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숫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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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그좋아
작품등록일 :
2019.04.0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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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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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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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파일3# 돌고 돌아 제자리(2)

DUMMY

99

발자국이 발견되자마자 박수호의 눈동자가 빠르게 이곳저곳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실 쪽으로 움직이는 발자국을 본 박수호는,

“절대로 안으로 들어오지 마.”

장갑을 꺼내 양손에 끼더니 네 발로 걷는 짐승처럼 자세를 만들고는 발자국이 이어진 거실로 움직였다.

“풋. 오빠. 그 자세는 좀 이상하다.”

“범인 잡으려면 폼은 개나 줘버려야 한다. 경찰이나 검사라면서 폼 잡는 놈 있으면 그거 초짜야. 만나지 말고 무시해.”

“에이. 오빠한테 하도 잔소리 들어서 그럴 생각 추호도 없거든요.”

“이제 말 걸지 마라.”

문수영의 물건과 바닥에 찍힌 발자국을 자신의 손과 발이 닿지 않도록 노력하며 발자국을 추적한 박수호는 거실 베란다가 아닌 그녀 방이 있는 곳으로 이어지자, 눈이 가늘어진다.

상체를 일으킨 그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커튼과 TV, 소파를 제외하고 진열되거나 벽에 걸린 물건이 없는 걸 확인한 박수호는 턱을 괸 채 중얼거린다.

“방에다 설치한 건가? 어쩔 수 없지.”

스마트폰을 꺼낸 박수호는 통화목록을 검색한 후, 녹색 버튼을 누른다.

-왜.-

“아저씨. 서초구에 아는 분 안 계세요.”

-서초구? 왜 또 사건이야?-

“수영이 아시죠?”

-어 당연히 알지. 술 마시더니 너랑 결혼하겠다고 난리 피운 철부지 대학생 아니냐. 그러다가 정우아가 와서 수호 옆에 앉는 거 보고는 엉엉 울고... 어후.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골이 아프다.-

이신후의 말에 박수호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수영이가 이사를 한 집에 침입자가 있어서요.”

-뭐! 정말이냐!-

“예. 전자키로 들어오는 방식인데, 발자국이 방까지 이어져 있네요.”

-화장실은.-

“발자국이 없어요.”

-방에서 몰카라도 설치한 거 같다는 거야?-

“예. 들어가려다가 혹시 놈이 알고 도망칠 시간 더 줄 거 같아서요. 저보다 전문가가 찾는 게 훨씬 더 빠르고 쉬운 거 아니에요. 역추적도 운 좋으면 가능하고요.”

-너는 지금 어디 있는데.-

“거실이요.”

-음... 감도 좋은 건 거기서도 들려.-

“그래요?”

박수호가 목소리를 죽여서 말했고, 이신후 또한 낮아진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당연하지. 요즘 얼마나 좋아졌는데. 서초구엔 내가 아는 사람이 없지만, 내가 그곳에서 근무했던 분을 아니까, 연락해보마. 너는 잠시 건물 주변 돌면서 흔적이 있는지나 살펴봐.-

“예 알겠습니다.”

-수영이 보고 당분간 우희진 경감님이랑 같이 살라고 해-

이신후의 말에 박수호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랬다가는 수영이가 등쌀에 죽어요.”

-아... 맞다. 그 아이, 내 과지.-

“예. 아저씨 과요.”

-흠...-

“제가 집은 따로 알아볼 테니까. 형사 쪽 일 좀 알아봐 주세요.”

-그래. 알았다. 끊는다.-

“예.”

통화를 마친 박수호는 발자국과 물건을 피해 현관문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고, 굳은 얼굴로 서 있던 문수영이 그를 보고 반색한다.

“오빠. 저기-”

“일단 들어온 건 확실해. 또 다른 건 확인해 봐야 하는 거라서, 일단 바깥으로 나가자. 어서.”

박수호의 채근에 그녀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현관문을 열었다.

“그 사람이 저 위에 있었다고?”

“네. 확실하게 위에서 목소리를 들었어요.”

“그 뒤로, 입구만 확인한 거야? 혹시 위로 불이 켜지는 건 확인 안 했어?”

“그게... 확인했는데, 다들 한 번씩 켜졌어요.”

“한 번씩 켜졌다... 그럼 꼭대기-”

“그게 아니라. 불규칙으로 한 번씩 켜졌다고요.”

그녀의 말에 박수호의 얼굴이 굳어진다.

“엘리베이터로 움직여서 층을 속인 거라면...”

“오빠?”

문수영의 부름에 고개를 번쩍 든 박수호가 계단을 타고 올라가며 말한다.

“일단 옥상으로 올라가자.”

“예.”

올라가면서 주변을 유심히 훑어보았지만, 새로운 것은 발견하지 못한 가운데, 박수호와 문수영은 옥상이 있는 곳까지 올라온다.

엘리베이터 기계실 문 옆에 있는 문손잡이를 잡은 박수호는,

철컥철컥.

열리지 않는 문을 보며 눈이 가늘어진다.

“여기 문이 잠겨 있는데?”

“어? 경비 아저씨가 잠가놨나 봐요.”

“경비 아저씨? 입구에 경비실도 없었는데?”

“이곳 주변을 돌아다니며 순찰하고 분리수거해주시는 분이세요. 그분이 주변 시설이 망가지면 업체를 불러서 수리까지 해주세요.”

“연락처는.”

문수영이 가방을 뒤졌다.

“제가 받아놓은 게 있어요. 아. 여기 있다.”

구겨진 명한 한 장을 꺼낸 그녀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연락처를 입력하는 사이, 박수호는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문수영이 따라 내려오면서 스마트폰을 귀에 갖다 댄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저기 삼 동에 사는 문수영이라고. 예. 맞아요. 아. 그 물건이요? 감사합니다. 더 좋은 물건 들어오도록 노력하니까요. 시청 부탁드려요. 네. 아! 용건이요. 저기 이 층에서 삼 층 사이로 올라가는 전등이 고장 나서요. 네. 그리고 옥상 문이 잠겨 있는 건. 아... 어제 다른 동에서 화분이 떨어졌다는 신고를 받고는 다 잠가 놓으셨다고요?”

그녀의 말에 내려가고 있는 박수호의 발걸음이 멈췄다.

“잠가 놨다라...”

그는 중얼거리며 다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단 말이지...”


**

무단 침입 용의자 목록(2018.09.03.)(경비원, 본인, 주변 주민, CCTV 탐문조사를 바탕으로 작성)

1. [101] 정의선(31) 167cm 44kg. 백수.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충격으로 바깥에서 차만 봐도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에 두통이 올라와 동생에 의지하고 있고, 전날 바깥에 나가기는커녕 게임만 하고 있었음.

2. [102] 박수노(33) 173cm 81kg. 트레이너. 오 분 거리에 있는 헬스장에 근무 중이며, 전날 근무를 마치고 오후 10시에 돌아와서 잠들었다고 함.

3. [201] 신혼여행 중.

4. [202] 강성연(54) 164cm 53kg. 꽃집 사장. 십 분 거리에 있는 곳에서 가게를 열고 있으며, 전날 근무를 마치고 오후 7시에 돌아왔음.

5. [301] 이이지(34) 151cm 45kg. 상담원.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과천에 있는 곳에서 근무 중이며, 전날 근무를 마치고 오후 11시에 도착함.

6. [401] 강지훈(35) 181cm 64kg. 연예인. 신촌에서 방송을 마치고 자정이 되기 오 분 전에 돌아옴.

7. [402] 이기중(30) 168cm 71kg. 공인중개사. 아버지가 일하는 곳에서 근무 중이고, 아버지 명의의 건물에서 살고 있음. 전날 자정되기 십 분 전에 도착함.

8. [501] 병환으로 병원에 입원 중.

9. [502] 김여리(23) 173cm 54kg, 김아름(22) 162cm 51kg, 나사랑(23) 165cm 45kg. 공동으로 집주인에게 임대를 받아 살고 있으며, 세 명 다 같은 학교 대학생이다.

**


서초서. 2층.

오십 대의 풍채 좋아 보이는 푸근한 인상의 남성이 목록을 보고 있다가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연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들었는데... 이걸 보니 확 느껴집니다.”

서초서에서 근무 중이자, 이신후의 부탁을 받아 찾아온 김형래 경사의 말에 박수호가 공손한 자세로 말했다.

“저도 조사하고 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관할도 아닌 데 이곳에서 수사를 한 점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흐음... 받으세요.”

박수호에게 용의자 목록이 적힌 종이를 건넨 그가 느릿하게 말한다.

“저희 관할에서 제대로 관리 못한 책임도 있고, 애초에 지인에게 연락받아서 오신 거지 않습니까. 최대한 조용히 수사하고 가신다는 말씀 믿고 맡기겠습니다.”

“하지만-”

“제 부사수라는 놈이 해외여행을 간다고 휴가 가버렸지 뭡니까. 마침 서울에서 최고의 에이스라고 불리는 박수호 경사님도 오셨으니, 뒤에서 조금씩 이상한 점만 물으면서 보겠습니다.”

“아... 네.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웅웅.

“문자가 왔군요.”

김형래는 자신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과학 수사대 말로는 수거한 카메라는 원격으로 조종이 가능하고, 범위는 반경 이백 미터 이내라고 합니다. 원격 추적은 수신 및 저장 매체가 꺼졌는지 통신을 차단했는지 모르겠지만, 추적 불가능하다고 문자가 왔습니다.”

“그렇다면 주변에 저장매체도 발견되지 않았고, 마침 뒤에 비추던 감시 카메라에 줄을 타고 내려온 사람들이 없으니 범인은 이 건물 안에 있을 겁니다.”

“이미 그걸 다 예측해서 건물 안에 있는 분들의 간단한 인적사항을 조사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아시는 분들이 있던 거 같던데...”

말을 흐리면서 그가 박수호의 뒤편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고, 박수호는 같이 돌아보며 손으로 키가 자신처럼 크고,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난처한 표정으로 짓고 있는 남성을 가리켰다.

“저분은 제가 고등학교 때 해결한 아령 투척 사건 용의자였습니다.”

“아... 이신후 경감님이 예전에 말한 걸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때 그 용의자 중 하나가 저분이었군요.”

“네. 그 뒤로는 자주 만나다가 제 사고 이후로 만나질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서로 바쁘다 보니 그렇게 된 거겠죠.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박수호는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회색 남방에 청바지를 입은 남자를 가리킨다.

“저분은 제가 지구대 근무 시절에 사건을 하나 맡은 적 있었는데, 그때 용의자 중 하나였습니다. 그 뒤로는 보지 않았는데, 공교롭게도 그때 사건 피해자 윗집에 살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호오... 그럼 피해자까지 세 사람 다 사건 때문에 알게 된 거군요.”

흥미로운 표정으로 말한 그에게 박수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네. 제가 낯을 많이 가려서 사건으로 안면을 트는 경우가 많습니다.”

“허허. 그러면 사건에 그리 큰 영향은 주지 않을 거 같으니 안심하고 저는 보조만 하겠습니다. 박경사님 잘 부탁드립니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가보시죠.”

“예.”

두 사람이 사람들에게 다가갔고,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자 박수호가 입을 열었다.

“죄송하지만, 기자님들은 이제 다시 나가주시고, 한 분씩 제가 호명하면 와주시면 됩니다.”

박수호의 말에 기자들이 바깥으로 나갔고, 용의자들은 모두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대답했다.

“먼저, 제일 힘들어 보이는 정의선님부터 하겠습니다. 저를 따라 안으로 들어오세요.”

박수호는 취조실이라 적힌 곳으로 들어갔고, 그 뒤를 새파랗게 질린 마른 체형의 남성이 힘없이 털레털레 걸으며 따라 들어갔다.

“저기 앉으세요.”

“예.”

박수호가 자기 앞에 앉은 정의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레이드가 있어서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질문이나 하시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수호가 서류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밀었다.

“자정 이후에 게임을 계속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게임 사이트에 정식으로 수사 요청을 하고 자료를 받아보니 접속한 기록이 없었는데, 어떻게 된 겁니까.”


-접속 기록이 없음-


한 줄로 요약된 글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는,

“빨리 가셔야 하지 않습니까? 레이드 한다면서요.”

레이드라는 단어에 눈동자에 빛이 돌아오더니 입을 열었다.

“아. 이 아이디는 제 명의로 된 게 맞습니다. 하지만, 어제 한 아이디는 동생 명의로 된 제 부부부계정입니다. 레이드를 위해서는 한 아이디로는 현질 없이 결코 레이드를 할 수 없어서요. 제 동생은 저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씩 대전에서 올라오니까, 제 동생 아이디 접속 기록 보시면 제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 겁니다.”

정말 급한 일이라도 있는지, 단숨에 많은 말들을 쏟아낸 그에게 박수호가 생수통을 내밀었다.

“이거라도 마시고 말씀하세요.”

그가 어색한 미소로 생수통을 받고 물을 마실 때 박수호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저도 예전에 비슷한 게임을 해봐서 잘 압니다.”

“아! 정말요. 어떤 게임을 하셨습니까?”

“아. 그건 여기서 말하기가 좀 그래서요. 아무튼 저도 그런 적이 있어서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래도 일단 확인해야 하니 여기다 아이디를 적어주시죠.”

“네.”

단숨에 영어로 된 글자를 쓰기 시작한 그의 머리 위 숫자가 초록색인 걸 확인한 박수호가,

“다 적었습니다.”

그에게서 종이를 돌려받으며 말한다.

“최근에 주무시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 적은 없습니까?”

“이상한 소리요? 음... 전혀요.”

“전혀 없습니까? 한 여성의 집을 침입한 사건이라서 아주 사소한 거라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수호의 말에 그는 입술을 주변에 주름을 만들며 고심하다가 눈빛을 반짝였다.

“아! 하나 있어요. 어제 누군가가 황급하게 뛰어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것도 두 명이요.”

“두 명이요?”

“네. 제가 그때 레이드 실패해서 화가 잔뜩 난 상태라서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정수기 물 먹으러 갔는데, 그때 시끄럽게 뛰어 내려와서 제집 앞을 지나가는 걸 들었습니다. 화내려고 나가려는데, 또 누군가 뛰어 내려와서 제 문을 건드렸죠. 그때... 살짝 겁이 나서 나가지 못했습니다. 문 너머 들려오는 숨소리가 상당히 거칠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위에 사는 신혼부부가 부부싸움 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물 좀 마시고 말씀하세요.”

입에 거품을 물고 말하던 그가 생수를 마신 다음 말을 이었다.

“전에 경찰들이 왔을 때 별다른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했었습니다.”

“아. 그건 이미 기록에 나와 있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혹시 그자가 건물 바깥으로 나간 소리는 못 들었습니까?”

“음... 엘리베이터 열리는 소리만 듣고 다른 소리는 못 들었습니다.”

“엘리베이터요?”

“네. 그거 외에는 별다른 건 없었습니다.”

“문수영씨와는 아는 사이입니까?”

“아니요. 전혀 모르는 사람입니다. 저는 사실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홈쇼핑을 통해서 제법 알려진 분입니다.”

“쇼핑이야 동생이 전부 해주는 거고, 저는 그냥 집에서 게임만 하고 있어서...”

말을 흐리자 어색하게 웃는 그에게 박수호는 마주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알겠습니다. 협조 감사드리고, 혹시 다음에 필요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형사님이라면 언제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혹시 제가 있는 게임을 하신다면 아이템을 빠방하게-”

“하하. 그것도 뇌물로 들어갈 수 있어서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그럼 같이 나가시죠.”

“네.”

박수호는 그를 데리고 나온 다음, 사람들을 보다가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들어오세요.”

“저요?”

눈을 껌뻑이는 젊은 여성을 바라보며 박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서요.”

“네.”

안으로 들어온 여성이 자기 앞에 앉자 박수호는 서류를 들추면서 말했다.

“여리라는 이름이 특이하군요.”

“후... 원래는 열의라고 했는데, 제가 모델을 꿈꾸고 있어서, 열의보다는 여리라는 이름이 잘 풀린다는 말에 아버지가 바꾸셨어요. 저도 그 이름이 맘에 들고요.”

“기분 나쁘셨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그럼 조사 시작하겠습니다. 어제 집에 들어오고 나간 모습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공방이기도 했고, 저나 다른 두 사람 중요한 모델 면접이 있어서 바깥에 나갔다가 기름진 음식이라도 먹는 순간 큰일이거든요. 다 같이 집에 틀어박혀 있었어요.”

박수호는 뼈가 드러나 보이는 팔과 목 부분을 바라보았다.

“더 빼면 위험하지 않습니까?”

“저는 살이 많이 찐 편이에요.”

“살이 쪘다고요?”

“네. 이거보다 더 빼야 한다는 말에 저 혼자만 돌아왔잖아요. 다른 애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내쉰 그녀였다.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살짝 긁은 그가 더 조심스럽게 말했다.

“삼 층에 사는 문수영님을 알고 있습니까?”

“당연히 알고 있죠. 저희가 문수영 누나 팬이거든요.”

“아. 그래요.”

“말도 재밌게 하고, 물건들도 다 가격대비 좋아서, 저희도 몇 개는 샀어요. 사실 다이어트할 때는 음식 생각을 아예 잊거나, 아예 먹는 동영상 보면서 대리만족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그 뒤로도 자연스럽게 말하던 그녀의 머리 위를 바라보던 그가 초록색으로 변하는 걸 확인하자마자 입을 열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상당히 힘드셨을 거 같은데, 보통 다이어트를 하면 예민해져서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한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박수호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상체를 그에게 기울인다.

“네. 진짜 잠 안 와요. 심하면 머릿속에서 양을 세다가도 치킨이나 피자가 둥둥 떠다닌다니까요. 그럴 때는 잠을 한숨도 못 자서 아예 다른 걸 하기도 해요.”

“그러면 혹시, 밤에 이상한 소리를 못 들었습니까?”

“이상한 소리요?”

“네.”

“음... 하나 있어요.”

“하나요.”

“다른 두 애는 방에 틀어박혀서 이어폰 끼고 음악 듣고 있어서, 저 혼자서 거실에 나와 TV를 보고 있었거든요. 공포 영화를 보고 있어서 집중하고 있는데 현관문에서 철컥거리는 소리를 들었어요. 너무 놀라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다가 조금씩 현관문으로 갔는데, 저희가 아닌 곳에서 철컥거리더라고요. 그래서 누가 문이 안 열리나보다 생각하고 안심하다가 곧바로 잠이 들었죠.”

“언제쯤에 그랬습니까?

”한 시쯤? 인가 그랬어요.“

”다른 이상한 소리는 들은 적이 없습니까? 어제 말고 더 오래전 일도 괜찮습니다.“

음... 사실 며칠 전에 경찰이 온 적 있거든요.”

“예. 알고 있습니다.”

“아. 맞다. 여기 경찰이었죠. 호호. 밥을 하도 안 먹어서 그런가... 정신이 좀 멍할 때가 있어서... 근데 제가 뭘 말하려고 했죠?”

맹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그녀에게 박수호는 미소와 함께 부드럽게 말했다.

“며칠 전 경찰이 왔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아. 맞다! 경찰. 그 경찰이 오기 이틀 전쯤에 아름이라고 같이 사는 애가 있거든요. 그 애가 자기 창문에 뭔가 쑥 내려갔다면서 무섭다고 온 거예요. 그런데 저도 전에 누군가 계단을 뛰어다니는 소리를 들어서 살짝 무서웠거든요.”

“정확한 시간은-”

“그건 저도 잘 기억이 안 나요. 그냥 잠결에 듣다가 아름이가 갑자기 제가 누워있는 소파로 와서, 아마 아름이는 알 거예요. 제가 물어볼까요?”

“아름님 방이 혹시 베란다가 아닌 반대쪽 방입니까?”

“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어색한 미소와 함께 박수호는 고개를 숙이고는 서류를 들추면서 말한다.

“나머지 한 분에게는 다른 이야기는 못 들으셨습니까?”

“네. 그 애는 애초에 살도 잘 안 찌고, 잠도 바로 쓰러지는 스타일이라서 한번 자면 못 일어나요. 아마 못 들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협조 감사드리고, 나중에 추가로 필요하면 따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저기 형사님.”

“네. 말씀하세요.”

“혹시 애인 있으세요?”

뚫어지게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에게 박수호는 미소를 지은 채 단호하게 말했다.

“네. 있습니다.”


작가의말

제 글을 읽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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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파일4# 말 한마디(3) +3 19.07.16 408 11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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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파일1# 전환점(4) +1 19.07.04 474 11 13쪽
96 파일1# 전환점(3) +1 19.07.03 467 13 17쪽
95 파일1# 전환점(2) +1 19.07.02 495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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