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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P9
작품등록일 :
2019.07.20 17:03
최근연재일 :
2019.10.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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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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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0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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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4화

DUMMY

“이봐. 인간. 네 이름이 뭐냐?”


경박한 웃음소리.

라이언은 눈가를 좁혀 여자를 살폈다.

작은 체구지만 성숙미를 자랑하는 육체.

이제 막 성인식을 치른 여성처럼 상당히 앳되게 보였다.

그중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특징을 뽑자면.


‘뿔?’


여자의 이마에 작은 뿔이 솟아나 있었다.


“오니네?”


비비앙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오니는 구석에서 연신 술을 퍼마시고 있었다.

바닥에 널브러진 술잔들이 장난 아니었다.

얼마나 마셨는지 몸에서 풍기는 술 냄새가 코끝을 마비시킬 정도였다.

라이언은 술 냄새에 취기가 도는 걸 느꼈다.


“맞아. 딸꾹. 세상에서 싸움과 싸움 구경을 제일 좋아하지.”


오니가 키득거렸다.

저게 오니라고?

최강의 전투 종족.

매우 강력한 신체능력을 자랑하는 종족이라고 들었다.

가볍게 휘두른 주먹만으로 바위를 산산조각 내거나, 강철같이 튼튼한 몸을 자랑했다.

싸움을 유독 좋아하기 때문에 전투능력은 상상초월.

지나치게 싸움에 집착해서 다른 종족들도 오니와 싸우는 걸 기피한다고.


“푸하. 도시 한복판에서 대놓고 살인을 저지르는 놈이라니. 오니들도 그런 짓은 안 한다고?”


‘물론, 심심하면 오니들도 그럴 수 있겠지만.’이라고 오니는 킬킬거리며 덧붙였다.


“이들과 아는 사이오?”

“아니? 그래도 콜로세움에서 얼굴 정도는 본 사이지.”

“나를 말릴 생각이라면 포기하는 게 좋을 거요.”

“키히히. 내가 뭐 하러? 저놈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데.”


오니가 턱을 괴며 바닥에 처박혀 신음을 흘리는 남자들을 훑었다.

지나가는 개미를 보듯이 한 치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였다.


“어차피 내가 말린다고 해서 들을 거도 아니잖아?”

“당연한 소리를.”

“역시 재밌는 인간이야.”


맹금류처럼 샛노란 눈동자가 흥미로 반짝거렸다.

라이언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오니 몸에서 풍기던 술 냄새가 사라졌다.

그 대신에 익숙한 냄새가 풍겨져 나온다.

죽음의 향기.

지금까지 못 맡고 있었다는 게 의아할 지경이었다.

수 명? 수 십?

아니다.

오니의 몸에서 최소 수백 명에 달하는 피 냄새가 격하게 풍겨져 왔다.

놈은 짙은 피냄새를 술로 위장하고 있었다.


“내 이름은 이부키. 보다시피 오니라는 종족이지.”

“라이언. 바이킹족의 전사요.”

“북부 대륙에서 온 건가?”

“그보다 더 멀리서 왔지.”

“오호.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던 내가 모르는 곳이라니. 더욱 흥미가 가는걸?”


지금은 가고 싶어도 못 가지만.

라이언은 찹작한 심정으로 뒷말을 삼켰다.


“잠깐만, 달링. 오니가 우리에게 무슨 볼 일일까?”

“썩은 내가 진동을 한다고 느꼈더니 마녀였군.”

“처음부터 쥐새끼처럼 숨어서 엿듣고 있었던 주제에. 오니 말고 쥐새끼라고 불러줄까?”

“말은 똑바로 해야지. 내가 있는 곳에 너 년이 찾아온 거지. 썩은 냄새 풍기니 말고 꺼져.”

“매일 땀 냄새와 술 냄새를 풍기는 오니가 할 말은 아닐 텐데.”

“그 몸은 인간들에게 훔쳤나? 목 밑으로는 인간 냄새가 희미하게 나는군.”

“완전 개코가 따로 없네. 쥐새끼가 아니라 개였잖아? 이참에 개로 살지? 원한다면 목줄을 채워 잘 키워줄 자신이 있는데?”

“지랄. 염병은.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괴물 놈이.”

“괴물? 아리따운 숙녀에게 못하는 말 버릇이 없네.”

“푸하하하. 아리따운 숙녀? 내 눈에는 추하고 주름 가득한 늙은 여자밖에 안 보이는데?”


비비앙이 입가를 비틀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싸늘하다 못해 스산한 기운을 품었다.

라이언은 마녀가 말싸움에서 지자 쾌재를 불렀다.


“힘만 무식하게 쌘 녀석이.”

“한 대 치면 억하고 죽을 약골 년이.”


마녀와 오니의 관계는 지독할 만큼 나빴다.

서로가 서로를 원수로 보는 상황.

신화시대에 허구한 날 치고 받고 싸웠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오니들은 태생적으로 마녀를 꺼려 했다.

마녀의 몸속에 흐르는 어둠의 기운 때문이다.

그와 달리 오니들은 엘프처럼 자연의 기운을 타고났다.

상성을 생각해서도 그 둘이 친해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도저히 섞일 수 없는 불과 기름과도 같았다.


“아는 사이오?”


비비앙이 고개를 끄덕였다.


“악연도 인연이라면 말이지.”

“여기서 마녀를 만나다니. 며칠 동안은 재수가 없겠네.”

“내가 할 소리를.”

“근데 그보다 말이야.”


이부키가 딸꾹거리면서 테이블을 짚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른손에 술잔이 들린 채로.

다리를 비틀거리는 모습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녀를 대변하듯 잔에 채운 술이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휘청거리는 몸뚱이로 잘도 균형을 잡았다.


“너. 마녀의 이거냐?”


이부키는 새끼손가락을 펼쳐 까닥거렸다.

그 의미 모를 행동에 라이언이 미간을 찌푸렸다.


“저 년의 따가리 비슷한 거냐고.”


이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지?

라이언은 어이가 없었다.


“흠? 반응을 보아하니 아닌가?”


그녀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라이언의 몸에서 나는 마녀의 향기를 맡았기 때문이다.

이부키는 오랜 세월을 살아와 들은 것도 많고, 아는 것도 많았다.


‘쯧쯧. 자기가 거미줄에 걸린 것도 모르고. 불쌍하긴.’


보아하니 자신이 마녀의 향기에 걸린 지도 모르는 모양새였다.

하필이면 걸려도 마녀한테 걸리냐.

불쌍한 놈.

슬그머니 곁눈질을 흘려 비비앙을 바라봤다.

근데 마녀의 반응이 이상하다.


‘오호라?’


비비앙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부키는 타고난 눈썰미로 찰나의 표정 변화를 잡아냈다.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발을 동동 굴리는 게 참으로 볼만했다.

부모에게 비밀을 들켜 혼이 날까 걱정하는 어린아이 눈빛이었다.


‘허. 이건 또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는데?’


눈치가 빠른 이부키는 단번에 사태를 파악했다.

옛날부터 마녀들은 인간을 짐승 취급하며 살아왔다.

신화시대 때부터 인간을 열등한 종족이라고 생각하며 노예처럼 부려왔던 게 마녀였다.

그런데 마녀가 인간의 눈치를 본다?

살아생전 처음 보는 일이었다.


‘이 년과 도대체 무슨 사이지?’


정말 흥미로웠다.

마녀가 인간에게 관심을 표하다니.

그녀는 라이언을 지긋이 응시했다.

흠잡을 데 없이 균형 잡힌 몸매와 탄탄한 근육.

인간 치고는 제법이다.

실력은 아까 봐서 알고 있지만.

이런 자들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


‘시험해 보면 알겠지.’


그래서 마녀와의 관계가 의심스러웠다.


“너 싸움 잘하냐?”

“뭐라고?”


순간 바람이 불었다.

라이언은 팔을 들어올려 방어자세를 취했다.

소리 소문 없이 강력한 풍압이 일어났다.

그는 불어보는 바람에 눈을 감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콰앙!


검과 주먹이 부딪혔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소리.

라이언의 검이 비집고 들어오는 주먹을 막아냈다.

바닥에서 하얀 수증기가 올라왔다.

라이언이 혀를 찼다.

완벽히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약간 뒤로 밀려났다.

검을 타고 전해지는 감촉이 저릿하다.

작은 체구로 어마 무시한 힘을 자랑했다.

얕볼 상대가 아니었다.


‘어라?’


이부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마녀가 개입할 상황을 예상하고 저지른 일이었다.

그래도 상대는 인간이니 살살 때린다고 힘을 지나치게 빼긴 했지만.

근데 막혔다.

인간이 이 정도 선에서 끝내고 막을 수 있는 주먹이 아니었다.

막혀도 검을 부러뜨리고 뼈를 몇 개 으스러뜨릴 힘이다.


“오호? 이걸 막아? 너 도대체 뭐냐?”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라이언이 손도끼로 화답했다.

이부키가 뒤로 물러났다.

그녀의 오른손에 들린 술잔은 흔들림이 없었다.

한차례 격돌이 있었음에도 바닥에 흘린 액체 없이 술잔은 잠잠했다.

놀라운 기예였다.


“아하하. 너무 그러지 마. 오니들 사이에서는 인사 같은 거니까. 난 네가 제법 마음에 들었거든”

“인사가 거칠군.”

“킥킥. 이렇게 태어난 종족인 걸 어쩌겠어.”

“그래? 내가 대가리를 쪼개도 할 말이 없겠지?”


라이언이 사납게 웃었다.

그녀는 자신의 주먹을 막은 검에 희미하게 서린 푸른빛을 봤다.


“그런 거였어.”


푸른빛은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해답을 얻은 이부키가 손뼉을 쳤다.


“마력을 사용하는 인간이라니. 마녀가 관심을 가질 만하네.”

“마력?”

“응? 마력 몰라?”


모른다.

라이언은 난생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


“뭐야? 그러면 본능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고?”


이부키가 기겁했다.


세상은 카르마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업을 쌓으면 쌓을수록 카르마는 배가 되어 세계의 근원에 도달할 수 있다.

카르마를 쌓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통해 얻는 게 바로 ‘마력’이었다.

마력은 카르마와 더불어 불가능을 현실로 바꾸는 초월적인 힘.

신화시대를 살아가던 인간 영웅들이 마력으로 다른 종족들에게 대항했다.


기나긴 명상과 무의식의 영역까지 발을 들이는 정신 단련을 통해 깨우칠 수 있다.

인간들의 말을 빌리자면 ‘마나 심법’이라고 했던가.

대부분의 기사들이 이런 식으로 단련하지만 마력을 터득하는 이들은 극소수다.

몇몇 인간들은 피나는 노력 끝에 마침내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런데 라이언은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마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한 가지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마력을 깨닫는 또 다른 방법.

죽음을 목전에 둔 실전 경험.

신체는 죽음과 가까워질수록 무아지경에 도달한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정신을 한곳에 집중한다.

감정도, 느낌도, 생각도, 심지어 자신까지도.


이것을 물이 담긴 그릇들로 비유하자면.

물이 한 그릇에 치우치면 다른 그릇들은 텅텅 빌 수밖에 없다.

만약 비가 내려 물이 쏟아진다면?

빈 그릇들은 물로 가득히 메꿔질 것이다.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겠지.’


이는 상당히 무식하고 무모한 도전이다.

죽으면 다 부질없으니까.

누가 죽을 각오로 불가능한 싸움에 뛰어들겠는가?

불나방이 불에 달려드는 행동과 마찬가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전사라니.


‘붙어보고 싶다.’


이부키는 희열에 몸을 떨었다.

그녀는 오니.

싸움을 생으로 살아가는 종족.


‘아니지. 아니야.’


라이언은 본능적으로 마력을 쓸 뿐 활용하는 방법을 몰랐다.

대게 이런 식으로 마력을 터득한 이들은 남이 알려줄 때까지 모른다.

만약 그가 마력을 자유자재로 활용한다면?


‘지금보다 더 강해지겠지.’


싸움 상대로는 최상의 먹이감이다.

이부키가 입술을 핥으며 술집 입구를 노려봤다.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마력이 뭐지?”

“알려주고 싶지만. 지금은 대화할 때가 아닌 거 같은데?”


이부키가 대답하자 라이언은 몰려오는 인기척을 감지했다.


“모두 멈춰라! 더 이상 소란을 피우면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갑옷으로 무장한 이들이 술집 내부로 들이닥쳤다.

도시의 치안을 담당하는 경비들이었다.

참혹한 광경에 경비단장이 신음을 흘렸다.


“저 자들이 소란을 일으킨 범인들입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해 테이블 밑에 숨었던 술집 주인이 고개를 내밀었다.


“모두 연행해라!”

“어머나? 나도?”

“난 내 손으로 가지. 인간.”


라이언은 다가오는 경비들을 보며 손도끼를 움찔거렸다.


“여기서 더 소란 피우면 진짜로 모가지가 날아갈걸?”

“사람을 죽였는데 저들이 날 가만히 두겠소?”

“요즘 잘 나가는 투사라며? 그러면 그냥 순순히 잡혀. 진짜 범법자가 되기 싫으면.”

“···뭔가 있군.”

“눈치가 상당히 빠른데?"


얌전히 잡힌 이부키가 라이언의 옆을 지나치며 말했다.


“또 보자고. 라이언. 조만간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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