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계 포전인옥
나이가 어려서 미녀가 옆에 있어도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선우명은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미녀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인재에 대한 생각도 떨쳐버렸다.
지리적인 이유와 인재가 이 시대에 어디에 있는지 확실하게 아는 것이 없어서 현실적으로 인재를 영입할 방법이 없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는다고 인재를 구할 방법이 없다면 천거를 받으면 되는 것이라서 약속했던 돈을 받을 겸 해가 뜨자마자 병사 한 명을 대동한 선우명은 왕궁을 찾아갔다.
태원군에서 첫 손으로 꼽히는 명문 왕가라서 그런지 왕궁의 집은 으리으리한 대저택이었다.
“집 한 번 크네.”
입구에서부터 압도당한 선우명은 이 정도 규모라면 백 냥이 아니라 천 냥도 얻어낼 수 있었을 걸 하며 후회하는데 왕지가 보였다.
장연의 마음에 들었다면 효렴으로 천거되어 오래 걸리지 않아서 관직을 받고 임지로 떠나기에 그 전에 얼굴을 익혀둬야 해서 진양에 머무르기로 했던 왕지가 이곳에 있자 의아한 선우명은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
“엥?”
왕지는 힐끔 한 번 쳐다보고는 그냥 가 버렸다. 이 모습을 본 선우명은 왜 저러는 건지 금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받아주지 않았구나.”
정확한 속사정까지는 몰라도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왕지가 효렴으로 추천받지 못했다면 왕궁에게 돈을 받기가 곤란해졌다.
약속은 약속이니 돈을 주긴 하겠으나 선우명이 받기가 꺼려졌다.
“돌아가야겠네.”
이왕 돈을 받지 않기로 한 거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 왕궁의 화가 가라앉으면 그때 돈을 받지 않겠다고 말하기로 한 선우명은 돌아가려고 했으나 마침 출타했다가 돌아온 왕궁과 정문에서 마주쳤다.
“날 보려고 왔는가?”
“예.”
“날 보려고 왔으면 날 보고 가야지 왜 그냥 가는가? 혹시 아들을 본 것인가?”
“어쩌다 만났는데 말을 걸어볼 사이도 없이 그냥 가더군요. 그래서 돌아가는 길입니다.”
“아들 녀석이 등용되지 못한 걸 알았구나.”
씁쓸하게 웃던 왕궁이 말했다.
“생각대로 되진 않았어도 약속은 약속이니 안으로 들어오게나.”
“아닙니다. 투자받기로 한 약속은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
“약속은 약속이니 그럴 순 없지. 따라오게나.”
왕궁은 먼저 안으로 들어가서 선우명은 별수 없이 그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명망 있는 학자 집안답게 화려함보다는 서책으로 장식된 접객실에서 혼자서 기다리던 선우명은 기다리는 동안 서책이나 볼 생각으로 책장으로 가서 구경해 봤다.
책장에 놓인 서책은 주로 나무를 잘라서 책처럼 만든 목간이나 대나무를 잘라 종이로 만들거나 대나무 그 자체를 실로 이어 만든 죽간이 대부분이었다.
이 시대의 책을 모아봤자 고등학교 도서관 수준이라서 대부분 쓴 사람만 다르지 같은 내용의 서책이었다.
왕가의 책이라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줄 알았던 선우명이 실망할 때 왕궁이 들어왔다.
“마음에 드는 서책이라도 있는가?”
“다 거기서 거기라서 마음에 드는 게 없네요.”
“다 거기서 거기라…… 뭐 그렇긴 하지.”
이 서책은 원문에 자기 생간을 주석처럼 단 주석서들이라서 견해의 차이는 있을 뿐 근본은 같은 것들이었다.
그냥 넘어가려던 왕궁은 선우명의 말에 여유가 있는 것이 이것들을 마치 전부 봤다는 듯해서 혹시 하는 생각에 물었다.
“대학을 읽어봤는가?”
“읽어는 봤습니다. 어라? 그리고 보니 제 스승님하고 친척이시네요.”
“응?”
“제 스승님이 왕성님이십니다.”
“네가 왕성의 제자였느냐?”
“예.”
“그리고 보니 건방진 꼬마를 제자를 들였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내쳤다고 했는데 그게 바로 너였구나.”
“하하.”
견해의 차이 때문에 내쳐진 것이 사실이라서 선우명은 어색하게 웃다가 말했다.
“스승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아십니까?”
“오원군으로 간 건 아는데 자세히는 모르겠다.”
“그렇군요.”
“투자하기로 한 건 은으로 준비했는데 가져갈 수 있겠느냐?”
“그것 때문에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말하게.”
“저 대신 병사를 모집해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인가?”
“보시는 것처럼 제가 어려서 모병해 봐야 얼마 모이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저 대신 왕궁님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마침 왕지가 노니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것도 좋겠지요. 그러다가 저 대신 도적을 토벌하면서 공을 쌓는다면 천거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등용될 것입니다.”
“내 아들에게 마음 써 주는 것은 고맙다만 자네가 병사를 부릴 것이 아니었나?”
“휘하에만 있으면 됐지 굳이 그걸 제가 지휘할 필요는 없죠. 뭐, 능력도 없고요.”
부대를 지휘한 경험이 전혀 없는 선우명은 자잘한 건 부탁하는 김에 왕궁에게 모병과 지휘를 부탁했다.
“나쁘지 않군. 그렇게 하지.”
“왕지에게는 제가 말하겠습니다.”
“그래야지.”
다른 사람에게 다 떠넘겨도 말은 직접 하는 것이 예의라서 선우명은 왕지에게로 가서 말하려고 나가려는데 문이 열리면서 여자애가 들어왔다.
“할아버지!”
왕궁은 한 명의 처와 세 명의 첩이 있는데 이 중에 첫 번째 첩에게서 얻은 큰아들의 딸 이름이 왕령인데 이 왕령이 바로 이 여자애였다. 그리고 예뻤다.
이제 겨우 여섯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이인데 미색이 범상치 않은 것이 커서 경국지색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선우명은 멍하니 왕령을 쳐다봤다.
요즘 따라 이십 대의 물 오른 미녀를 봐도 그냥 아줌마란 느낌이 많이 들고 왕령 같은 나이의 예쁘장한 아이를 보면 어쩐지 마음이 동하는 선우명이었다. 어찌 됐든 예뻤다.
왕령의 머리를 쓰다듬던 왕궁은 선우명의 노골적인 시선을 눈치 채고는 묘하게 웃고서 말했다.
“안 가나?”
“가야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선우명은 도망치듯이 밖으로 나갔다.
접객실에서 멀리 떨어진 선우명은 고개를 흔들었다.
“나 미친 거 아니야? 어디서 저런 새파란 어린애를…….”
이십 대 중반에 죽어서 환상해서 칠 년을 살았으면 합이 삼십 년이었으나 정신까지 삼십은 아니었다. 사람의 정신은 환경에 따라서 성숙해지는 거라서 스스로는 어른이라고 생각해서 주변에서 대접해주는 것이 어린애다 보니 저절로 정신연령이 낮아졌다. 여기에 몸까지 어리니 또래 여자애한테 관심이 가는 건 자연의 이치였다.
- 작가의말
어린데도 얼굴이 이뻐!
덧. 댓글에 견씨가 나왔는데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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