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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어이, 술주정뱅이 아저씨. 오늘 왜 이렇게 쓸데없이 무게 잡고 그래? 당신, 이런 양반 아니잖아? 뭐, 그래도 어전회의 같은 곳에서는 조금 무게 잡는 시늉을 하다가 졸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근데, 오늘 묘하게 이 양반이 누가 보면 정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분위기를 잡고 얘기를 하고 앉아 있는 것이다. 아재요, 괜히 그러다 나중에 엄한 소리해서 더 깨는 이미지 만들지 말고 평소처럼 좀 해요.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의 말이 이어졌다.
“피의자는 헝가리의 전권대사로서 귀국의 미래를 결정지을 권한을 부여받고 온 자이다. 그리고, 피해자는 제국의 공녀로서 내궁에 속한 황후의 권속이다. 두 사람이 부녀 사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피해자가 제국에 보내져 황궁에 온 시점까지의 일이고, 그 이후의 그녀의 소속은 황궁이며 그곳에 대표성을 가진다. 그 관점에서 생각하였을 때, 이번 사건은 단순히 아비가 자식을 벌한 일이 아닌, 헝가리가 제국이 보낸 호의를 걷어차고 중차대한 모욕을 가한 것으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제국의 황제인 짐의 입장에서는 마치 선전포고를 하지 않은 기습 공격과도 마찬가지로 간주할 수 밖에 없다.”
뭐··· 뭐라고? 선전포고? 야! 이 양반아!!! 그게 대체 무슨 망언이야? 우리 본국이 죽고 싶어 환장했냐? 예전에도 상대도 안되는데, 지금 상황에 제국에 선전포고 없이 기습을 하긴 무슨 기습을 해!!! 그리고 그런 황제의 말에 기겁한 것은 나 뿐이 아니었다. 공작님도 눈이 뒤집어지며 당황하여 소리치셨다.
“부당한 해석이옵니다. 주님에게 맹세코, 본국은 제국에 대해 악의를 가진 적이 없습니다. 선전포고 없는 기습이라니요. 지나치게 과장된 해석이시옵니다. 이 모든 것은 그저 제가 분을 이기지 못한 우발적인 사건에 불과합니다.”
그런 공작님의 항변에 황제는 표정이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차갑게 말했다.
“이미 들었다.”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미 들었다뇨?”
“이미, 그대의 본국에서 그대가 한 말과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똑 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 국경의 군의 움직임에 경악하고, 경위를 담은 서신을 받은 그대의 본국에서 그러더군. 이 모든 것은 헝가리의 뜻과 무관한 외교사절 개인의 일탈이며, 스스로 가겠다고 자신이 자원한 사절을 자세히 알아보지도 못하고 보낸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이야. 그래서, 그 사건에 대해 제국 측에 진심으로 사죄하고, 그것이 헝가리 측의 뜻과는 결코 무관하다는 의지의 표명으로서··· 그대의 처분을 제국에서 알아서 하도록 맡긴다고 하더군.
간단히 말해서, 그대의 본국은 그대가 저지른 일이 국가와 국가의 의지를 담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필사적으로 주장하고 싶어하더군. 짐은 그 주장에 대해서,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그것의 진위를 따지기에 앞서서 그대의 본국이 표시한 그대의 처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대의 본국의 입장을 그대로 해석하자면, 그대는 더 이상 헝가리의 외교 특사로서의 면책 특권은 사라졌고, 그대의 본국은 그대의 구명을 포기하였다. 다만, 그 죄가 그들에게 연루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지. 짐은 일단 그런 그들의 의사에 대해서는 수용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공작님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그냥 창백한 수준이 아니라 거의 시체를 연상시키는 수준이다. 우와, 이거 우리 본국 너무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외교관의 면책 특권을 포기하고 죽이던 살리던 맘대로 하라고? 그게 정상적인 나라로서 할 짓이냐? 이 말대로라면, 정말로 공작님이 제국에서 극형을 받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기껏해야 모욕적으로 추방되거나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리라 생각했는데··· 이대로라면 어쩌면 제국에서 징역을 사시게 될지도? 그런데 그때였다. 황제의 선고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결코 생각할 수도 없는 수준의 판결이었다.
“라즐로 아르파드. 제국의 황제로서 선고한다. 그대는, 이번 사건의 책임을 그대의 목숨으로 갚으라. 제국은 그대에게 죽음을 명한다.”
“······!!!!!!”
순간, 어전이 술렁이는 분위기가 파도처럼 흘러갔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것은 그저 분위기에 불과했고,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미치도록 무거운 침묵이 어전을 가득 채운 사람들 모두에게 내려져 있었다. 모두가 경악하고,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지금··· 뭐라고 말한 거야? 죽음을 명한다고? 사형? 지금 사형이라고 말한 거야? 나는 상상도 하지 못한 황제의 판결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당사자인 공작님과 시녀장님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황후 마마와 바실과 다른 사람들도 심하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선고에 머리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공작님이 사형당한다고? 그리고 공작님이 처형된다면, 당연히 같이 체포된 시녀장님도 처형될 것은 안봐도 뻔하다. 그것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나의 진짜 신분을 알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 중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드는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이에른으로 간 진짜 카밀라 공녀님과 본국에 일부 인사들이 더 있겠지만 그들이 직접적으로 나를 통제할 방법은 없다. 그리고, 이 사실을 공작님과 시녀장님은 발악처럼 발설할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바이에른에 간 진짜 공녀님의 소재까지 위험하게 만드니깐.
결국, 두 사람은 이 경악스러운 판결에 대해서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묵묵히 죽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나는 자유의 몸이 되고. 얼마 전에 질 나쁜 농담처럼 망상했던 생각이 정말로 실현을 눈앞에 둔 것이다. 빌어먹을··· 이게 대체 뭐야. 왜 운명의 여신은 이렇게 생각치도 못한 상황을 만드는 거야? 나는 지금 내가 직면한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때 나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모아져 있다는 사실을 깨닭았다.
가장 강렬한 시선으로 나를 보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건 바로 공작님과 시녀장님이었다. 그들의 눈빛에서는 절망과 공포, 그리고 마지막 희망의 기대를 담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그런 눈빛에 나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뒤로 이어진 눈빛이 보였다. 그것은 바로, 황후 마마와 바실, 율리아, 쿠타이였다. 그들 모두는 예상치 못한 황제의 극단적인 판결에 당황하면서도, 나를 보면서 눈빛으로 강렬하게 말하고 있었다. 나서면 안돼. 그 메세지가 강렬하게 듣지 않아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그들은 모두 나에게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 지금 나서면 절대 안된다고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었다. 그들 모두는 나를 아버지의 사형을 눈앞에서 보게 될 딸로서 안쓰럽게 생각하며 걱정하면서도, 지금 상황에서 내가 그의 편을 들면 절대 안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진짜 아빠 아닌데? 그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진짜 딸도 아닌 내가 지금 상황에서 목숨을 걸고 나서는 것은 그야말로 바보짓이다. 그것은 마치, 거절하기 힘든 악마의 유혹과도 같았다. 나는 부친의 사망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슬퍼하는 척하며, 황제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모든 이의 동정과 총애와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된다. 빌어먹을! 이거 정말로 거절할 여지가 없이 지독하게 달콤하잖아?
그래서, 나는 나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안심하라는 듯이 조금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를 향한 공작님과 시녀장님의 시선을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런 나의 행동에 사람들은 내가 예상한대로 측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오로지, 절망에 빠진 두 사람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리고 나는 마음 속으로 의지를 다졌다. 그래, 딱 한번만 눈감고 넘어가자. 잠시만. 아주 잠시만 가만히 있으면 돼. 그것만으로··· 나는 자유야. 그래서, 나는 따가운 마지막 구명의 동앗줄을 잡으려는 두 사람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래. 조금만··· 조금만 더 눈을 감자.
그런데 그때, 문득 나는 의문의 시선을 느꼈다. 그 시선에 나는 눈을 뜨고 그곳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그 시선의 주인은, 다름 아닌 황제였다. 뭐··· 뭐야? 그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것도, 익숙하던 평소의 와인이나 구걸하던 한량의 장난스러운 그 눈빛. 지금 예상치 못한 처형을 명한 절대군주의 눈빛이 아닌 내가 아는 그 한심한 양반의 장난끼어린 눈빛이었다. 뭐··· 뭐야? 그 시선은? 나한테 뭘 말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는 이내 흥미를 잃어버렸다는 듯이 시선을 다시 돌렸다. 그리고, 다시 차가운 눈빛으로 피고를 내려다 보았다.
그러나··· 그 찰라의 순간 스친 눈빛은 나의 가슴 속에 묘한 파문 같은 것을 던졌다. 이 망할 중년···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제대로 하라고. 평소처럼 한심하고 근본없이 말이야. 하지만, 그런 나의 마음의 소리는 그에게 전해지지 않았는지 그는 여전히 시선을 돌리지 않고, 눈앞의 죄인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의 입에서 선고를 넘어서는 충격적인 발언이 이어졌다.
“형은 바로 지금 이곳에서 집행하노라.”
“······!!!!!!”
뭐, 뭐뭐뭐? 뭐라고? 지금 여기서 형을 집행해? 이 양반이 정말 미친 거 아니야? 그러나, 그런 나의 당황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그는 확고부동했고, 이제는 나를 눈빛으로 제지할 여유조차 잃은 황후 마마와 바실은 입을 딱 벌리고 얼어붙어 있었다. 특히, 황후 마마는 자신이 시작한 일이 생각 이상으로 너무 커져가고 있는 것에 심하게 당황하신 눈빛이셨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상황에서만은 그녀는 평소에 그리 만만하던 자신의 남편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황제는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나의 시선을 억지로 외면하듯이 말이다.
갑자기 그것을 보니 뭔가 가슴 속에서 치미는 것이 있었다. 묘하게도 그것은 전에 공작님에게 얻어맞으며 내가 느꼈던, 내가 가짜라는 사실에 대한 자괴감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니, 조금 느낌은 다르다. 이건 차라리 오기에 가까우니깐. 왜 나를 보지 않는 거지? 지금,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당신은 나에게 미안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맞잖아. 근데, 왜 나를 보지 않는 거야? 내가 보이지 않는 건가? 지금 여기 있는 내가 당신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거냐고? 아그네든, 카밀라든, 여기 당신이 받은 공녀가 있어. 그리고 당신은 날 봐야 해. 왜 그 따위로 여기 아무도 없는 것처럼 구는 거야? 이 개자식아!!!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인생에 두고두고 후회할 짓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 판결과 집행에 이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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