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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조언··· 깊이 새겨듣고 명심하도록 하지. 충고 고마워. 그리고 도와준 것도···”
“훗, 별 말씀을. 응? 잠깐··· 그러고 보니 너 카밀라잖아!!! 와씨, 갑자기 말도 안되는 대형 사고에 분위기에 휩쓸려서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행동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거 너였잖아. 허억!!! 재수없어. 그리고 네가 나한테 고맙다고? 야, 이!!! 또 무슨 개수작을 부리려고!!! 꺼져, 이 망할 년아!!!”
그리고 이 기집애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는 듯이 갑자기 소금을 휘휘 던지면서 의료실에서 빠져나갔다. 아아··· 그래, 그래야 너 답지. 갑자기 나도 분위기에 휩쓸려서 착각할 뻔 했네. 아무튼, 그렇게 그 웬수와 겨우 정신을 차리고서는 그날의 소동은 일단락하였다. 물론, 나에게 한정해서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공작님과 시녀장님에게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공작님이 갑자기 분에 못이겨 저지른 행동의 결과는 율리아의 예상대로 황도와 제국 전체에 일파만파를 일으켰다.
“뭐? 헝가리에서 온 특사가 황궁에 난입해서 공녀를 폭행했다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말도 완곡하게 하는 것이 상식인 외교 사절이, 다른 사람도 아닌 헝가리 외교와 제국 군부의 핵심 인물인 공녀를 폭행했다는 것이 말이 돼?”
“듣자하니 그 특사가 공녀의 부친 템즈 공작이라더구만. 그래서 가법을 들먹이며 그랬다는데, 그 말에 황후가 더 진노해서 중죄인으로 잡아 쳐넣었데. 지금, 미친 거 아냐? 시집보낸 딸내미를 친정아버지가 시댁가서 손찌검을 해도 난리가 날텐데, 공녀로 보내서 황후의 소유가 된 내궁의 여자를 폭행했다고? 이 새끼 대체 뭐지? 제국 황궁이 무슨 자기 하인 집으로 보이나?”
“뭔가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 같아. 헝가리 내부에서 친제국파로 분류되던 템즈 공작이야. 그 사람이 뭔가 이번 협상을 앞두고 그런 만행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헝가리의 수뇌부의 진의가 의심스럽지 않아? 설마, 동맹이라고 생각하는 건 우리 제국만의 착각인 것인가?”
황도의 여론은 심각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내심, 큰 크게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외교적으로 고립된 제국에서 주적인 신성로마제국의 방파제가 되어줄지도 모를 우방의 존재에 대한 기대가 작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제국의 그런 기대와 호의를 담은 제안을 협상하기 위해 파견된 사절이, 그것도 제국 내부에서는 나를 보내 가장 친제국파로 통하는 인물이 생각치도 못한 만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뭔가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느낌이 된 것이다. 분위기는 그 말대로 더 급속히 냉각되었다. 성공적인 군사협상의 결과를 미리 축하할 준비를 하던 군부는 예상치 못한 사태에 경악하였다. 그리고 바실은···
“일을 대체 어떻게 하길래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냐!!! 군부의 수장이라는 놈이, 작정하고 황궁을 테러하러 오는 놈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나보고 내궁의 주인으로 환영을 해달라고 부탁해? 정신 좀 차려라. 이 한심한 놈아!!!”
지네 엄마한테 대차게 까였다. 무리도 아닌 것이, 나중에 들은 후일담에 의하면 나름 내 아버지가 온다는 소식을 뒤늦게 들은 바실과 황후 마마 두분 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잘보일 생각을 하고선 여러가지로 준비를 한 모양이다. 그래서, 카르브나 황조 설립 이후 최고의 국빈으로 대접을 준비한 사절이, 생각치도 못한 만행을 저질렀으니··· 까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렇게 된통 까인 바실의 심기는 대단히 안좋았다. 아니, 그보다는 뒤늦게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와 얼굴에 얼음을 대고 있는 나를 보고선 더 안좋아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군부에서 후속 조치를 묻는 실무관들에게 그것을 여과없이 드러내었다고 한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국경에 2급 경계태세를 발동하라. 그리고, 헝가리에 주둔하고 있는 제국군 파견부대는 즉시 출동 준비를 마치고 대기하라 명하고.”
“아··· 알겠습니다. 그러면, 템즈 공작과의 협상 계획은 일단 없었던 일로···”
“템즈 공작? 그게 누구냐?”
“네? 그··· 그건···. 이번에 헝가리에서 사절로 오신 공녀님의 아버님···”
“제국의 공동황제가··· 감히 황궁에 난입해 허락도 받지 않고, 난행을 벌인 무도한 테러범에게 작위까지 붙여서 불러줘야 하느냐?”
“시··· 시정하겠습니다!!! 중죄인 라즐로였습니다.”
삽시간에 군부의 분위기는 얼음이 어는 온도 이하로 떨어져 버렸다. 그리고, 국경 지대는 거의 살얼음판에 가까운 분위기로 흘러간 모양이었다. 역시나 나중에 전해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누군가 크게 고함만 질러도 제국군의 작계가 발동할 정도로 험악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기분을 반영하듯, 혈태자 모드로 공작님을 찾아간 바실의 면담의 분위기도 최악이었다고 한다. 공작님은 자신을 방문한 바실에게 필사적으로 오해라고 변명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 공작님의 변명에 대해서 바실은 대단히 감정없는 목소리로 말했다고 한다.
“라즐로 아르파드, 그대에게 실망했습니다. 제국이 어떤 마음으로 그대의 방문을 기다렸거늘, 이게 대체 무슨 만행입니까? 조국의 멍에를 지고 목숨을 걸고 이곳으로 왔던 따님에게 부끄럽지도 않으시오? 그대의 국문과 판결은 황제 폐하께서 직접 행하실 것이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황제 폐하의 앞에서 하시길 바랍니다.”
“화··· 황제 폐하가 저를 직접 국문하시겠다고요? 어째서입니까? 저는 사절로 왔으니, 문제가 있으면, 외무부나 군부에서 저를 심문하는 것이 맞지, 왜 황제께서 직접···”
“다행으로 생각하시오. 차라리 황제 폐하께서 국문하시는 것을. 지금, 그대가 저지른 일의 그대를 손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제국 내에 얼마나 많은지 짐작하기나 하시오? 행정부의 일곱 악마와 군부의 아홉 간부들이 서로 앞다투어 그대를 좀 만나고 싶다고 하더군요. 아니, 열명. 저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응? 그러고 보니 앙리 콰지모토는 왜 여기 끼어있어? 이 양반은 대체 무슨 생각인건지. 아무튼, 그들 모두가 뭔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그대와의 만남을 고대하는 와중에 그나마 폐하가 직접 국문하신다는 말에 자제하고 있는 것을 행운으로 생각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오.”
아이고, 바실아. 너까지 왜 이러니. 바실은 보는 사람들이 다들 후덜덜하는 혈태자 모드로 공작님을 만난 자리에서 그렇게 살의에 가까운 감정을 드러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실수로 불러모아 제국에 상층부에 올린 인간들도 같은 마음으로 자신에게 공작님의 신병을 넘겨달라고 요구했고. 특히, 쥬노는 자긴 한 조각만 줘도 된다고 해서 주변을 더 공포스럽게 만들었다나? 그래서, 정말로 공작님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황제에게 심문을 당하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해서는 나도 조금은 안도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그 뺀질이 중년이라면 그나마 좀 설렁설렁할 여지가 있겠지. 그리고 얼마 후 공작님은 황제와의 면담이 이뤄졌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예상과 다르지 않게 황제의 표정은 다른 사람처럼 그렇게 분노하지는 않았다고 전해졌다.
“그대가 템즈 공작, 라즐로 아르파드인가? 짐이 제국의 황제인 니케포루스 카르브나일세. 쯧쯧쯧··· 이게 대체 무슨 꼴인가? 환영받아야 할 특사가 지금 이렇게 지하감옥에 갇힌 죄인 신세라니.”
“황제 폐하. 실로 억울하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다 황후 마마의 오해십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옵소서.”
“뭐, 대충 진술서는 보았네. 뭐, 확실히 억울한 부분이 없지는 않더구만. 오해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덕분에 그런 고초를 겪다니. 내 마음이 다 안타깝구만. 보아하니 먹은거라곤 물과 빵이 고작인 것 같구먼. 여기 와인을 가져왔네. 한잔 들게나.”
공작님은 처음으로 이성적으로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황제의 말에 안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권한 와인에 호의를 느꼈고. 그래서, 황급히 창살 너머로 잔을 받아서 와인을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격하게 당황하고 말았다.
“켁켁켁···. 이, 이건 대체··· 폐하, 이건 제대로 된 와인이 아니옵니다. 식초로도 못쓸 정도로 관리가 안된 물건입니다.”
“아니, 와인 맞네. 내가 요즘 먹고 있는 와인이야. 세상을 살면서 그리 큰 욕심을 가지지 않으면 삶이 평화롭지. 그저, 마음 내킬 때 마시는 좋은 와인 한잔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인생은 만족스러운 법이야. 하지만, 황후와 갈레노스는 그걸 엄하게 단속하지. 그럴 때 마다, 내게 약간의 유예처럼 황후가 맡긴 와인 셀러의 열쇠를 가지고 내게 조금이나마 행복을 맛보게 해준 사람이 바로··· 자네의 딸이라네. 그리고, 지금 그 딸은 황후의 명으로 의료실에 격리되어 나오지 못하고 있지. 그래서, 지금 내게 허락된 것은 이렇게 식초에 가까운 것들이야. 그나마 그건, 그 식초들 중에서 먹을만한 것을 가져온 것이야.”
“폐··· 폐하? 저기,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공작님은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에 당황하셨다. 그리고, 황제는 뭔가 뜬금없는 분노를 풀 곳을 만났다는 듯이 말했다고 한다.
“자넨 평소에 자네의 딸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지. 게임을 시작해볼까?”
“히이이이이이익!!!!!!”
아, 씨··· 저 양반은 분노 포인트도 개그야. 아무튼, 그렇게 공작님에 대한 심문은 황제의 주관 하에 혹독하게 이뤄졌다고 한다. 물론, 황제야 저 이야기만 하고 나머지는 심문관들이 와서 하기는 했지만, 공작님 입장에서는 처음 본 미친 황제의 공포를 제대로 실감한 모양이었다. 근데, 그거 세상에 알려진 거랑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미친 건데. 그 맛을 제대로 못보네. 아까비. 그리고 당연히 공작님의 변명은 오해였고 억울하다는 것이 전부였고, 그에 대해서 싸늘해져 가는 황제 측 심문관들의 표정에 점점 질려간 모양이다. 그리고 그러는 동안 나는 공작님과 시녀장님에게서 격리되어 일절 접촉하지 못하고 병상에 누워 있어야 했다.
사실 그다지 큰 부상을 당한 것도 아닌데, 굳이 나를 병동에서 격리하여 나오지 못하게 하는 건, 공작님과의 접촉을 금지한다는 의미가 더 크겠지? 나는 그 상황에서 고초를 겪고 있을 공작님과 시녀장님을 생각하며 조금 쌤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건드리고 그러셔. 나도 사소한 사고를 좀 치기는 했지만 나름 본국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수고했다고 칭찬을 해주지는 못할 망정. 뭐, 왜 그렇게 격분했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내심 마음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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