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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P9
작품등록일 :
2019.07.20 17:03
최근연재일 :
2019.10.01 17:00
연재수 :
65 회
조회수 :
27,474
추천수 :
567
글자수 :
339,072

작성
19.09.25 17:00
조회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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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2쪽

61화

DUMMY

-전 커서 꼭 예쁜 언니처럼 되고 싶어요!


소녀의 눈동자는 밤하늘에 걸린 별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순수함의 결정체였다.

비비앙은 가슴이 턱하고 막히는 거북함에 마을을 먼저 빠져나왔다.

답답함이 사라지자 비비앙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젤리카는 깨끗하고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의 비해 유독 빛이 나는 영혼이었다.

그렇지만 기분이 나빴다.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도 형언할 수 없는 불쾌감과 거북함이 솟구쳤다.

하마터면 제 손으로 목을 졸라 죽일 뻔했다.


‘그래서 더 꺼림칙했던 건가.’


안젤리카는 마을 사람들에게 마녀라는 오해를 받아 죽을 뻔했음에도, 그들을 용서해줬다.

그 모습에서 얼핏 성녀의 잔재를 엿본 기분이었다.

만약 비비앙이었다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마을 하나를 통째로 불바다로 만들었을 것이다.


‘정말 나와는 다르네.’


비비앙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마녀의 영혼은 어둡고 사악하다.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이 뭉치고 결합하여 태어난 게 바로 마녀였다.


‘그래도. 닮았어.’


안젤리카는 비비앙의 어렸을 적 모습을 빼다 닮았다.

그래서 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컸나 보다.

안젤리카를 자신의 과거에 투영하여 보고 있었으니까.

자신과 닮은 그녀만큼은 불행한 인생 절차를 밟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왜 마녀가 되었더라.’


비비앙은 더듬더듬 과거를 떠올렸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의식하지 않으면 종종 잊어버리는 기억이었다.

그녀도 인간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원래는 인간이었다.

가족이 있었고, 친구가 있었다.

살아갈 보금자리와 돌아갈 집도 있었다.

정답게 수다를 떨면서 행복한 나날을 이어갈 줄 알았다.

하지만 영원이라는 건 없었다.

비극은 한순간에 찾아와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람 살려!

-같은 사람끼리 왜 그러는 거요! 이러지 마시오!

-제 딸만은 안됩니다!


재앙이라는 이름 하에 신화시대가 열렸다.

나약한 인간들을 재앙에 노출되어 무더기로 죽어 나갔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였다.

비비앙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휘말린 피해자였다.


-그대들의 희생은 영원히 기억될 거요!

-미안하지만 모두 인류를 위한 일이오!

-인류가 멸망했으면 좋겠소?


재앙에 맞서 싸워야 할 인류 단체들은 이기적인 집단이 되어 돌아왔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줘야 할 존재들이 희망을 훔쳐갔다.

약탈과 살인, 심지어 강간까지.

인류를 위해서라는 깃발을 내걸고 반인류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아아.


불타는 마을과 울부짖는 사람들.

그녀가 살던 마을은 잿더미가 되어 추억과 함께 사라졌다.

그들에 대한 복수와 증오는 비비앙을 마녀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비비앙은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홀로 마법을 연구하고 터득하며 성장해 나갔다.

남들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건 그녀만의 복수였으니까.

그들을 압도할 실력을 갖춘 뒤, 찾아갔을 때는 너무 늦은 뒤였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

놈들은 자기들끼리 치고 받다가 자멸해 버린 탓이었다.


비비앙은 허탈했다.

그것만 바라보고 달려왔는데.

달콤한 복수는 꿈이 되어 사라졌다.

갈 곳을 잃은 복수.

복수할 상대를 잃은 비비앙은 분풀이를 하 듯, 시체들을 조종해 인간들을 학살했다.

그녀는 이제 인간이 아니라 마녀였다.


-살려줘!

-마녀가 나타났다!


사악한 마녀의 본능에 이끌려 광기를 쏟아냈다.

인간들을 죽이고 영혼은 몸에 가뒀다.

고통의 수레바퀴가 영원히 끝나지 않도록.

그녀가 해방하지 않는 한 갇힌 영혼들은 영원히 구천을 떠돌 것이다.

어느덧, 비비앙은 시체 마녀라고 불리고 있었다.


‘마을 이름이 뭐였지?’


알록달록한 꽃들이 가득한 들판.

이웃들은 밝은 얼굴로 농사를 지으며 땀을 흘렸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왔는데 이름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 아이들 이름이 뭐였지?’


악동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썽을 피우던 아이들.

장난에 당한 비비앙이 화를 내면 부리나케 달아났다.

모두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내 가족들은?’


가족의 이름도 망각했다.

이제는 얼굴조차 가물가물하다.

그녀는 두 손을 내려다봤다.

하얗고 고운 손.

그러나 그녀가 보는 손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피가 철철 흘러 넘쳐 바닥을 적셨다.


-우우우.


비비앙은 환영과 마주하고 있었다.

땅 밑에서 손들이 불쑥 튀어나와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놈들은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마녀의 육체를 탐했다.


-저주한다. 저주한다. 저주한다.

-죽어줘. 죽어줘. 죽어줘.

-제발 풀어줘. 풀어줘.


땅에서 기어 나온 시체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비비앙은 무표정하게 시체들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이 손으로 얼마나 많은 피를 묻혔더라.

보나 마나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묻혔겠지.

아닌가?

잘 모르겠다. 세어본 적이 없어서.

그녀는 차분하게 정신을 가다듬었다.



‘꺼지렴. 과거의 아집에 사로잡힌 망령들아.’

-끼아아악!


비비앙이 무심하게 손을 휘젓자 시체들이 비명을 질렸다.

손끝부터 잘게 부서지며 먼지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너무 감상에 젖었네. 나도 죽을 때가 다 되었나.’


마녀는 정해진 수명이 없다.

불사는 아니더라도 불로의 존재.

정해진 수명이 없는 대신에, 영혼이 지나치게 불안정하거나 원천이 되는 심장이 파괴되면 죽는다.


‘내가 다시 인간과 함께하는 일은 없겠지.’


비비앙은 기억한다.

마녀라는 걸 알아차린 사람들의 싸늘한 눈초리와 공포에 젖은 눈동자를.

그녀는 이제 인간들과 함께할 수 없었다.


그래서 라이언이 더 도드라지게 보이는 건가.

그의 눈동자에는 마녀에 대한 두려움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특이한 남자였다.

그래서 더 끌렸던 걸까.

사실 비비앙도 자신의 마음을 잘 몰랐다.

어쩌면 인간의 온기가 그리웠을 지도.

그녀의 본질은 인간이었으니까.


비비앙은 걸어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돌아보니 저 멀리 라이언이 걸어오고 있었다.

발걸음이 상당히 빨랐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 시늉을 했다.


‘나를 찾는 걸까?’


비비앙은 괜히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는 적이었지만, 지금은 동료였다.

···어쩌면 그녀만의 착각일 수도.

라이언은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비비앙이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

지척까지 다가온 라이언과 눈이 마주쳤다.


**


“달링. 늦었잖아?”


나무에 등을 기댄 비비앙이 입을 비죽거렸다.


“그러게 누가 먼저 가래?”

“그냥··· 좀 거북했거든.”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가면같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못 보던 활이네?”


라이언의 등 뒤에는 커다란 활이 걸려져 있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활대는 상당히 길었다.


“겐트라는 양반이 자기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주더군.”

“가보라고 하지 않았었나?”

“내 말이.”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를 이렇게 남에게 줘도 되는 건가.

신화시대의 영웅이 쓰던 물건이라며.

솔직히 거짓말 같았다.

가보라는 점과 영웅이 썼다는 거 둘 다 말이다.

그냥 꼬질꼬질하고 낡아빠져서 넘겨준 건 아니겠지.

아이들을 구해줬으니 체면 상 뭐라도 주긴 해야 했을 것이다.


“거짓말하던 양반처럼은 보이지 않던데.”

“그 노인 아버지가 허풍쟁이였다며? 그럼 답 나오지.”


비비앙이 머리카락을 배배 꼬았다.

일리 있는 말이었다.

술만 마시면 허풍을 떨었다는 겐트의 아버지.


“그럴 수도 있겠군.”


라이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비앙이 옆으로 다가오더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활을 매만졌다.


“그래도 소재가 참 특이한걸? 시위도 그렇고, 활대도 그렇고. 도대체 뭘로 만든 거지?”

“떨어져라.”


라이언은 부담스러워 비비앙의 이마를 밀어 거리를 확보했다.

그녀는 머리가 흐트러지자 눈을 찌푸리면서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달링. 너무 여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거 아니야?”

“적이었으면 대갈통부터 날렸을 거다.”


남자든, 여자든.

수컷이든, 암컷이든.

적이라면 가차 없이 죽여버리는 남자가 바로 라이언이었다.


“저기, 달링.”

“뭐지?”

“있잖아···”


비비앙이 그녀답지 않게 말끝을 흐리자 라이언은 눈을 좁혔다.

눈이 마주치면 시선을 피하는 게 영 수상했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낮은 어조로 물었다.


“우리 동료 맞지?”


매번 능글맞던 목소리에는 솔직함이 묻어져 있었다.

라이언은 어이가 없어 피식하고 웃었다.

난 또 뭐라고.


“여태까지 같이 다녀 놓고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그 말은.”

“동료가 아니라면 진작에 목을 쳤겠지.”

“말을 해도 꼭.”


그제서야 비비앙이 환하게 웃었다.

라이언이 보기에 가면이 아닌, 진심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


쿠구구구-


“젠장! 또 시작이군.”


지면이 흔들리자 드워프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자세를 낮췄다.

벽에 걸린 무기들이 이리저리 흔들거리고, 노루 위에 올려진 망치가 달달 떨어댔다.

잠시 후, 주위가 조용해지자 드워프들이 투덜거렸다.


“전보다 더 심해진 거 같은데.”

“마을까지 흔들거릴 정도라니. 이러다 다 뒈지는 거 아니야?”

“예끼! 해도 되는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말도 있지!”


푸름 수염을 한 드워프, 테리우스가 호들갑을 떨면서 동료의 입을 막았다.


“에퉤퉤. 갑자기 왜 그러시오.”

“그러다 진짜 큰일 나면? 당신이 책임질 거요?”


테리우스가 눈을 부라렸다.


“쯧쯧. 겁쟁이인 건 여전하구만. 전에 출입금지 된 광산에 들어가길래 담력 좀 키운 줄 알았더니. 달래진 게 없군.”

“염병, 내 의지가 아니었수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 더 있었던 것 같은데.”

“사람은 무슨. 악마 같은 자들이오.”

“무슨 일라도 당했소?”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왜?”

“악마들이 지옥을 구경시켜주더군. 거기서 살아나온 게 신기할 정도요.”


테리우스는 과거를 회상하며 이를 갈았다.

문신을 한 대머리 사내와 미치광이 여자.

인간 같지도 않는 작자들이었다.

진짜로 한 명은 인간이 아니었고, 또 다른 한 명은 인간을 탈을 쓴 무언가였다.

끼리끼리 논다고 하더니.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렸다.


“무슨 일을 경험했길래?”


드워프가 짐짓 궁금하다는 얼굴로 테리우스를 재촉했다.


“알아봤자 좋은 거 하나도 없소.”

“에잉. 알려주면 덧나나?”

“포기하시오.”


둘이 투닥거릴 무렵, 인적이 드문 광산의 절벽 한 부분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뭉게뭉게 치솟은 연기 사이로 검은 그림자가 걸어 나왔다.

남자는 거의 헐거 벗은 수준이었다.

이마에 솟아난 뿔이 그의 정체가 오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드디어.”


어둠에 익숙했던 그는 오랜만에 본 태양빛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주먹에서는 연신 피가 흘러내렸고, 가죽이 벗겨져 근육의 움직임이 보였다.


“크크크. 크하하!”


오니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광소를 터뜨렸다.

피골이 상접한 몰골이었지만 뿜어져 나오는 기백은 무시무시했다.

기백만으로 주변의 공기가 물결치며 요동쳤다.


“기다려라. 형제들아.”


오니는 자신을 가둔 형제들을 만난 생각에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눈에는 광기가 들끓었다.

그의 등장은 새로운 파란을 예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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