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四章 소림신승(少林神僧) 3
가면 갈수록 사방의 송림은 더욱 우거져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가시덤불이 기승을 부리며 자라나 있었고 이따금 드러나는 기암괴석이 돌출한 지세는 심히 험악했다. 도대체가 사람이 다닌 것 같지 않은 지세는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길을 잃을 정도였다.
한데, 어느 순간엔가 눈앞이 탁 트이면서 공지 하나가 나타났다. 거기에는 목옥(木屋) 한 채가 서 있고 그 주위는 싸리울타리가 빙 둘러쳐져 있었다.
‘이런 곳에 집이라니, 더구나 암자도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의혹에 잠긴 구양천수의 앞에는 풍우(風雨)에 시달린 목비(木碑) 하나가 서 있었다.
<사내(寺內)의 제자는 하인(何人)을 막론하고 접근을 금한다.
소림 제삼십이대 장문 천망(天網).>
목비를 발견한 구양천수의 눈에 괴이한 빛이 떠올랐다.
‘천망이라면... 당금 소림사 장문인인 만공대사의 사부가 아닌가?’
구양천수는 놀람과 동시에 호기심이 치밀었다.
이런 황량한 곳에 목옥이 서 있는 것도 신기한 데다 소림의 전대 방장이 남겨 둔 목비까지 발견하니 저 목옥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내 빙그레 웃었다.
“실례가 될진 모르지만 나는 소림사의 제자가 아니니, 이 일에 해당사항이 없지! 목비에는 분명히 소림의 제자라고 명시했으니까...”
목비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인 구양천수는 그대로 쓱쓱 목비를 스쳐 지나 목옥의 울타리에 다가섰다.
획획거리는 파공음은 바로 그 울타리의 안에서 들려 오고 있었다.
목옥은 서너 칸 정도로 이어져 있는데 지붕에 인 기와는 너무도 오래되어 무성한 풀포기에 덮혀 보이지를 않고 보이는 것은 지붕을 온통 뒤덮은 잡초들뿐이었다.
그리고 목옥의 주위는 싸리울타리가 빈틈없이 자라고 있는데 드나들게 된 문도 없을 정도로 조금의 틈새도 없이 뒤엉킨 상태였다.
그 싸리울타리에 둘러싸인 목옥의 마당 한쪽에는 깎은 듯 평평한 바위 하나가 있었고 지금 그 위에는 한 사람이 단정히 앉아 있음이 보였다.
구양천수가 안력을 집중하여 바라보니 그는 미목이 청수한 소년이었다. 그는 두 눈을 감고 운기행공(運氣行功)을 하고 있는 듯했다. 이따금 자세를 바꾸고는 있으나 그가 취하고 있는 자세는 시종여일(始終如一)하게 포란지세(包卵之勢)였다.
구양천수가 들었던 경미한 파공음은 그가 자세를 바꿀 때 일어나는 소리였다.
‘무슨 고심한 내공(內功)을 연마하고 있는 모양이군. 그러나 기색을 보니 아직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구나.’
잠시 그를 살펴본 구양천수는 뇌리를 굴리면서도 내심 고개를 갸우뚱했다.
기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곳에 금지가 있는데 거기 있는 것은 또 어찌 난데없는 소년이란 말인가?
그때였다.
“후우-!”
소년이 길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그 눈에서는 초롱초롱한 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아둔한 모양이다... 사부께서 혈맥(穴脈)을 타통해 주셨는데도, 내공연마 삼 일이 지난 상태에서도 아직 진기를 제대로 도인(導引)하지 못하니...”
머리를 흔들고 있는 그의 표정은 매우 낙담한 기색이었으나, 그 말을 들은 구양천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뭐라고? 내공을 연마한 지 이제 겨우 삼 일이란 말인가? 아무리 그의 사부가 혈도를 타통해 주었다고 해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저 정도라면...’
생각을 굴리던 구양천수는 더욱 호기심이 동하는 것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그는 호기심이 유난해 일단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풀고서야 직성이 풀리는 성미였다. 그러한 성품이었기에 지금 구양천수의 성취가 가능했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의 사부는 대단한 고인임에 틀림이 없다... 더구나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저 소년도 평범한 재목은 아니다!’
구양천수는 가볍게 머리를 젓다가 그만 싸리울타리에 걸려 조그마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순간 소년이 구양천수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거기 누구요?”
‘할 수 없군.’
구양천수는 쓴웃음을 짓고는 더 이상 숨어 있을 수 없음을 느끼고 모습을 나타냈다.
그를 보자 소년은 바위 위에서 훌쩍 뛰어 내려오며 말했다.
“귀하는 뉘시기에 여기에 함부로 침입을 한 것이오? 이곳은 소림의 금지라, 외인은 출입할 수 없는 곳이오!”
그의 낭랑한 음성에 구양천수는 담담히 웃으며 말을 받았다.
“대단히 미안하게 되었소. 나는 소림의 빈객인데, 길을 잃고 헤매다 이곳에 이르게 되었으니 소림 후원의 선방(禪房)으로 가는 길을 좀 일러 주시겠소?”
구양천수가 너무 태연하자 소년이 오히려 얼떨떨해졌다. 그러더니 그는 이내 어색한 표정이 되어 머리를 긁적였다.
“나도... 소림의 지리는 잘 모르는데...”
“아니, 소형제는 소림의 제자가 아니오?”
구양천수가 의혹 어린 어조로 그의 말을 받자 소년은 입맛을 다셨다.
“소림의 제자에는 틀림이 없지만... 입문한 지가 얼마 되지를 않아서...”
그의 말이 채 다 끝나기 전이었다.
“용아! 너는 지금 누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냐?”
목옥 안에서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낮다고는 하지만 그 음성에 깃들인 내력의 웅후(雄厚)함은 구양천수가 처음 보는 놀라운 것이었다.
‘대단한 내공이다! 대체 저 안에는 누가 있는 것일까?’
그가 놀라고 있을 때 소년은 목옥을 향해 말을 하고 있었다.
“사부님, 여기 외부인이 한 사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목옥 안의 음성이 벼락같이 노성(怒聲)을 질렀다.
“이곳은 사내의 제자들마저도 출입이 엄금된 곳이거늘, 외부인이 어찌 감히 침범을 한단 말이냐? 당장 그놈의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내쫓아라!”
그의 말에 구양천수는 기가 막힌 표정이 되었다. 주위의 신비스러움으로 보아 절세고인(絶世高人)이 은거하고 있거니 생각을 했었는데 난데없이 이렇게 흉악한 소리가 터져 나올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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