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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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군
작품등록일 :
2014.03.05 16:39
최근연재일 :
2014.09.3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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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4.03.0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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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4

[무쌍]은 성장 소설입니다. 시대상과 현실을 접목한 소설입니다. 느긋이 감상해 주십시요.




DUMMY

무쌍을 공부 시키려면 어떻게 해서든 돈을 모아야 했다.

“엄마, 밥조.”

작은 손이 어깨를 흔들었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벽시계가 어느새 오후 두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이야 배고프제. 오데서 놀았노.”

“하늘 수박 캘라꼬 영곡마에 갔다 왔어.”

무쌍이 주먹 크기의 퍼런 열매 두 개와 길쭉한 뿌리를 내밀었다. 손과 발이 흙투성이였다.

“하늘 수박은 와?”

“혜순이 아재가 카는데 하늘 수박 뿌리를 달이 먹으마 기침이 낫는다 카더라. 약탕구는 오데 있노?”

“으흑!”

김말순의 눈에 차 있던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흙투성이 아들을 꼭 안았다.

아침 식사 준비를 도와주고 휭 사라졌던 아들이다. 아들은 밤마다 기침으로 고생하는 어미를 위해 하늘 수박을 캐러 갔던 것이다. 아들은 벌써 어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엄마는 개안타. 얼릉 씻고 밥 묵어라.”

김말순은 눈물을 훔치고 벌떡 일어났다.

당숙의 어거지나 친척들의 뒷담화 따위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곁에는 든든한 아들이 있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아들 무쌍, 남편이 아들 이름 하나는 정말 잘 지었다.

무쌍의 집 하숙생은 셋이다. 건넌방에는 공무원 한 명이 하숙하고, 건넌방보다 좁은 사랑방에 중장비 기사 둘이 하숙한다.

건넌방 하숙생은 상공부 말단 공무원인 이강철이다.

이강철은 자신의 담당 공구가 십여리 위쪽의 구미로 올라갔지만 여전히 하숙을 옮기지 않았다.

밥이 좋아서 옮기지 않는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억지 소리였다. 김말순의 요리 실력은 그냥저냥 평균 수준이다. 고기와 생선이 밥상에 오르는 횟수도 다른 밥집보다 뜸한 편이다. 상스런 것들이 질부의 미색에 홀려서 붙어 있다는 박평수의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랑방에 하숙하는 사십대의 운전기사 둘은 거의 집에 붙어 있지를 않았다. 퇴근만 하면 읍내 하우스에 나가 패를 쪼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다.

새벽녘에 들어오는 기사들 때문에 무쌍네 집 대문은 늘 열려 있었다.

무쌍의 집 안채는 전형적인 일자형 한옥 형태다. 다섯 평 넓이의 대청마루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 부엌과 안방이 있고 왼쪽에 건넌방이 있다.

안채 왼쪽에 위치한 사랑채 역시 일자형이다. 사랑방, 외양간, 헛간, 방앗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사장에서 밤늦게 퇴근한 이강철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하루 종일 현장을 챙기느라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눈은 말똥거리기만 했다.

양을 백 마리 세면 잠이 든다는 말은 헛소리였다. 생양파를 썰어서 머리맡에 두었지만 그것도 소용없었다.

“에이 씨”

결국 벌떡 일어나 담배를 피워 물었다.

혈연, 지연, 학연 세 가지 중에 자신이 가진 것은?

없다.

한마디로 줄 없는 개털이란 소리다. 덕분에 편안한 사무실을 두고 경북 오지에 밀려와 공사장 먼지로 목구멍을 채우고 있다.

현재 그가 맡은 곳은 경부고속도로 낙동 12공구, 왜관과 구미 사이다. 12공구 공사 감독이자 상공부 9급 공무원이 그의 신분이다. 정확히 말하면 공사 감독이 아니라 공사 독전관이다.

쌍팔년도 이전 압록강을 넘은 중공군의 독전관이 경부고속도로 공사에 등장했다. 공사장은 실제로 전쟁터였다. 이강철은 중앙에서 수시로 내려오는 독려에 노이로제가 걸려 있었다.

대통령이 매일 진척도를 챙기는 공사다.

정부는 사활을 걸고 경부고속도로 공기 단축을 밀어 붙였다. 공무원들은 미친 듯이 건설 업체를 닦달했고, 건설 업체는 하청 업체를 조졌다. 하청 업체는 안전을 도외시하고 공사를 밀어붙였다.

무리한 공사 진행은 수많은 사고와 인명 피해를 불렀지만 크게 이슈화 되지 못했다. 정부와 업체는 사고와 인명 희생을 통과 의례로 여겼다. 심지어 인명 피해를 낸 공무원도 목표만 달성하면 표창을 받았다.

이강철은 서른두 살 노총각이다. 세상을 알 만큼 알고 뻘짓도 할 만큼 해 봤다. 시골 오지에 처박힌 그로서는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낙동 12공구는 자연부락이 띄엄띄엄 형성된 전형적인 시골구석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인 만큼 술집도 없고 색시 집도 없었다.

하숙집에서 200미터 떨어진 면소재지에도 놀 거리라곤 눈을 씻어도 보이지 보았다. 정체가 모호한 경자와영자네라는 술집겸 노름방이 있고, 허름한 다방이 한 개 있을 따름이었다.

업종이 모호한 경자와영자네 주인은 팍삭 삭은 오십대 여자였다. 풍상에 찌들어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을 분으로 떡칠한 상판을 볼작시면 이강철은 몸서리를 쳤다.

희한하게도 경자와영자네는 나름대로 손님이 많았다. 이강철은 경자와영자네에 드나드는 농사꾼들이 신기했다. 귀신같은 쌍판과 쭈글쭈글한 손으로 따라 주는 술이다. 무슨 술맛이 나겠는가. 가뭄과 홍수에 지쳐 버린 농사꾼의 심정을 공무원인 그가 이해하기는 힘들었다.

다방도 가관이었다.

바다 다방이라는 짜증날 정도로 무성의한 간판이 삐딱하게 걸린 다방이다. 바다에는 구정물 같은 커피와 쌍화차 딱 두 가지 메뉴가 있었다. 그야말로 바다에 처넣고 싶을 정도로 맛없는 메뉴다. 우유와 사이다도 있지만 그것은 공산품이니 메뉴라 할 수 없다.

테이블은 끈적거리고 스펀지가 숭숭 비어져 나오는 소파는 앉기가 겁날 정도였다.

다방 레지는 이십 초반의 여자였지만 온갖 잡놈이 올라타는 공용이었다. 그녀의 구멍 동서가 오십을 넘는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소문이 아니래도 나름대로 눈이 있는 이강철이다. 값싼 화학섬유 옷을 입고 젖퉁이 쳐진 촌스런 여자는 손도 대기 싫었다.

아래채 기사 방은 하우스가 된지 오래였다. 기사 둘은 읍 소재지에 자주 나가는 편이지만 집에 있을 때도 방에서 노름판을 벌였다.

노름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그는 은근한 권유에 불구하고 판에 끼어들지 않았다. 소문이 퍼지면 인사 고과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여자도 없고 술집도 없다. 마음 놓고 노름을 즐길 수도 없다. 이강철은 스트레스를 풀 건수가 원천 봉쇄된 촌구석에서 몸부림쳤다.

혈기 넘치는 노총각인 이강철의 스트레스는 사채 이자 늘듯 늘어났다. 형편이 이러니 이강철이 미치지 않고 버티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나마 감독을 맡은 구간에서 큰 사고나 인명 피해가 없어 다행이었다. 물론 이강철이 잘 해서가 아니라 난공사 구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이강철은 아리랑을 두 대째 죽이는 중이었다.

내일 공사 일정을 구상하다 한 대를 피우고, 하숙집 주인 여자가 생각나는 바람에 다시 한 대를 빼 물었다.

하얀 달빛이 열려진 봉창을 통해 마구 쏟아져 내렸다. 파르스름한 담배 연기가 뭉쳐 하숙집 미망인의 하얀 얼굴로 바뀌었다.

하숙집 아줌마는 겨우 서른 한 살이다. 국민학생 아이를 둔 여자가 자신보다 한 살이 적다. 물론 이강철이 생각하는 겨우 라는 부사는 어렵게, 힘들여서라는 뜻이 아니라 기껏해야 라는 의미다. 기껏해야 서른한 살이라는 이야기다.

미망인은 미인대회에 나갈만한 얼굴에 보호 본능을 부르는 섬약한 몸매를 가졌다.

바람이 불면 훅 날려 갈 듯 가녀린 신체, 주먹만 한 얼굴에 정확히 비례를 맞추어 자리 잡은 이목구비, 가느다란 목, 창백해 보이는 하얀 얼굴, 붉은 입술과 짙은 눈썹…….

아무리 박하게 점수를 매겨도 이십대 중반 이상으로 볼 수 없는 몸매와 얼굴이었다. 이런 깡 시골에서 있어서는 안될 사기적 존재가 하숙집 미망인이다. 물론 자신의 주관이 많이 개입된 평가다.




댓글과 추천이 고픕니다아!! 바쁘시더라도 발도장 꽝 찍어 줍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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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20 +15 14.03.06 7,836 189 9쪽
19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9 +12 14.03.06 8,741 213 9쪽
18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8 +16 14.03.06 8,726 202 9쪽
17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7 +9 14.03.06 8,217 225 7쪽
16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6 +17 14.03.05 8,902 239 9쪽
15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5 +13 14.03.05 8,824 246 8쪽
»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4 +9 14.03.05 9,609 253 8쪽
13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3 +11 14.03.05 9,064 229 9쪽
12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2 +10 14.03.05 10,171 257 9쪽
11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1 +19 14.03.05 9,746 261 8쪽
10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0 +18 14.03.05 9,871 265 9쪽
9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9 +14 14.03.05 9,498 248 8쪽
8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8 +17 14.03.05 10,463 272 8쪽
7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7 +17 14.03.05 10,740 306 10쪽
6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6 +16 14.03.05 11,717 319 8쪽
5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5 +12 14.03.05 11,756 306 7쪽
4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4 +13 14.03.05 12,570 290 8쪽
3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3 +23 14.03.05 14,714 356 8쪽
2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2 +18 14.03.05 18,088 360 7쪽
1 짚은다리의 천덕꾸러기 1 +28 14.03.05 33,177 45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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