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균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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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균형자
작품등록일 :
2012.03.18 19:00
최근연재일 :
2012.03.1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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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2.21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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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th 10. 균형자(1)

DUMMY

챙!


카오틱 블레이드와 레쥬사가 부딪힌다.


“조금 늘었군!”


“힘을 발휘하지 않았을 뿐...”


치잉!


둘의 여유 있는 말이 끝나고 두 신살검은 떨어졌다.


챙! 채챙!


“뭐야 도대체...”


저런거 하려면 기사단 연습실가서 하던가. 괜히 집에서 해서...


“단장님! 아래쪽!”


“부단장님!”


“거기서 검을...”


우리집 담장에 기사들이 잔뜩 매달리게 하냐고.


‘뭐, 신경 쓰는 사람도 없지만’


다른 가족들은 전부 자기 할 일만 하고 있었다.


“......”


천계에 다녀온 지 벌써 3달. 그러나 균형자들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뭐... 여신이 하는 말이니’


지금 우리 집에 신세를 지고 있는 여신이 로엘과의 연락을 통해 천계의 사정을 알려주고 있었는데, 주변을 샅샅이 뒤져서 일방관문 몇 개를 찾아냈지만 보석이 박혀있는 곳이나 작동하고 있는 곳은 없다고 했다.


“하아.......”


심심하다.


챙! 채챙!


“크윽!”


어, 파리아가 밀리네.


“지금이다!”


자르카가 기세를 잡아 파리아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팅! 티팅!


“......!”


그러나 파리아는 비장의 수가 남아있는 듯, 자르카의 검에 왼팔을 가져갔다.


징-


까가각!!


“칫!”


이래서 저 대련이 안 끝나는거다. 자르카가 조금 이겼다 싶으면 천상의 방패로 막아버리니. 파리아가 조금 이겼다 싶으면 카오틱 블레이드의 능력으로 막고.


“힘이 남아도네...”


자르카와 파리아는 대련 중. 아세아, 신아, 여신은 중앙에서 대화 중. 마사는 티엘 데리고 실종... 세키는...


“이봐. 기사들. 구경 값은 내야지.”


“네?!”


“이런 대련을 보기가 쉬운 줄 알아?”


굳이 신경 쓰고 싶지 않다.


“가주님. 위험하니 지붕 위에서 누워있지는...”


케이안도 어지간히 할 일이 없는 모양이다. 지붕에 숨어있는 나를 찾다니.


“괜찮아. 난 날개가 있잖아.”


“그래도...”


“아 괜찮다니까...”


주륵.


괜히 말을 하느라 몸을 움직여서 지붕의 경사를 따라 몸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


이거 약간...


주르륵.


무서운데...


“가주님?”


“괜찮아......”


몸이 조금씩 흘러 내려가자 나는 몸을 딱딱하게 굳혔고, 다행히 미끄러지는 것은 멈췄다.


“휴우......”


이거 다행......


“가주님?”


“으, 응?”


움찔.


실수로 몸을 움직여버렸다.


“......”


그리고 잠시 침묵.


주르르륵.


“으아아아!!”


미끄러진다!!!


‘나, 날개! 날개!’


급하게 등에 신력을 모아 날개를 펼쳤다.


쿠웅!


“......”


그러나 문제는 펄럭일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 몸은 정확히 정면으로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쿨럭......”


별 타격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람 많은데서...


“단장님! 위!”


“야! 말하면 부단장님이 불리하잖아!”


“야! 너 돈 안 낼 거냐?!”


다행히 아무도 나에게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왜 비참한 느낌이 들지...’


“가주님. 괜찮으십니까.”


“응.”


날 떨어지게 한 케이안이 괜히 고마워지는 이유는 뭐지...


“어! 저 기사녀석! 돈 안내고 도망친다!!”


“......”


진짜 세키는 어떻게 해야겠다.


“가주님. 잠깐 시간 되십니까?”


“응?”


막 세키를 잡으려 뛰어가려던 나는 케이안의 말에 제지를 받아야 했다.


“......잠깐이면 됩니다만.”


케이안의 눈은 이상하도록 진지했다.


‘왠지 이거.......’


예전에 쉬란의 명령으로 나를 두들겨 팰 때와 같은 눈빛이랄까... 그 때 케이안에게 굉장히 많이 얻어 맞았었지.



......


꼼지락.


결국 나는 버티지 못하고 몸을 움직이고 말았다.


-잠깐만 가만히 있어요-


-아까부터 가만히 있었다고-


흐릿한 시야로 보이는 아름다운 분홍빛 머리카락의 여성. 그리고.......


-거기 남자분. 가만히 계셔야 초상화를 그리죠-


-시끄러! 니가 빨리 그려야 가만히 있지!-


-라드!-


-......-


그녀의 외침에 나는 조용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 그럼......-


샤삭. 스스슥.


-......-


목탄이 종이 위에서 움직일 때마다, 나는 더욱 손가락을 움직인다.


-자, 조금만 참아줘요-


-알았어-


‘정말 귀찮아... 왜 이런 일을 해야하는 거냐고’


쉬란이 내 목적을 알아내고 들어갈 방법이 없는 이상... 아란과의 관계도 끊어야 하지만...


‘끊었다가는 아마도 죽겠지’


난 아직 죽고싶지 않았다.


덜컹.


-아가씨. 라드님. 음료수를 가져왔습니다-


움찔.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난 몸을 웅크렸다.


-이런... 또 움직이시면...-


결국 그도 지친 것인지, 화가는 목탄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그럼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겠습니다-


-......-


하지만 난 몸이 굳어있는 상태였다.


-라드?-


-이제 움직여도 됩니다-


-......-


나는 최대한 문을 바라보지 않으며 몸을 일으켰다.


-으, 음료수 마셔도 돼?-


-됩니다-


움찔.


난 저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무서워.


-참... 라드님은 왜 그렇게 케이안을 무서워하죠?-


-그거야......-


몰래 집사의 눈치를 봤는데, 별 표정이 없었다.


‘으윽... 저게 더 무서워...’


-아니... 그냥-


결국 아란에게 얘기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며 휴식시간을 보내야했다.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알았어요. 케이안-


집사가 나가고 아란과 나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좀 움직이지 말아주세요-


-......알았어-


‘왜 나만 뭐라고 하는 거야. 아란도 몰래 꼼지락거리고 있는데’


왠지 화가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이제 거의 끝나갑니다-


화가님? 당신은 아까부터 그 말을 하고 있었어.


“......님.”


화가... 응?


“......가주님.”


움찔!


“으, 응?”


예전 생각에 빠져 있다가 나도 모르게 케이안의 목소리에 움찔해버리고 말았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아니... 뭐...”


그런데 왜 이 생각이 난거지. 케이안의 무서운 눈빛을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기억하십니까?”


“뭘?”


뜬금 없이 그렇게 물어보면 대답할 수 없잖아.


“예전에 그렸던 초상화...”


“초상화...?”


방금 생각난... 그거?


“네. 라드님과 아가씨가 함께 그려진 초상화...”


“그거... 그 화가가 어디론가 실종되어서 받지 못하지 않았나?”


“네. 그랬습니다.”


‘그랬습니다... 과거형이군.’


“그렇다면 받았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오늘 아침에 찾아와서...”


케이안은 나를 저택의 뒤로 안내하고 있었다.


“저기입니다.”


저택의 뒤편에는 손님들을 위한 작은 정원이 있었다. 저택 앞쪽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지만, 그래도 셋 정도는 탁자를 놓고 앉아서 대화할 수 있는. 정원 안에는 손님이 올 때만 놓여지는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탁자에는 한 사내가 앉아 있었다.


“......”


그래, 저 화가였다.


“가주님. 들어가시죠.”


“응.”


가까이 다가가자 그가 천으로 덮은 그림판을 무척 소중하게 가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


뭐라고 인사해야 하지?


“가주님이 오셨습니다.”


다행히 케이안이 먼저 말해주었다.


“아......”


그 화가는 내 얼굴을 보며 놀란 것 같았다.


‘그런데 뭐야...’


화가는 굉장히 수척해져 있었다. 음... 그때 30대 중반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마치... 50대 중반으로 보인다고 해야 할까.


‘하긴... 11년이 지났으니’


그래도 많이 불쌍해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분이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 맞습니다.”


“......”


그는 다시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눈이 나쁜가?’


동공이 계속해서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게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잘 모르겠군요. 그분은 지금쯤 20대 후반이실 텐데...”


그는 거기까지 말하다 말을 멈췄다.


“그분의 자제 분이십니까?”


자제? 아들이냐고 묻는거 맞지?


“아니, 본인 맞는데.”


“......”


그는 흥미롭다는 눈빛이었다.


“말투를 보니 정말 맞군요.”


내 말투가 어때서?!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있던 그림판을 탁자에 올렸다.


“이 그림의 주인에게 드리겠습니다.”


이 그림의 주인이라면...


“열어봐도... 돼?”


“......”


화가는 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후우...... 제가 열지 말라고 나설 입장이 아니군요.”


그거야 당연하지.


“그럼......”


스르륵.


조심스럽게 천을 묶고있던 끈을 풀었다.


“......”


그리고... 천으로 덮여있던 그림을 꺼냈다.


“......이건...”


마치... 눈앞에...


“......”


그녀가 돌아온 것과도 같은...


“......죄송합니다. 제가 가질 것이 아님에도... 저는... 지금까지...”


화가는 바닥에 엎드려 흐느끼기 시작했다.


“......”


그림에 나는 없었다. 단지... 화사하게 웃고있는 아란의 모습만...


“어처구니없군요.”


케이안은 이 그림을 보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히... 의뢰는 두 분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끄흑.......”


화가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아란을......’


그래, 이 화가는 아란에게 반해버린 것이다. 그렇겠지, 마녀의 교환으로 외모라면... 정말 그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미모를 지니고 있었으니까.


“하아.......”


기분이 묘하다. 진짜로... 아란이 내 눈앞에 나타난 것처럼.


‘차라리... 아란이 이 화가와 잘 됐다면...’


나 같은 놈이 아니라... 저렇게 착한 화가와 잘 됐다면... 그랬다면...


‘이 그림에 나온 것보다 더 밝게... 웃을 수 있지 않았을까?’


“가주님. 이자를 끌어내겠습니다.”


“응?”


케이안은 아무래도 화가를 용서 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케이안. 너무 심한 것 아니야?”


“아니오. 이자는 계약을 어겼습니다.”


“그거야 그렇지만...”


“......이유는 조금 뒤에 보여드리겠습니다.”


응? 이유를... 보여줘?


“......”


화가는 말없이 케이안에게 끌려나갔다.


“후우......”


그나저나... 이건 정말...


“가주님.”


“으, 응?”


벌써 돌아왔나?


“늦어서 죄송합니다.”


“......?”


일찍 돌아온 것이 아닌가...? 그럼 내가 뭐하고 있던 거지...


“잠깐... 보여드릴게 있습니다.”


“그래?”


“그 그림도... 가져와 주십시오.”


“?”


무슨 일이지...


“알았어.”


일단 그림을 집어들고 케이안의 뒤를 따랐다.


“이곳입니다.”


케이안이 안내한 곳은...


“......”


예전에, 쉬란의 명령으로 케이안이 나를 가두고 때렸던... 그 창고였다.


끼이익...


내가 놀라는 동안, 케이안은 그 방의 문을 열었다.


“......”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어두워.”


방안에 무언가가 잔뜩 있는 것 같은데, 보이지 않았다.


탁!


케이안은 묵묵히 부싯돌을 움직여 벽에 놓인 촛대에 불을 붙였다.


“......이 방은...”


방안에는......


“......아가씨께서 소중히 여기시던...”


“......”


온갖... 십자수와... 내가 줬던 싸구려 선물들이...


“......끄흑...”


소중하게... 아주 소중하게...


“......추억이 모여있는... 방입니다.”


모여 있었다.


“어떻게... 저런 것까지도...”


내가 실수로 찢어서 버렸던 옷, 저택에 초대되어 빌려 입었던 예복, 그리고......


투둑.


한쪽 벽에 가득 쌓여있는... 자수... 그것은 전부 검은색 실로 머리카락을 표현한, 한 소년만을 수놓은 것들이었다.


“끄으... 끄으윽...”


이렇게... 이렇게...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렇게나 다른데... 사연과 착각하고...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왜 나를...... 나 같은 녀석을... 나는... 지금까지... 널... 잊고...


“처음에는... 저는 당신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집사 케이안은 최대한 감정을 가라앉히며 말했다.


‘그래... 그랬겠지...’


“하지만......”


케이안은 조심스럽게 내 품에 안긴 초상화를 빼냈다. 내 눈물에 젖지 않도록.


“마지막 그 날... 제가 당신을 죽이기 위해 몰래 성도 안으로 무기를 들여 온 그날...”


그 날...?


“당신은 아가씨를 만나러 오셨습니다.”


케이안은 그렇게 말하며 구석에 숨겨두었던 단검을 꺼내왔다.


“......”


“그때... 그것으로... 저는 당신을 용서했습니다.”


땡그랑!


금속음이 들렸다.


“아가씨도...”


케이안은 초상화를 방 중앙에 놓여있는 받침대에 걸어두었다.


“행복하셨을 겁니다.”


“......”


아란이... 행복했을까?


“그리고......”


케이안은 아란의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그래... 케이안은... 아란이 원했던 둘의 초상화를... 아란 혼자 쓸쓸하게 남아있게 해서... 그래서...’


“당신의 행복도 바라고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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