쳐지나가면서 -사락사락하는 소리를 내었다.

아란은 평소처럼 하얀 호숫가의 풀밭에 나와 누워있었다. 배위에는 예전부터 보던 책 '드래곤 슬레이어'를 엎어놓은 채다. 소년은 지금 하늘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기사. 얼마 전 이자크 노인과의 대화에서 나온 '기사'라는 단어 때문이다. 기사란 무엇인가? 소년이 항상 동경하고 바래마지않던 이상향이었다. 그리고 아란또래의 소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자신이 멋진 기사가 되는 것을 꿈꾸지 않던가?

이때까지 허황된 꿈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자신이 실제로 기사가 된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해보지 않았었다. 그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하지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자신은 그런 기사가 되고 싶어 하는 것 자체가 기사들을 모욕하는 거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노인의 말은(비록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소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조그만 불씨를 당겼다. 아란은 그때 이자크 노인에게서 '기사'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강렬한 충격을 받았다.

덕분에 도서관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놀라는 바람에 노인에게 죽지 않을 만큼의 꿀밤을 맞았지만…….

그러나 아란은 그 다음에 이어진 이자크 노인의, 기사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그때의 아란은 그저 큰 충격을 받은 정도였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 생각은 아직 모르겠다가 답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자신은 정말 모르겠다. 자신이 기사가 되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단지 기사들을 동경하는 것일 뿐인지.

차라리 이자크 노인이 '되어라!' 하고 강압적으로 밀어붙였으면 고민하지 않았을 런지 몰랐다. 그러나 노인은 그렇게 화두를 던진 이 후로, 평소보다 화도 잘 내지 않고 거짓말처럼 조용히 소년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자 답답해진 것은 아란이었다. 그 후로도 몇 번 노인의 조언을 구해봤지만, 노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네 자신의 생각을 존중해라. 그런 네 녀석 인생에서의 중요한 일은 남의 판단을 믿지 않고 자신을 믿는 거다. 그래야 훗날에 직접적으로 위기가 닥쳤을 때도 남의 탓을 하며 무너지지 않고,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다.'

물론 흠잡을 데 없이 백번 옳은 말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소년의 심정으로서는 똥개의 발(물론, 앞발) 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노인은 오히려 소년이 고민하는 것을 즐기는 듯 했다. 요새 고민에 빠진 아란을 볼 때마다 히죽거리는 것을 보면 말이다.

'변태 영감쟁이 같으니….'

소년은 그렇게 속으로 한마디 -톡 쏴주고는 다시 고민에 잠겼다. -후우 하고 소년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이런 소년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름뒤편에 숨어있던 햇살이 구름이 걷히자 강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소년은 직사광선이 내리쬐자 얼굴을 찡그리며 한손으로 눈을 슬쩍 가렸다. 눈을 가리자 예민해진 청각이 주변의 소리를 더욱 잘 모아왔다. 그러자 주변을 감도는 바람소리를 타고 누군가의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아란 또래의 소년의 목소리다.

"합! 하압! 이얍! 합! 하앗!"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하얀 호숫가에서 검술연습을 하고 있는 이얀이었다. 금발소년의 탐스런 금색 머리카락이 기합소리에 맞춰서 흔들린다. 그리고 그에 따라 내질러지는 목검. 이얀은 목검을 강하고 정확하게 허공을 향해 휘둘렀다.

힘이 실린 제국의 정통 중검술이 이얀의 손에서 펼쳐졌다. 강약의 맺고 끊음이 확실한 제국 중검술은 절도 있는 동작이 특징이었는데 그 특성이 고스란히 이얀의 검술에 배여 있었다. 물론 그런데 전혀 문외한인 아란은 한손으로 눈을 괴롭히는 햇빛을 가린 채 그런 이얀을 단지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 이었지만….

아란은 생각했다. 저런 게 기사라는 걸까. 환한 햇볕아래서 하얀 호수를 배경삼아 빛나는 금발을 흩날리며 당당하게 목검을 휘두르는 이얀 말이다. 그 모습은 눈부시도록 멋졌다.

지금 영주성에서 기사수업을 받고 있는 이얀은 장래에 당당한 기사가 되리라고 호언장담을 했었다. 영주의 아들인데다 재능마저 출중하니 아란은 그가 미래에 기사가 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라고 여겼다.

아란은 만약 이 하얀 호수마을을 배경으로 기사무용담을 쓴다면 주인공은 무조건 이얀이 맡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아란이 만든 유치한 스토리가 지나간다.

잘생긴 소년기사 이얀, 절친한 친구를 동네아이들의 괴롭힘 속에서 구해내고 마을 소녀들의 대통령이 되어 인기를 독차지하다, 옆 마을의 사악한 마녀가 침공해 마을 미녀를 납치하자 당당하게 쳐들어가서 그녀를 구출하고 영웅이 된다. 그리고 마을미녀와 잘돼서 -띵까띵까 해피엔딩.

이런 구도가 선하게 그려졌다. 물론, 마을미녀는 리리스? 아마도 그쯤 될 것이고 자신은 이얀의 절친한 친구로 옆에서 말 잘하는 당나귀 같은 역할이거나 가끔 암울해지는 무용담분위기를 촌철살인의 입담으로 띄우는 개그캐릭터의 설정일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잘생긴 놈이 주인공, 기사 다 해먹는 게 기사무용담의 절대원칙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더욱 암울해진다. -에휴 과연 내가 저런 기사가 될 수 있을까? 아란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이얀을 쳐다본다.

그러자, 이얀은 아란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꼈던지, 이쪽을 쳐다보면서 씨익 웃는다. 시원시원한 미소였지만, 아란의 눈에는 왠지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보여 내심 기분이 상했다.

'쳇….' 아란은 아니꼬워서 입이 한자나 튀어나왔다.

이얀은 너무 열심히 검술연습을 한 나머지 온몸이 땀범벅이 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얕은 호숫가로 찰박찰박하고 들어가더니 허리를 굽혀 세수를 하고는 두 손을 모아 물을 떠서 머리위로 끼얹었다. 무지 더웠던 모양이다. 그러더니 머리를 아예 물속에 푹 하고 처박았다가 고개를 든다. 그리곤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머리에 머금은 물방울들을 털어냈다. 굉장히 시원해보였다.

그렇게 한차례 멱을 감고나온 이얀은 물밖에 놓아두었던 목검을 주워들고는 아란 옆으로 걸어와서 털썩 하고 주저앉았다. 땀 냄새가 섞인 진한 물 냄새가 아란의 코를 간지럽혔다.

"뭐하냐?"

"응? 아니, 그냥 있어…."

"어라? 책, 안보냐?"

아란이 책을 엎은 채 한손으로 눈을 가리고 누워있자 이얀은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물어본다. 아란이 책을 놓을 때도 다 있다니 신기하다는 눈초리다.

"응…, 그냥…."

"헤에? 의외인데 그 소문난 책벌레 아란이 책을 보다가 엎다니! 루치야가 슬퍼할 텐데…. 킥킥!"

이얀은 장난기 서린 말투로 그렇게 말하고는 키득거린다. 아란은 그런 이얀이 못마땅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거기서 왜, 루치야가 나오는 건데? 걔랑은 아무상관도 없잖아."

"우후훗! 과연 그럴까?"

"그래! 그리고, 자꾸 네가 말할 때마다 이쪽으로 물 튀거든? 그러니깐 절로 좀 떨어져. 훠이~훠이~"

손을 휘휘 내젓는 아란. 아란의 말을 듣자 동감했던지, 이얀은 머리에 머금은 물을 -탈탈 털어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얀은 아란의 시큰둥한 반응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호오? 꽤나 까칠하게 나오는데? 아란. 뭐냐 요즘 며칠 내내 계속 그런 것 같던데…. 고민이라도 생겼냐?"

"음…?"

"말해봐~ 이 형님이 나서서 해결해주마. 보나마나 시시한 거겠지?"

"윽, 시시한 거 아니거든? 나에겐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이얀의 비아냥거리는 듯 한 말투에 발끈해서 내뱉은 말이었지만, 아란은 아차 싶었다.

"후후, 걸려들었군. 먼진 모르겠지만 확실히 뭔가 있기는 한 모양인데? 뭐야 그게? 이 횽아가 해결해 주겠다니깐."

이얀은 음흉한 미소로 -흐흐흣 하고 웃으며 묻는다. 그러나 아란은 이얀의 수법에 넘어갔다는 데에 묘하게 불쾌했다.

"흥. 됐거든? 네 걱정이나 잘하시죠? 어쨌거나 넌, 오히려 요새 좀 '하이(High)'하게 업된 거 같던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보지?"

"하하하, 너무 티났나? 이 형님은 요새 사업이 너무 잘돼서 말이지."

"사, 사업?"

"응응, 보통 사업이라고 쓰고 연애라고 읽지요~."

뭐야 그게?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이얀은 연신 즐거워 죽겠다는 듯이 -하하핫 하고 유쾌한 웃음을 날리며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이얀이 좋아할 일이라면 전에 말한 대로 리리스?

짐작한대로 이얀이 하는 말은 대부분 리리스에 관한 이야기였다. 저번에 리리스랑 같이 옆 마을 경계까지 가봤는데 멋졌다느니, 어제는 리리스를 집 앞에까지 데려다 줬더니 좋아하더라 느니, 리리스친구들을 따돌리고 둘이서만 만난 적도 있었는데 되게 재밌었다느니 하는 전형적인 염장성 발언.

둘이 요즘에 잘 되가나보다. 마을 아이들에 따르면 요즘에 공공연히 둘이서 같이 다닌다는 소문이 떠돌았었는데, 설마설마 했더니 진짜였나 보다. 이얀이 요새 무척이나 들떠 보인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구나.

아란은 '그렇구나.' 하고는 납득해버린다. 그러나 리리스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있자니 아란은 왠지 침울해졌다. 좋겠구나 이얀은, 자기와 같은 열등감에 시달릴 고민 따위 없어서….

아란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얘기 하고 있는 이얀을 바라본다. 왠지 분했다. 역시 사람은 잘생기고 볼일인가보다. 한번 자괴감이 생각을 지배하기 시작하니 아무리 친한 친구인 이얀이라 하더라도 곱게 보이진 않았다.

그렇게 여기면서 이얀이 떠드는 것을 묵묵히 듣고 있자니, 그때 이얀이 아! 하고는 갑자기 생각난 게 있었던지 자신이 입고 있던 가죽재킷의 주머니를 뒤지다가 뭔가를 꺼내어 보여주었다.

"쨔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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