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1
“거기 밧줄로 단단히 고정해. 도르레의 잠금 장치를 셋하면 푸는 거야. 하나, 둘, 셋!!!”
“목재 작업이 생각보다 더뎌. 공병대를 숲에 벌목하러 간 놈들에게 더 붙여. 그리고, 이동마차도 가지고 가.”
“천천히 움직여. 가설된 도로가 아직 불안정하다고. 과적 수레는 천천히 움직여야 해.”
팩스성 앞에서 구릉지대에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소란스러운 건설현장이 생겨났다.
그곳은, 바로 톨먼의 지도 하에 조립이 시작되는 트레뷰셋의 건설 현장이었다. 뭐야? 이동이 편하다고 해서 좀 소형으로 생각했는데, 그래도 저 크기야?
톨먼의 말처럼 병기라기 보다는 거의 건물에 가까운 수준의 거대한 장비를 보며 나는 혀를 찰 수 밖에 없었다.
뭔가, 저 앞에 들어선 팩스성의 공격에 대한 실마리를 잡고, 추진해 나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되게 개운치가 않은 것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조금 떨떠름한 나와는 달리, 흥분에 휩쌓여서 몸소 석재와 부품을 나르며 공사 일꾼으로 나선 우리집 머저리들 탓인지도 모르겠다.
“오오··· 이음새가 틈도 없이, 깔끔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 봐. 역시, 톨먼 선생은 최고의 장인이었어.”
“그러니깐, 이게 내가 배운 회회포를 능가하는 최첨단 투석기라는 거지? 와우, 역시 구조와 설계가 땟깔부터 달라.”
“흥분되는군. 근위대 녀석들도 몇 명 참관하면 좋아했으련만.”
하아··· 대체 뭐가 저렇게 신나고 좋을까? 나에게는 저것이 헝가리 내전에, 우리를 막아선 장애물을 넘을 정치적 수단으로 보이는데···
녀석들에게는 왠지 모르게 소년의 꿈과 로망이 담긴 그 이상의 무엇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 녀석들의 과도한 흥분에 나는 되려 마음이 가라앉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이유는 또 있었다.
그건, 바로 저 무지막지한 물건의 제작과 조립을 시작하면서, 톨먼이 내민 서류 때문이었다.
“이게 뭐에요?”
“예산이요. 저 놈 만드는 것에 필요한.”
“잠시만요. 0이 하나, 둘, 셋··· 히이이익!!! 자, 잠시만요? 지금 뭔가 0을 한 두개쯤 더 붙이신 것 같은데요?”
“절대 아니외다. 정확하게 계산한 예산이요. 되려 적게 나온거요. 중요 부품은 내가 미리 만들어둔 것을 사용하는지라.
아니, 설마 트레뷰셋을 만들어서 공성전을 하면서, 그 정도의 예산도 예상치 못한 것이오?”
입이 딱 벌어지고, 눈이 이만해지는 말도 안되는 예산이었다. 그리고 대놓고 오히려 싸다고 적반하장이었고.
나는 어이가 없어 고개를 저으며, 이 제작에 대한 진행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천하의 짠순이 황후 마마가 이런 말도 안되는 예산을 순순히 용인하실리가 없잖아? 그런데···
“뭐? 이게 무슨 미친 수준의 어마어마한 예산이야? 이걸로 뭔 짓을 하려고!!!
뭐? 트레뷰셋? 트레뷰셋 예산이라고? (잠시 서류를 다시 보신 후) 야! 이거 미친 거 아니냐? 무슨 트레뷰셋 만드는 예산이 겨우 이 정도야?
상식적으로 이거 2배는 나와야 하잖아? 에산 검토 제대로 안하고 보고 올리냐?”
어이가 없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 방향성은 전혀 달랐던 모양이다.
덕분에 제국 측에서 급파된 샤일록 수석재무관 휘하의 회계감사관들이 어딘가 한대 맞은 얼굴로 달려와서 이것저것 검증.
그리고 그 검증을 마치고 귀환하고 얼마 후, 한푼의 에누리 없이 톨먼이 적어낸 예산이 도착.
와, 씨. 예산타기 되게 쉽구나. 트레뷰셋만 만들면 천하의 둘도 없는 짠순이 황후 마마가 이런 거액을 턱하니 내놓고.
아무튼, 그런 연유로 인해 뭔가 잘되어 가는 것 같아도, 묘하게 허망한 기분을 느끼는 것 같았다.
이거, 나만 혼자 냉정한 건가? 우리집 머저리들은 물론, 헝가리군 장병들도 뭔가 들떠서,
죄다 전력으로 그 병기를 만드는 것에 밤잠을 줄여가는 것을 보며 나는 뭔가 소외감 같은 것마저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이게 소위, 남자들과 여자들의 결정적인 차이인 건가?
나는, 대지 위에 세워지는 거대한 공성병기에 열광하는 소년들의 흥분에 도저히 따라가기 힘들다는 사실에 그저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장 그것이 세워지는 것보다는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 더 고민이 되었다.
톨먼의 장담대로라면 2주 후 저 공성병기가 완성된다. 그러면, 팩스성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겠지.
근데, 진짜로 그의 장담대로 저 병기가 저 언덕 위에 들어선, 말도 안되게 견고해보이는 성벽을 겨우 10발로 붕괴시킬 수 있는 건가?
당장, 성에서 트레뷰셋이 세워진 공터의 거리를 봐도 어마어마한 거리다.
상식적으로 저 거리까지 내 몸무게보다도 더 무거운 물체가 한번에 날아간다는 사실도 잘 믿기지 않는 걸?
그리고, 설령 날아간다고 해도, 그 탄환이 마찬가지로 공과 노력을 들인 저 성벽을 파괴할 수 있을지가 잘 믿어지지 않았다.
결국, 이 문제는 언젠가 쿠타이가 말해준 적이 있는 동방의 고사인 모순과도 닮아있다.
나는 그것을 떠올리고 씁쓸하게 웃으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결코 뚫리지 않는 방패와 무엇이든 뚫어버릴 수 있는 창. 대체, 어느 쪽이 이기는 거야?”
그런데, 그런 나의 혼잣말에 예상치 못한 답변을 던진 사람이 있었다.
“어느 쪽이 이기든 둘다 의미없어. 그게 무슨 삽질이야?”
율리아였다. 응? 이 기집애는 또 왜 시비야? ···라고 생각하는데, 의외로, 오늘은 나한테 시비털 분위기는 아닌 모습이었다.
뭐랄까나? 시대를 뛰어넘는 공성병기에 열광하는 소년들에게 좀 질린 나와 비슷한 표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평소처럼 드잡이질 할 생각은 하지 않고 녀석에게 물었다.
“넌 흥미없나 보다. 다들, 부품 하나하나 조립할 때마다 열광하는 분위기 속에서 되게 차분하네. 내면에 숨겨진 소년의 열정 같은 거 없는 거냐?”
“딱히. 덩치만 커졌지 장난감 좋아하는 건 여전하면서, 그 장난감으로 욕망까지 채우려는 놈들을 종종 만난적이 있거든.
별별 기상천외한 도구의 실험대상이 되고 나니, 그런 취미에 동조해주고 싶은 마음이 싹 달아나더라. 궁금하면 한번 썰 풀어드려?”
“됐다. 그거 들었다가, 혹시나 네 녀석이 너무 불쌍해서 동정의 눈물을 흘릴 것 같아, 아예 듣고 싶지가 않다.”
뭐, 툭하면 나오는 라구사 시절의 악몽이,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해도, 나름 큰 상처긴 한 모앙이다.
녀석은 마치 그 시절에 뭔가 당한 상처가 욱씬거리는 듯 얼굴을 찡그리고선, 눈앞에 세워지고 있는 공성병기를 보며 말했다.
“잘도 이런 거창한 것을 만드는 구만. 이래서 남자들이란. 아무 짝에도 쓸모없어도, 뭔가 크고 대단하면 정신줄을 놓고 달려드는 꼴이라니.”
“뭐, 남자들에 대한 부분에 동의하기는 하지만, 병기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는 건 좀 그렇지 않냐?
지금 당장, 눈앞에 저 철옹성이 문외한인 내가 봐도,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영역으로 보이는데? 그리고 그걸 파괴할 수 있다는 공성병기도 그렇고.
설치가 완료되면 둘다 부숴질 것이라는 사실이 아쉽기는 하지만, 폄하할 것은 아니지 않나?”
“너도 가만 보면, 되려 정서적인 부분에서는 저 머저리들에 가까운 부분이 있더라.
저 녀석들이야 눈앞에 나타난 되게 대단한 장난감에 흥분할지 몰라도, 너는 좀더 냉정하게 정치적인 입장에서 저걸 봐야하지 않냐?
저거, 왜 부숴먹으려고 하냐?”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왜 부숴 먹으려고 하냐니? 그야 당연한거 아니야?
저 난공불락의 팩스성을 함락시키려면 그것 밖에 방법이 없잖아. 원거리에서 성을 파괴시키는 것. 저 내구력에 한도가 있는 공성병기를 동원해서.
그래서 그럴 수 밖에 없는 거잖아?”
그런 나의 상식적인 말에, 율리아는 조금 한숨을 쉬면서 의외로 오늘은 우호적인 입장에서 충고를 건내듯이 말했다.
“그래. 그건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 저 머저리들도. 그리고 너와 나도. 톨먼과 올렉도. 그리고 저기서 버티는 팩스 성주도.
그렇다면, 여기서 생각해 보자. 저 공성병기가 완성되는 순간, 성은 어떤 식으로든 함락될 수 밖에 없다고 치자.
그리고 그 사실을 방어 측에서도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고,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을 준비할 수 밖에 없겠지. 저 놈들은 그럼 어떻게 나올까?”
“그야··· 당연히, 제작을 방해하려고 하겠지. 요격부대를 투입해서?”
“그래. 하지만 쉽지 않을거야. 저 공성병기를 신나서 만드는 놈은, 현 시대의 최고의 명장이니깐. 그래서, 그것이 성공하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하면? 그야··· 달리 방법이 없으니, 항복하는 수 밖에··· 어? 어어어?”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녀석은 조금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말했다.
“이제야 알아차렸냐? 창으로 방패를 굳이 찌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방어 측에서 우리 측 공세가 자신들이 믿고 있는 방어를 상쇄할 수 있다는 것을 판단한 시점에서 더 이상의 농성은 무의미하다.
팩스의 성주가 상식인이라면, 이 경우 멍청하게 죽음을 각오한 저항을 하느니, 공격이 시작하기 전 항복하는 것이 현명하지.
가지고 있는 물자와 자금, 병력 등 우리에게 전리품이 될 것은 최대한 온전히 보전해서 투항해야, 그나마 좋은 조건으로 항복이 수용되겠지?
그리고 녀석이 항복의 조건으로 양도할 수 있는 것 중에,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할 것이 있지. 바로 팩스성.
지금 보는 것만으로도 질리게 만드는 저 철옹성을 우리 측에 넘겨주는 조건으로, 녀석은 상당히 후한 가격으로 항복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다.
단, 그러기 위해서는 저 성이 멀쩡한 상태여야 하겠지. 저 무시무시한 공성병기가 공격을 가해 피해를 입기 전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정치적으로 너와 팩스 영주의 이해 관계가 일치해진다.”
“그렇군. 이제야 이해가 되네. 녀석은 저걸 담보로 자신에게 유리한 항복을 하는 것이 가능하고,
나는 그 대가로 저 철옹성과 그것을 상쇄할 수 있는 공성병기를 둘다 아무런 데미지 없이 손에 넣을 수 있어.
네 말처럼, 최고의 창과 최고의 방패를 굳이 시험할 필요없이 양손에 들게 되는 거야.”
나는 녀석이 조언해준 예상치 못한 경우의 수에 감탄했다. 그래, 저게 맞는 말이지.
둘다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이 시대의 공학의 최첨단 산물이다.
저걸, 무의미하게 상쇄시켜서 날려버리기 보다는 온전하게 내 손에 넣는 것이 더 현명하지.
저 난공불락의 성이 우리 영향에 들어오는 것만으로, 헝가리 남동부의 방어선은 최소한의 병력으로 유지가 가능하다.
그리고, 10발을 쓰면 전면 호버홀을 해야 하는 저 공성병기는, 여기서 쓰지 말고 부품단위로 분해해서 더 요긴한 전장에서 사용할 수 있다.
그야 말로, 양손에 최고의 방패와 최고의 창을 각각 드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것을 생각하자 나는 희열을 느꼈다. 그래, 이거지. 이거야. 저 웬수의 조언이 정확했어.
저 들뜬 소년들의 흥분에 어울려줄 필요는 없는 거야. 이건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문제.
그래서, 모두에게 다 이익이 되는 정치적 해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야. 그렇게 생각하자, 나는 녀석에게 감사의 마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조언 고맙다. 원하는 것이 뭐냐?”
“딱히. 굳이 꼽자면, 나름 우리 주인님이라는 저 머저리가,
첫눈 본 강아지처럼 저기서 저렇게 촐랑거리는 꼴 못봐주겠으니, 저거 좀 조기 수습했음 하는 정도?”
“그건 나도 동감이다. 알았어. 신속하게 처리하도록 하지.”
그리고 그때였다. 율리아가 예상한 것과 한치도 다르지 않은 전개의 급보가 전해졌다.
“습격이다!!! 모두 경계태세로!!! 성에서 병력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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