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부-34장. 산타에서 대마신으로(7)
허구의 역사밀리터리입니다. 동명이인 및 내용은 모두 평행세계입니다.
34장. 산타에서 대마신으로(7)
대한제국은 혀를 찌르는 기습전을 전개했다.
레이크 타운에 있는 클레베르 소장은 보고를 받자마자 기가 찬 표정으로 웃었다.
“하하하하! 유령의 학살자가 우리의 계략을 눈치챘군. 웨스트 지역을 강행 통과해서 산체스 기갑부대를 역으로 전멸시켰다라······!”
파란 군복과 빨간 바지를 입은 의용사의 장교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번 작전은 멕시코 3군의 동의 없이 산체스 기갑부대 일부를 희생양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실패로 돌아가자 하나같이 웅성거리면서 적장을 칭찬했다.
“과연 한제국 제일의 기갑장군이군요.”
“유령의 학살자라는 별명이 엉터리가 아니었군.”
“대체 어떻게 중포대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을까요? 멕시코군의 매복을 강행 돌파하다가 큰 피해를 볼 수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의문의 기괴전술.
여태껏 보고 듣지 못한 한승범의 전차기동법에 고개를 갸웃하는 장교가 대부분이었다.
클레베르도 마찬가지였는데, 속내를 입 밖으로 드러내면서 혀를 찼다.
“군침을 흘리고도 남을 큼직한 먹잇감을 준비했는데도 의심하고 버렸다. 나 같으면 의심은 했겠지만, 본능에 휩싸여서 덥석 어금니를 박았을 텐데.”
그만큼 멕시코 기갑부대는 상대방에게 훌륭한 성찬(盛饌)이었다. 잘 차려진 밥상은 코와 뇌를 자극해서 무의식적으로 달려들게 만든다.
하지만.
한승범은 예외였다.
이를 두고 참모진이 입을 열었다.
“적이 중포대를 입수했으니 역으로 이용하지 않겠습니까?”
슈나이더 220mm는 아군에게 득이지만, 적에게 넘어갈 경우는 해가 되는 존재였다.
클레베르는 피식 웃었다.
“중포 일 문당 사전에 배정된 포탄은 10발에 불과하다. 행여 노획해서 사용해도 지금쯤은 고철에 불과할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적이 노획하는 순간 아군에게 공포로 다가올 중포의 발사 제한. 프랑스에서 독자 개발한 포탄은 미국은 물론이고 대한제국도 수급할 수 없었다.
그제야 모두가 감탄했다.
“역시 장군님입니다.”
“적은 이제 타운과 유정설비가 있는 이곳으로 진격할 것이다. 레이크 노스와 이스트에서는 서부혼성군과 멕시코 3군이 대치하니, 이 틈을 노릴 게 명약관화하다.”
“만만의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첫 번째 미끼를 피했고, 두 번째 미끼를 역으로 사용했으니 세 번째는 한승범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의용 3사단이 대한제국의 상륙을 알고도 모른 척 한 이유는 치명타를 입히기 위함이었다.
전쟁터에서 잔뼈가 굵은 클레베르는 사악한 미소를 드리우면서 웃었다.
“유령의 학살자라는 큼직한 사냥감이 내가 판 함정으로 빠지는 일만 남았군.”
※※※※※
레이크 유정지대 11km 외곽.
슈나이더 220mm 대포의 포신이 달구어진 채 하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철컥!
마지막 포탄 발사 후 탄피가 토해지면서 의용포병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드러났다.
한제국군의 강압에 따랐지만, 우군인 멕시코 기갑부대에게 발포했다는 점이 못내 미안한 얼굴이었다.
“사령관님, 포탄이 다 떨어졌습니다.”
“?”
“포병장교의 말로는 일 문당 10발 정도만 배정되었다고 합니다.”
“뭐라고?”
한승범은 반문했다.
프랑스 의용포병이 대한제국군을 전멸시킬 생각이라면, 일 문당 50발 이상은 투사해야 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박위도 고개를 갸웃했다.
“저들은 정해진 시간에 10발씩 총 80발을 발사하고 난 뒤에 중포를 유기하라는 명령을······.”
구린내가 났다.
한승범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클레베르 장군의 별명이 하얀여우라고 했지. 그렇다는 말과 유정지대에 샤르 b1을 숨겨둔 사실을 종합하면 이중삼중으로 함정을 팠구나.’
일순 뒤통수를 때리는 생각에 지도를 가져오라는 한승범. 지도에는 유정지대를 표시한 기호와 함께 평지로 이루어진 레이크 남서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통신병, 당장 허일도 대령을 호출해라!”
지휘전차에 매달린 두 개의 안테나를 통해서 강력한 전파가 송출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컬컬한 음성이 들려왔다.
-1연대의 허일도입니다.
“귀관에게 긴급 지시사항을 전달하겠다. 일몰 직전에 레이크 사우스로 진입해서 의용 3사단의 전차와 교전을 명령한다.”
-알겠습니다.
“참고로 그들의 차종은 소뮤아 S-35와 대일전에서 몸서리치게 겪은 샤르b1이다.”
-예?
샤르b1에 대한 추억.
대한제국에서도 4형 흑호의 후속전차인 5형 전차가 양산되면서 우위에 올라설 정도로 대단한 전차였고, 현존하는 유럽 최고의 전차였기 때문이다.
-본국에 있는 4형, 5형 전차가 아니면 기동력으로 승부를 겨뤄야 하는 괴물이 아닙니까? 하다못해 흑호전차라도 주면 모르지만······.
허일도의 뒷말은 있지 않아도 뻔했다. 그가 삼킨 말은, ‘······. 구형 백범 전차로 싸우다가 죽으라는 말입니까?’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한승범은 이를 깨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클레베르는 방심하고 있다. 그 틈을 이용해서 서쪽과 남쪽에서 동시에 공세의 수위를 높인다. 그래야만 우리에게 승산이 있다.”
중(中)전차와 중(重)전차의 결합을 떼놓지 않고 격돌하면 피해는 오롯이 2기갑사가 뒤집어쓴다. 이런 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한승범은 특단의 대책을 말했다.
허일도 역시 노련한 기갑장교로 대번에 상관의 뜻을 알아채고는. 불평 섞인 음성으로 대답했다.
-제 목숨이 몇 개인지 아십니까? 사령관님을 만난 이래로 죽을 고비만 여러 번을 넘겼습니다. 이번에도 똑같은 냄새가 납니다.
“끝나면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사지.”
-전부입니다.
“?”
-우리 2기갑사가 사령관님의 명령으로 적의 함정에 들어가는데, 살아오면 잔칫상이라도 차려주셔야죠.
맞는 말이다.
한승범은 이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2기갑사는 물론이고 5기병사를 포함한 원정 1군 모두에게 전투가 끝나는 즉시 한턱내겠다. 월급이 부족하면 연금이라도 깨서 잔칫상을 차려줄 테니 기대해라.”
허일도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악단은 기본이고 예쁜 무희도 불러주시겠죠? 요즘 캉캉 춤이라고 해서 속바지가 보이는 춤이 미국에 유행한다고 들었습니다.
일순 모두의 눈이 초롱초롱 반짝였다.
대화를 지켜보는 장교와 사병들. 그들도 미국에 와서 새로운 문화적 충격을 받고는 어안이 벙벙했다.
대한제국과 제국령의 문화와 달리 속살이 보이는 옷은 기본이고, 목과 가슴이 드러난 드레스 차림의 미국 여자는 젊은 군인의 눈을 돌리지 못하게 했다.
장교도 마찬가지였는데, 미군과의 사교모임에서 팔과 어깨선이 드러난 드레스를 입고 남녀가 손을 잡고 추는 춤에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이내 적응하면서 몇몇 장교 무리는 사교춤에 빠지기까지 했다.
이를 두고 소곤거리는 말 중의 하나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음주가무(飮酒歌舞)에 능했다.’라는 말로 정당화했다.
“허일도! 그 대신에 팔다리 하나라도 다치면 조건은······.”
-충성! 통신병, 모두에게 무전을 돌려! 우리의 위대하신 한승범 사령관님이 전투에서 살아오면 코가 비뚤어질 정도로 술을 산다고! 물론 캘리포니아에 있는 술집에서 무희를 다 데려와서 서양식 파티를 해준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통신을 끊었다.
통신병도 황당한 얼굴로 한승범을 쳐다보았고, 사단 공용주파수로 퍼져나간 이상 무르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입이 찢어졌다.
이미 만세를 부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2기갑사 전원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한승범은 겉으로 웃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우리 원정 1군의 부대원만 해도 만 단위가 넘잖아. 한 명당 10달러로 잡아도 10만 달러잖아!’
영국 파운드가 세계 기축통화의 표준이며, 금본위 제도하에서 대한제국과 미국의 환율은 1:1의 가치로 환전할 수 있었다.
“사령관님, 만세!”
“이번 전투를 끝내고 술독에 빠지자!”
“우리 원정군 전체에 잔치를 베풀어주신다고 하셨다.”
병사들은 환호성을 외쳤다.
각 단차에서 전차병들이 해치를 열고 얼굴과 허리를 내밀고는 만세삼창을 외쳤다.
“2기갑사 만세!”
“대한제국 만세!”
“한승범 사령관 만세!”
이제는 기정사실화로 퍼져나간 군인 전용 파티.
무려 1만 명이 넘는 원정군 전체 인원이 마실 술과 악사, 무희를 부를 생각에 한승범은 똥 씹은 표정으로 변했지만, 억지로 웃었다.
“대대장과 중대장은 모두 집결한다. 3시간 이내로 정비점검과 함께 포탄과 유류 보급을 마친다.”
전투가 끝난 시점이 14:02분, 현재 30분이 지난 상태니 3시간 후는 정확히 17시 32분이었다.
잠시 후.
후방에서 한 떼의 기병이 달려왔는데, 그 속에 이역 등이 끼어있었다.
“충! 사령관님의 전과를 듣고 놀랐습니다.”
“이역 준장, 시간이 없으니 바로 회의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앗, 이반 준위도 왔군. 안 그래도 부르려고 했는데 말이야.”
이반을 보고 반기는 한승범이다.
만주에서부터 한일전쟁까지 척탄중대를 이끌고 특수임무를 전담한 백전노장으로 원정군 특수부대의 대부나 다름이 없는 인물이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특임척탄중대를 데리고 적진으로 달려가겠습니다.”
“2시간 이내에 출발준비를 해야 한다. 준위가 자랑하는 특임척탄부대 전원을 데리고 가게.”
“예?”
“우선은 이역 준장과 함께 여기 있는 대대장에게 작전개요를 설명할 테니 듣고 의견을 제시해주게.”
한승범은 말과 함께 임시로 만들어진 포대 안쪽의 참호로 들어갔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처럼 보안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17시 32분에 전군은 두 개로 나뉘어서 남서부에 있는 유정지대로 돌입한다. 지도상에 있는 이곳 지점에 프랑스 의용 3사가 있다. 병력 규모는 기동력을 갖춘 기갑부대 위주로 편성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레이크 타운과 유정지대는 평지나 다름없는 지형입니다. 아군이 돌입하기 전에 적에게 발각당할 것이 뻔합니다.”
“나도 안다. 그래서 작전개시 시간을 해가 지는 시점에 맞추었다.”
“아!”
한승범은 야간작전을 원했다.
피아가 식별되지 않은 어둠 속에서의 전투는 적과 아군도 꺼렸다. 그런데 강행하겠다는 의도는 이역은 물론이고 대대장과 중대장들을 경악시켰다.
“우리 부대는 야간용 장비는 일절 장비하지 않았습니다.”
“2기갑사가 본래 사용하는 전차는 흑호와 5형인데, 파병 오기 전에 구식 백범전차로 전환교육을 받는 통에 야간 라이트 등을 장착하지 않았습니다.”
난색을 표방하는 장교들.
그만큼 야간 전투는 아군까지 피해를 줄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했다.
“사령관님, 2기갑사는 야간 전투훈련을 충분히 받지 않았습니다. 자칫 기동력에 우위가 있는 아군끼리 포화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참모의 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상대는 흑호도 겨우 상대 가능할 정도로 전면장갑 및 방호력이 뛰어난 샤르b1이다.”
“흠!”
“그놈의 단점은 기동력이 느리다는 점뿐이다. 그렇다면 야간을 틈타서 모험을 걸 필요가 있다.”
한승범은 모험을 원했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지 못할 정도로 연료 사정이 나빴고, 해상에서 감시 중인 기동함대의 절반도 중유 부족으로 항구에 계류(稽留) 중이었으며, 멕시코 대서양 함대가 출현할 경우에 피해는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남은 방법은 지금처럼 중부에서 원유를 가져오는 방안인데, 얼마 전에 레옹의 Fe2 지상공격용 복엽기가 나타나면서 운송이 들쑥날쑥해질 정도로 타격을 받았다.
탁!
한승범은 손가락으로 지도상의 위치를 찍었다.
“우리가 사는 길은 유전의 원유를 확보하고 정유시설을 돌려서 연료를 생산하는 길뿐이 아니다. 바로 이곳에 있는 적을 궤멸시키면 서부는 해방된다.”
참호에 있는 장교들의 입이 벌어졌다.
단순한 탈환전이 아니라 주도적인 공세로 전세를 바꾸겠다는 발상의 전환이기 때문이었다.
표지는 인터넷임시발췌...문제시 삭제하겠습니다.
Commen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