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되주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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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1.09.29 13:55
최근연재일 :
2011.09.29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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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03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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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되주센! - 029

DUMMY

둘은 버스에 탔다. 유나는 아주 신이 났다. 솔직히 입한을 떠나서 다른 마을에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과거 도시 풍경이라니, 참 흥미롭지 않겠는가. 당신이라면 한 20여년 전 아빠의 학창시절 데이트 하는 걸 본다면 참 재밌지 않겠는가. 유나는 그런 기분이었다. 들떠서 웃고 있는 유나를, 옆에서 흐뭇하게 보던 서영이는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유나에게 질문했다.



“근데, 유나야.”



“네?”



“너, 왜 나나 효성이나, 애들한테 존댓말 쓰냐? 뭐, 우리보다 어리니?”



“네? 아, 그, 그게... 그니까...”



유나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유나는 존댓말을 당연하게 썼다. 비록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효성이를 아빠라 부르지 못하고, 승희를 엄마라 부르지 못하고 싸가지 없게 이름을 불러야 했지만, 이미 입에 붙어 버린 존댓말을 한 순간에 땔 수가 없었다. 게다가, 다들 아빠 친구라고 하니, 본능적으로 존댓말이 나와 버린 것이다. 그런 점을 서영이가 콕 찍어 버리니, 몹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존댓말을 쓴다고 유나가 효성이의 딸이라는 걸 안다면 서영이가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탐정 김정일이나 셜록홈즈보다 더 명탐정이겠지만, 서영이는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다. 유나는 더듬거리며 대충 둘러댔다.


“그, 그러니까... 효성이가... 제가 1살 어려요... 그니까... 친척이라, 어릴 때부터 오빠로 불러서... 존댓말을 써서 그래요.”



“아, 그래? 근데 왜 우리한테까지 존댓말을 써, 어색하게.”



“아, 아니에요. 그냥...”



“존댓말 쓰지마, 이상하잖아. 1살 어려도 같은 학년이잖아.”



“네... 알았어요.”



“쓰지 말라니까, 이 양반이. 말귀를 못 알아 듣남?”



“응... 알았어.”



서영이가 눈을 찡긋하자, 유나는 어쩔 수 없이 존댓말을 제거하고 반말을 썼다. 뭔가 모르게 찜찜하고 어색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무제 상륙!”



“으, 항상 느끼는 건데 너무 멀다.”



버스에서 내린 나와 승희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입한에서 무제까지는 버스로 50분,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다. 그래도, 둘이서 얘기하면서 와서 느낀 시간은 훨씬 짧았다. 우리가 내린 곳은 영화관 앞. 서울에 있는 엄청 큰 영화관과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그래도 몇 층은 되는, 쓸만한 영화관. 우리는 바로 영화관에 들어갔다.




“무슨 영화 보게?”



“음, 글쎄?”



나와 승희는 일단 영화 매표소 앞 대기하는 의자에 앉아 무슨 영화를 볼 지 생각했다. 물론, 나는 볼 영화를 정해놓고 왔다. 제목이 ‘일진, 소녀를 만나다.’ 였나? 내용은, 싸움을 잘하고 말썽만 피우는 일진이, 한 소녀를 만나며 점점 바뀌어 나가는, 성장 로맨스 스토리의 영화라고 한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봤는데, 나름대로 재미있을 것 같아서 미리 찍어놨다.



“이거 볼까?”



“응? 일진, 소녀를 만나다?”



“재밌을 거 같잖아.”



“글세... 좀 식상할 거 같은데.”



“왜, 싸움도 하고, 여자애도 만나고. 재밌을 거 같애.”



“그래, 딱히 볼 영화도 없고... 대작인 영화는 다 본거고.”



“그럼 이거 볼까?”



“그래, 뭐. 대신!”



승희는 갑자기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재미 없으면 네가 점심 사.”



“아유, 알았어. 그런 거야 황송하게 내가 사 주지.”



“헤헷, 가자.”



이미 이 데이트의 시간을 다 예측한 나다. 영화시간은 한 15분 정도 남은 상태, 지금 표를 사 들고 가면 딱 적절하다. 하, 나의 탁월한 계획감이란. 나는 매표소에 가서, 표 2장을 사고 돈을 냈다. 아니, 돈을 내려고 했다. 갑자기 승희가 내 손을 탁 잡았다.



“왜?”



“왜 돈 네가 다 내?”



“응? 너도 내게?”



“효성이, 어디서 못된 거만 배워와서...”



승희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뭐가 잘못된 건가 알 수가 없었다. 승희는 자기 지갑에서 돈을 꺼내 올려놨다.



“왜 네가 내 것까지 내는건데. 내가 그렇게 돈이 없어보여?”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여자니까 남자가 낸다고?”



“...응, 그런 거 아니였어?”



“바보야, 네가 뭐 나보다 두세살 많은 오빠도 아니고, 같은 나이에, 게다가 학생인데. 똑같이 용돈 받는 건데, 같이 내는 게 당연하잖아.”



“...그런가.”



“어휴, 그렇다고 시무룩해질거 까진 없잖아. 내주려고 한 네 마음만 잘 받을게.”



뭐, 뭐시여. 나는 틀림없이 남자가 내는 거라고 들었단 말이야. 젠장, 괜히 실수한 거 같아서 마음이 찜찜하다. 승희가 등을 토닥거려주지만, 그냥 기분이 썩 좋진 않다.






“우와, 진짜 여기로 오네. 신기하다.”



“봐라, 내 말이 맞지.”



영화관 건물 모서리. 수상한 두 사람이 목만 빼꼼이 내 놓고서 떠들고 있었다. 바로 유나와 서영이. 둘이 그 모서리에서 기다린 지 체 10분도 되지 않아 효성이가 탄 버스가 도착했다. 효성이와 승희는 잡담을 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유나는 신기해하며 서영이를 칭찬했다. 서영이는 우쭐해서 어깨를 으쓱했다. 효성이와 승희가 영화관 안으로 들어가자, 두 사람도 은밀하게 움직였다. 움직이며, 유나가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 여기 올 꺼라는 거.”



“그거야, 뭐 뻔하지. 애초에, 나랑 효성이랑 평소에 떠들길, 여자친구 생기면 무조건 여기 와서 영화 보기로 했거든. 그랬는데 크... 저 개새끼가...”



“아이, 진정하고.”



“가자, 염탐을 제대로 해 줘야 성이 풀리겠다.”



“헤헷.”



서영이와 유나는 마치 도둑처럼 음습하게 접근해 들어갔다.





영화 대기실에서도, 두 사람은 효성이와 승희와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 앉아 책자를 보는 척 하며 주시했다.



“야, 근데 우리 영화까지 봐야되?”



“왜, 뭐가 어때서.”



“아니, 너 내 복장 좀 봐라. 동네에 아이스크림 사 먹으러 왔다가 여기까지 와서 영화를 보라고?”



과연 서영이의 복장은 볼만 했다. 후줄근한 회색 츄리닝에, 무엇보다 티셔츠와 바지의 색이 같다. 마치 죄수나, 정말 할 짓 없는 백수처럼 보였다. 서영이가 워낙 털털한 사고방식을 지녔기에 망정이지, 보통 사람이라면 이 복장으로는 쪽팔려서라도 무제시로 놀러 오진 않을 것이다. 유나는 한 마디로 일축했다.



“극장은 어두우니까 괜찮아. 영화 하나 보는 셈 치면 되잖아.”



“에휴, 그랴. 오래간만에 문화생활을 즐겨볼까나.”



원래 딱히 복장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 서영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효성이와 승희를 지켜본다.



“오, 표 사러 가는데?”



“아, 근데 무슨 표 사는 지 어떻게 알아?!”



“음. 그게 문제네. 어쩌지.”



둘은 고심하다, 그냥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했다. 효성이와 승희가 사라지길 조금 기다렸다가, 바로 카운터로 갔다. 카운터에는 여직원이 친절하게 인사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고객님?”



“방금 전 저 두사람, 뭐 본데요?”



“네? 네, ‘일진, 소녀를 만나다’ 입니다만...”



“네, 그럼 그걸로 두 장 주세요.”



“......?”



직원은 의아한 눈초리로 서영이를 봤다. 상식적으로,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아 보이는 사람이, 앞사람 영화 뭐 보는 지를 물어보고 그걸로 바로 정하는 건 참 수상쩍은 일이다. 이게 영화면, 아마 이 두사람은 앞사람들을 염탐하기 위해, 혹은 암살하기 위해 등의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건 현실이다. 아니, 소설이구나. 여하튼 직원은 별 말 하지 않고 표를 내주었다. 돈은 서영이가 다 냈다. 유나는 승희와는 달리 서영이를 막지 않았다. 유나는 승희 딸이니, 당연히 승희의 사고방식을 물려받았다. 승희는 자신이 낼 수 있다면 돈을 내지만, 자기보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우월한 사람이 호의를 베푼다면 그것은 받아들인다. 서영이와 유나는 동갑이지만, 유나가 생각하기에 서영이는 아빠와 같은 친구이니 절때 같은 나이가 아니라고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 탈 없이 서영이가 표 사는 걸 막지 않았다. 서영이가 유나에게 표를 주며 툴툴댔다.



“쳇, 염탐하다가 돈 다 쓰겠네.”



“아, 미안. 돈 줄게.”



“됐어, 점심이나 네가 사면 되지.”



“응... 미안.”



“미안은. 그러나 저러나 얼른 가자. 쟤네보다 너무 뒤쳐져도 안 되지.”



유나가 얼른 지갑을 꺼내려 하자, 서영이가 손을 내저으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유나는 서영이가 고마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반말을 하면서 서영이와 많이 친밀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안 친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빠 친구라는 인식 때문에 존댓말도 쓰고, 어느정도 거리도 있었지만, 이렇게 반말도 하고 그러니 정말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둘은 신속하고 음습하게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



“......”



영화는 시작된 지 한참. 나는 난감해서 식은땀밖에 나지 않았다. 우리는 영화가 재밌을 거라고 몹시 기대하고 갔다. 그런데...




‘민지 내 여자야.’



‘네가 뭔데!’



‘퍽! 퍼억! 퍽!’



‘그만들 둬! 왜 나 같은 애 때문에 싸우는건데!’



이런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가 나왔다. 영화는 참패였다. 유치하고, 스토리도 이상하고 무엇보다, 그냥 삼류 연애소설을 시나리오화 해서 실사화 시킨 내용이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존경스러워질 정도다. 고등학생이 봐도, 이 내용의 소설을 영화화 시키는 건 무리인데. 게다가, 저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와 연기를 한 배우들에게도 칭찬해주고 싶은 지경이다. 그나마 배우는 좀 유명한 사람인데... 살짝 옆 승희의 표정을 흘겨보니, 승희는 무표정하게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고 있다. 아무런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은 표정. 나는 그 표정을 보고, 이거 점수따기는 틀렸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



“......”



나는 그저 난감해서, 콜라나 마시고 팝콘이나 주워 먹었다. 승희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저 영화만 봤다. 말 그대로 좌불안석이다.




“하아암...”



“......”



효성이와 승희가 앉은 좌석에서 두 줄 떨어진 좌석. 그 곳엔 염탐하러 나온 유나와 서영이가 있었다. 서영이는 지루한 듯 연신 하품을 하였다. 반면에 유나는 눈을 반짝이며 스크린을 뚫어져라 보았다. 서영이는 유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재밌냐?”



“응!”



“이딴 쓰레기 영화가 뭐 재밌다고...”



“재밌어! 그리고 쓰레기라니. 이 영화 찍는다고 얼마나 고생했겠어.”



“에효, 나는 뭐 만드는 중에 고생같은 건 안 따져. 그냥 영화는 재밌어야지.”



서영이가 보기에 이 영화는 100퍼센트 실패한다고 봤다. 유나 것까지 합쳐서 낸 표값이 후회될 뿐이다.




영화를 다 보고서, 나와 승희는 영화관을 다 나왔다. 승희는 그 때까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조금 두려워질 정도다. 나는 어떡해서든 말을 트려고 노력했다.



“...재미 없었어?”



“뭐... 그럭저럭?”



“그래?”



“밥값이 안 들어서 좋네.”



“...그래.”



승희의 긍정적 대답에, 힘을 얻은 나는 다시금 물었지만, 결과는 시궁창이다. 아, 확실히 재미 없었구나. 승희가 웃으며 말했다.



“확실히 영화는 재미 없었어, 효성아.”



“...그렇게 잔인하게 콕 찍어서 말할 거야. 아, 알았어, 재미 없었다구.”



“됐어, 이미 지난 일, 밥이나 먹자. 밥 맛있는 거 사줘야 되?”



“응, 알았어.”



둘은 천천히 영화관을 나왔다. 물론 그 뒤를 따르는 그림자는 아까부터 있었다.




“아우, 지루해 죽는 줄 알았네.”



“재밌었는데?”



“취향 참 독특한 아일세. 그건 재미 없다고 하는 게 당연하잖아.”



“재밌는 건 재밌는 건데 뭘!”



“!!”



서영이와 유나는 잠시 언쟁을 벌였다. 영화가 재밌냐 재미 없냐로. 그러나 그 일말의 행동들이 큰 위기를 발생시켰다. 유나가 크게 말하자, 승희가 뒤를 돌아본 것. 둘은 어떻게 말을 할 사이도 없이 서로 알아서 숨었다. 유나는 벽쪽으로 몸을 빨리 숨겼고, 무방비 상태로 길한 가운데 서 있던 서영이는 재빨리 뒤쪽으로 걸어가는 행인 시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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