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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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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16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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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엽인들 [사명..변화 1]

DUMMY

그는 흐릿한 시야 속 체육관의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한가로운 생각을 했다.


‘이제는 별 꼴 같지도 않은 개꿈을 다 꾸네. 그런 게임은 한 적이 없는데.. 어? 그런데 왜 이렇게 앞이 안 보여?’


그리곤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눈을 비비려다가 왼쪽 눈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자 놀라 얼어붙었다.


‘좆 같은 거.’ 그제야 무슨 일을 당했었는지 떠오른 것이다.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 끝으로 눈을 한 번 만져보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결국 울먹이며 힘없이 손을 내렸다. 그리곤 자조 섞인 조소를 뱉어냈다.


“씨팔, 그냥.. 뒈지지.”


당연히 죽게 되리라 여겼는데 이렇게 세상을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별다른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의외로 담담하게 현실이 받아들여졌다. 그런 자신이 낯설면서도 어쨌든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아, 진짜 좆 같네.’


초점이 흐릿한 시야를 어떻게든 잡아 보려고 오른쪽 눈을 비비고 깜빡이기도 해봤지만, 왼쪽 눈에서 느껴지는 통증만 커지자 아예 눈을 감아 버렸다. 그리곤 허무한 바램을 뱉어내며 다시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다 꿈이었으면.” 이 모든 게 너무 빨리,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급작스럽게 진행됐다. 사고라는 게 다 그렇다지만, 이건 너무 억울했다. “이런 씨팔.”


이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부모님한테는 뭐라고.. 아, 이게 뭐야.’


그 악마 같은 놈이 왜 살려줬는지, 왜 상처가 안 아픈 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딴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중요한 건 이제 자신은 애꾸에 팔다리가 한쪽씩 없는 병신이 됐다는 건데. 그 말인즉슨, 지난 세월 죽어라고 노력한 취업은 물 건너갔다는 말이었다.


“이 병신아, 이 판국에도 취업이냐?”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져서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 빌어먹을 놈의 백수 인생. 정말 더럽게 꼬여가는구나.’


이상하게도 계속 웃음이 나와 한참 킬킬대던 그는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에 얼굴을 굳혔다.


‘잠깐만, 창수는..?’


악마가 그를 가만히 뒀을 리가 없었다.


“창수야!”


급한 마음에 소리질렀지만, 그의 목소리는 적막한 체육관을 울려 댈 뿐 어떤 화답도 오지 않았다. 해서 반사적으로 눈을 뜨고 주위를 살피려다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이를 악물었다.


‘좆 같은 거.’


아프지 않다고 해도 처참하게 망가진 육신을 살펴볼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게 뭐야!’


갑자기 짜증이 솟구치면서 울화가 터져 나온다.


“아, 이 좆 같은 거, 진짜.. 야 이 좆 같은 놈아! 왜? 대체 왜 날 이 지경으로 만든 거야? 야이, 씨팔놈아, 옆에 있으면 대답 좀 해봐! 아예 그냥 죽이든지 이게 뭐야, 이 개새끼야!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살려둔 건데? 야, 야! 대답 좀 해보라니까? 아니면 그냥 죽여!”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고스란히 실어낸 고함은 순식간에 절규로 화해 탈을 쩌렁쩌렁 울려댔다.


대한민국 수천만이 넘는 사람 중에 왜?

취업도 못 해서 빌빌거리다가 이제 좀 변해보려고 오른 약수터에서 도대체 왜?

많고 많은 등산객 중에 하필이면 자신이 있을 때 왜? 수많은 체육관 중에서 대체 왜 자신은 이 지옥 같은 곳을 선택해 악마를 만났는지, 눈과 팔다리를 잃은 병신이 되고만 건지를..


신이라도 앞에 있으면 멱살을 움켜쥔 채 묻고 싶었다.


“왜 하필이면 나야?”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진 걸 자각한 젊음은 원통하고 분해서 하염없이 울다가 문득, 툴툴 웃음을 흘렸다.


“왜긴 왜야? 결국에는.. 이 모든 게 내가 선택한 일인데. 내 발로 거길 갔잖아. 누가 억지로 오라고 한 것도 아니고 이런 씨팔.. 내가 왜 병신처럼 거기에 가서 이런 좆 같은 일을.. 어휴, 이 병신아.”


적막한 체육관을 울리던 자조 섞인 웃음이 서글픈 울음으로 바뀌어 갈 때, 세상에서 가장 듣기 거북한 목소리가 들려와 그의 등골을 훑어 내렸다.


“그래, 모든 일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다. 지금 네놈이 후회하고 있는 바로 그 선택들이 모여서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것처럼 말이다.”


그가 말하는 바를 떠나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턱 막혀왔다.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입안이 바싹 마르는 것을 보니, 그에 대한 공포가 뼛속까지 새겨진 듯했다.


‘좆 같은 거.’


자신을 이렇게 만든 악마가 왜 이 개 같은 체육관에 없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 뒷감당도 하지 못할 폭력을 휘둘러 놓고 줄행랑을 치는 양아치 따위이기를 내심 바랬던 건 아닐까?


설마, 그럴 리야 있으려고..


다만 그는, 도무지 감당하지 못할 문제를 무의식적으로 외면했을 뿐이다. 큰 소리로 욕하고 비난할 수 있었던 것도 저 악마 같은 인간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상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나 아침이 싫어 눈을 감는다고 일출이 늦춰지는 건 아니듯, 피할 수 없는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닿아 현실의 무게를 감당해야 할 때가 왔음을 알려줬다.


“준비가 되었느냐?”


명진은 이를 악물었고 그는 혀를 찼다.


“어리석은 놈, 어찌 그런 아둔한 머리로 세상을 살아온 게냐? 네놈이 계속 그렇게 무용함을 자랑하면 내가 어찌할 거라 여기느냐?”


사람에게 그런 짓을 해놓고도 태연한 목소리로 협박하는 관장의 행태에 이가 갈렸지만, 벌써부터 오금이 저리는 것 또한 현실이라 명진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쩌랴, 그가 정말로 무서운 것을..


“저기, 아까부터 계속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데, 솔직히 말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너는 잊었느냐?”

‘씨 팔, 무슨 좆 같은 소리야. 사람을 이 꼬라지로 만들어 놓고.’


명진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관장은 개의치 않고 이어갔다.


“파인하기 전에 언약을 맺었다.”

‘파..인? 언약? 언제 약속을 했어?’


파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질감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와중에도 언약이라는 단어가 유달리 귀에 거슬렸다. 해서 억지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저 악마에게 무참히 박살 나기 전 나누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것은 기억이라기보다는 본래 알고 있었던 것만 같은 울림이었다.


‘너는 지금 이곳에서 그 절망과 분노를 모조리 다 토해내라. 여기 내 앞에 서서 과거의 모든 걸 부정하고 벗어나 술을 받아들임에 망설이지 말아야 한다. 너는, 술을 받아들임으로써 천적에 맞설 의지를 갖추게 되리라. 인을 벗는 순간 나아갈 의지를, 벗어나게 될 힘을, 그 억압된 굴레를 모조리 부정한 채 오롯이 설 수 있는 사명을 가지게 될 것이다.’


여전히 이해 못할 말이었음에도 뭔가 그럴 듯하긴 했지만, 지금 자신은 병신이 돼 누워있지 않던가?


‘힘은 개뿔이..’


다시 개 같은 현실을 인지하고 보니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누가 이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아, 진짜..이런 좆 같은 거, 저 개새끼가 사람 병신 만들어놓고 뭐 어째?’


차마 입으로 뱉지 못하고 속으로 삼키고 또 씹어 삼키던 분노가 급격히 커지다가 이내 공포를 짓누르고 목구멍 밖으로 터져 나온다.


“힘? 힘이라고? 야 이 좆 같은.. 이게 힘이야? 사람 병신 만들어놓고 뭐가 어째? 이런 씨 팔, 왜 살렸어?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면 그냥 죽이지 왜 살렸어? 이런 씨 팔 변태 같은 새끼가.. 그래, 한 번 네 마음대로 해봐! 죽이든 살리든 난 모르겠으니까, 네 마음대로 한 번 해보라고 이 새끼야!”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싶을 정도로 악다구니는 쉽게 멈추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관장의 주먹이 저 여과 없는 배설구를 틀어막았겠지만, 웬일인지 가만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런 모습에 더 분노한 명진은 머릿속에 든 욕을 모조리 다 토해내며 그를 도발했지만, 절망한 자의 욕지거리가 울음 섞인 헐떡임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스러질 때까지 어떤 변화도 없었다.


“이제 나는 어떻게 살라고.. 아, 이제 진짜 어떡해?”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는 명진의 모습에 관장은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도 죽기는 싫은가 보구나. 살아갈 방도를 묻는 걸 보면.”


어처구니가 없어 다시 폭발한 명진이 욕설을 뱉으려 할 때, 그가 한 발 먼저 입을 열었다.


“나쁘지 않다, 앞으로 살아남으려면 그런 악도 있어야 하니까. 자, 다시 묻겠다. 그래서 너는 힘을 가질 준비가 되었느냐?”

“아, 이 인간이 진짜 좆 까고 힘은 무슨..지가 팔다리를 고쳐주기라도 할 거야? 이런 개 같은..”


거기까지 하다 말고 명진은 입을 닫았다. ‘잠시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 언뜻 뇌리를 스친 것이다. 그래서 슬그머니 언성을 낮추며 이어갔다.


“그런데 저기, 힘을 가질 준비라는 게 설마..”

“작은 통증에 놀라 눈도 못 뜨고 한탄이나 하는 걸 보면 그냥 죽이고 싶다. 하나..”


죽이라고 그렇게 악을 써대던 명진은 관장의 입에서 막상 죽인다는 말이 나오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그가 말을 잇지 않았다면 시선을 피해 눈을 내리까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괜히 또 어눌한 변명을 늘어놓았으리라.


“하나 내게는 시간이 없고 너는 힘이 필요하다.”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제발 좀 알아듣게 설명을 해주시면..”

“한쪽 손이 박살 나고 다리가 뒤틀렸다. 늑골이 부서져서 폐에 구멍이 나고 눈알도 한쪽 뽑혔건만, 네놈은 멀쩡히 악을 써대고 있구나.”


관장의 말을 들은 명진은 그제야 자신이 받은 상처가 쉽게 치료될 만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눈을 자극하는 조그만 통증 하나로 상황을 지레짐작한 채 현실을 한탄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비루한 근성이 골수에까지 미쳤구나.”


관장의 비아냥이 들려왔지만, 그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끊임없는 자기합리화에 물든 나를 비웃었는데, 정신 차리고 가장 먼저 한 일이 외면과 원망이라니..


‘좆도, 내가 언제부터 이랬던 걸까?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단정짓고 결론 내린 뒤에 일단 피하고 보는 걸까? 저 사람의 말대로 패배에 길들여져서 그런 거라면.. 씨팔, 그건 너무 비참하잖아? 그러니까 그만하자, 더는 피하지 말고 삶을 직시하자.’


그는 길게 호흡을 뱉어냈다.


‘피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가장 먼저 한 일은 손을 들어 왼쪽 눈을 더듬는 거였다. 그런데..


‘어, 뭐야? 왜 멀쩡한 것 같지?’


눈꺼풀 아래로 만져지는 익숙한 동공의 감촉에 놀라 설마, 혹시나 하고 눈을 뜨려니 다시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좆도, 아파봐야 얼마나 더 아프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부릅뜨는 순간 입가에 환한 미소가 걸렸다.


“좆 같은..거.”


흐릿했던 초점이 빠르게 하나로 맞춰지면서 세상이 다시 맑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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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엽인들 [사명..사제 1]두 가지 말. 17.01.25 402 9 14쪽
107 엽인들 [사명..변화 13]남명진 17.01.24 430 9 13쪽
106 엽인들 [사명..변화 12]남명진 17.01.24 405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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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엽인들 [사명..변화 1] 17.01.16 458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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