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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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까
작품등록일 :
2017.04.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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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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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감 놓고 배 놓고 그것도 놔(4)

DUMMY

부자들이란, 겉으로 쉽게 표가 났다.

그 사람들이 일부러 과시를 하고 다니지 않더라도 입고 다니는 옷가지나 머리의 상태, 장구류를 보면 알 수 있다.


화려한 용모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옷감, 재질, 청결함과 같은 섬세한 부분에 대해 말하는 거다.


그런 부분에 있어 트리시아는 완벽하게 부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화려하게 꾸미지는 않았지만, 그건 트리시아 본인의 취향이 그러한 것이고 장식이 많지 않다는 의미이지 그 외의 부분들은 완벽했다.


내가 말하는 완벽에 의미가 없을지는 몰라도 트리샤가 팔에 걸쳐 두르고 있는 털실 가운만큼은 촘촘하고 부드러워 무진장 따뜻해 보였다.


단면의 모양새는 어떠하고 가장자리에 새겨진 무늬는 또 어떠한가. 짜는데 무진장 손이 많이 갔을 것이다.

안 그래 보여도 무진장 값이 나가는 물건이란 얘기다.


드레스는 어떠한가, 소매 끝엔 튀어 나온 실 한 오라기 안 보인다. 저 프릴이라는 장식은 난 어떻게 만드는지 상상도 가지 않을 만큼 구불구불하게 생겼다.

무진장 손이 많이 갈 것 같다는 얘기고,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은 곧 가격으로 이어졌다.


한 가지.

흠이라고 할 수도 없는 흠이라고 하나 꼽자면, 머리 모양과 장식에 심혈을 기울인다던 부자들의 소문과 달리 트리샤는 무거운 빛깔의 오렌지색 긴 머리를 끄트머리에서 딱 한 번 모아 띠로 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띠 하나조차 예삿 물건이 아니겠지.


그런다고 내가 기 죽을 줄 알고? 나는 쓸데 없는 책도 한 권 사본 사람이야.

사지 않아도 되는 걸 구태여 산거라고.


물론 여기 기 죽어 있는 사람도 있었다.

에리히 머스.


언젠가부터 위치는 바뀌어 사무실의 주인 자리를 차지한 것은 트리시아였고 에리히 머스는 책상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 이렇게 말하니 좀 이상한데 무릎을 꿇게 시킨 것은 아니고 그저, 에리히가 스스로 떨어뜨린 종이뭉치들을 줍다가 힘이 빠져 일어나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갑자기 사람이 그렇게 왜소하고 작아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거의 집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형수 같았다.


"토렌."


제 하인을 부르는 아가씨의 말에도 에리히는 본인이 놀랐다.


"거울. 거울 좀 줘봐."


트리샤가 손짓했다.

그러자 그런 걸 항상 들고 다니는 건지 토렌 씨는 익숙하게 거울을 꺼내 아가씨의 손에 넘겼다.


거울을 보는 시간은 아주 짧았다.

용모를 살폈다고 보긴 힘들었다. 그러면 자기 얼굴을 한 번 확인해볼 이유가 뭐가 있을까.

안색이 아니었을까, 난 그렇게 생각했다.


"나, 나, 나는 전혀! 전혀 신경 안 써."


그 다음 그런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전혀, 전혀, 조금도, 하나도 신경 안 써."


강한 부정이 긍정이라는 말을 여기서 믿게 될 줄은 몰랐다.


"에리히가 누구를 만나고 다니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겠어?"


전혀 신경 안 쓰고 상관 않는 사람치곤 그 말끝이 떨린다.


"그런데 그, 후원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런 부도덕한 행위는... 말이야? 어. 그러니까 그런 건..."


마땅히 해야 할 말조차 정확히 생각나지 않을 만큼 신경 쓰고 있는 게 분명했다.


"흠이 되어 나중에 구설수에 오를 수 있지요, 아가씨."


옆에서 도와줄 정도이니 말 다 했다.


"흠흠, 흠. 맞아. 내가 하려는 말이 그거야. 흐흠, 흠."


한 마디 하는데 헛기침을 몇 번이나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다른, 다른 뭐가 있는 게 아니라. 그런 문제 때문에 그러는 거야."


즉, 무진장 신경 쓰이니까 이제 추궁을 좀 하겠다는 것 같았다.


"그렇죠. 그런 식으로 아가씨의 명성에 누가 된다면 후원은 당장 끊어버려야죠. 푸흡..."


한 사람의 운명이 걸린 이야기를, 토렌씨는 입 꼬리를 씰룩이며 해댔다.

게다가 마지막엔 분명 웃었다. 분명히!


"아니...! 지금 이건 그... 그, 오해! 그래요! 오해가 있으신 것 같네요."


에리히는 드디어 무릎을 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오해?"


트리샤는 되물었고.


"맞아, 무슨 오해! 내가 다 보고 들었는데!"


야우라는 주먹을 불끈 지르며 가세했다.


"레아가 그랬는데! 에리히가 자길 아주 싸게 취급한다고 그랬어!"


고맙게도 같은 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걸 이렇게 실예로 알려주기까지 한다.


"어... 뭐? 아... 잠깐만. 토렌!"


좀 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인지 트리샤는 다시 전속 사용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토렌 씨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아는 것처럼 두꺼운 책자를 하나 아가씨에게 건네드렸다.

들고다니기엔 꽤 큰 책이다.


트리샤는 얘기를 하다말고 책장을 촤르륵 넘겨댔다.

이미 다 한 번 본 내용, 다시 한 번 찾는 것 같은 익숙한 모습이었다.


분주하던 손가락은 책장의 어느 중간에서 멈추었다. 트리샤는 곧장 책을 펴고 그 부분의 유심히 읽었다.

그리고 다 읽은 순간, 팍! 하고 책을 덮고는 그걸 토렌 씨에게 다시 넘겨주었다.


"아... 뭐... 흠흠... 뭐... 그, 그랬다는... 거잖아?"


대체 무슨 내용이 적혀있기에 저렇게 갑자기 얼굴까지 붉혀가며 말을 아끼는 것일까.


나는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히 토렌씨의 옆으로 가서 슬쩍 물어보았다.


"그 책 뭐에요?"


"아, 이거요? 별 거 아닙니다."


토렌씨는 선뜻 책을 보여주었다.

그 표지에 적혀 있기를, 서민 세상 기행문 이것 한 권으로 우아한 서민 농담을, 이라고 한다.


이래서 부자들은 이길 수 없는 것이다.

나보다 더 쓸 데 없는 책을 샀잖아?


"읽어보시겠습니까?"


"네? 아, 아뇨. 다음에요."


다른 사람 눈으로 본 우리의 모습이 재미있을 것도 같았지만... 지금은 여유롭게 즐길만한 상황이 아닌 거 같았다.


"뭐, 예술가들은 그런다고들 하잖아? 난 신경 안 써."


트리샤는 아주 태연히 그렇게 말했다.


"안 쓴다고... 하나도..."


마지막만 그렇게 덧붙이지 않았다면 완벽했을 텐데.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하하..."


그 와중에 에리히는 수줍게 뒤통수나 긁적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죄가 없는 사람이었는데 스스로 죄를 만들고 말았다. 해명해도 모자랄 판에 다행이긴 뭘 다행이야.


신기하게도 레아 아주머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에리히를 앞으로 끌어다가 등짝을 때렸다. 그걸로도 모자라 굽이 크고 높은 신발로 종아리를 차기도 했다.


"이거 진짜 순 바보 아니야?"


에리히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가만히 맞고만 있었다.


"아잇, 왜...? 아니 잠시... 악!"


평소라면 불쌍하다 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얻어맞은 에리히는 레아의 답답한 마음이 풀리고 나서야 벗어날 수 있었다.


"왜... 왜 그러세요...?"


에리히는 물었다.


"아직도 몰라?"


그게 화근이었다.


레아는 또 때릴 듯이 손을 들었고 에리히는 지레 놀라 때린 적도 없는 머리를 감쌌다.


"그만."


그런 순탱이를 살려준 것은 또한 트리샤였다.


"그만해요. 어쨌든 제 후원을 받는 예술가이니. 처분은 제가 결정해요."


오. 저 사람이 저렇게 아가씨답게 말하는 거 처음 본다.

항상 급하게 누구를 찾거나, 급하게 누구를 찾거나, 급하게 누구를 찾기만 했었는데.

가끔 자기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 잘난 체를 하기도 하고.


"아, 맞아. 내가 괜한 간섭을 했네. 미안해요, 아가씨?"


레아는 때리려던 손을 거두고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는 드러나는 미소를 참지 못하고 나에게 속닥였다.


"부자들은 원래 자기 거에 손대는 거 못 참거든."


그게 그렇게 재미있는 사실일까.


"흠흠."


트리샤는 헛기침으로 다시 주의를 끌었다.


"근데, 당신은 누구죠?"


그 대상은 다름 아닌 아주머니였다.


"나? 나는 레아. 만나서 반가워, 아가씨?"


"아, 레아... 씨군요?"


"그렇게 부를 거라면 난 부인이라는 호칭이 더 좋은데."


"부, 부부부, 부인...?"


예상 외였는지, 트리샤는 또 다시 말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아, 그러니까... 유부녀?"


"응. 다 큰 딸아이까지 있는 걸. 당연하지."


그게 다 큰 거라면 좀 슬플 테지만 말이다.


"자식까지 딸린... 유부녀?"


트리샤는 열린 마음을 닫고 책상 위에 두 팔을 삼각형으로 그리고 그대로 손바닥 안에 얼굴을 묻고 깊고 어두운 생각의 늪에 들어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주머니는 레샤 이야기에 여념이 없었다.


"얼마나 귀여운데. 불안해서 어디 내놓지도 못 해. 또 엄마 걱정 안 시키겠다고 얼마나..."


그러다가 뒤늦게 트리샤를 발견하고는 검지로 입술을 꾹 눌렀다.


"내가 너무 주책이었나?"


"아니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무안해 하는 레아를, 야우라는 한없이 지지했다.


아줌마 둘이서 뭔지 모를 마음의 교환을 하는 사이 트리샤는 회복해서 고개를 들었다.

어쩐지 퀭 해보이는 것이 정말 괜찮아진 것 같지는 않았다.


"저기, 레아라고 했죠?"


트리샤가 말했다.


"혹시. 그 자제분 이름이?"


"레샤인데?"


레아는 아주 잘 물어봤다는 듯 반갑게 답했다.


"레샤... 레스트레이드...?"


"응. 맞아. 내가 레아 레스트레이드야."


레아가 말하자 트리샤는 숨을 멈추었다. 아니 정말 숨을 멈춘 것처럼 굳어버렸다. 약간의 미동조차 없다.


"그러니까... 모녀를... 동시에?"


트리샤가 한참 만에 겨우 뱉은 말이란 그런 거였다.

한 글자 한 글자 힘겹게, 믿을 수 없다는 듯 조심스럽게, 그리고 본인이 그런 말을 실제로 입에 담게 된 것을 매우 충격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 잠깐만."


이미 어떤 정신적 허용선을 넘어섰나 보다.


트리샤는 손가락으로 미간을 꼬집었다. 눈을 감고 숨을 가다듬으며 나름대로 마음의 정리를 해보려고 시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가씨."


걱정이 된 사용인이 불러도 트리샤는 아주 가벼운 손짓만으로 토렌씨를 물렀다.


"아... 저기... 론데미르양?"


에리히도 마찬가지였다.

깃털 흔들듯 가볍게 거부당한 에리히는 그대로 입술에 바느질을 한 것처럼 쭈그러져 찍 소리도 못했다.


모두가 숨죽인 채 트리시아를 지켜보기만 했다.


유부녀랑 모녀, 한 동안 그 두 단어만 날파리처럼 주변을 맴돌았다.


"토렌."


오랜 시간이 지나, 트리샤는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눈은 감은 체였다.


"예, 아가씨. 가시겠습니까?"


토렌 씨는 당장이라도 벗어둔 모자와 장갑을 넘겨줄 기세였다.


"아니... 잠깐 바람을 좀 쐴까, 해서."


그러자 토렌씨는 눈을 찡그리고 입술을 비틀며 매우 역동적으로 얼굴을 움직였다.

난감하다는 것인지, 의외라는 것인지, 어떤 의미에서 그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아주 친절하게 웃으며 조용히, 말없이, 손을 양옆으로 까닥여 비켜달라고 하였으니 우리는 군말 없이 그 부탁을 들어주어 방의 양옆으로 갈라져 섰다.


"모시겠습니다, 아가씨."


토렌 씨가 말하자 트리샤는 그제야 눈을 뜨고 일어나선 에스코트를 받아 방 밖으로 나갔다.


직후 우리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한 숨을 푹 내쉬었다. 야우라를 제외하곤 그랬다. 그 애는 우리가 전부 조용했으니까 같이 입 다물고 있던 것뿐이지 그 전체적인 사태에 대해선 제대로 이해를 못한 것처럼 보였다.


하여 그 침울한 분위기가 도무지 사라지질 않자 나에게 몰래 물었다.


"내 잘못이야? 나 사과할 준비 해야해?"


뭐,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이 이번 일의 문제였다.


"네 잘못이었는데, 이젠 아닌 거 같아."


꽤나 복잡하게 얽혀있다고, 난 그렇게 말했다.


"뭐야. 알아듣기 쉽게 말해."


혼자 따돌려지는 것만큼은 정말 싫어하는 야우라가 거듭 묻자 그에 관해선 아주머니가 대신 설명해주었다.


"언니 잘못이 아니라 이 바보 멍청이 잘못이지."


레아가 찌를 듯이 손가락을 들이밀자 에리히는 책상에 부딪치도록 허겁지겁 뒤로 물러났다.


"...아줌마 잘못도 있죠."


한 사람만의 잘못은 아니었기에, 나는 그 부분을 상기시켰다.


"거기서 갑자기 레샤 자랑을 해버리면 어떡해요. 제대로 설명을 해줘야지."


오해만 해결되면 깔끔히 사라질 문제였다. 그게 이렇게 꼬이게 된 것은 역시... 여러 사람들의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꼬였다고 밖에 말 할 수 없었다.


"에이, 또 그럴 순 없지?"


아주머니는 여유로이 웃으며 내 팔뚝을 쿡 찔렀다.

알 거 다 알면서 왜 그러냐는 투다.


"그리고 궁금하잖아. 안 그래? 완전 옛날 옛적 오랜 옛날에, 하는 얘기 같잖아. 응?"


더군다나 이미 엄청 흥분해서는 이야기의 다음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웃었다.


"무슨 소리야?"


아직도 이야기에 끼지 못한 야우라가 눈을 얇게 뜨고 물었다.


"에이, 언니도 참. 남자와 여자 사이의 얘기지."


레아 아주머니가 키득키득 말했다.


"나랑 레이크 사이의 문제 같은 거?"


야우라는 다시 나에게 물었다.


"아니. 그거랑은 달라. 것도 아주 많이."


명백히 다르다고, 난 두 번 강조했다.


"그럼 스렌이랑 클로에의 문제 같은 건가?"


"그거랑도 많이 다를 걸?"


"그럼 하나밖에 안 남는데?"


"그럼 그건가 보지."


"그거라고...?"


그게 과연 무엇인지, 야우라는 떨떠름하게 에리히의 위부터 아래를 훑어보았다.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레아가 대체 무슨 재미를 보려고 일을 이렇게 꼬아놓았느냐는 것이다.


"아 저기..."


그즈음 에리히가 입을 열었다.

어찌나 레아가 무서우면 손까지 들고 매우 조심스런 태도였다.


"괜찮다면 저도 나가봐도 될까요? 그... 론데미르양에게 가봐야 할 것 같아서..."


"오, 뭐야. 생각보단 눈치가 있는데?"


그러자 아주머니는 크게 기뻐하며 내게 눈길을 보냈다.


뭐지, 나도 박수치면서 같이 기뻐하면 되는 건가?

하지만 그런 호응을 좀처럼 하기 힘들었다.


일단, 직접적으로 말해 나는 남의 감정과 관계에 참견하는 것이 굉장히 껄끄럽게 느껴졌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런 건 나중에 결과나 듣는 정도로 만족했다.


헌데 이 사람에겐 그렇지 않은가보다.


"왜. 가서 뭐하려고?"


자 원하는 대답을 들려줘, 아주머니의 흘러넘칠 것 같은 미소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야 당연히 오해를 풀어야죠."


"풀면, 그 다음은?"


"아마 차기작에 관련해서 예산 얘기를 조금 하지 않을까요?"


순진하게도 에리히는 정말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주젯거리를 말했다.


"아 정말! 거기서 그게 왜 나와!"


아주머니는 버럭 소리쳤다. 뿐만 아니라 오죽 답답하면 그걸 나와 야우라에게도 하소연했다.


"거기서 돈 얘기가 왜 나오냐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응? 언니, 안 그래?"


"나도 레이크가 돈 얘기하는 거 싫긴해."


그게 야우라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임에도 미묘하게 둘이 초점이 맞는다는 게 신기했다.


"그럼... 차기작의 방향성에 대해서...?"


그 와중에 에리히는 올바른 답을 찾기 위해 해매고 있었다.


"아... 그럼, 연말을 맞은 정산 보고...?"


그것도 아닌가 싶자, 살짝 덧붙이기까지 한다.


"내가 말했지? 눈에 훤히 보인다니까? 정말 열불 터져 죽겠어."


뭐, 그렇다고 하니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는 척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신, 아가씨 이름은 제대로 알아?"


"네. 트리시아 리베르티 론데미르양이죠."


에리히는 드물게도 자신감을 보여 말했다.


"그걸 아는 걸 보니 그 양반보단 좀 낫네."


"하하 실수하면 안 되니까요."


"근데 이유가 마음에 안 들어!"


기어코 에리히는 아주머니에게 등짝을 얻어맞고 말았다.

그 무지함에서 나오는 억울한 눈빛이 마치, 바람 앞에 촛불을 지키는 가련한 소녀와 같았다.


"이건 아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해."


아주머니는 뭇 심각하게 팔짱까지 껴가며 말했다.


"처음부터 시작해보자고. 내가 보기에 이 둘은 시작부터 아주 이상해."


내 생각도 그랬다.


"앉아."


아주머니는 에리히를 지목해가며 굳게 말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책상 건너편 의자를 가리켰다.

다른 곳 갈 생각하지 말고 거기 앉아봐라, 누가 보기에도 그랬기에 에리히는 슬슬 눈치를 봐가며 원래 자신의 자리였던 의자에 앉았다.


그 직후, 추궁이 시작되었다.


"당신, 어쩌다가 아가씨한테 지원 받게 된 거야?"


"아, 글쎄요. 저도 사실 그게 조금 의아하긴 해요. 그래도 역시 제 연극이 마음에 드셔서가 아닐까요?"


팍!

아주머니의 손바닥이 책상 위를 내려쳤다.


"당신 그렇게 장담할 수 있어? 그렇게 자신 있냐고."


이쯤 되면 그냥 심문이 아닌가 싶다.


"근데,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정말 다른 건 없는 거야? 정말?"


식탁 차리고 포크 스푼까지 다 가져다줬다.

이제 정말 입에 떠먹여 주는 것만 남았다.


"네. 론데미르양이라면 분명히 순수하게 절 실력으로 판단해주셨을 거예요."


그럼에도 에리히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쉽게 말했다.


그래, 그 사람은 분명 자신만의 근거를 가지고 있었다.


작가의말

집에 초콜릿이 많이 생겼네요. 살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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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 41. 그것뿐이야(1) +2 19.08.20 128 4 16쪽
232 40. 연꽃이 자라는 곳(6) 19.08.15 94 5 18쪽
231 40. 연꽃이 자라는 곳(5) 19.08.13 83 5 26쪽
230 40. 연꽃이 자라는 곳(4) +2 19.08.07 96 5 18쪽
229 40. 연꽃이 자라는 곳(3) 19.08.03 92 4 17쪽
228 40. 연꽃이 자라는 곳(2) +2 19.07.30 110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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