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시험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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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까
작품등록일 :
2017.04.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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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7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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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2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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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그러니까 이건(4)

DUMMY

정말이지 어쩔 뻔 했냐고! 라며 클로에는 불벼락을 내렸다.


느닷없이 굉음이 들리지를 않나 남은 수량을 세어두려고 꺼내놓았던 상자들이 부서져 있지를 않나.


목소리만 들렸던 나랑 로스는 하늘로 솟은 건지 땅으로 꺼졌는지 온데간데 없으니 걱정보다도 너무 놀라서 현기증이 일어났다나.


그리고 클로에는 지금도 불벼락을 쏘아대고 있었다.


"꺼내놓은 게 요랑 모포 여분이니까 망정이지 날카롭고 딱딱한 거였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뭘 어쩌겠어. 그냥 끽이지."


허공에서 떨어지는 와중에 뭘 할 수 있겠나 그저 겸허히 바닥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너는 애가 농담을 해도...!"


내 말이 퍽 거슬렸는지 클로에는 성큼성큼 다가와 내 등짝을 때렸다.

덕분에 나는 상자를 집어 들지 못하고 그 더미에 이마를 콱 찧었다.

부딪친 상자가 살짝 움직일 정도의 충격. 무엇을 잘못했는지 단숨에 깨달을 수 있었다.


클로에의 머리칼은 대장간에서 빌려온 게 아니다. 분명히 천둥이 몰아치는 활화산에서 빌려온 번갯불일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계속 불벼락을 쏘아댈 수 없었다.


부서진 상자는 어쩔 수 없고, 상자 중에도 가득 채워지지 않은 것이 몇 개 있었으니 우리는, 그러니까 로스와 나는, 부서진 상자에서 모포를 꺼내 다른 상자로 옮겼다. 그런 다음 이번엔 안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는 거였다.


그것도 남들은 쉬러 간다는 이 초저녁 석양이 남색으로 꺼져갈 때에.


"이럴 시간이 없는데..."


창고에서 나와 새로운 상자를 들어 올리는 로스가 기합처럼 중얼거렸다.


"이럴 시간이 없으면 빨리빨리 해요."


나는 지나쳐가며 한 소리 덧붙였다. 상자를 들고 창고로 가자 야우라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문간에 들어선 것을 보자 걔는 무슨 생각인지 무릎과 등을 구부려 자세를 낮추고는 양팔을 조금 벌렸다.


"뭐."


또 뭔 짓거리를 하나 나는 그렇게 물었다.


"던져!"


야우라는 자신만만하게 양손을 까닥였다.

그렇다고 하니 나는 상자를 높게 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달려가 그걸로 야우라의 정수리를 때렸다.


팍! 하는, 아주 무거운 소리였다.


"아악!"


불시에 기습을 당한 야우라는 머리를 감싸 쥐고 쭈그렸다.


"아아 뭔데에...!"


그렇게 세게 치지도 않았건만 야우라는 우는 소리를 내었다.


"얌전히 받아. 던졌다가 떨어뜨리면 어떡하려고."


처음 한 번이야 괜찮을지 몰라도 지금은 상자가 이미 몇 개 부서진 터라 클로에의 화에 가중치가 붙을 수 있었다.


"네가 던졌다고 해야지."


야우라는 손과 팔사이로 눈을 살짝 보이며 말했다.

예상한대로의 대답에 나는 다시 상자를 들었다.


"아아! 아아, 아!"


그 애는 곧장 이리저리 손을 저으며 상자를 막으려 했지만 난 그걸로 야우라의 머리를 내려치지 않고 벽 한 켠, 다른 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어떻게 그런 걸로 사람 머리를 때릴 수 있어?"


"네가 사람이야?"


내가 되묻자 야우라는 경악을 금치 못하듯 입을 벌려 삿대질을 하더니 그 다음은 입을 다물고 팔짱을 끼고선 노려봤다.


이후로도 계속 아무 소리 안 하고 노려보기만 하는 것이, 내가 알아서 잘못을 깨닫고 먼저 사과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아주 잠깐 눈싸움을 하기를... 먼저 포기한 건 야우라였다.


"그래서. 그 사람은 왜 죽으려고 했데?"


그 애는 바깥쪽을 눈여겨보며 말했다.


"죽으려고 한 게 아니랜다."


나는 나가며 대꾸해주었다.


"그럼 뭔데?"


야우라는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고 따라 나와 거듭 물었다.


"마법을 연구하다가..."


"허! 뭐야 그럼 하늘을 날아?"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럼?! 엄청 딴딴한 몸이 되는 거야?"


"그것도 아니고..."


"그럼 뭔데. 혼자만 알지 말고 좀 말해봐. 응? 레이크으."


야우라는 내 등이 무슨 북이라도 되는 양 다다다다 두드리며 귀찮게 굴었다.

이러다가 걸리면 또 나만 억울하게 한소리 들을 것이다.

마침 로스가 상자를 들고 창고 방향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큰 목소리로 그쪽에 대고 물어봤다.


"로스, 연구한다는 마법. 내용이 뭐에요?"


"내 연구주제?"


로스는 걷던 걸음걸이 그대로 우리가 있는 곳까지 왔다.

그리고 평범했던 걸음걸이와는 반대로 무서울 정도로 비장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주 복잡하고 어렵지."


나는 부담스러운 얼굴로부터 조금이나마 멀어지고자 목을 최대한 뒤로 당겼다.


"자연과 생명의 비밀을 밝히기 위한 고독한 여정이랄까."


"아... 예..."


다들 말로는 그럴싸하곤 했기에 나는 성의 없이 대충 대꾸했다. 게다가 정말 그런 어려운 미지의 연구를 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결과가 없으면 모래성도 되지 못하는 것 아닌가.


아니 로스는 결과가 나왔지만 그걸 설명할 수가 없다고 했으니 모래성보다는 물거품에 더 가까우려나.


이후로도 로스는 무어라 무어라 떠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였다. 잔뜩 흥분해서는 듣는 사람이 이해를 하든 말든 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하는 것 같았다.


그 왜, 꽁꽁 감쳐두며 지내는 사람들 중엔 사실 떠벌리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고 있는 부류도 있다고들 하지 않던가. 로스는 그런 축인 것 같았다.


한 단어를 말하면 그 단어에 대해 설명해야하고 그 설명 중에 또 어려운 단어가 포함되어 있어 그 단어를 설명해야하고 그 과정을 끝없이 반복했다.


아마 로스는 클로에가 뒤에서 보고 있던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리하여-


"으이그 그거 조금 떠들었다고 잔소리를 그렇게 많이 하냐?"


로스는 계단을 오르며 투덜거렸다.


"조금 떠들진 않았죠."


나는 그 뒤를 따르며 말했다.


"그래! 말이 너무 많아서 난 뭔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뒤편의 야우라도 같이 덧붙였다.


우리는 바깥으로 꺼내져 있던 상자들을 전부 창고에 집어넣고 나서야 클로에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지금은 로스의 연구가 궁금하다는 야우라의 성화에 못 이겨 로스의 방으로 가는 중이었다.

계단을 올라 조금 지나면 바로 나오는 내 방의 건너편. 거기가 로스의 방이었다.


열쇠로 문을 열고 방문을 열자 로스보다도 먼저 야우라가 잽싸게 그 안으로 들어갔다.


"히이...! 오와..."


그리도 놀랄 것이 많은지 야우라는 감탄을 금치 못하고 들떠선 소란스럽게 굴었다.

문고리 잡고 밀려난 로스가 낑낑대며 겨우 안으로 들어가고 그 다음 내가 들어가자 묘한 냄새가 먼저 반겼다.

구리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향기롭다고 할 수 없는 이로 표현할 수 없는 냄새였다.

솔직히 맡고 싶지 않았고 오래 견디기도 힘들 것 같았다.


"이 냄새가 여기서 나는 거였구나?"


방금 그 감탄은 냄새에 대한 감탄이었던 건지 야우라는 코를 막고 코맹맹이 소리를 내었다.


"냄새나?"


로스는 전혀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당연히 나지. 도마뱀 똥냄새!"


야우라는 주의라도 주듯 단호히 말했다. 그리고는 그게 웃긴지 깔깔깔 웃어댔다.


"도마뱀 똥냄새! 핳핳하하하!"


똥냄새라니.


"좀 치우고 그래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난 내가 잘 안 치우는 것을 알기 때문에 깔끔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아니, 이건 핑계가 안 되나?

아무튼 사람 사는 방에서 똥냄새는 좀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실은 사람 사는 곳이라고 하기도 뭣했지만 말이다.


로스의 방은 로스가 사용하는 방이라기보다는 파충류 우리에 로스가 얹혀사는 것에 가까웠다.


무단으로 만든 선반은 방의 삼면을 채우고 있었고 그 위에는 나무로 만든 창살 달린 상자가 여럿 놓여 있었다.

그 안에 손가락만한 것부터 팔뚝만한 것까지 다양한 크기의 도마뱀들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 이 녀석이야! 이 눈빛! 아직도 기억해!"


야우라는 개 중 파란 녀석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파란색 비늘.

여기 도마뱀들은 크기만큼이나 색도 각양각색이었다. 노란색, 초록색, 모래색, 검은색...

두 가지 이상이 섞인 것도 있었고 화려한 무늬를 가진 것도 있었다.


"네가 언제 여길 와봤다고 눈빛을 기억해."


별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고 있었다.


"전에 본 적이 있어 똑똑히 기억해. 이 녀석! 그래! 이 똘망똘망한 눈!"


그게 마음에 들어서 했던 이야기인지 야우라는 목재 우리의 창살 사이에 코를 박았다.


"연구가 궁금하다며."


나는 그 뒤통수에 대고 넌지시 말했다.


"잠깐만. 기선제압 좀 하고."


"기선제압은 뭔놈의 기선제압을 하겠다는 거야. 걔를 이겨서 뭐하려고. 빨리 와. 시간 없데."


나는 야우라의 윗도리를 잡아당겨 책상 앞까지 끌고 왔다.

로스는 우리에게 연구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작은 나무 보관함을 가지고 왔다.

경첩에 자물쇠까지 달린 제대로 된 물건.

안에 든 걸 정말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로스는 주머니에서 손가락 두 마디 정도밖에 안 될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열었고 이어 상자도 열었다.


상자의 안쪽은 내부에 든 물건이 흔들리지 않도록 적당한 크기의 홈이 파여 부드러운 보자기로 덮여있었다. 여러 개의 병을 꽂을 수 있게 생겼지만 안에 들어있는 것은 딱 하나다.


로스는 그걸 아주 조심스러운 투로 꺼냈다.


"이거야..."


빨갛지만 투명한 분홍색에 더 가까운 그런 물약.

당연한 이야기지만 눈으로 봐서는 대체 어디다 쓰는 물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용도를 묻기 직전, 웬 손이 불쑥 튀어나와 그 병을 낚아채갔다.


"이게 뭔데?"


야우라였다.


단지 그것만으로 로스는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헤엑...!"


얼마나 놀란 건지 비명은 기침으로 이어져 로스는 숨넘어갈 듯이 쿨럭 대며 비틀거렸다.


"우웨엑, 켁! 쿠엑...!"


"어아! 미안미안! 돌려줄게!"


그게 어찌나 위독해보였는지 야우라도 화들짝 놀라 그 병을 도로 로스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는 내게 속닥였다.


"세상에. 저기다가 자기 심장을 빼서 옮겨놨나봐."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나는 그 헛소리에 조금도 동의할 수 없었다.


"그렇게 엄청나고 위험한 마법이니까 저렇게 꽁꽁 싸매놓은거 아니야?"


야우라의 말대로 좀 폼나는 상자에서 나오긴 했다. 내용물이 빈약하다고 해서 간단하게 볼 건 아니었다.


"조심해. 이제 이거 한 병밖에 안 남았으니까."


죽을상으로 책상을 짚고 겨우 버티던 로스는 소매로 입가를 훔치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게 뭔데요?"


내가 물었다.


"놀라지 마라..."


목이 칼칼한지 대답해주는 로스의 목소리는 거칠었다.


"이 물에서는..."


그 물이 어쨌다는 건지 로스는 뜸을 들여가며 느릿느릿 말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그냥 빨리 말하면 안 될까.


"그 물에서는?"


아. 야우라가 기대만발인 거 보니 나름대로 효과는 있는 거 같다.


"무려...!"


"무려?!"


어찌되었건 둘이야 재밌을지 몰라도 빨리 말해줬으면 좋겠는게 솔직한 내 심경이었다.


"딸기 맛이 난다."


그 순간 나는 이 사람이 농담을 하는 건가 한 번 의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로스의 눈빛은 진지했고 목소리에서도 웃음기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저 사람은 지금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 거다.


"...굉장하다."


야우라의 목소리. 그 애는 뭔가 충격적인 사실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중얼거렸다.


충격적인 건 사실이었다. 나도 지금 매우 충격을 받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내가 저깟것 때문에 그 고생을 했단 말이지?


세상은 딸기 맛이 나는 물을 딸기 쥬스라고 불렀고 매년 제철이 되면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그런 걸 굉장한 연구라고 한다면 양심이 많이 아프지 않을까?


"굉장하긴 뭐가 굉장해."


내가 되묻자.


"그러니까 저게 딸기가 아닌데 딸기 맛이 난다는 거잖아."


야우라는 거듭 감탄했다.


"그래, 그 말대로야."


로스도 야우라의 말에 맞장구쳤다.


"그래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건데요."


"딸기가 아닌 것에서 딸기 맛이 난다는 게 중요한 거지."


"애초에 이거 마법이랑 관계가 있는 거예요?"


"레이크 네가 보기엔 연금술하고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 뭐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그렇겠지."


왜 갑자기 잘난척이실까.

야우라가 호응해주자 자신감이 좀 붙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걔가 딸기 쥬스보다 나은 점이 뭔데요."


그리 묻자 로스는 유리병을 다시 상자의 홈에 끼워놓고는 뚜껑부터 닫았다.


"레이크."


그리고 힘주어 말했다.

뭔가 일장 연설을 시작할 기세다.


"너는 사람들의 풍요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냐?"


"풍요요?"


갑자기 폼 잔뜩 잡고 하는 얘기 치고는 좀 뜬금없었다.

아니 흔히들 뜬금없는 얘기를 하기 전에 꼭 폼을 잡더라.

어쨌거나 그런 거라고 하면 보통은.


"밀이나 고기 같은 거에서 온다고들 하죠?"


먹을 걸 쌓아두면 보기만 해도 좋다고들 하니까.


"그렇지.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라."


"그럼 로스는 풍요가 어디서 온다고 생각하는데요."


"사람들의 풍요가 오는 건 다른 게 아니라 맛이야."


"맛?"


야우라가 물었다.


"그래 맛!"


그러자 로스는 찬가라도 부르듯 양팔을 펼쳤다.


"풍요란 뭘까! 창고에 많은 것을 쌓아두는 게 풍요일까? 아니야! 당연히 뱃속에 쌓아두는 것도 아니지. 풍요는 가슴 속에 담아두는 거야!"


아 그러시구나.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잠자코 그 궤변을 들었다.


"물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풍요라고 말할 수도 있어. 그치만 그래가지고선 한계가 있지. 먹을 게 많다면 사람들이 그 다음으로 원하는 게 뭐였을 거 같아!"


로스는 정확히 내 얼굴을 지목해 물었다.

답을 생각해내는데 오래 걸릴 질문은 아니었다.


"어... 좋은 집?"


내가 그리 답하자 로스는 괴로움에 몸부림치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더 맛있는 거야!"


"응?"


아니 먹는 거 다음에 또 먹는 거라고?


"사람은 누구나 더 맛있는 걸 원한다고! 맛있는 걸 먹으면 배도 부르지만 마음도 풍요로워져.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다른 것보다도 더 맛있는 거야!"


로스는 큰 소리로 외쳤다.

그게 그리도 감동스러운 연설인 것인지 야우라는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아니 사람들이 맛있는 걸 좋아하는 건 맞는데...


"누구나 항상 맛있는 걸 원하지만 거기엔 한 가지 문제가 있지. 바로 계절이야. 제철이라는 말, 알지? 때에 맞는 맛이라는 것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때가 아니면 못 먹는다는 뜻이기도 해!"


"맞아! 나는 매년 겨울에도 오렌지가 먹고 싶었어!"


야우라는 이미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 직전이었다. 로스는 바로 그 부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래! 겨울이 오면 내년을 기다려야해! 그리고 기다림이란 괴로운 법이지!"


"맞아!"


어째 나는 점점 이야기에서 떨어져나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거라면 계절과는 상관이 없어!"


"웜하우스가 있잖아요."


그즈음 나는 그걸 걸고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온실에서 나온 건 비싸잖아!"


"그건 뭐 달라요?"


마법을 이용한 건 똑같지 않은가.


"그건 땅도 필요한데다가 결국 작물을 키워야하는 건 똑같아서 훨씬 비싼 거야. 하지만 이건 도마뱀 독을 이용한 거라서 훨씬 저렴하지."


"재료 얘기를 듣는 순간 먹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는데요?"


"그건 걱정하지마. 마법으로 해독한 다음 만드는 거니까."


"아니요. 아무리 깨끗이 빨았대도 걸레로 얼굴을 닦기는 싫은데요."


"그건 냄새가 나니까 그런 거지. 이건 향까지 완벽하게 딸기향이라고."


"아니..."


이게 지금 그런 차원의 얘기냐고.

암만 그래도 결국 원료는 독 아니냐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레이크 너! 로스의 이 열정을 모르겠어?!"


야우라가 내 어깨를 잡아 흔들지만 않았으면 실제로도 말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백날 꿈같은 얘기를 하면 뭐해 지금 진짜 헛꿈 되기 일보 직전이라는데."


"그 말도 맞아..."


내 말에 로스는 한 풀 쳐져서는 말을 이었다.


"그 해독마법이 문제야. 이게 한 번은 됐는데 그 이후로는 안 된단 말이야? 그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어. 졸다가 해서 그런가?"


해독을 졸면서 했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먹고 싶지 않았다.


어쨌거나 로스의 말은 그거였다. 실체가 무엇이든 상관없다. 그저 맛만 똑같이 낼 수 있고 그걸 값싸게 풀어낼 수 있다면 사람들은 그걸 먹고 행복해질 것이라는 얘기였다.

수익은 그에 따라오는 덤일뿐이란다.


특정 도마뱀의 독을 안정적으로 해독하는데만 성공하면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도 했다. 도마뱀을 기르는 문제 따윈 농사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라며 그 생태와 먹이에 대해 제창하기도 했다.


그건 비교적 믿을만한 이야기였다.

로스의 방을 보면 알만하지 않은가.


그리하여 길고 긴 연설과 강연을 마친 로스의 결론이 무엇이었냐 하면은.


"그러니 레이크 네가 좀 봐줬으면 해."


"그걸 제가 봐서 뭐하냐고요."


"아니! 내 말은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내 마법을 관찰하고 기록해줬으면 한다는 거야! 연구하면서 일일이 그런 걸 챙긴다는 게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거든."


그 말인즉슨.


"일주일만 내 조수가 되어줬으면 해."


그런 뜻으로 들린 게 맞았다.

궁지에 몰린만큼 누구 손이든 빌릴 수 있는 건 전부 빌리고 싶다는 의지였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난 하고 싶지 않았다.

딱 놓고 말해서, 귀찮았다.


"그런 건 딱히 제가 아니어도 되잖아요."


"그렇긴 한데... 달리 도와달라고 할 사람도 없어서... 카니발 전이니 다른 녀석들도 나름대로 바쁘니까..."


듣고 보니 그럴만도 하다 싶었다.

로스의 동료라고 해봐야 다들 마법사 비스끄무리 한 무언가를 업으로 삼고 있을테니 비슷한 시기에 함께 바빠지는 거야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래도 역시 귀찮다.

하여 나는 눈을 돌려 야우라의 눈치를 살폈다.

이미 계절과 관계없이 맛있는 걸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에 온 것 같은 저 표정.

제격이었다.


"얘보고 해달라고 해요."


나는 엄지로 야우라를 가리켰다.


"나?! 내가?!"


야우라는 퍼뜩 놀라 말했다.

그건 싫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그 애는 정말 놀라고 있었다.


"내가 그런 위대한 일에 숟가락을 얹어도 될까?!"


그보다도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뭐.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의지만 있다면."


로스는 기꺼이 손을 내밀고 말했다.


"그럼 할래!"


야우라는 그 손을 마주 잡고 격하게 손을 흔들었다.


합의의 악수.

그 때는 나마저 안도할 수 있었다.

귀찮은 일 부탁받지 않게 되고 귀찮은 녀석이 떨어져 나가고. 일석이조였다.


그리하여 야우라는 일주일간 로스의 조수를 겸하게 된 것이다.


이제 전부 잘 될 거라고 우리 모두는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예전에 동네에서 고추 빻는 기계를 돌리는 곳을 지나가면 뭔가 좋지는 않은데 중독성 있는 향을 맡을 수 있었죠. 매콤하면서도 그 뭐랄까...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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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43. 쌀쌀하고 살가운(4) +2 19.10.15 67 4 16쪽
250 43. 쌀쌀하고 살가운(3) 19.10.13 54 4 16쪽
249 43. 쌀쌀하고 살가운(2) 19.10.11 56 4 14쪽
248 43. 쌀쌀하고 살가운(1) +2 19.10.08 71 3 19쪽
247 42. 그러니까 이건(9) 19.10.06 62 5 17쪽
246 42. 그러니까 이건(8) 19.10.06 56 4 21쪽
245 42. 그러니까 이건(7) 19.10.02 150 4 21쪽
244 42. 그러니까 이건(6) 19.09.30 83 4 16쪽
243 42. 그러니까 이건(5) 19.09.26 80 5 22쪽
» 42. 그러니까 이건(4) +4 19.09.22 86 4 19쪽
241 42. 그러니까 이건(3) +2 19.09.18 78 4 17쪽
240 42. 그러니까 이건(2) 19.09.17 91 4 21쪽
239 42. 그러니까 이건(1) 19.09.11 101 4 21쪽
238 41. 그것뿐이야(6) 19.09.05 104 5 25쪽
237 41. 그것뿐이야(5) 19.09.01 100 4 26쪽
236 41. 그것뿐이야(4) 19.08.27 83 4 18쪽
235 41. 그것뿐이야(3) 19.08.25 83 4 16쪽
234 41. 그것뿐이야(2) +4 19.08.22 94 4 17쪽
233 41. 그것뿐이야(1) +2 19.08.20 128 4 16쪽
232 40. 연꽃이 자라는 곳(6) 19.08.15 94 5 18쪽
231 40. 연꽃이 자라는 곳(5) 19.08.13 82 5 26쪽
230 40. 연꽃이 자라는 곳(4) +2 19.08.07 96 5 18쪽
229 40. 연꽃이 자라는 곳(3) 19.08.03 91 4 17쪽
228 40. 연꽃이 자라는 곳(2) +2 19.07.30 110 4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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