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자전 (4)
부전자전 (4)
그날 저녁 경영진 회의가 열렸다. 원래 백신 발표를 먼저 할 생각이었지만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생기다 보니 발표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
“주식 매입에 들어갈 자금이 얼마야?”
“아무래도 3천억 정도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팔아버린 주식이 3천억이 안 되는데 왜 이렇게 비싸?”
“그게 우리가 퍼트린 무원 바이러스로 인해 제약 회사들의 주가가 너무 올라 버렸습니다”
대부분 제약회사가 그렇듯이 경영진이 가지고 있는 주식 수는 얼마 되지 않았다. 여차하면 모두 털어버리고 저렴한 제약회사를 하나 인수하거나 새로 만들어 상장시키는 것이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제라도 튈 수 있도록 대표이사는 본인이 직접 하지 않고 바지 대표를 세웠다.
물론 현재도 수천억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제일 잘 나갈 때 보다 매출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나타나 모든 상황을 바꿔버렸다. 지금 백신을 발표해 버린다면 회사가 다른 곳에 넘어가 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라 51% 이상의 주식을 매입해야 했다.
“차라리 유상 증자를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유상 증자?”
“네. 지금 제약 회사들의 주가가 상승한 가운데 유상 증자를 발표하면 회사에 매출이 하락한 것으로 오인해 주가가 내려갈 수 있습니다. 이때 저희가 대량으로 주식을 매도한다면 높은 가격에 주식을 팔아버린다고 오인한 주주들이 같이 주식을 던질 겁니다.
이때 저희가 이렇게 나오는 주식을 모두 수거하면 같은 자금으로 더 많은 주식 수를 보유할 수 있습니다. 찌라시까지 이용한다면 다른 제약 주식은 다 올라도 저희 주식은 반대로 떨어질 겁니다.”
“그거 좋은 생각이긴 한데 유상증자는 지금 당장 할 수 없잖아? 시간이 많이 소비될 텐데?”
“시간이야말로 우리 편입니다.
우리 연구진들이 박진성의 아들이 알려준 백신 구조는 한두 달로 만들 수 있는 그런 구조가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러니 다른 제약 회사에서 백신을 만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감염된 자들도 바이러스로 인해 몸이 좀 꺾여 불편할 뿐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 백신 발표가 조금 더 늦어진다고 문제 될 것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값어치가 더 상승하겠죠?”
“그럼 회사 내에 숨겨둔 비자금을 꺼내 주식을 매입하고 유상 증자를 진행하도록 해.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아무리 빨라도 최소 20일 이상은 걸릴 겁니다.”
“그럼 최대한 빨리 진행하도록 해”
“예 알겠습니다.”
김정만은 자신의 부하들과 유상 증자 및 백신 발표를 어떻게 할지 의논했다.
다음날 마온 제약은 찌라시를 통해 몇 가지 악재를 만들어서 뿌리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마온 제약의 주식은 곤두박질쳤다. 타이밍에 맞춰 외부 주식까지 풀어버리자 하한가를 기록했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형태로 며칠 동안 작업을 하여 원하는 만큼의 주식 수를 확보 중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불법이었지만 김정만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만큼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 후 사내 유상 증자를 발표했다.
사람들은 찌라시의 정보대로 마온 제약의 자금 사정이 나쁘다고 생각했고 주식은 자꾸 떨어졌다. 이제 백신 발표만 남았다.
이때 아주 큰 문제가 발생했다. 두 사람을 제외하고 백신을 맞은 마온 제약 모든 직원이 마비돼 버린 것이다.
마온 제약에서 일하는 직원 대부분은 이곳에서 먹고 자며 생활했다. 이들이 하는 모든 행위가 불법이었기에 혹시나 있을 사고를 미리 방지하고자 감시 차원에서 김정만이 지시한 일이었지만 이곳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은 별로 불만이 없었다. 그만큼 많은 임금을 지급해 줬으니까 말이다.
“아버지 생각보다 반응이 너무 늦었네요”
“그러게 말이다. 연구진들이 수상하게 생각할까 봐 아주 소량만 첨부해서 그런지 마비되는데 일주일이 넘게 걸리는구나!”
“그래도 다행이에요. 거의 일괄적으로 마비됐잖아요”
“그나저나 진짜 너 몸은 움직일 수 있는 거냐?”
“그런 것 같아요”
나는 손을 들어 올렸다.
“보세요. 움직이잖아요”
“정말이구나. 너는 볼 수 없겠지만 팔과 다리의 주요 부위 인대가 아주 정교하게 끊어져 있다. 저들이 조폭인 만큼 너의 인대는 확실히 끊어졌을 거야. 나의 인대도 재생이 불가할 정도로 정교하게 끊어졌거든. 그런데도 몸이 움직인다는 것은 인대가 자연적으로 치유됐다는 것인데 어떻게 가능한 거지?”
“글쎄요? 끊어진 인대에 뭔가 두드리는 듯한 느낌이 계속 들었거든요. 처음에는 아주 작게 두드렸는데 그게 점점 커지더니 나중에는 너무 세게 두드려서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어요. 아버지가 저에게 투약한 약의 효과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요?”
“그럴 리가 없다. 만약 그랬다면 너보다 내가 먼저 인대가 연결됐을 거야. 혹시 혼자 살면서 뭔가 투약하거나 발견한 것은 없었니?”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아뇨 특별한 것은 없었어요. 아 참 6개월 전인가 아버지의 연구가 너무 안 풀려 고민하다가 다른 에너지를 찾던 중 기 전문가를 만난 적이 있었어요. 그분이 저를 보자마자 온몸에 기가 충만하다고 조절하는 방법을 알려줬는데 나중에 내 몸에 있는 것은 기가 아니라 다른 에너지라고 하더라고요.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계속 제 몸에 있는 에너지를 제어하는 연습을 했었거든요”
“혹시 내가 준 USB에 들어있던 동영상 보았니?”
“네 좀 늦게 봤지만 대충 보긴 봤어요”
“거기에 생명체를 형질 변환하는 영상을 보았을 것이다. 나는 암흑 물질을 기반으로 모든 세포가 외부적인 위협을 받을 때 암흑 물질과 결합해 DNA가 돌연변이 화 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 실험을 하던 도중 생명체가 고체화되어 외부의 위협을 벗어났지.
지구가 여러 차례 강한 변화로 인해 생명체가 살 수 없을 환경을 맞이했다. 이런 위험을 수차례 반복했지만, 생명체들은 살아남았고 번식했다. 그 생명체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연구하다 세운 가설이다.”
아버지의 말을 끊었다.
“아버지. 저도 정말 궁금하지만, 그 이야기는 나중에 들도록 하죠. 지금은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놈들을 먼저 처리하는 게 급선무인 듯싶어요”
“알았다. 저놈들 먼저 처리하도록 하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명상하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쿵쿵거렸는데 어느 순간 이 모든 것들이 멈춰버렸다. 그 후로는 그런 일들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에는 감시자가 있어 확인해보지 못했으나 내 몸에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힘을 주어 휠체어에서 일어났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 모든 과정이 치유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일어났구나?”
“이제 걸어볼게요”
조심히 한 걸음 한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5분 정도를 걷자 모양새는 좋지 않았지만 걷는 데 문제가 없었다.
“좀 불편하긴 하지만 걸어 다니는 데는 문제가 없는 것 같아요”
아버지는 깜짝 놀랐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우선 중요한 문제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그럼 그놈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자”
“그런데 이 건물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요? 앞으로 우리가 편하게 지내려면 조폭들은 다 없애버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살아남은 연구원 중에 우리 이야기를 하는 놈들이 나오면 곤란해진다. 그러니 처리하려면 깔끔하게 모두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도 그렇겠네요. 우선 김정만인가 하는 놈부터 찾도록 하죠”
“그러자”
아버지가 나의 눈을 대신해 이야기해 주는 대로 휠체어를 밀고 김정만이 있을 만한 곳으로 이동했다. 회장실로 들어서자 그곳에는 김정만과 그의 똘마니들이 마비되어 바닥이 누워 있었다.
“김정만과 그의 부하들이 여기 모여 있다.”
“제 눈이 보이면 당한 만큼 똑같이 갚아 주고 싶은데 안보이니 답답하네요. 그렇다고 이자들을 살려두고 나중을 기약할 수도 없고”
이때 김정만과 그의 똘마니들이 나에게 말을 했다. 몸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그래도 말은 할 수 있는 듯싶었다. 그들은 넘어진 상태라 내가 서 있다는 것을 몰랐다.
“내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게 무슨 짓이야?”
“미친 새끼. 내 인대를 다 잘라내고 눈까지 멀게 한 게 잘해준 거라고? 아 참 내 이빨도 모두 뽑아 버렸지? 그래 내 인대와 눈을 멀게 한 건 내가 누군지 모를 때 그런 거라 치더라도 이빨은 아니잖아? 거기다 우리 아버지의 인대를 끊어 버리고 10년 넘게 감금해 놓고서는 그런 소리가 뻔뻔하게도 잘도 나오는군”
“그건 네가 자살을 하려고 했으니 어쩔 수 없이 내린 특단의 조치였어. 그리고 시작은 너의 아버지가 먼저 한 거야. 너의 아버지는 내가 정말 존경하는 형님들을 모두 죽였단 말이다. 하지만 나는 너의 아버지를 죽이지 않고 10년 동안 모시고 있었다.”
“개소리하지 말고. 우리 아버지가 돈이 되니 살려둔 거겠지.”
“그건 아니다. 정말이야”
“내가 살려주고 싶어도 눈이 안 보여 너희가 감염된 바이러스 백신을 아직 만들지 못했거든. 원래는 무원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만이 너희가 맞은 백신에 효과가 있는데 정상인들이 그 백신을 투약하게 되면 도리어 독이 되거든. 아무리 무식해도 독으로 독을 제압한다는 소리는 들어봤겠지? 지금까지 나쁜 짓 많이 했으니 이렇게 죽는 것도 인과응보와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해. 너무 억울해하지 말고”
“내 인대를 모두 끊어도 좋아. 살려만 줘”
“조직의 보스가 구차하게 왜 이러실까? 그렇게라도 살고 싶어? 내 모습을 보니까 그렇게라도 살고 싶은 욕망이 마구마구 솟구치나 보지?”
“그럼 돈은 어때? 지금 이 건물에 3천억이 넘는 돈이 있어. 위치를 알려줄게. 제발 살려만 줘. 다른 건 바라지도 않아”
이때 김진철이 외쳤다.
“돈의 위치를 내가 알려줄게. 날 살려줘”
김정만의 행동대장인 장진호가 자신의 오른팔인 김진철에게 한 소리였다.
“이 새끼야. 조용 안 해?”
“죽게 생겼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야. 살고 봐야지.”
“좋은 자세긴 한데 조직이 아주 개판이구먼. 얼마 전까지 간이며 쓸개며 모두 빼줄 듯이 굴더니 죽음 앞에서는 조직의 보스도 배신한다는 건가? 그래 그래야 악당이지. 그렇게 나와야 너희들을 죽이는데 내가 죄책감이 덜 할 테고. 그래도 너의 오른팔은 좀 다르긴 하네. 그렇죠. 아버지?”
“원래 조폭이란 게 의리라고는 손톱만치도 없는 족속이긴 하지. 내가 10년 넘게 같이 있어봐서 이들의 생리를 잘 알거든. 배신은 트레이드마크니까”
“돈을 준다니까. 현금으로 3천억이면 적은 돈이 아니야.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이라고. 나를 살려주기만 한다면 지금 당장 가지고 나갈 수 있게 해주겠어.”
“아버지 3천억에 관심 있으세요?”
“지금 당장 이곳을 나가서 조그만 제약 회사를 하나 차려 무원 바이러스의 백신을 만들어 팔아도 가볍게 1조는 벌 수 있다. 그러니 저들을 살리고 껌 값(?)도 안 되는 돈을 받아서 위험 부담을 키울 수는 없지”
“들었지. 아버지가 너희들을 살려두는 게 너무 부담스럽단다. 내가 눈이 안 보여서 더 괴롭혀 줄 수 없으니 난 간다. 아버지 더 질문하실 것 없으면 그만 가시죠”
“그럴까?”
“잠깐. 잠깐만 기다려. 목숨만 살려줘. 절대 원망 안 할게”
김정만과 그의 똘마니들이 살려달라고 외칠 때 아버지가 준비하신 분무기를 하늘에 대고 뿌렸다.
“이제 가자”
“예 아버지”
우리가 나가자 그곳에 있던 3명은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일명 질식사. 몸이 마비되어 입에 거품을 걷어낼 수가 없었고 그들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내가 세운 계획은 마온 제약에서 무원 바이러스의 백신을 개발하다 실수로 돌연변이를 만들었고 그 돌연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건물 전체가 오염되어 전 직원이 몰살하는 시나리오였다.
지금 아버지가 뿌리는 것은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별문제 없지만 무원 바이러스와 합쳐지면 강력한 살상력을 가지는 특별한 바이러스였다. 이곳은 무원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은 첫 번째 사례로 발표될 것이다. 아버지와 난 건물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정리하다가 정연이를 만났다.
“살려주세요. 흑흑”
“어 정연이 목소리네”
“오빠 저 좀 살려주세요”
“정연아 거기서 뭐 해?”
“몰라요. 갑자기 몸이 마비됐어요”
아버지는 나에게 암호문으로 죽이자고 메시지를 보냈지만, 나는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왜 몸이 안 움직여?”
“네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아요”
“어디 있는데”
“바닥에 쓰러져 있어요”
“내가 널 도와주고 싶지만,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서 도와줄 수가 없어. 잠시만 기다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볼게”
나는 아버지의 휠체어를 끌고 밖으로 나왔다. 한 손에는 아버지가 바이러스를 뿌리지 못하게 분무기를 잡고서 말이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비타민이며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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