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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음여류
작품등록일 :
2012.11.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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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6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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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2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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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엽인들 [사명..사제 4]이어짐

DUMMY

산이 품은 거대한 생기에 동화되면서부터 그는 형언할 수 없는 황홀경에 빠져들어 갔다. 더할 나위 없이 날 선 감각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속의 모든 공간을 머릿속에 그려내니.. 원하는 모든 것을 다 행할 수 있을 듯했다.


‘더 빠르게.’


그냥 발 디딘 곳이 최선의 도약대가 되어 그를 힘차게 밀어내자 그는 어느 노인의 망상 속 호랑이라도 된 것처럼 나무와 바위를 박차고 산을 노닐었다.


‘스승님이 언급하신 선을 넘는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이미 육신에 새겼음에도 부족해 이르지 못한 강화술이 자연스럽게 발현되자 평소 불가능하리라 여긴 움직임이 쉽사리 이루어진다. 우거진 숲과 기암괴석은 물론이고 심지어 밤의 어둠마저도 장해물이 아님을 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자신이 스승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여겼다.


‘이러니 상대가 안됐지.’


흥이나서 더 내달리고 질주하자 농담인 줄로만 알았던 스승의 물음이 귓가를 간질인다.


‘왜 탈을 뛰어넘는 게 불가능하다 여기느냐?’

‘스승님이 안 보여줘서 의심했는데, 죄송합니다. 이런 게 진짜 가능했다니..’


세상 만물과 동화되어 흘러가는데 세상 무엇이 불가능하겠는가? 또한 그 어떤 게 두려우랴? 용기백배한 그는 주저없이 놈을 떠올렸다.


‘아쉽네, 지금 그 좆 같은 눈알이 나타나면 확 부숴버릴 텐데.’


문득 든 생각이 계속해서 뇌리를 맴돌자 그는 약수터 쪽을 힐끔 바라봤다. ‘좆도..’ 그리곤 스승이 정해준 목적지를 그 바위로 변경한 뒤 힘껏 바닥을 박찼다.


‘이번 기회에 싹 털어내자!’


그렇게 마음먹고 속도를 올리려는 순간 문득 스승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지만,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어서 그냥 무시했다.


‘혹여 그럴 일은 없겠지만, 들어는 두거라.'

‘예?’

‘볼품없는 도랑이라도 이어져 흐르다 보면 바다에 닿게 되니 이를 자연의 이치라고 한다. 태풍이 불어 범람하고 산사태가 나 물길이 막힌다 싶어도 이내 흐르고 흘러 도랑은 도랑으로, 바다는 오롯이 바다로 존재하니 이 또한 이치다. 한데 도랑과 바다를 직접 만나게 하면 어찌 되느냐?’

‘에이, 그런 게 가능합니까?’


스승의 얼굴에 짜증이 서리자 다급히 말했다.


‘그러면 도랑이 바다가 되겠지요.’

‘그렇다, 태풍과 산사태도 견딘 도랑은 없어지고 그저 바다만 남게 된다. 넓히고 넓혀 천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돼 드디어 합일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덧없이 사라지고 만다.’

‘저기 그런데 스승님, 개안에 관해서 설명하시다 말고 갑자기 왜 그런..’


대답 없이 쓴웃음을 흘린 스승이 ‘그래, 그럴 일이야 있으려고.’라며 혼잣말을 했었던 게 밑도 끝도 없이 왜 지금 떠오르는지.. 기다란 호흡에 잡념을 실어 뱉은 그는 커다란 나무 밑동을 박차고 쏘아져 나가며 속도를 올렸다. 한데 어찌 그는 개안과 동시에 초인지경에 다다른 걸까? 혹여 하늘이 내린 재가 있었던 아닐까?


모를 일이다. 중요한 건, 어쩌면 천재였을 지도 모르는 자의 눈빛에서 생기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일정한 힘과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걸맞은 신체가 필요하다. 평범한 인간이 초인적인 괴력과 속도를 내는 경우도 간혹 있다지만, 이는 찰나 간이며 기적적 해프닝에 불과하다. 엽인이 자신의 수명을 먹이로 하는 귀를 쓰면서까지 피부, 근육, 뼈, 심지어 신경과 장기까지 단련해 육체의 질을 바꾸려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강화술로 인한 초인적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그나마 구실이라도 할 수 있었으니까.


하면,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육신이 외적 요인에 의해 한계점을 넘어서고, 심지어 그 상태를 유지까지 한다면 어떤 결과를 맞게 될까? 답은 하나겠지.. ‘파괴.’ 그러므로 인간의 뇌는 스스로를 기만하고 속인다.


‘넌 괜찮아.’


한계점에 다다른 육신은 통증이라는 위험신호를 보냈지만, 드높은 차원의 사고에 고조된 뇌가 그 고통을 희열로 포장하며 속삭였다.


‘더, 조금만 더!’


달빛과 어둠 사이를 날듯 오가다가 땅으로 내려서는 순간 장딴지와 허벅지의 피부가 찢어지며 핏물이 터져 나왔다. 저런 상황이라면 멈추는 게 당연지사인데 그는 오히려 속도를 끌어올렸다.


‘더, 더..’


장해물을 피해 몸을 뒤틀거나 도약하려 자세를 잡을 때마다 힘이 들어가는 부위가 칼로 벤 듯 터지고 있음에도 그는 눈앞의 경이에 현혹된 채 새파란 미소를 머금었다.


‘조금만 더 빨리!’ 당장에라도 폐가 찢어질 듯 호흡이 가빠오고 몸이 피로 붉게 물들어가는 것에 비례해 희열도 커져간다.


가진바 한계를 일찌감치 뛰어넘은 뼈와 근육, 전신의 기관이 비명을 질러대건만 입가에 환희를 머금고 삼도천으로 미친 듯 내달렸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다 떨쳐낼 수 있어. 그러면 예전처럼··· 그냥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거야. 훌훌 다 털어버리는 거야!’ 급기야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어버린 육신이 급격히 붕괴되어 간다.


이제와 멈춘다 하여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하나 산이 품은 거대한 생기에.. 저기 보이는 대자연의 기운과 어떻게든 하나되려 최후의 킬 스위치를 누르려고 했다.


‘속도를 더 내야지!’


한데 바로 그 순간, 지금까지 봐왔던 것과는 매우 다른.. 굉장히 이질적인 생기가 감지되며 그의 눈길을 끄는 게 아닌가?


‘저..건?’


마안의 시야 속 모든 사물은 같은 기운을 바탕으로 해서 고유의 빛깔로 형상화된다. 콘크리트 건물까지도 그 바탕을 벗어나지 않는데, 유일하게 다른 존재가 있으니 바로 인간이었다.


‘이 시간에 웬..? 그런데 왜 낯설지가 않지?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설마..’


근방에 지인이라고는 스승과 창수, 단 둘이 전부였기에 그는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창수의 생기가 저렇게 흐릿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확인해야 해서 방향을 틀었다. 한데 바로 그 순간 오롯이 기로 이루어진 세상이.. 그를 파멸로 이끌어가던 환상의 세계가 밤의 침범을 받아 검게 물드는 게 아닌가?


‘뭐야?’ 그와 동시에 뇌는 언제 육체를 기만했냐는 듯 본래의 사고를 시작하였으니.. ‘이게 무슨..!’


사지육신을 짓이기는 통증에 놀라 몸을 뒤틀던 그는 무게중심을 잃은 채 바닥을 디뎠다. 울퉁불퉁한 바위를 가까스로 피해서 바로 옆 이름 모를 수풀을 밟았음에도 왼쪽 새끼발가락부터 부서진다.


‘빌어먹을!’


이어서 종아리, 무릎, 허벅지를 찢어발긴 충격은 온몸으로 퍼져나가며 어긋난 육신을 난도질해 버렸다. 너무나도 격렬한 고통에 질려 눈앞이 아득해지는 와중에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건 한 가지 의문이었다.


‘왜?’ 분명히 천국을 노닐었는데 고개 돌려보니까 지옥이다.


지난 1년간 수없이 대련하면서 죽이고 파괴하는 방법을 공부했기에 처한 상황이 얼마나 암담한지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화가 났다.


‘좆 같은 거, 이대로 가면 죽..어. 그런데 대체 왜?’


그는 짧은 시간이나마 필사적으로 생각했지만, 어떤 답도 도출해내지 못했다. 그저, 그저 모든 게 다 원망스러웠다.


‘아니 이런 씨팔 좆 까고 진짜.. 내가 이번에는 뭘 또 잘못한 건데?’


그렇게 집중이 흐트러지는 순간 마안이 눈을 감았다. 본래의 어둠을 찾아 시꺼메진 산은 위험천만한 압박감을 선사했고, 여지없이 모습을 드러낸 유리구슬이 죽음에의 공포를 자극한다.


‘대체 왜, 왜? 왜!’


발작적으로 바닥을 박찬 젊음은 속절없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이런 씨..팔.’


이것이 마지막 몸부림이 되리라는 걸, 곧 바닥에 널브러져 형언하지 못할 고통에 몸부림치게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기에 그는 조소를 머금었다.


‘개 같은 인생.’ 아마도 벌레처럼 꿈틀대다 스러지겠지.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핏물이 어느 비루한 인생의 죽음을 축하하는 폭죽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이만 눈을 감으려고 했는데..


‘아, 진짜 좆 같은 거.’


희미해져가는 시선 속 곧 부딪히게 될 사람을 발견했는데 웬 노인이 엉거주춤 서 있는 게 아닌가? 그는 이를 악물고 허리를 틀었다.


‘빌어먹을!’ 몸이 반으로 끊어지는 것만 같다.


가까스로 궤도를 수정하는데 성공한 그는 근처 나무 그루터기에 처박히며 정신을 잃었다. 너무나도 많은 의문을 뒤로한 채 귓가로 스승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개울이 바다와 만나면 덧없이 사라지고 만다.’



질끈 감았던 눈을 슬그머니 뜬 송영감은 코끝을 찔러대는 피비린내에 질려 망설이다가, 이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이 일을 어찌할꼬?’ 상대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어찌 외면하겠는가? 그래서 입을 열었다.


“이보, 살아는 있소?”


희미한 달빛 아래 얼굴을 확인할 만큼 다가간 송영감은 다시 한 번 그를 불렀다.


“이보, 이보게?”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어 고민하던 그는 머뭇머뭇 손을 뻗었다. 남사스럽게 떨리는 손이 부끄러워서, ‘시체를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럴꼬?’ 잠시 한숨 돌리며 마음을 가다듬으려 할 때, 죽은 듯 널브러져 있던 혈인이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질러대는 게 아닌가? 화들짝 놀란 송영감은 일순 얼어붙었지만, 뒤로 물러나지는 않았다.


‘어허, 이거 큰일이구나.’ 고통을 호소하는 것과 악다구니의 차이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해서 다시 물었다.


“이보, 괜찮소? 대관절 무슨 일을 당했기에 오밤중 산속에서 이리 헤매고 있소? 어쩌다 그런 상처를.. 도와줄 방도도 없건만.."


그간 나이를 허투루 먹은 게 아니라 간단한 응급처치 정도는 할 줄 알았지만, 이건 손댈 엄두도 나지 않았다. 답답하고 미안한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으려니 별별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정녕 호환이라도 당한 건가?’ 그는 괜히 주변을 둘러보며 어깨를 움츠렸다.


우거진 나무가 달빛을 막아 시꺼먼 숲 속에서 온몸을 뒤틀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혈인을 보고 있자니 절로 소름이 돋는다. 사방으로 메아리치던 비명이 잦아들고 죽어가는 자의 신음만이 남아서 어둠을 타고 흘러 다닐 땐, 고희가 넘었다지만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이거 참, 이거 참.. 내 이 일을 어찌할꼬. 이거 참.. 이보, 이보!”


그냥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차마 외면할 수가 없어 몇 번이고 더 그를 불렀다. 하지만 돌아오는 거라곤 곡소리 같은 신음뿐이라 송영감은 등산복에 달린 지퍼를 올리고 후드를 덮어썼다.


‘이거 참..’ 집요하게 옷 속을 파고드는 산바람이 왜 이리도 차갑게 느껴지는지.. 으슬으슬 몸이 떨리기 시작한다.


때마침 달빛이 들어 혈인을 살펴보니, 이건 그냥 피칠갑을 한 수준이 아니었다.


‘살지 못하겠구나. 어쩌다가 저런..’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참 많은 종류의 상처를 봐왔지만, 톱으로 난도질이라도 당한 듯 쩍 벌어지고 찢어진 상처를 온몸에 안은 건 상상한 적도 없었다. 연신 마른침을 삼키며 보고 있자니 자신의 몸에도 상처가 생기는 것만 같아서 고개 돌리고 말았다.


‘보면 볼수록 끔찍하구나.’


고희라고 해서 모든 상황에 초탈해지고 대범해지는 건 아니었다. 피비린내가 낯설고 두려운 평범한 사람 중 하나에 불과했기에, 그는 자리를 피하자 마음 먹었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는 죄지은 사람마냥 슬쩍 주위를 둘러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찾을 수 없었던 흙길이 눈에 확 들어온다. 아마도 약수터로 이어진.. 자신이 걸어온 길이리라.


“어허, 이거 참.” 노인은 몇 번이고 망설이다가, “이보, 미안하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이.”


그리곤 이만 외면하기로 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워서 고개를 푹 숙인 채 털레털레 걸음을 옮기려 할 때, 끊어질 듯 떨리는 신음 속 애달픈 목소리가 그의 발길을 붙잡았다.


"아..버..지."


벌써 죽었어야 했는데.. 감히 바다에 닿은 죄로 흔적도 없이 스러져야 했건만, 명진은 숨을 쉬고 있었다. 온몸을 헤집어 대는 고통 속에서 이만 벗어나 죽고 싶었지만, 산행을 하기 전 주입한 다량의 귀가 그를 붙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찢어진 피부는 어쩔 수 없다 하여도, 뼈와 신경을 비롯한 주요 장기를 보호해서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만.. 더는 못 하겠으니까, 그만 좀 죽여..’ 비몽사몽 간에 그는 울부짖었다.


어차피 귀의 약효가 다하면 급사할 테지만, 이제껏 온갖 일을 당해오면서도 버티고 또 버텨낸 그가 죽음을 바랄 정도로 통증은 극단적이었다. 그래서 매 순간 미쳐갔다. 간절히 바라고, 세상을 저주하고, 신에게 부탁하고, 자신을 증오하고, 스승을 부르며..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드높여 절규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 지랄이야? 이제 그만.. 제발 그만 좀 해!’


그렇게 시간이 흘러 생기를 모조리 소모한 귀가 서서히 사그라지자 그는 안도감에 한숨을 뱉었다. 이제는 스승이 나타나서 최고위급 회생술을 시전한다 하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으리라.


'좆 같은 거, 이게 뭐야.'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고통이 사라지자 그는 죽음의 순간이 왔음을 느꼈다. 그 짐승을 만나면서 한 번, 관장에게 파인을 당하면서 또 한 번, 그리고 지금.. 대체 무슨 팔자인지 벌써 세 번째라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거나 딱히 두렵지도 않았다. 그저..


‘마지막으로 하늘이라도 한 번 보고..’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밤하늘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겨우 눈을 떴다. 한데, '어떻게?' 너무나도 그리운 사람의 뒷모습이 보이는 게 아닌가? 설혹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무슨 상관 있겠는가?


‘아버지?’


그날 이후로 집에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괜찮다는 메시지 하나 남기곤 전화가 오면 신경질적으로 받아서 짧게 끊었을 뿐이다. 일평생 묵묵히 자신을 챙겨줬건만,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힘없이 처진 어깨 한 번 주물러드린 적도 없었다. 한데 저곳에 와 계시다니..


‘아버지!’


못난 아들은 어스름한 달빛 아래 서 있는 초라한 당신을 불렀다.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은 죄책감 속에서 최후의 기력을 쥐어짜내서 그를 불렀다.


‘아버지, 아버지! 죄송해요. 나는 그냥 예전처럼.. 그냥 살고 싶어서 그랬는데.. 이렇게 돼서 정말 죄송합니다..’ 입 안에서만 맴돌던 애달픈 신음이 기어코 언어로 완성된다. “아..버..지.”


이상할 정도로 익숙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송영감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멈춰 섰다. 장성한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찾아가지도, 어린 손녀에게 전화 한 통 하지 못하고 홀로 지내온 노인의 귓가에 닿은 그 조그만 부름은.. 천둥보다 더 크게 그의 가슴을 울렸다.


‘내..이 무슨 행태란 말인가?’


이곳은 도와줄 이 하나 없는 산속이었다. 많아야 30대나 되었을 젊음이 피투성이로 죽어가는데, 어찌 이리도 냉정하게 뒤돌아섰을까?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 절로 헛웃음이 흘러나온다.


“헛살았구나, 내가 헛살았어.”


책망하며 돌아선 송영감은 명진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고희가 넘은 노인에게 무슨 힘이 있겠냐 만은.. 외로움에 지쳐 스러져가던 아버지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아들을 둘러업었다.


“이제, 괜찮을 게다.”


그리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길을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늘 그래 왔듯이 아버지는 자식의 아픔을 묵묵히 어깨에 멘 채,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을 삼키며 흙길을 디디고 또 디뎠다.


“다 괜찮아질 테니까, 걱정 말렴.”


작가의말

세상을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가장 좋은 명절 연휴는 그저 한가로운 게 최고더군요.

주변 상황이 어떻든 간에 편하게 마음먹고 때때로 찾아드는 한가로움을 충분히 즐기는 연휴가 되시기를..

정유년 한 해, 바라는 모든 일이 이루어지기는 한해가 되시기를..

소수정예 님들, 부디 아픈 일이 없기를 기원하며 인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저는 연휴 동안 한 편씩이라도 연재를 하려고 생각중이니, 한가로울 때 잠깐 들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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