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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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군
작품등록일 :
2014.03.05 16:39
최근연재일 :
2014.09.3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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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3.0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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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8

[무쌍]은 성장 소설입니다. 시대상과 현실을 접목한 소설입니다. 느긋이 감상해 주십시요.




DUMMY

“에이 벌씨로 엥꼬네.”

압축 손잡이에 부하가 걸리지 않았다. 뿌연 농약이 분사구에서 주르륵 흘러내렸다. 박진보가 양쪽 어깨를 흔들어 보고 투덜거렸다.

어깨에 멘 질통은 한말들이 스테인리스 분무기다. 살포기 닛블에서 안개처럼 뿜어져 나와야 할 농약이 거품만 뽀글거렸다. 농약이 동났으니 질통 속에서 공기 압축이 되지 않는다.

그는 피식 거리는 질통을 지고 논배미를 빠져 나왔다. 한말들이 질통으로 한 마지기를 채 뿌리기 힘들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중천에 칠월의 태양이 걸려 있었다. 태양은 거침없이 열량을 쏟아 부어 논을 달구었다. 벼가 쑥쑥 자랄 날씨다.

뜨끈한 논물에 잠긴 발목에 물방개나 게아재비 같은 수서 곤충들이 툭툭 부딪혔다. 파라치온을 덮어쓴 이놈들도 곧 죽을 목숨이다.

질통을 충전한 박진보는 작업을 재개했다. 아침 일찍 시작한 농약 살포를 중참이 되도록 끝내지 못했다. 햇볕은 뜨겁고, 질통 멜빵은 어깨를 짓눌렀다. 질퍽한 논바닥이 다리를 붙잡았다. 실린더를 압축하느라 팔이 저렸다. 땀이 흘러 속옷이 척척했다.

박진보는 해를 올려다보고 마음이 급해졌다.

목에 걸린 수건을 벗어 땀을 훔치고 서둘러 개울가로 나갔다. 서둘렀지만 아직도 세 두락이나 남았다.

"아부지!"

밤톨만한 녀석이 좁은 논두렁을 타고 다람쥐처럼 재바르게 달려왔다. 아이의 등에 맨 책보에서 필통이 딸각딸각 소리를 냈다. 박진보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오이야, 쌍이 왔구나. 니 핵교서 바로 오는 기가?"

“야”

아들은 숨찬 기색도 별로 없다.

“전에 맨치로 논가 샘에 돌 던져 넣고 놀다 온 거 아이제?”

“하모에. 이자 그런 짓 안합니더.”

무쌍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극구 부인했다.

사실은 친구 몇 놈과 동네 우물에 돌 던져 넣기 놀이를 하다가 왔다. 멀리 떨어져서 돌을 던져 우물에 골인시키는 놀이다. 오늘도 구슬을 서른 개나 땄다.

“그래. 그런 짓 하마 몹쓸 인간이 되뿌린다.”

무쌍은 아버지 말에 찔끔했다. 양심이 찔렸다. 구슬을 따는 재미에 정신이 홀랑 팔렸지만 그만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을 어귀 들판에 공동 우물이 있다.

경부고속도로 착공으로 논밭은 물론 우물까지 도로 구역에 들어갔다.

동네 아이들은 우물이 못 쓰게 되었다고 우물 속에 돌을 던져 넣는 놀이를 했다. 물론 어른들에게 뒈지게 맞았다. 너무 재미있어 아이들은 몰래 놀이를 계속했다.

놀 거리를 찾는 철없는 아이들이다. 제대로 보상도 못 받고 생짜로 농토를 수용 당한 어른들의 참담한 심정을 알 리 없었다.

“아직 안 끝났어예?"

"오야, 곧 끝낼 끼다. 머할라꼬 왔노 배고플 낀데."

"어무이가 가보라 카데예. 아부지 늦으마 참 가꼬 올라 캅디더."

“만다꼬 그 카노. 니 엄마 몸도 부실헌디. 니 가서 아부지 금방 간다 캐라.”

“야”

질통을 채우려고 박진보가 논에서 빠져 나왔다. 벌써 다섯 번째다. 무쌍의 눈이 아버지 종아리에 멎었다.

“아부지, 거머리”

이미 통통해진 거머리 몇 마리가 종아리에 빨판을 박고 열심히 흡혈 중이었다.

“떠그럴, 빨아 먹을 만큼 먹었구마.”

아버지는 별로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무쌍이 달려들어 거머리를 뜯어냈다. 빨판이 피부에 딱 붙어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몸체가 끊어질 정도로 늘어나서야 빨판이 뚝 떨어졌다.

무쌍은 가는 풀대를 거머리 항문에 쑤셔 넣어 홀랑 뒤집었다. 몸이 뒤집어지자 흡혈한 피가 흥건히 쏟아져 나왔다.

“이히히, 요놈들 맛좀 바라.”

다섯 마리 모두 응징을 가한 무쌍이 아버지를 쳐다보며 히히 웃었다.

무쌍의 손은 거머리가 쏟아 낸 피로 벌겋게 물들었다.

엽기적인 모습이다. 박진보도 아들을 내려다보며 히히 웃었다.

“그거 무쌍식 사형 선고가?”

“쪼금 그래. 본래는 불로 태우는데 이놈은 아부지 피를 빨았어. 괘씸하거든.”

박진보는 아들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엄마 올라. 얼릉 집에 가거라.”

“야”

무쌍은 대답만 하고 쭐레쭐레 개울로 들어갔다.

“또랑에는 와 가노?”

"돌미나리 좀 뜯어 갈라꼬요. 엄마가 좋아한다 아임니꺼"

사실은 가재를 잡으려고 했다. 얼른 엄마 핑계를 댔다.

“머시라, 돌미나리? 벨로 없을 낀데. 잘 찾아 바라.”

역시 아버지는 엄마 핑계만 대면 통과다.

개울로 내려가서 돌미나리를 찾았다. 지천으로 늘려 있던 돌미나리가 별로 보이지 않았다. 돌미나리가 농약에 해독 작용을 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탓이다. 마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채취하는 바람에 씨가 말랐다.

농약 중독은 언제나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겨우 돌미나리 한줌을 뜯고 가재 잡기에 빠져 들었다.

박진보는 일을 서둘렀다.

열 마지기중에 이제 두 마지기만 남았다. 그의 논은 집에서 오리는 걸어 나와야 하는 거리다. 그는 몸이 약한 아내가 참을 이고 뜨거운 햇볕 아래 나서기를 원치 않았다.

포리 저수지의 혜택을 받는 논은 병충해만 방제하면 소출이 보장되는 상답이다. 툭하면 홍수와 가뭄으로 작살이 나는 낙동강 강변 논에 비할 바 아니다.

지난 십년 동안 죽자고 일해서 다섯 마지기를 샀다. 나머지 다섯 마지기는 소작하는 논이다. 그렇게 물 걱정 없는 열 마지기를 장만했다. 이웃과 다투기 싫었기 때문이다.

대용량 지렛대 작동식 분무기가 나왔다지만 비싸서 구입을 하지 못했다. 한말들이 질통 분무기는 확실히 힘들고 불편했다.

플라스틱 바가지로 개울물을 퍼 질통을 채운 그는 농약병을 찾아들었다. 다갈색의 약병에 붙은 큼직한 라벨에 작은 해골이 그려져 있다. 맹독성이라는 뜻이다.

그는 갈색 병뚜껑을 열고 조심스럽게 속 마개를 뽑았다. 농약 속 마개를 뽑다가 튀어 오른 약물이 눈에 들어가 병원에 간 사람도 있었다.

‘세 뚜껑이던가, 네 뚜껑이던가?’

계량컵 구실을 하는 병뚜껑에 농약을 받아 질통에 부어 넣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질통을 몇 번 채웠지만 채울 때마다 헷갈렸다. 다갈색의 농약은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하늘하늘 물속으로 퍼져 들어갔다.

파라치온은 맹독성 농약이다. 파라치온 중독은 흔히 사망으로 이어졌다. 파라치온은 미량 흡입만으로 중독 증상이 나타난다. 농부들은 중독 위험에 불구하고 여전히 파라치온을 선호했다. 소량만 사용해도 멸구나 이화명충이 박멸되기 때문이다.

“에라 모르겠다. 네 뚜껑”

계량 뚜껑으로 세 번을 질통에 부어 넣고 긴가민가하던 그는 한 컵을 더 부어 넣었다. 그리고 막대기로 물이 튀지 않게 조심해서 휘저었다.

한 시간 정도만 서두르면 일을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에이, 바람이 와 이 카노.’

풍향이 계속 이리저리 바뀌었다. 신경이 쓰인 그는 마스크를 고쳐 썼다. 풍향이 자주 바뀌면 농약 살포를 중지하는 게 옳다. 그렇다고 찝찝하게 손바닥만큼 남기기도 내키지 않았다. 오후에는 감자밭도 메어야 한다.

박진보는 일을 마치고 봇도랑에서 대충 손과 얼굴을 씻고, 질통을 헹구었다. 개울에서 개비작 거리던 무쌍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똘똘한 아들놈은 힘이 넘쳤다. 한시도 집에 붙어 있을 때가 없었다.

놀기 좋아하는 아들을 그는 탓하지 않았다. 놀고 싶을 때 놀아야 한다. 노는 것도 공부다. 똘똘한 녀석이니 때가 되면 절로 알아서 할 것이라 믿었다.

고개를 들자 진땀이 나고 어지러웠다. 몸이 축 처졌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중참을 훨씬 넘긴 시간이다. 아내가 참을 이고 나올세라 그는 서둘러 지게를 지고 일어났다.




댓글과 추천이 고픕니다아!! 바쁘시더라도 발도장 꽝 찍어 줍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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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20 +15 14.03.06 7,836 189 9쪽
19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9 +12 14.03.06 8,741 213 9쪽
18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8 +16 14.03.06 8,726 202 9쪽
17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7 +9 14.03.06 8,217 225 7쪽
16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6 +17 14.03.05 8,902 23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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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4 +9 14.03.05 9,608 253 8쪽
13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3 +11 14.03.05 9,064 229 9쪽
12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2 +10 14.03.05 10,171 257 9쪽
11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1 +19 14.03.05 9,746 261 8쪽
10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0 +18 14.03.05 9,871 265 9쪽
9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9 +14 14.03.05 9,498 248 8쪽
»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8 +17 14.03.05 10,463 272 8쪽
7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7 +17 14.03.05 10,740 306 10쪽
6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6 +16 14.03.05 11,717 319 8쪽
5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5 +12 14.03.05 11,756 306 7쪽
4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4 +13 14.03.05 12,570 290 8쪽
3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3 +23 14.03.05 14,714 356 8쪽
2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2 +18 14.03.05 18,088 360 7쪽
1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 +28 14.03.05 33,177 45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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