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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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까
작품등록일 :
2017.04.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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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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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27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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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그것뿐이야(4)

DUMMY

"왜요...!"


여태까지와 달리 레샤는 자리를 팍 치고 일어나 대들었다.

대들었다? 대든 건가? 잘 모르겠다. 그런 것치곤 좀 약하고. 수긍하지 못해 이유를 묻는 것 치곤 강하고.


따님께서 나름대로 치기 가득하게 올려다보는데도 레아는 전혀 끄떡없었다. 오히려 등을 더 꼿꼿이 세워서는 스태프가 레샤의 손에 닿지 않도록 등 뒤로 숨겼다.


"왜긴. 엄마 마음."


지켜보는 사람도 헛숨이 컥 튀어나올만큼 황당한 이유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예나 지금이나 억지에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것인지 레샤는 지지않고 맞섰다.


"여기?"


레아는 그보다 더 강적인 것 같았지만.


"이리 줘요...!"


레샤가 벌떡 일어나자 레아는 손바닥을 앞으로 뻗어 더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다.


"엄마가 그렇게 말하랬어?"


그리고는 야단 치듯 힘주어 말했다.

기세가 한 꺼풀 꺾인 레샤는 다시 한 번 조심스레 말했다.


"주, 주세요...!"


아주 공손하게 말이다.


"싫어."


그러나 아주머니는 대번에 고개를 저었다.


"이잇...!"


가뿐히 배신당하자 레샤는 치를 떨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아는 빙글빙글 웃는 낯으로 그걸 지켜봤다.


"돌려줘요, 빨리...!"


말로는 안 되겠다 싶은지 레샤는 엄마에게 붙어 손을 뻗었다. 당연히 손은 닿지 않았다. 레아는 팔을 높게 들고 등허리를 더 활짝 켜 스태프를 높게 높게 들었다.


레샤가 까치발을 들면 레아도 까치발을 들고, 레샤가 폴짝 뛰면 레아도 똑같이 폴짝 뛰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레샤의 손은 결코 스태프까지 닿지 않았다.


"그건 제 거잖아요...!"


다시 방법을 바꾸기로 한 건지 레샤가 스태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말로 설득해서 되찾겠다는 생각 같았다.


"아니? 우리 엄마 건데?"


레아는 기가 막힌 소리를 들었다는 듯 헛웃음까지 흘리며 받아쳤다.


"그게 제 할머니잖아요...!"


"아니야. 우리 엄마야."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논리에 우리는 말리거나 끼어들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싸운다기보단 아웅다웅한다고나 할까.


레샤는 화를 내고 있지만 아주머니는 장난을 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화를 내게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어찌되었건 손님이 무어라 참견할만한 상황은 못 돼보였다.

이건 결국 가족간의 문제다.


"제가 엄마 딸이잖아요...!"


답답한 이야기가 계속되니 레샤는 악에 받쳐 소리쳤다.

엄마의 엄마는 할머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누가 그걸 모르고서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텐데도 레샤는 저렇게 돌파하려고 하는 성격이었다.

아마 요상한 할머니들 사이에서 그나마 자신은 정상적으로 남기 위한 발악이 아니었을까.


"그래. 레샤는 엄마 딸이야."


"그럼 돌려줘요...!"


"싫어."


"대체 왜요...!"


"이런 거 없어도!"


늘상 가볍게 말하던 레아가 이번에는 힘을 주어 딱 말했다.


"레샤는 엄마 딸이야."


이전과는 달리 완고한 태도에 레샤는 쉽사리 말을 붙이지 못하고 우물거렸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 애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런 말투는 너무 나간 게 아닐까, 다들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져버리고 말았다.


"엄마는 아무 것도 몰라요..."


"엄마가 뭘 모르는데?"


그건 그냥 못 넘어가겠는지 레아도 언성을 높였다.


"다요, 전부 다...!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요...!"


사태가 갑자기 급변하자 놀란 건 오히려 나였다. 말려야 할 것 같은데, 좀처럼 틈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애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렇게 억울하면 레샤가 직접 뺐어봐. 그것도 못 하면서 어떡하겠다는 건데?"


"할머니는 그렇게 말 안 했었는데...!"


"엄마는 할머니가 아니야."


"...받아낼 거예요."


레샤는 엇갈린 대답을 내놓았다.


"그럼 레샤는 레샤 마음대로 해. 엄마는 엄마 마음대로 할 테니까."


레아 아주머니도 그 싸움을 피하는 것 같지 않았다.

거기까지 다다르자. 레샤는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성난 맹수에게서 도망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물러나서는 한 마디 툭 중얼거렸다.


"빈털터리..."


"그래 엄만 빈털터리야."


대꾸는 시원했다.


"요부..."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반대로 아주머니가 소리치자 레샤는 도망치듯 나가버렸다. 이어 문이 여닫히는 소리도 들렸다.

얼어붙어있던 우리가 퍼뜩 정신을 차린 건 그 때였다.


"레샤 자매님!"


"레샤! 어디가?!"


에반젤린도 야우라도 욕이나 다름없는 소릴 내뱉고 나가버린 레샤를 쫓아 방을 나갔다.


순식간에 나만 남아버렸다.

아니 레아 아주머니가 남아있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둘이었다.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다. 내가 레샤를 쫓아간다고 해서 딱히 뭔가 되거나 또 뭔가를 해야 하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거기 가 있는 게 여기에 있는 것보단 여러모로 편할 것 같았다.

주로 정신적으로.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러고 싶었는데...

못 그랬다는 뜻이다.


"저기... 이것 좀 놔주시겠어요...?"


나는 내 뒷깃을 잡고 있는 레아에게 말했다.

아주머니는 그렇게 날 못 가게 막고는 스태프를 어깨에 걸친 채 레샤가 나간 곳을 계속 보고 있었다.


"결국은 도망치는 거밖에 할 수 없잖아."


레아가 말했다.

그건 나에게 하는 말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난 그게 나한테 하는 말이었으면 했다.


"그러니까 저도 도망 좀 치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나한테도 하소연 할 사람 하나 정돈 있어야지."


그게 꼭 나여야 하는 걸까.


"그런 거라면 사제님도 있는데..."


"사제는 좀 불편해서. 그리고 그 사제한테 신뢰받는 남자도 나쁘지 않잖아?"



화가 난 건지, 안 난 건지-


탁자 위에 잔이 내려놓아졌다. 엄지와 검지로 고리를 만든 것만큼의 크기밖에 되지 않는 작은 잔. 두 개로 포개어져 있었다.

레아는 개 중 위의 것을 들어내 옆에다 놓아 두 개로 나누었다.


이어 함께 가져온 술병의 마개를 열어 따랐다. 무엇을 담근 걸까 금빛을 띠는 황갈색의 술이 쪼르르 절반까지 채워졌다.

거기서 한 차례 멈추기.

그 의미는 알 수 없었으나 레아는 그렇게 잠시 멈췄다가 병을 다시 기울여 절반의 선을 넘겼다. 그리고 말했다.


"한 잔?"


같이 하겠느냐는 것이다.

글쎄, 갑자기 뭔지 모르겠다.


방금 전까지 따님이랑 박 터지게 싸우고선 아무렇지도 않은 건지 술을 꺼내와 권한다는 게... 나에겐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뇨."


내가 사양하자 레아는 별 상관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나머지 잔에도 술을 따랐다.


"안 먹는다니까요..."


"기분만 내는 거야."


그렇다고 하시니 나는 잠자코 앞으로 밀어지는 술잔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탁, 소리가 나도록 술병을 내려놓은 레아는 이어 의자에 앉아서는 다리를 꼬았다. 자연히 치마가 벌어져 맨다리가 약간 드러나 보였다. 다리가 보이는 건 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뭐랄까 이런 어색한 분위기에서 그런 식으로 보게 되니까 뭔가...


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다대던 아주머니는 그러기를 멈추고 힐끗 내게 눈길을 주었다.


별 생각 없이 그 모습을 보고 있었던 나는 막상 눈이 마주치게 되자 움찔 놀라버리고 말았다.


"요부라는 말. 신경 쓰여?"


아주머니가 물었다.

레샤가 마지막으로 내뱉고 도망가버린 말이었다. 사람을 홀리는 여자라고. 그 애는 그렇게 말했다.

내 생각엔 아무리 화가 났다 한들 엄마에게 하기엔 너무 심한 말이 아닌가 싶다.


"뭐... 화가 나면 아무 말이나 하는 거니까요."


누구를 위해서일까, 난 그렇게 변명했다.


"정말 그런 거라고 생각해?"


그럼 친구 엄마한테 뭐라고 할까요, 따져 묻고 싶은 마음이 보글보글 가슴 속에서 끓었지만 그것도 잘 참고 입을 꾹 다물었다.


"레이크, 아줌마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아주머니는 여전히 잔도 비우지 않고서 계속해 내게 말을 걸었다.


"뭔데요?"


"사실 난... 마법을 쓸 줄 알아."


그렇게 말하며 레아는 다시 잔을 입가에 대고선 후, 하고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잔 주변에 허옇게 김이 서렸다.

미지근했던 술이 순식간에 차게 식었다.

그 후 아주머니는 잔을 한 번에 비웠다.

조절도 나보단 훨씬 잘하고, 그걸 간단히 해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와 그걸 대단한 비밀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건 저번에 보여줬잖아요."


나비라던가, 겉모양 뿐이라던 진흙 괴물이라던가.


"아, 맞아. 그랬지. 근데 그런 건 애들 장난 같은 거야."


레아는 잔을 내려놓으며 픽 웃었다.


"다른 비밀도 알려줄까?"


"뭔데요..."


이번엔 조심스럽게 물었다.


"까뮤 할머니도 마법을 쓸 줄 알아."


"아... 그래요...?"


전혀 알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다.


"마노 할머니도 쓸 줄 알고, 르위쟈 할머니도 쓸 줄 알고, 시세일라 할머니도 쓸 줄 알아."


내가 알고 싶지 않다고 말을 안 해서 그런지 몰라도 레아 아주머니는 다른 할머니들의 이름을 계속 열거했다.


"이쟈벨... 우리 엄마도 쓸 줄 알아."


거기까지 듣고 나자 나는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보니까 할머니들은 안 쓰던데요."


그건 쓸 일이 없어서 그런 건가.

그럴 수도 있었다.


아니, 잘 돌이켜보면 쓸 일이야 얼마든지 있었다. 레샤의 환영회 준비가 부족하다고 했었으니까, 마법을 사용할 줄 안다면 그 때 썼으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준비는 부족했고 결과는 초라했다.


"레샤 앞에선 안 쓰려고 하니까."


"네? 왜요?"


"레샤는 마법을 쓸 줄 모르거든."


그건 납득하기 힘들었다.

세상에 마법을 못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재능의 차이든, 선택의 차이든 그런 사람은 얼마든지 있었다.


쓰지 못하는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건 오히려 그 사람의 다른 걸 무시하는 처사였고 무언가를 할 줄 안다는 건 축복이었다.


"레이크."


레아 아주머니는 잔을 내려놓고 술병을 다시 들며 말했다.


"네?"


"아줌마가 비밀 하나 알려줄까?"


또 같은 얘기다.

혹시 이 사람, 술 먹으면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하는 사람인가?

나는 그런 의심을 하게 되었다.


"할머니가 마법을 쓸 줄 안다는 건 들었는데요."


"사실. 난 정말 요부일지도 몰라."


"네? 아니..."


거기서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무슨 말을 더 덧붙일 수 있을까. 혹시 놀리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게 아니라고 믿을 수 있었던 건 레아 아주머니가 왠지 기운 없는 눈을 하고 있었고 그러면서도 입가는 슬며시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쩜 레샤의 눈엔 우리 전부 요부일지도 모르지."


듣는 사람은 난감해 죽겠는데, 아주머니는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내 목구멍을 콱 막을 소리만 계속 했다.


"레이크는 혹시 팔렌팔라라고 들어봤니?"


"팔렌팔라요?"


내가 되묻자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다시 채웠다.

팔렌팔라... 들어본 것도 같았다. 하지만 뭔가 더 떠오르지는 않았다. 반대로 들어보기는 한 것인지조차 가물가물 해졌다.

팔렌팔라.

보석 이름 같은 거였나. 아니 그건 오팔이었나.

역시 모르겠다.


"못 들어봤는데요."


"하긴 대대로 묘지기를 하는 게 아니고서야. 그럼, 저주받은 민족에 대해서는?"


"그런 건 이야기 속에만 나오는 거 아니에요?"


"그럼 저주받은 땅에 대해서는?"


"뭐... 모래만 있는 곳이라던가, 용암이 들끓는 곳 같은 건 들어봤죠."


"물과 땅이 썩어버리는 곳은?"


"그런 건 은근히..."


흔하다고, 무심코 그리 말하려 했던 나는 자세를 바로 잡아 앉았다.

물과 땅이 못 쓰게 되는 곳은 의외로 많았다. 여기 올 때도 물이 썩어버렸던 곳이 있지 않았던가.


그래, 그랬다.


그래서 레아가 동굴의 수원에서 뭔가를 망토에 감싸 가지고 나왔었다. 그러면 괜찮을 거라고,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만난 레아는 망토에서 연꽃을 꺼내 늪에 풀었다.

또, 레샤는 할머니에게 연꽃이 되었다고... 그리고 연꽃을 보며 누구냐고 묻기도 했었다.


"에이..."


나는 레아 아주머니를 보며 실실 웃어보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않은가.


물이 썩는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땅이 죽는 이유도 많고 많았다. 아주아주 오래 살고 여러 지방을 돌아다닌 현자라 하더라도 죽은 땅을 보고서 그 원인이 무엇 때문이라고 한눈에 딱 짚을 수는 없었다.


난 망토의 내용물을 보지 못했다. 그 때의 그게 지금의 그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직접 행동했던 이 아줌마 말고는 아무도 그럴 수 없었다.


레아 아주머니는 내 머릿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처럼 빙긋이 웃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마. 저주를 풀기 위해 너희를 잡아먹는다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이걸 어떻게 쉽게 생각해요, 그럼!"


내가 소리치자 레아 아주머니는 그것도 그런가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저주를 받은 거예요?"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거야 모르지. 할머니의 할머니도 모른다 했고 그럼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도 모를 테니까. 천 살 먹은 할머니도 모르지 않을까?"


"그럼 왜 저주받은 민족이라고..."


"그거야 뻔하잖아?"


레아는 스태프로 제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한 여자가 있었던 거야. 젊고 아름다운 여자가. 쾌활하고 춤을 좋아하는데다가 마법까지 쓸 줄 아는. 어떤 남자가 그런 여자를 사랑하지 않겠니? 어떻게 그런 여자가 자신의 연심을 외면하겠어. 사랑은 불꽃 같고 세월은 쏜 살 같지. 서로의 불씨를 아끼고 간직하더라도. 언젠간 꺼지게 되어있어. 죽음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여자가 죽었을 때, 남자는 슬펐을 거야. 슬픔을 잊지 못해 영원토록 기리고 싶어 여자의 시신을 땅에 묻겠지."


거기까지 말한 레아는 힐끗 내 눈을 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관심이 있나 없나 제대로 알아듣고 있는 건가 아닌 건가 가늠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도 난 제대로 듣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말을 이었다.


"생전 꽃같이 아름다웠던 여자는 죽어서도 꽃을 남겨.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된 거야. 열심히 키운 밀이 죽고 물을 마신 아이가 배가 아프다며 눈물을 흘리고. 우물에선 새빨간 물이 나오고. 다 그 여자가 죽은 후부터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면 다들 뭐라고 생각하겠어?"


꽃과 꽃에서부터 시작된 황폐.

사람은 무서워지면 부정적인 생각부터 하게 된다고 하니까.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저주라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그치? 아마 옛날엔 이러지 않았을까?"


"네?"


"레이크는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있어? 없지?"


"네... 없는데요."


레아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해보니 기이하긴 했다. 그런 일이 있다면 자기 마을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건 우리가 그렇게 살지 않기 때문이야."


"네에?"


난 점점 레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저 높은 봉우리의 산양이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지."


"산양? 산에서 사는 양이에요?"


그런 퉁퉁한 모습으로 산에서 살 수 있을런지, 난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내 질문이 우스운지 레아는 쿡쿡 웃었다. 하지만 산양이 정확히 뭔지는 알려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우린 털복숭이 양처럼 매여서는 못 살아. 성격이 그래. 여기저기 쏘다녀야 직성이 풀리지, 가만히 앉아서 뜨개질이나 하는 건 못 견딘다고. 농사 같은 건 시도해본 적도 없을 걸? 우리가 터를 잡고 살아간다는 건 땅 낭비고 돈 낭비야. 아마 관리도 못해서 금방 못 쓰게 될 거야."


"그럼 여기는요...?"


다 같이 모여살고 있는 이 마을은 대체 뭐란 말인가.


"여긴 강의 상류야."


그렇게 말한 레아는 또 다시 잔을 비웠다.


"바다로 나갔던 연어가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곳. 할머니들이나 레샤가 여기 이름이 뭐라고 했었니? 안 했을 텐데. 이름 없는 곳이거든. 우린 그런 데를 좋아해."


레아가 아무리 가볍게 말해도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아줌마 남편은요...?"


"남편이랄까... 몇 년 전에 찾아가보니까 죽었다더라. 그 사람한테 난 한 여름의 꿈같은 거였겠지."


그렇게 말하며 레샤는 낮게 뜬 눈으로 깊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웃는 낯으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야. 난 그저, 강과 바다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작은 물고기니까. 그래도 참 착한 사람이었는데."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내 침묵을 레아는 이해해주는 것 같았다. 웃고 있었으니까. 내겐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워 해주는구나. 근데 그럴 필요 없어."


레아는 손바닥으로 내 등을 톡톡 두드렸다.


"우리는 팔렌팔라. 일평생 불꽃같은 사랑을 하고 바람처럼 떠도는 민족인 거야."


거기까지 말한 레아는 계속 쥐고 있던 스태프를 벽 한 켠에 세워두고선 술잔을 다시 채웠다. 그리고는 그걸 마시는 게 아니라 대뜸 내 앞의 잔을 가져갔다.


"언니도 같이 마실래요?"


복도를 향해 잔을 내밀며 레아가 말했다.


언니라고?

나는 괜히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이 이상 가계도나 관계도가 더 복잡해지면 너무 어려워서 따라가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 예상과 기대와 걱정을 모두 깨고 복도에서 슬그머니 얼굴을 내민 건 야우라였다.


"...언니?"


나는 혼잣말을 하듯 넌지시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딱 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잖아. 연륜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내가 어떨떨해 하는 것이 재미있는지 레아는 픽 웃으며 말했다.


"뭐야, 뭐야.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었잖아? 진짜 나도 먹어도 돼?"


야우라는 새벽에 해뜨듯 반색을 하더니 숨어 듣기를 그만두고 안으로 들어왔다.


아, 맞아.

이거 보기보다 꽤 나이가 많지?

나는 내 것이었던 잔을 받아드는 야우라를 보며 생각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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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 42. 그러니까 이건(5) 19.09.26 80 5 22쪽
242 42. 그러니까 이건(4) +4 19.09.22 86 4 19쪽
241 42. 그러니까 이건(3) +2 19.09.18 78 4 17쪽
240 42. 그러니까 이건(2) 19.09.17 91 4 21쪽
239 42. 그러니까 이건(1) 19.09.11 101 4 21쪽
238 41. 그것뿐이야(6) 19.09.05 105 5 25쪽
237 41. 그것뿐이야(5) 19.09.01 100 4 26쪽
» 41. 그것뿐이야(4) 19.08.27 84 4 18쪽
235 41. 그것뿐이야(3) 19.08.25 83 4 16쪽
234 41. 그것뿐이야(2) +4 19.08.22 94 4 17쪽
233 41. 그것뿐이야(1) +2 19.08.20 128 4 16쪽
232 40. 연꽃이 자라는 곳(6) 19.08.15 94 5 18쪽
231 40. 연꽃이 자라는 곳(5) 19.08.13 82 5 26쪽
230 40. 연꽃이 자라는 곳(4) +2 19.08.07 96 5 18쪽
229 40. 연꽃이 자라는 곳(3) 19.08.03 92 4 17쪽
228 40. 연꽃이 자라는 곳(2) +2 19.07.30 110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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